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 대산창작기금
봄 산 같은 대산
이병일 / 시인, 극작가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방문객」 정현종 작
대산은 사람을 중요시 여깁니다. 시골에서 올라온 제가 주눅 들지 않게 따뜻하게 배려해 주신 그 첫정을 기억합니다. 대산에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중학생이 지금까지 이렇게 대산과의 인연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대산이 한 사람의 방문을 한 사람의 일생의 방문으로 대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소년은 처음으로 대산을 통해서 교보문고를 구경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큰 서점이 있다니! 소년은 두 번 놀랍니다. 한 번은 운동장만한 크기에 놀랐고, 또 한 번은 거기에 빽빽하게 꽂혀있는 책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소년은 훗날 나도 저 시집 코너에 내 이름이 박힌 시집을 꽂고 말거란 작은 소망을 가슴 깊이 간직합니다.
입가에 검은 수염이 나고, 키는 기린처럼 커서 어느 덧 소년은 대학생이 되어 절정문학회(대산청소년문학상 출신 모임)에 나갑니다.
“책 속에 펼쳐진 슬픔과 우울을 / 그리고 희망을 갉아먹은 적이 있네 / 나는 책벌레들의 유서 깊은 병을 아네”(「활엽수림도서관」 졸시 작)
대산에서 후원하는 모임에서 청년은 시인의 꿈을 더욱 더 키워나갑니다. 선후배들과의 교류를 통해 『절정』 문집을 만들고, 대산이 주최한 문학행사에 참가합니다. 청년은 그 시간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여타의 청소년 문학상들이 시상식 후 시상자들과 연을 끊는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나무가 꽃을 피우기 위해선, 벼락, 천둥, 바람, 햇볕, 구름, 폭설과의 교감이 있어야 합니다. 교감이야말로 세상의 사물들에게 말 걸기입니다. 청년은 그걸 대산에서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청년은 시인과 극작가라는 칭호를 얻어 작품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청년은 가정을 이루고,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됩니다. 대산과의 인연이 16년이 되던 해입니다. 그리고 늘 받고 싶었던 대산의 창작기금을 받습니다. 그리고 올 여름 첫 시집 『옆구리의 발견』을 상자했습니다.
대산과의 작은 인연 하나가, 소년의 꿈을 지켜 주었습니다. 지금도 대산은 청소년문학상 공모 사업을 계속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아마 저처럼 문학은 모르지만, 문학적인 것이 무언지 아는 시골 소년이 또 나오겠지요.
언제 봐도 늘 새롭고 정다운 광화문글판은 어떤 시구로 웃고 있을까요? 새해를 배불리 빛내는 글판이 궁금해지는 하루입니다. 저녁은 첫 별을 다듬어서 달이 뜨는 곳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아아, 벌써 대산이 스무 돌이라니요, 봄 산에 꽃 보러 가듯이 금방 마신 꽃빛 때문에 마냥 기분이 좋듯이 대산은 저에게 봄 산 같은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