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20주년 기념원고 / 20주년 축하메시지
20주년 축하메시지
김종길, 김병익, 유재천, 황동규, 김광규, 유안진 , 신달자, 오정희, 최원식, 정호승, 김진경, 임철순, 최인석, 최재천, 김광일, 송찬호, 김인숙, 최미경, 김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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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견하고 친근한 이름

김종길 / 시인, 영문학자,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금년이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그렇게밖에 되지 않았던가 하고 의아해 했다. 내 느낌으로는 족히 그것의 두 배, 즉 40년은 되었을 것 같았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착각을 일으킨 것은 그동안 대산재단이 벌였던 일들이 그만큼 많았고 그 성과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었다.
국내의 기업체들 가운데서 이른바 문화사업을 병행하는 곳은 교보생명보험만이 아니라는 것은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교보’가 특히 내게 친근하고 대견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것이 운영하는 대산문화재단이 벌이고 있는 여러 사업 가운데서도 문학분야에 관한 것들이 가장 두드러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그 사업이 규모와 적절성과 다채로움에 있어 국내에서는 단연 돋보인 결과이다.
대산문학상을 비롯하여 국제문학포럼, 저명 해외문인 초청 등 대산문화재단의 연례행사는 여러 가지이지만 가장 두드러진 점은 그것이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국제교류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근년 한국문학번역원이 국내 문학작품의 외국어 번역과 더불어 비슷한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이와 같은 사업들을 실질적으로 먼저 전개한 것은 대산문화재단이었다.
그만큼 대산문화재단은 선견지명과 줄기찬 실행능력을 갖추고 발족했던 것이다. 지난 20년 동안의 그 빛나는 족적을 기리고, 관계자 여러분의 헌신과 노고를 치하하며 그 20주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2

성숙하고 품위있는 문학의 장래를 위해

김병익 / 평론가,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
저는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여러 가지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맞는 제 감회는 제 사사로운 덕택의 수준을 넘어, 한국 문학 전반에 대한 대산문화재단의 기여와 그 기여를 통해 성장한 한국 문화의 발전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20년의 역사는 성급한 우리 역사에서 결코 짧은 것도 아니지만, 한 세기를 겨우 넘기고 있는 근대의 우리 문화사에 대산이 감당해준 작업과 그 성과는 엄청 크고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 정도는 아마도 대산문화재단 이후에 족출한 여러 문학-문화재단을 합친 것보다 더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우선 종합 문학상으로서의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비평, 희곡, 한국작품 번역 등 우리 문학의 5가지 주류 장르에 대한 시상을 통해 한국 문학의 체통을 세워준 일입니다. 이 명예로운 상의 멋진 제정과 훌륭한 운영은 근래 갖가지 형태로 드러나는 문학적 상업주의화와 편파성으로부터 벗어나 좋은 문학, 바람직한 창작, 뛰어난 작품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전범을 세워주었습니다.
대산문화재단이 매년 여는 탄생 1세기를 맞는 문학인들의 기념행사와 몇 년마다 여는 아시아 혹은 세계 문학인의 포럼은 우리 작품의 해외번역 간행과 ‘대산세계문학총서’ 발간의 지원과 함께 우리 문학의 시간적 전개와 공간적 확대를 도모하는 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들은 우리 근대문학의 전통을 기억하고 발전시키며 한국문학을 세계문학의 일원으로 참여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입니다.
저는 또 재단의 별도 사업으로 우리의 서점 문화를 일신하고 출판계의 열악한 처지를 크게 개선케 한 교보문고를 통해 시민들의 문화 향수권 신장에 높은 성과를 올린 점을 못지않게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일들은 우리 문화를 겉으로 드러내기보다 안으로 성숙과 품위를 키우는 효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이제, 성인의 연륜에 올라 참여적 투표권을 갖게 되는 대산문화재단은 우리 사회의 메세나 문화 성장에 큰 산으로 세워 왔기에 앞으로의 한국 문화사와 문학사에 더욱 귀중한 사업과 성과를 돋구어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를 소망으로 제 심정을 높인 것은 일을 더 많이 할수록 그 기대와 바람이 그만큼 더욱 커진 때문입니다. 제 마음을 그처럼 두텁게 만들어준 대산문화재단의 창립 20주년에 대한 제 소감은 이처럼 거듭 말할수록 오히려 미흡해지고 맙니다. 그래도 다시 한 번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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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을 위한 큰 축복

유재천 / 전 상지대학교 총장
대산문화재단과 인연을 맺은 지도 13여년이 되었다. 1999년 3월부터 재단 자문위원으로 위촉되면서부터다. 이런저런 일들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광화문글판’ 문안을 선정했던 경험이다. 유종호 교수, 이청준 이문구 작가, 윤상철 대산문화재단 고문과 같이 1기 문안선정위원을 했다. 이 분들과 만나는 것 자체가 보람이었다. 문학도가 아니면서 문안선정위원에 낀 것도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다. ‘광화문글판’이라는 명칭도 내가 제안해 채택된 것이라 더욱 신바람 났었다. 평생 누구보다도 문학을 사랑하셨던 대산 신용호 교보생명보험 창립자의 뜻을 기려 설립된 대산문화재단은 지난 20년 동안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 많은 업적을 이루었다. 아마도 한국의 문학을 위해 대산문화재단처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후원을 해 온 경우는 드물 것이다.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니 한국의 문학을 위해 큰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계간 《대산문화》의 애독자임을 자임한다.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읽을거리들이 실린다는 것이 나를 즐겁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편집된 문예종합지인 셈이다. 앞으로 독자의 저변이 더 넓어지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아기자기하게, 더 재미있게 꾸며 주면 좋겠다.
지금까지 대산문화재단은 한국문학의 저변확대와 위상제고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 가운데서도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지원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다. 세계의 저명한 작가, 시인, 평론가들과의 교류는 한국문학뿐 아니라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우리가 세계의 문학과 문화를 이해하는 큰 물꼬를 튼 셈이다. 바라건대 그 같은 인적 교류와 함께 한국의 문학작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한 번역 사업도 더욱 강화했으면 한다. 쉽지 않은 주문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결실은 더욱 클 것이다.
대산문화재단 창립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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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의 대 사건

