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 외국문학 번역지원
100권의 세계문학
이대현 / 영화평론가, 전 한국일보 논설위원
“근대문학 100년을 넘어 새로운 세기가 펼쳐지고 있지만, 이 땅의 ‘세계문학’은 아직도 너무나 초라하다. 몇몇 의미 있었던 시도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는 나태하고 편협한 지적 풍토와 빈곤한 번역 소개 여건 및 출판 역량으로 인해, 늘 읽어온 ‘간판’ 작품들이 쓸데없이 중간(重刊)되거나 천박한 ‘상업주의적’ 작품들만이 신간되는 등, 세계문학의 수용이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분명한 자각과 사명감이 절실한 단계에 이른 것이다.” 이런 신랄한 반성과 탄식, 비장한 각오로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출발했다.
우수 외국문학을 올바로 이해하고 수용해 한국문학, 나아가 사유의 폭과 깊이를 크게 하자는 뜻을 품은 만큼 첫 작품부터 심상치 않았다. 바로 당시의 삶과 문학을 지배하고 있던 형식과 도덕을 벗어던진 18세기 영국 전위소설가 로렌스 스턴의 『트리스트럼 샌디』였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 이야기를 한’ 탁월한 고전이었지만, 우리의 상업적 세계문학시장 풍토에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작품이었다. 함께 나온 최초의 중남미 작가 소설인 『페르키요 사르니엔토』가 적나라하게 펼쳐 보인 18, 19세기 과도기 멕시코 군상의 풍자도 새로운 문학세계였다.
‘상업성이 없다고, 길다고, 어렵다고 외면 말자. 숨은 걸작을 찾자. 자국 언어로 된 원서를 직접 번역하자. 나라가 멀다고, 시간이 오래 됐다고 포기하지 말자.’ 힘들지만 이런 몇 가지 원칙을 고집하면서, 세계문학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는 『가르강튀아 팡타그리엘』 『헤이케 이야기』 『발칸의 전설』과 러시아 거장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 1961년 노벨상의 주인공인 이보 안드리치(크로아티아)의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 독일 통일의 현장을 소설로 생생히 기록한 토머스 부르시히의 『그것이 어떻게 빛나는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마침내 1934년 노벨상 수상작가인 이탈리아 루이지 피란델로의 소설 『나는 고 마티아 파스칼이오』로 100권을 채웠다. 21개국 81종의 작품 중에서 국내 초역이 80%다. 문학의 시야와 사유의 폭을 넓히겠다는 선언이 빈말이 아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이제는 남아공까지 간다고 하니 총서 마니아로서는 그저 행복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