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30주년 기념원고 / 대산대학문학상
‘첫’이 있어 가능한
김애란 / 소설가,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 수상 , 2005 대산창작기금 수혜
지금도 종로에 가면 나도 모르게 교보빌딩을 올려다보곤 한다. 그러면 늘 이십여 년 전 그 건물에서 승강기 단추를 누르던 내 작은 손가락이 떠오른다. 그해 처음 생긴 ‘대산대학문학상’ 응모 원고를 들고 사뭇 비장하게 재단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던 내 모습도.

세상에는 많은 ‘첫’이 있고 어떤 ‘첫’은 삶에 뜻밖의 결과를 가져다주는데, 내게는 대산대학문학상이 그랬다. 그 ‘첫’이 있어 가능했던 다음 걸음, 살면서 영영 못 만났을지 모를 여러 글을 나는 그해 데뷔 덕에 쓸 수 있었다. 당시 나는 경험과 공부가 부족한 말 그대로 ‘학생’이었지만. 때로 어떤 모름은 힘이 되고, 오직 그 시절에만 쓸 수 있는 글도 있다는 걸 그 뒤 여러 고비와 높은 산을 만나며 알게 됐다. 그 덕에 작가로서 또 한 인간으로서 더 지혜로워지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더 겸손해질 수 있었다는 것도.

이상한 말이지만 교보하면 광화문, 광화문 하면 프레스센터가 떠오르는데, 최근 그 근처에서 열린 한 행사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모 출판사에서 20년 가까이 한국문학을 담당한 편집자의 결혼식이었다. 프레스센터는 대산문학상시상식을 비롯해 문학행사가 자주 열리는 곳이라 특히 연말에는 이런저런 시상식으로 사람들이 붐볐다. 나는 거기 함께 간 친구에게 ‘ㄱ씨가 오랫동안 여기서 작가들에게 늘 꽃다발을 주고 박수 쳐줬는데, 이번에는 ㄱ씨가 꽃을 받는 자리라 좋다’고 했다. 그러자 그도 ‘정말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날 꽃에 둘러싸여 많은 이들에게 축하받던 ㄱ씨는 식이 끝나자 다시 모두에게 작고 수수한 꽃다발을 하나씩 선물했다. 나는 집에서 일주일 가까이 그 꽃향기를 맡으며 ‘순환’과 ‘선물’ 그리고 ‘쉽게 교환되지 않는 어떤 마음’을 되새겼다. 어찌 보면 책도 꽃과 비슷한 사물 같다는 생각과 함께.

대학생 때 데뷔해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나는 노인도 청년도 아니나, 해가 갈수록 세상에 시간만큼 귀한 건 없고, 그보다 더 귀한 건 ‘어떤 지향과 믿음을 바탕으로 오래 쌓은 시간’이라 믿게 됐다. 어릴 땐 잘 몰랐던 ‘몇 십 주년, 몇 주기’하는 말이 점점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늘 꽃을 주었던 누군가에게 이번에는 내 쪽에서 먼저 꽃을 건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나의 ‘첫’과 당신의 ‘오늘’을 기억하며. 진지한 눈빛을 담아, 꽃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