황동규 / 시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40여 년 전 문학 계간지들의 출현이 한국 현대문학의 흐름에 굵은 획을 그었듯이 20년 전 ‘대산문화재단’의 탄생은 또 한 번 우리의 현대문학 흐름에 지울 수 없는 진하고 확실한 획을 그었다.
우선 당시로는 가장 수준이 높은 시스템을 가지고 그리고 당시로는 가장 큰 상금을 내건 대산문학상의 제정은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 그 후 수많은 ‘좋은’ 상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그리고 그때까지는 누구도 손대지 못했던 번역 분야에까지 상의 영역을 넓힌 것은 우리 문학의 획기적인 일이었다.
뿐이랴. 문학작품 출판비 보조, 학생 문학 공부 돕기, 신인 발굴, 창작 지원, 동서 고전 번역 사업, 그리고 수준 높은 계산지 《대산문화》의 발행 등 “대산”이 해온 일은 그야말로 큰 산(大山)이라고 할 수 있다.

축하 글 부탁을 받고 “대산”의 출발이 아직 20년밖에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30, 40년은 된다고 느끼고 있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대산”은 그 출현 시기가 실제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고 느껴질 만큼 큰 사건이었다. 남다른 비전과 열정을 가지고 어려운 때 어려운 일을 시작한 창업자 대산 신용호 선생의 정신을 계승 확대 발전시키고 있는 “대산” 창업 20주년을 축하하며 동시에 앞으로 계속 더 깊이와 넓이를 더해가게 되기를 진심으로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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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렴, 무사, 공공성

김광규 / 시인,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대산문화재단이 태어난 지 겨우 스무 해 밖에 되지 않았다니! 이러한 느낌을 갖는 사람은 아마 나 혼자뿐이 아닐 것이다. 민족문화창달과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표방하며 출발한 이 재단이 그동안 이룩한 업적이 너무나 커서, 그 모든 것이 불과 20년 사이의 성과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손가락으로 나무에 구멍을 뚫었다는 대산 신용호 회장의 위업은 수도 서울의 기점이 되는 종로 1가 1번지에 독특한 건축미를 자랑하는 교보빌딩을 우뚝 세운 데 그치지 않았다. 어느 대기업도 꿈꾸지 못했던 시점에, 우리 문학의 선양을 위하여 기업 이익을 환원하는 큰 결단을 내렸고, 후계자 또한 이 사업을 이어 받아 눈부시게 발전시켜 오늘에 이른 것이다.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문학 부문의 대표작에 해마다 수여되는 대산문학상은 21세기에 접어들어 한국 현대 문학의 이정표가 되었고, 우수 작품의 외국어 번역 출판 및 해외 소개 행사는 이른바 한류의 세계화에 바탕돌이 되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
서울의 서촌에서 태어나 평생 광화문과 서대문 근처에서 살아온 나로서는 도심을 지날 때마다, 교보빌딩을 수도의 상징적 건물로 바라보곤 한다. 지난 2003년에는 나의 여덟 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가 제11회 대산문학상을 수상했다. 나의 회갑 전후에 발표된 작품 72편이 수록된 이 시집은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으로 2010년에 독일어로 번역 출판되어, 독일어권의 우수 해외 번역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대산문화재단과의 인연은 그 후에도 이어져서, 연례 문학 행사 또는 해외 문학 교류 행사에 심사위원이나 집행위원으로 위촉된 적도 있다. 행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하여 동일인에게 한 두 번 밖에는 참여의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사립 재단이지만, 청렴 무사한 공공성을 엄수하는 경영 자세는 여러 면에서 귀감이 된다고 믿는다. 지난번에 신창재 이사장이 몽블랑 후원자상을 수상한 것도 이러한 업적의 국제적 인정으로 생각된다.
대산문화재단은 이제 20세의 성년이 되었다. 재단 임직원들의 헌신적 노고와 교보생명의 지원을 바탕으로 더욱 건장한 젊음을 키워나가며, 세계적 차원의 문화재단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충심으로 격려와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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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 20년! 대를 이은 두 회장님의 문학 공로

