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재단과의 인연, 그리고 재단에 진 빚
고혜선 / 번역가. 단국대학교 명예교수
요즈음 세상에 20년에 걸쳐 피붙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 한결같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흔하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그런 좋은 관계를 여럿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은 사람이리라. 내게 있어 대산문화재단은 바로 그런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오는 존재 중의 하나이다.
2012년 대산문학상 수상소감에서도 밝혔듯이 1993년에 시작된 나와 대산문화재단의 관계는 번역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는 한국문예진흥원(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한국문학작품 번역을 지원하고 있었고, 문학지원을 주요 사업으로 선택한 대산문화재단은 한국문학의 외국어 번역 사업을 확대 실시할 준비 단계에 있었다. 대학원 시절부터 한국문학의 스페인어 번역에 관심이 있었던 터라, 나는 당시 대산문화재단 관계자에게 스페인어권의 중요성을 역설했고, 스페인어로 번역된 작품의 출판만으로는 한국문학을 알릴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행히 그 관계자는 내 논리에 ‘기꺼이’ 설득 당했고, 출판에 맞추어 작가들을 모시고 두 번에 걸쳐 멕시코와 쿠바 등지로 가서 출판기념회를 개최할 기회를 제공해 주었다. 그뿐인가? 칠레, 멕시코 등지의 유력 문인들을 초청하여 이들의 작품을 한국에 소개하고, 동시에 이들에게 한국의 문학을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해 준 것 역시 대산문화재단의 너그러움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특히 한국 최초로 문학작품 번역 심포지엄을 개최해서 어권별로 소규모 워크숍을 하도록 함으로써 비로소 외국문학 전공자들의 번역에 대한 관심을 이끈 것은 대산문화재단이 이룩한 주요한 업적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내가 대산문화재단에 ‘빚’진 것은 1995년부터 시작된 번역지원이다. 그 덕에 오정희의 『바람의 넋』,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 이청준의 『서편제』, 이청준의 『축제』, 성석제의 『도망자 이치도』가 번역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빚’은 아직도 청산 중이다. 『축제』와 『도망자 이치도』가 아직 출판섭외 중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