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문학그림전
문학과 그림의 대화
김선두 / 화가, 문학그림전 기획위원
동향 출신의 소설가 이청준 선생과는 1985년 샘터사에서 펴낸 한국전래동화 시리즈에서 소설가와 화가로서 처음 만났다. 이후 2004년 랜덤하우스 중앙에서 기획한 ‘그림, 소설을 읽다’에서 본격적으로 선생의 작품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선생은 그때 내 그림을 소설에 종속되지 않은 제3의 새로운 장르의 독립적 창작물이라 했다. 선생이 그림을 두고 ‘소설을 그림으로 그렸다’거나 ‘재창작했다’하지 않고 ‘창작’이라고 말한 것은 당신의 소설은 자료적 소재의 차원에 불과해 보인다는 점과 소설과 그림의 두 세계가 깊은 대화를 나눈 끝에 태어난 것이기 때문이라 하였다.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나는 그림으로 문학과 본격적으로 만남을 계속하게 되었다. 2004년 ‘옥색 바다 이불 삼아 진달래꽃 베고 누워’와 2007년 ‘모든 길이 노래더라’ 그리고 2008년에서 2018년까지의 이청준 전집 표지화까지 130여 점의 작업을 하게 되었다. 이청준 선생과의 예술적 동행은 나의 그림 세계를 깊고 넓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예컨대 같은 고향 출신이지만 선생과 나의 고향에 대한 시점은 달랐다. 선생의 소설 속 유년의 고향은 험한 시절을 건너가는 상처와 아픔으로 얼룩져있다면, 나의 그림 속 고향은 순수하고 낭만적인 느낌이 충만한 것이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고향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이후 나의 일련의 문학을 소재로 한 작업은 대산문화재단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문학그림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요즘 보기 드문 문학과 그림의 만남이다. 우리 문학사의 전설이 된 작품들이 그림에 영감을 주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 기획이 특별히 의미가 있다면 문학과 그림의 독립적인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림이 기존의 삽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독립적인 작품으로 남는 것이다. 이는 그림과 함께 읽힘으로써 그 문인의 시나 소설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이다. 기존의 소설이나 시가 그림과 더불어 책으로 다시 출간됨으로써 독자들과 새로운 모습으로 친근하게 만나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기존의 나의 작업들은 익숙한 주제와 소재이기에 쉽고 편했다. 하지만 문학을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것은 시나 소설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하고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여 표현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랐다. 선택된 소설 문장과 시의 내용을 그림의 이미지로 잡아내는 것에 주안점을 두어 작업하였다. 시와 그림은 함축적으로 표현한다는 속성을 지녔기에 이미지 하나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면, 소설은 서사가 있어 하나의 이미지로 잡아내기가 어려워 여러 장면을 한 화면에 옴니버스식으로 구성하여 그렸다. 이는 나로 하여금 전에 없던 새로운 형식의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나의 작업은 한동안 인물과 산수라는 장르에 갇혀있었다. 나도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대산문화재단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문학그림전’은 단조로웠던 나의 작업 소재를 다양하게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문학 작품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은 명사로 시를 쓰는 작업이다. 다양한 문학 작업을 통해 여러 가지의 소재를 그리게 되었으며 삶의 깨달음을 이미지 구성을 통해 표현하는 연습을 하게 만들었다. 대산문화재단이 제공한 이러한 일련의 문학과 그림의 대화는 참여하는 화가들로 하여금 문학을 통해 삶을 색다르게 경험하고 통찰함으로써 그들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되었으리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