유안진 / 시인,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귀를 찢고 넋을 뺏는 광화문에서도, 한 구절의 글귀와 마주쳐 위로와 희망으로 정신 들게 하는 교보빌딩! 신호를 기다리노라면 생각나는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한 구절로 행복해지곤 한다. 바로 세계 최초로 교육보험을 만든 선대(先代) 신(愼) 회장님의 철학적 선언이다.
나는 작고하신 선대 신용호 회장님을 잊을 수 없다. 해마다 각종 심사나 저자 사인회 등에 초대받아 과분한 대접을 받으며, 문화사업에 대한 큰 포부를 직접 들은 바 있어, ‘대산문화재단!’하면, 작고하신 신 회장님의 훤칠하신 모습과 따스하고 울림 깊은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대산문화재단, 특히 교보는, 무학(無學)인 선대 회장님의 입지전적 공로이다. 돈 없어 학교를 못 다닌 당신 세대의 한을 후대의 어느 누구도 겪지 않게 하려고, 세계에서 전무후무한 교육보험을 최초로 창안하였는데, 전 국민적 환호와 지지로 무수한 학생들이 혜택을 받아 공부하게 되었으니까.
언젠가는 심사 후에 손수 차를 따라주시면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신창재 교수도 소개해주셨다. 그 후 신문보도에서 대산문화재단을 물려받은 신창재 회장이 무슨 상속세라든가, 법대로의 어마어마한 세금을 현금으로 납부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고, 사회의 귀감이 되었음에 감동 먹었던 기억도 새로워졌다. 이미 신창재 회장은 문화지원의 공로를 국제적으로 인정받아 영예로운 “몽블랑상”을 수상한 바도 있다. 그래서 대산문화재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특별한 존경과 애정을 느끼는 이는 나만이 아닐 것이다. 또한 시내 나갔다가 시간이 어정쩡하면 재단의 곽효환 시인을 찾아가 차를 얻어 마시며 담소하는 ‘문학사랑방(?)’ 교보빌딩, 그 ‘대산문화재단’이 20주년이 되었단다.
20세 청년이 된 대산문화재단! 그간의 공로와 앞으로의 창대한 발전을 기대하여 뜨거운 큰 박수를 보낸다. 특히 두 회장님은 대를 이어 문학을 사랑했다. 해마다 대산문학상,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산창작기금을 비롯한 등단 기회 제공 등등과 계간 《대산문화》 등 여러 가지로 지원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작품을 세계에 알리는 국제 세미나도, 국내 문인들의 해외 활동과 각국 문인들의 한국문학 알기 등도 지원, 주관해 왔고, 국내 문인들의 탄생 100주년 기념 문학제로 작고․생존 문인들의 사라질 뻔한 작품과 업적을 발굴 조명하는 문학사업도 주도해왔다.
이외에도 내가 알지 못하는 문학, 문화 사업이 무수하리라. 우리문학이 세계문학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지원해온 재단의 문학 사업은 앞으로도 더욱 확대 확장될 것이다. 시인보다 더 시인다운 양 대의 두 신 회장님을 비롯하여, 아름다운 청년 곽효환 시인 등 임직원들의 문학 사랑과 높은 안목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며, 남이(南怡)장군의 “남아이십 미평국(男兒二十 未平國)이면 후세수칭 대장부(後世誰稱 大丈夫)리요”라는 시구로써 20세 청년이 된 대산문화재단의 업적을 치하하고 앞으로의 창대한 발전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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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년 미래의 세계문학 중심으로

신달자 / 시인
20년도 더 전의 일이다. 교보 창립자이신 신용호 회장님이 나를 불렀다. 비가 오는 날이었고 장소는 회장실이었다. 나는 무슨 말씀을 하실까 잔뜩 궁금해 하며 아주 조심스럽게 회장실에 들어갔다. 회장님은 무엇인가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나를 부르신 것 같았다.
눈빛을 반짝이며 하신 말씀은 바로 대산문화재단(당시 대산재단)에 관한 것이었다. 자신이 중요한 일을 시작한다는 것이었고 우리나라도 문학으로 노벨상을 받아야 하는데 아무런 준비가 없어 청소년부터 교육을 시키고 장학금도 주어 향후 노벨상 수상작가가 나오는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또한 우리나라 작가들을 세계에 많이 알리는 일도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하셨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는가, 아니 알 것 같은가?”
그 말씀을 하시던 눈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 적지 않게 놀랐다. 자신과 직접적인 관련을 가진 일도 아니고 문학계 주변에 책임을 느낄 사람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왜 이 일을 저렇게 고심하시면서 손끝을 달구고 계시는 것일까. 그리고 그 자금 또한 상당한 금액이었다. 사실 그때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나는 ‘왜?’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의문이 들었고 그리고 ‘대단하시다!’라고 생각했다. ‘왜?’라는 의문과 ‘대단하시다’는 놀라움은 사실 지금도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나는 그분에게서 이 시대 어두운 길목에 등 하나 켜고 춥게 서 있는 나라 지킴이를 보았는지 몰랐다.
그분은 그렇다. ‘나다’라고 생각하신 분이다. 우리 사회는 ‘나다’에서 빠져 나오려는 술수가 판을 치는 세상인데, ‘나다’라고 생각하신 그분은 현재 의식과 미래 의식이 얼마나 눈부신 분이었겠는가. 누군가 해야 할 일이었지만 신 회장님이 모든 준비를 직접 진행하고 계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나는 그때 경건해졌고 그분의 눈빛은 이미 세계를 보고 있었다.
나에게 하신 부탁은 바로 그 재단의 기초를 다질 국장을 추천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국장의 조건이 좀 남달랐다. 여자이고 혼자 사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월급은 얼마이고 보너스는 몇 번을 주고 그리고 소형 자동차 하나를 주겠다고 하셨다. 대신 초기라서 거의 모든 시간을 일에 쏟아야 한다는 것이 회장님이 강조하신 말씀이었다.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마침 한 여자가 떠올랐다. 혼자 사는 여자이고 일을 해 본 경험이 있고 일을 찾고 있으니 다행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가 그 이야기가 있고난 일주일 후에 교수로 가게 되었다. 그만한 자격을 갖춘 다른 여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게 자꾸 미루게 되자 다른 남자분이 발탁되어 대산문화재단을 출범하게 되었다. 그것이 딱 20년 전,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잊지 못할 기억이다. 회장님이 재단 설립의 초입에서 나에게 무엇인가 협조를 부탁한 것이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나는 대산문화재단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되었고 지금 대산문화재단은 우리 문단의 중추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회장님이 ‘혼자 사는 여자’라고 말한 그 시간에 대한 의식이 아직도 머릿속에 남아있다. 재단의 기초 다지기에 모든 것을 바칠 사람을 요구한 것을 보면 그분 또한 자신의 일에 그야말로 자신의 혼을 바치는 생활을 하셨고 그런 모습이 결국은 회사를, 사회를, 국가를 재창조해 왔다고 보고 있다.
그분은 물건을 묶는 끈 하나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다. 1초도 그냥 허술하게 보내지 않는 분이었다. 그런 분의 혼으로 만들어진 우리 대산문화재단이다. 정말 잘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다시 바라건대 그분이 미래 의식으로 준비한 대산문화재단이 다시 20년 미래의 세계문학 중심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재단으로 인하여 한국문학을 읽고, 세계문학을 읽고, 그래서 한국문학의 별이 저 하늘 한가운데 늠름히 빛나 하늘에 계신 회장님이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빙그레 웃으시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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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꿈나무 기르기’와 ‘한국문학 세계화’의 실현

