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고속버스는 북쪽으로, 북쪽으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차창 너머 흔들리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야릇한 멀미와 졸음에 취해 있던 저는 불쑥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새빨간 거짓말 같은 대산문학상 수상 통보였습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통화를 마치고 저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네다섯 권의 소설을 펴냈지만 여전히 막연한 습작의 시기를 보내는 심정으로 소설을 쓰고 있는 제게 대산문학상이라니. 대산문학상은 그만큼 저와는 먼 상, 그리고 큰 상이었습니다.
십 년 전인 그해 대산문학상 본심 심사를 맡으신 선생님들께서 21회 수상작으로 올리신 제 소설 『여인들과 진화하는 적들』을 떠올려봤습니다. 과연 그 소설이 대산문학상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소설인지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며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저를 휘감았습니다.
‘왜 이토록 부끄럽지…….’
그러다 머릿속에 텅 비며, 차창 너머의 풍경이 하얗게 증발해버리는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고속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증발하고 사라졌던 것들이 되돌아오고, 그때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낯선 기쁨이 제 심장에 서서히 고여 드는 걸 느끼며 저는 스스로를 타이르듯 속으로 중얼거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막 같은 책상에 홀로 앉아 소설을 쓰며 견딘 시간, 그 시간에 주는 상이라고 생각하자.’
티켓 속 목적지까지 고속버스는 아직 한참을 더 달려가야 했습니다. 제 목에는 파란 스카프가 파도처럼 휘감겨 있었고, 제 무릎 위 가방 속에는 새 그림이 그려진 작은 노트가 들어 있었습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장만한 노트 속에는 그즈음 연필로 끼적끼적 쓰고 있던, 고속도로 위 요금소의 여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날 저는 고속버스를 타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돌이켜보니, 불현듯 제자리를 떠나 낯선 곳을 헤매다 제자리로 돌아오곤 하는 버릇 같은 것이 제게 생기기 시작한 것은 그 즈음이었습니다.
대산문학상을 생각하면 저는 여전히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아마도 저보다 먼저 그 상을 수상한 (그리고 저 이후에 그 상을 수상한) 소설들의 특별한 문학적 가치와 빛남을 제가 잘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덧 30년을 맞은) 대산문학상의 한국문학을 향한 사랑이 한결같고 순수하다는 걸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상하다, 이상하다…….’ 그렇게 얼떨결에 받아 품에 덥석 안은 행운. 행운은 때때로 엄한 파도가 돼 제 등을 찰싹찰싹 때리기도 하고, 때때로 산처럼 높은 파도가 돼 제 등을 힘껏 떠밀며 깊은 데로 나아가게 하곤 합니다.
이 글을 쓰다 보니 그날 시상식장까지 귀한 걸음을 해주신 흠모하고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김정환 선생님, 이제하 선생님, 황인숙 선생님…… 그리고 축사에서 (시 부문 수상 작가인) 진은영 시인의 이름과 함께 제 이름을 다정히 불러주셨던 정현종 선생님. 홀로 첫 비행을 나온 참새처럼 떨며 수상소상문을 읽는 저를 너그럽고 자비로운 눈빛으로 바라봐주시던 선생들 덕분에 저는 무사히 수상소감문을 읽고 단상을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여전히 행운이자 의아함으로 남아 있는 대산문학상은 제게 ‘더 깊은 데로 나아가 그물을 드리우라’며 제 등을 떠미는 혹독한 파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