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동아시아문학포럼
국경을 넘은 우정: 동아시아문학포럼의 비밀
최원식 / 평론가, 2010~2018 동아시아문학포럼 조직위원장, 제9회 대산문학상 수상
내 문서고에는 발표를 기다리는 원고가 한 편 있다. 시안[西安]에서 열릴 제5회 ‘동아시아문학포럼’(약칭 ‘동문’)의 기조연설(「서안의 꿈, 또는 서안에서 꾸는 꿈들」)로 2020년 10월이란 예정표가 새삼스럽다. 순조롭게 진행되던 포럼이 코로나의 습격으로 연기된 채 지금에 이르른 것은 주지하는 터.
나는 운 좋게도 ‘동문’의 전 과정에 참여했다, 2008년 서울에서 시작하여 2010년 기타큐슈[北九州], 2015년 베이징[北京]을 거쳐 2018년 다시 서울로 한 바퀴 돌았을 때, 나는 하늘에 감사했다.
돌이켜 보건대, 2010년 기타큐슈에서 열린 제2회(12.3~7.)가 기 중 극적이었다. 새로 위원장으로 위촉되고 맞은 첫 대회인지라 내심 긴장되는 바 없지 않은데, 동북아의 정치환경이 골치다. 대회 바로 1주일 전(11.23) 북한이 연평도(延坪島)에 무차별 포격을 자행함으로써 한반도는 아연 긴장에 휩싸였다. 이 회색의 시간에 한국 대표단은 기타큐슈로 날아갔다. 이뿐인가. 연평사태 두 달 전, ‘센카쿠[尖閣]’에서 충돌이 발생, 중일관계 또한 악화일로를 걷고 있었다. 아, 그런데 중국 작가들이 환하게 기타큐슈에 출현했다. 고비를 뚫고 재회한 세 나라 작가들 모두 감격했다. 일정은 순풍일로였다. 국제회의와 낭독회에 참가한 작가들이 하나같이 빛났거니와,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청중들이었다. 나는 홀연 동아시아의 ‘열린 도시’를 현현한 이 낯선 도시와 갑자기 사랑에 빠졌다.
아마도 이 대회가 ‘동문’의 계속성을 보호한 관건일 것인데, 지난 3월 3일 큰 작가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의 부고가 날아들었다. 전후민주주의자의 품격을 단호히 견지한 일본의 양심이요, 한국과 한국문학의 가능성을 신뢰한 진정한 이웃이었던 그는 ‘동문’의 출범에도 기여했다. ‘동문’의 지속적 성장만이 그의 명복을 비는 가장 근사한 답례임을 명념하면서, 3회까지 일본 대표로 헌신한 시마다 마사히코[島田雅彦], 그 후임을 흔쾌히 맡아준 히라노 게이치로[平野啓一郞], 그리고 고비마다 포럼의 지속을 열렬히 보장한 중국의 티에닝[鐵凝] 주석에게 심심한 감사를 표한다. 중일 교섭을 훌륭히 이끈 박재우·윤상인 교수, 그리고 대산문화재단 또한 ‘동문’의 토대다.
출범 이후 15년 동안 마치 살아있는 생물 같은 신비로운 생명력을 뽐낸 ‘동문’이 신기하다. 그 비밀병기는 국경을 넘은 작가들 사이의 우정이거니, 중일 사이를 오가며 크고 작은 우애의 다리를 놓은 우리 작가들이 무엇보다 자랑스럽다. 제5회 대회를 상상한다. “코로나의 터널 속에서 새 인간/새 사회가 걸어 나올 순간을 알아챌 우리 작가들의 책임과 명예가 이미 드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