오정희 / 소설가
먼저 창립 20주년을 맞는 대산문화재단에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20년이라면 작은 씨앗이 싹터 튼실히 뿌리내리고 둥치 굵어져 비바람에 허수로이 흔들리지 않은 나무가 되고 갓 태어난 아기가 헌헌장부가 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세월입니다. 오래전 아마도 1990년대 후반쯤 교보생명의 연수원인 ‘계성원’으로 대산청소년문학상 문예캠프의 강사로 간 적이 있었지요. 2박 3일간 각지에서 모여든 청소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저는 그때 그처럼 좋은 시설, 아직 어린 그들 한명한명의 재능과 개성에 대한 존중과 대접이 얼마나 기쁘고 흐뭇했는지 모릅니다. 한번도 한껏 ‘나다움’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고 억눌린 청소년기를 보낸 저로서는 그처럼 즐겁고 환하고 개성적인 아이들의 모습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답니다. 아울러 이러한 기획과 시도를 한 주최 측이 정말 가치 있고 좋은 일을 하고 있구나 하면서 감동을 느꼈었지요.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그때의 소년문사들이 밤새워 나름 열띠게 벌이던 논쟁의 시간들이 문학에 눈뜨게 하고 인생의 품격을 높게, 풍요롭게 가꾸어나가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대산문화재단은 지난 20년 동안 남들이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었던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애초 ‘문학꿈나무 기르기’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조금은 막연했던 기치가 꾸준한 지원과 열정, 다각적인 노력으로 이제 현실화되어가고 있는 것을 봅니다.
일찍이, 사람을 생각하고 보다 아름답고 좋은 세상을 생각하고 그러한 미래를 소망하던 마음과 뜻이 맺은 열매일 것입니다. 문학인의 한사람으로서, 한국문학과 문화를 위해 기꺼이 밑거름이 되어주시는 대산문화재단에 고마움과 축하의 마음을 보내며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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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국가의 이상

최원식 / 평론가, 인하대학교 명예교수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 축하메시지를 부탁한다는 청탁을 받고 내심 ‘이제 20년밖에 안됐나’ 했다. 법률적으로는 갓 성년을 넘긴 상태인데, 교보문고 광화문점과 함께 한국문학의 오랜 벗처럼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교보빌딩 바로 앞에 자리한 ‘고종 어극 40년 칭경 비각(高宗御極四十年稱慶碑閣)’보다도 익숙하니, 그만큼 교보문고를 모태로 한 대산문화재단의 적공(積功)이 크다는 뜻일 테다.
재단은 한국문학의 귀인이다. 무엇보다 한국문학이 즐거이 놀 유익한 마당을 깔았기 때문이다. 허균(許筠)은 일찍이 갈파했다. “문장이 비록 작은 재주라고는 하지만, 학력(學力)이 없고 식견이 없고 공력(功力)이 없으면 지극한 경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옛 글을 널리 배우지 않기에 학력이 없고, 스승에 나아가 배우지 않기에 식견이 없으며, 배운 것을 익히지 않기에 공력이 없습니다”(정길수 편역, 『허균 선집』, 돌베개, 2012). 이중 학력과 식견은 타력(他力)이고 공력은 자력(自力)인데 후자는 혼자 힘이니까 그런대로 갖출 수 있되 전자는 사실 후원 없이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재단이 바로 전자를 튼튼히 하는 인프라를 제공한 것이다. 예컨대 대산대학문학상은 젊은 문학을 구출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미래를 현재화했고, 더욱이 수상과 함께 외국답사를 시행하여 타력을 함양할 기회를 부여한 게 꽃이다. 탄생 100주년 기념문학제는 살아있는 당대 문학의 학력을 증진하고, 서울국제문학포럼과 동아시아문학포럼은 안팎의 스승들을 한자리에 어울리게 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식견을 넓히는 데 기여한 바, 바야흐로 공력만 닦으면 누구나 일가를 이룰 토대가 놓인 것이다.
대산문화재단의 출생은 때를 맞췄다. 안으로는 민족문화를 진흥하고 밖으로는 국제문화 교류를 증진함으로써 우리 문학의 창조력을 창달한다는 모토를 내건 재단은 말하자면 백범(白凡) 문화국가론의 뒤늦은 실현이다.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어떤 결여를 치유할 묘방이 일국적 부국강병책을 제어할 전인류적 문화국가라는 점에서 재단의 국제화 방점은 마침맞은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러했지만 앞으로도 부디 문화의 힘에 대한 믿음을 나라 안팎 곳곳에 퍼뜨려 주기 바라면서,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감축하는 동시에 새로운 20년을 미리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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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청년, 대산문화재단

정호승 / 시인
언제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대산문화재단이 이렇게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랐는가. 곽효환 사무국장이 대산문화재단에서 막 일하기 시작했을 때 나도 직장이 광화문에 있어 가끔 재단 사무실에 들르곤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세월은 참 빠르다. 그렇지만 그 빠른 세월 속에 대산문화재단이 이렇게 늠름하고 아름다운 청년으로 자랐으니 시간이 빠르다는 사실을 그리 못마땅해 할 것은 아니다. 그렇게 열심히 흘러가는 시간이 없었다면 오늘의 대산문화재단이 이렇게 건강하고 성실한 청년의 미소를 지닐 수 있겠는가. 청년이 된 대산문화재단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가끔 먼 발치에서 뵙긴 했지만 대산 선생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대산 선생은 현재에 눈길을 두면서도 미래에 눈길을 두는 선각자적 삶을 사셨다. 선생께서는 선생께서 이루신 자본이 우리 사회에, 특히 우리 사회의 문화 영역에 환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하신 분이다. 그런데 선생께서 특별히 문화 영역에 마음을 두신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결국 인간은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도 인간의 영혼이 아름다워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문화발전의 초석이 되기를 소원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을 아름답게 하는 가장 소중한 요소가 바로 ‘문화발전’이라고 생각하고, 그 문화가 ‘삼류’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가끔 우리 시대는 일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인간성을 파괴하고 훼손하는 문화는 삼류 문화가 될 수밖에 없는데, 우리 시대엔 때때로 그런 삼류 문화가 설치고 박수를 받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이다. 아마 대산 선생께서는, 문화는 인간의 아름다움을 지향하고 완성하는 일류 문화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동안 대산문화재단이 우리의 문화 전 영역 중에서도 특히 문학에 보여준 다양한 활동은 괄목할 만하다. 이제 대산문화재단이 스무 살 청년이 되었으므로 더 큰 목표를 세워주기 바란다. 목표를 세우면 목표가 나를 이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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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화재단은 우리나라의 품격을 높여왔습니다

김진경 / 시인, 소설가
나는 2009년에서 2010년 중국 소주에 있는 소주대학 한국어과에 교수로 가 있었다. 소주는 상해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도시이다. 차로 2시간 거리는 우리 기준으로는 꽤 먼 거리지만 중국 기준으로 하면 이웃 동네나 마찬가지다.
내가 처음 소주에 가서 놀란 것은 삼성, LG, 포스코 등의 우리나라 기업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었다. 많은 기업들이 들어오다 보니 소주에 거주하는 한국인도 4만이 넘는다. 그러니 소주대에 한국어과가 생길만도 했다.
나는 이러한 사실들 때문에 “이 정도면 소주대에 한국과 관련한 책이나 자료들이 꽤 있으려니” 기대를 했었다. 이러한 기대는 강의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되어 산산이 부서졌다. 어느 날 한국말을 배우려고 열심인 여학생 하나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손에 무언가를 들고 찾아왔다. 무언가 보았더니 옛날 시골 장에서나 팔았을 법한 얇고 조악한 책이었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하는 나에게 그 여학생은 무슨 신기한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어설픈 한국말로 외쳤다. 선생님! 도서관에서 드디어 한국말로 된 책을 찾았어요. 너무 너무 신기해요!
나는 그 여학생의 말에 낯이 뜨거워졌다. 그래 우리나라에 그럴 듯한 기업들이 소주에 다 들어와 있는데 한국어과가 있는 소주대에 한국 책을 기증할 생각을 한 인간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단 말인가? 그 낡은 책도 중국 연변 자치주에서 발간된 한국 소개 책자였다. 안 되겠다 싶어 급한 대로 집에 있는 내 책을 부치라고 해서 한국어과에 기증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어학과 교수들이 싱글벙글하며 날 찾아왔다. 대산문화재단이 오백만원 가까이 지원해서 제대로 된 한국 책을 살 수 있게 되었다며 교수마다 신청한 책 목록을 보여주었다. 나는 비로소 구겨졌던 품격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대산문화재단은 우리나라의 품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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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학의 믿음직한 큰 산

임철순 / 전 한국일보 논설고문
대산문화재단이 걸어온 20년에는 한국문학의 변천과 발전사가 그대로 담겨 있다. 개인이든 조직이든 또는 그 어느 거룩한 단체든 일단 출발을 하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굴러는 간다. 그러나 그 굴러감이 의미가 깊고 내용이 좋아 자신은 물론 남들이나 사회에 두루 도움이 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이 스무 해 동안에 대산이 문자 그대로 믿음직한 큰 산으로 우뚝 선 것은 경하해 마지않을 일이다.
대산이 해온 일은 참 많지만, 나는 맨 먼저 세계문학과의 접촉 창구나 통로로서의 역할에 주목한다. 1999년 첫발을 내디딘 <대산세계문학총서>는 종전의 세계문학전집과 판이하다. 우리나라에 소개되지 않은 작품에 초점을 맞춰 원전을 직접 번역하는 방식의 세계문학 소개는 대산이 처음으로 해낸 일이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출간된 1백15종 가운데 70% 이상이 초역이다. 문학과지성사를 통해 출판되고 있는 이 총서는 25만 부 이상 팔릴 만큼 대중성도 확보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 문학ㆍ출판계에서는 전집 출판이 미약하다. 한 시인이나 소설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의 전 작품을 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경우 여전히 인기 있거나 유명한 작품에 편중돼 중복 출판이 많고, 원전을 직접 번역하는 게 아니라 일어판을 통한 중역, 재역 또는 짜깁기식 표절ㆍ복사판이 많다.
2004년 통계이긴 하지만,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이 영미문학 중요 작품 중 5백73종의 완역본의 번역을 검토한 결과 추천할 만한 것은 겨우 11%(61종) 수준이었다. 그리고 전체의 반수 이상이 표절본이었다. 지금은 그때로부터 얼마나 나아졌을까 하는 차원에서 대산의 작업을 평가해야 한다.
충실하게 우리 문학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도 대산은 꾸준히 해왔다. 금년 노벨문학상은 아시아권인 중국의 소설가 모옌이 받아 우리로서는 아쉬움이 더 컸지만, 앞으로 우리 문학인 중 누군가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대산의 기여가 컸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다수 참석하고 있는, 또는 미래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이 참석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은 대산이 자랑할 만한 행사다. 이미 세계적 행사로 자리 잡은 서울국제문학포럼을 통해 한국 문인들은 세계와 함께 호흡하고 있고 저들의 눈으로 우리를 돌아보고 있다. 이런 행사 외에 해외체류 지원이나 낭송회 후원 등 국제 문학교류 사업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계속 높이고 늘리고 넓혀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여름에 다녀온 대학생동북아대장정이 인상적이다. 전국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삼아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가는 동북아 청년리더를 기르겠다는 이 사업은 문학과 직접적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참가 대학생들은 여행을 통해 문학과 역사의 중요성에 눈뜨게 되고 인류의 온갖 값진 지적 활동과 문화유산에 접함으로써 문화적 삶의 지평을 넓힐 수 있게 된다.
동북아대장정의 참여자들과 대산청소년문학상의 수상자를 선정하는 과정은 놀랍도록 엄정하고 치밀하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불공정이 근절되지 않는 것, 표절의 심각성과 해악에 아직도 둔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업은 바로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기여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문학상 심사를 통해 대산은 문학에서의 표절이 얼마나 치명적인 일인가를 잘 알게 해주고 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일반인들은 아직도 대산문화재단을 잘 모른다. 대산이 무슨 뜻인지, 혹은 누구의 아호인지에 대해 아는 일반인들은 사실 드물다. 일반인들을 대산 가까이 갈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마도 교보생명이 주관하는 광화문글판일 것이다. 재단 창립 이전인 1991년에 처음 선보인 광화문글판에는 주로 계절에 맞는 시인들의 시가 오르고 있는데, 20년이 지난 지금은 시민들의 삶의 판, 마음판으로 자리 잡았다. 이와 비슷하게 글판을 운영하는 공공기관이나 민간 업체도 늘어났다. 좋은 일이다.
20년을 맞은 시점에 대산은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 출발할 때의 그 마음가짐을 잊지 말고 더욱 충실하게 계획된 일을 실행하면서 새로운 영역을 확충해 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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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모하게 더 무모하게

최인석 / 소설가
토목기술자 페리는 돈 강과 오카 강 사이의 수로를 만드는 작업을 하기 위해 시베리아에 도착하지만 결국 공사는 실패하고 그 벌로 모스크바로 끌려가 참수형을 당한다.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이라는 작품의 줄거리다. 자연에 묻혀 사는 농민들, 이성과 기술을 이용하여 그 자연을 지배하려는 황제와 기술자, 그리고 자연이라는 세 가지 요소를 통해 이야기가 전개된다. 결국 이성의 기획을 밀어붙인 황제와 기술자가 패배하고 마는데, 무한권력을 지닌 황제가 책임을 질 리 없으므로 젊은 기술자가 참수형을 당하고 마는 것이다.
작가가 이 작품을 쓴 것은 1920년대 중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지 채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기였다. 그때 이미 작가는 이성적 기획의 독재로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노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목이 잘린 기술자 페리는 어찌 보면 1991년 쓰러지는 스탈린 동상에 대한 예언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귀중한 작가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대산문화재단이 기획하여 출간하는 대산세계문학총서를 통해서다. 이 작품이 실린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예피판의 갑문』은, 벌써!, 110권 째다.
이 총서가 아니었다면 나는 이 작품을 읽을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이 작품만이 아니다. 미하일 불가코프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작품 『거장과 마르가리따』 역시 이 총서를 통해 만났다. 소비에트의 관료주의가 얼마나 가혹하고 무능했는지를 맘껏 조롱한 작품이다.
나는 계산에 서툴러 이런 책들을 벌써 백여 권 째 출간하는 것으로 대산문화재단이 무엇을 얻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이런 무모한 일을 계속하는 문화재단이 있다는 것이 고맙고, 앞으로도 이런 무모한 일을 계속해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그밖에도 대산문화재단이 벌여놓은 무모한 일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잘 알지만, 더 욕심을 내자면, 외국의 몇몇 유수한 문화재단처럼 더 과감하고 더 무모해져서, 젊고 가난한 작가들에게 이삼 년 동안의 생활비를 조달해주는 펠로우십 같은 것들도 기획해주기 바란다. 주변에 젊은 작가들이 가난 때문에 여기저기 몸을 파는 꼴을 너무 많이 보아온 나머지 안타까워서 내는 욕심이다. 그런 무모함이야말로 문화재단의 더욱 현명한 발전의 길이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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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족하게 밥을 먹여주는 문화

최재천 /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명색이 과학자인 사람이 이렇게 말하면 제 얼굴에 침 뱉는 짓인 줄 뻔히 알지만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부글거림을 참을 수 없어 그냥 뱉습니다. 금년에도 이웃나라 일본은 또 한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탄생시키는 바람에 온 나라가 “16대 0”을 되뇌며 애석해 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30대 0이 될 때까지 별다른 희망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학자들에 대한 뒷바라지는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결과만 바라는 모습이 못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노벨과학상보다 노벨문학상을 먼저 수상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가 과학계를 뒷받침하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문화계를 옹호하는 모습이 어느덧 훨씬 더 탄탄하고 믿음직스러워졌기 때문입니다. 그 한 축에 바로 대산문화재단이 우뚝 서 있습니다. 지난 20년간 대산문화재단이 초지일관 추구해온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이제 적어도 꽃망울을 맺고 있는 모습이 제 눈에 보입니다. 계절이 바뀔 무렵이면 어김없이 배달되어오는 《대산문화》에 그 확실한 흔적이 보입니다.
한때 우리 사회에도 “문화가 밥 먹여주느냐”고 묻는 무지함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그런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문화가 밥을 먹여준다는 걸, 그것도 아주 풍족하게 먹여준다는 걸 이제 다들 압니다. 다만 어떤 문화가 그걸 해주는지, 어떻게 그런 문화를 창달해낼 수 있는지 아직 잘 모를 뿐입니다. 이제 다가오는 20년 동안 대산문화재단이 그걸 확실하게 보여주고 이끌어 주리라 기대합니다. 스무 살이면 이젠 더 이상 철부지 아이가 아니라 20대 청년입니다. 책임감을 느끼며 걷는 길이 늘 흥겹지만은 아닐지라도 꿋꿋하게 걸어주십시오. 황지우 시인께서 “길은, 가면 뒤에 있다” 했지요? 대산문화재단이 걷는 길을 따라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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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재단’

김광일 / 조선일보 논설위원
2000년 가을이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세계적인 문인 20명을 서울에 모은다는 소식이 들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들은 물론이고 국제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문인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라 형편이 크게 펴진 90년대까지도 아무도 생각 못한 매머드급 서울국제문학포럼이었다.
한 사람만 와도 신문지면을 크게 펼쳐야 하는 초특급 문인들이 20명이나 한꺼번에 온다는 소식에 언론사 문학담당 기자들은 흥분했다. 재단에서 초청 문인 명단을 미리 공개했다. 기자들에게 그들을 연구할 시간을 주고 인터뷰에 대비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는 배려였다. 여러 언론사가 함께 공동 인터뷰를 하고 싶은 문인, 혹은 단독 인터뷰를 하고 싶은 문인을 미리 조사했다.
나는 당시에 문학담당을 맡은 지 얼마 안 되는 초짜 기자였다. 남들 하는 것처럼 해서는 내가 만드는 지면이 도저히 차별화될 것 같지 않았다. 다른 신문사에는 10년 이상 문학을 담당하고 있는 평론가 수준의 기자들이 수두룩했고, 실제로 등단한 시인이나 소설가가 문학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는 신문사도 여럿 있었다. 나는 대산문화재단에서 초청하는 문인들이 서울에 오기 전에 내가 그들을 현지로 직접 찾아가기로 했다. 그렇게 성사된 현지 단독 인터뷰가 10건이었다. 월레 소잉카, 이스마엘 카다레, 피에르 부르디외 같은 사람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들을 만났을 때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있었다. 한국에 있는 대산문화재단은 어떤 사람들이 만들었기에 오로지 문학만을 위한 재단 운영을 이처럼 인상적으로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세계에는 수천수만 개의 문화재단이 있다. 대기업 오너가 재산 도피수단이나 탈법적 상속수단으로 문화재단을 악용하는 사례도 간혹 있었다. 건실하게 운영되는 문화재단들도 대개 겉모습을 화려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는 무대예술이나 전시예술 지원에 치우쳐 있을 때가 많다. 클래식 음악이나 파인 아트를 후원하면 정기적으로 구름 관객을 모을 수 있고 생색을 내는 효과도 그만큼 높을 것이다.
사정이 그런데도 문학만 지원하는 재단은 좀 바보스럽다. 그 바보스러운 대산문화재단을 만들어 세운 지 20년이 됐다. 후회를 해도 여러 번 했을 것 같은데 너무나 한결같다. 오로지 문학만을 북돋우려고 한 해에 수십억 원을 내놓고 힘을 쏟는 문화재단은 어지간한 예술 철학과 뚝심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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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나바의 어울림 같은 대산문화재단과의 동행

송찬호 / 소설가
대산문화재단 창립 2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민족 문화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의 기치를 걸고 달려온 햇수가 어느덧 스무 해, 대산문화재단이 이제 듬직한 성년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비바람과 땡볕을 가려주는 커다란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대산문화재단은 참으로 따뜻하고 튼튼한 문학의 의자가 되어주었습니다. 문학이 그 푸른 그늘 아래 앉아 무한한 격려와 위안을 받았습니다. 외롭고 어두운 창작의 등불에 기름을 가득 부어주었습니다. 세계로 나아가 한국문학의 키를 부쩍 높였습니다.
세상은 속도와 경쟁을 무기로 빠르게 인간과 자연으로부터 달아나고 있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날로 비대해지고 탐욕스러워지고 있습니다. 그 틈에서 문학은 점점 더 왜소해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런 거대한 골리앗 사회에서 우리가 문학이라는 돌팔매질로 용감히 세상과 맞설 수 있는 것은 대산문화재단 같은 든든한 후원자가 뒤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기는 쉽지만, 그것을 실천으로 옮기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십년을 한결같이 그 사회적 실천을 실행하기란 더욱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대산문화재단이 더욱 아름답고 따뜻해 보입니다. 여러 창작지원과 번역지원 제도, 문학상 제도, 해외 연수 제도등 어느 공공기관이나 자치단체도 따라올 수 없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한국문학을 한층 더 영광과 축복의 자리로 밀어 올렸습니다. 이제 대산문화재단을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이제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문학의 가시밭길에 대산문화재단이 함께 오래 동행했으면 좋겠습니다. 벌과 나비의 어울림처럼, 함께 뒹굴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창립 20주년을 축하합니다. 앞으로 50년, 100년, 더욱 울울창창 하소서. 꽃 같은 문학, 오래 지켜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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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그 자리를 잘 지켜준 근사한 ‘내 편’

김인숙 / 소설가
꽤 오래 전의 기억이다. 대산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중고등학생들의 문예캠프가 있었다. 3박4일 동안 몇 명의 작가들이 중고등학생들과 합숙하며 백일장 시제를 내어주고, 또 함께 대화를 나누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도 그 프로그램에 참여를 한 적이 있었다. 그게 거의 20년 전, 그러니까 대산문화재단 창립 초기의 일이다. 한 겨울에 열렸던 그 캠프의 기억은 세월이 오래되었음에도 아주 선명하게 남아있는데, 항상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분주히 오고가던 어린 학생들의 모습이며 그들이 제출했던 재기발랄한 작품들은 그야말로 인상적이었다. 그것은 일반적인 백일장에서 보았던 것과는 확실히 다른 풍경이었는데, 아마도 합숙을 하면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라는 독특한 성격 때문이었을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어린 학생들의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어 진행하는 대산문화재단의 야심찬 의지와 열정이 또한 그랬다. 당시 갓 태어났던 대산문화재단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아주 본때 있게 해보겠다는 듯했고, 그에 대한 투자도 대단했다. 당시 문예캠프에서 장원을 한 학생은 대학 4년 동안의 학비를 전부 제공받았다. 그것은 사실 어마어마한 상금일 뿐만 아니라 대산이라는 거대 재단이 주는 어마어마한 지지이기도 했다.
지금 그 프로그램은 다른 형식으로 변했지만, 여전히 문학 꿈나무인 청소년들에 대한 대산문화재단의 지원은 상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멀리 보자는 뜻이겠다.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이 곧바로 문단에 들어와 기성작가들과 어깨를 맞대거나, 혹은 더 훌륭한 작품들을 써내는 것을 보면서도 나는 그게 그렇게 놀랍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래 전부터 대산문화재단이 열정을 쏟아 부어 쌓아놓은 토양이 그런 식으로 열매를 맺는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간혹, 내가 문예캠프에 참여했을 당시 영예의 장원이 되었던 학생이 지금 무엇을 하고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한 생각이 들곤 하는데, 그가 작가로 살고 있지 않다고 한들 어떠랴. 그에게 주어졌던 문학의 세례는 어떤 방식으로든 발화되었을 것이다.
문학 꿈나무들에 대한 지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기는 했지만, 대산문화재단의 본령은 역시 기성 문인 혹은 문단에 대한 지원이다. 더 거창하게 말하자면 한국문학의 오늘을 지키는 것이겠다. 지킬 뿐만 아니라 알리는 것이기도 하겠다.
동아시아문학포럼이 그 중의 하나이다. 중국과 일본과 한국 3국의 작가들이 2년에 한 번씩 만나 서로의 문학적 관심사를 논의하는 그 자리에 몇 번 참여를 했다. 문학의 관심은 바로 자기가 서있는 그 자리로부터 출발하는 것일 터이다. 여기에 있는 우리에게는 고유한, 그러나 세계에 있는 모두에게 보편적이기도 한 질문. 그런 질문은 만남을 통해 더 풍성해질 수밖에 없다. 해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 문학, 그리고 문학을 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어쩌면 그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동아시아문학포럼이 내걸었던 주제보다 더 내 기억 속에 남은 것은 상해의 밤바다 배 위에서 마셨던 일본과 중국 작가들과 함께 한 술 한 잔이며, 기타큐슈의 선술집 풍경들이다. 마시는 술도 다르고 마시는 법도 다른데 함께 마시다 보니, 내 문학이 거기에서 한 가지 이야기를 더 얻었다.
대산문화재단의 창립이념을 보니 ‘민족문화의 창달’과 ‘한국문화의 세계화’에 기여하고자 한다고 되어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런 거창한 창립이념보다는, ‘그저 내 편’ 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쉽다. ‘내 문학의 창달’도 도와주고 ‘내 문학의 세계화’도 지원해주는 단체라는 소리다. 내 편이 아니라면 그런 일들을 어찌 해줄 수 있겠는가. ‘내 편’이 아니라면 그런 일들을 해달라고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대산문화재단에 바라는 것도 나로서는 단 한가지뿐이다. 지금까지도 그래왔거니와 앞으로도 역시 그저 가까이 있어주기를 바랄 뿐이다. 진짜 힘세고 근사한 ‘내 편’은 가까이 서있되 내 앞에 서있지 않고 옆에 있거나 살짝 뒤에 서있는 법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작가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작가들 역시 대산문화재단을 지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대산이 항상 그 자리를 잘 지켜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년 대산과 여러 가지 인연을 쌓았다. 위에 소개한 일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일들이 있는데, 그 중에는 대산문학상을 받은 것도 있고, 버클리대학 레지던스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정된 것도 있다. 내가 그러한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내가 오래 글을 써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대산문화재단이 창립되기 이전부터 작가로 살고 있었으니 만남의 접점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는 소리다. 지금 갓 문학을 시작한 젊은 작가들에게는 또다시 앞으로 나와 같은 인연들이 쌓이게 되리라. 대산문화재단 나이 스무 살이면 청춘이다. 그 패기를 잊지 마시기를. 오래 전의 중고등학생들 문예캠프에서 뺨이 빨갛게 달아올라 있던 어린 참가자들처럼 역시 그렇게 열정과 의욕에 가득 차 있던 대산문화재단의 그 모습을 늘 기억하시기를. 그래서 20년 후, 마흔 살이 된 대산문화대단이 여전히 패기 있고 젊은 재단으로 남아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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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문호와 지성들이 함께한 <서울국제문학포럼>

최미경 / 번역가, 이화여자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 교수
은행나무가 황금색 가지를 벌리고 환호하듯 휘젓던 10년 전 어느 날, 대산문화재단의 창립 10주년 축사를 썼던 생각이 납니다. 다양한 문화뿌리 다지기 사업을 하는 대산문화재단이 어느새 20주년이 되었다는 사실이 믿기 어렵지만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60달러였던 가난과 분단, 독재의 역사 속에서 힘든 민주화를 이룬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경제대국으로서만 아니라 문화와 지성의 장으로 융성하는 데 대산문화재단은 정말 큰 힘을 보태왔습니다.
국제회의 통역사로서 저는 그 소중한 문화와 지성의 교류의 현장에 함께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며 뿌듯한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르 클레지오, 월레 소잉카, 오르한 파무크, 겐자부로 오에, 모옌, 가오싱젠 등의 작가들이 대부분 노벨상 수상 전후에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여하였고, 세계적인 지성인 부르디외, 보드리야르 등이 방한, 명석한 발제를 통해 세계 문화와 지성의 갈 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또 한국문학과 작가, 번역을 위한 지원을 통해 소수어인 한국문학이 세계문학의 지도에서 한국적 타자성으로 세계의 보편을 만나며, 다양성의 울림으로 기여할 수 있게 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번역지원, 번역상등의 큰 지원을 받았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동북아의 작가 만남을 마련하여 역사적으로 민감한 지역에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평화를 구축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젊은이들을 위한 장려와 지도 행사도 다양하게 조직해오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산문화재단 하면 떠오르는 것은 이사장님, 국장님을 비롯한 재단 식구들의 인간적이고 따듯한 얼굴들입니다. 이해심, 친절과 겸손으로 항상 든든하게, 효과적으로 지원을 해주시는 이들의 변함없는 모습이 그 자체로도 든든합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대산문화재단의 큰 뜻 힘차게 펴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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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단의 별장, 광화문 1번지

김수이 / 평론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대산문화재단은 광화문 1번지에 있다. 행정주소명은 종로1가 1번지다. 광화문 1번지는 멀리 학창시절의 나에게는 책을 사고 친구를 만나던 근사한 현대적 아지트였다. 교보문고의 천장을 가득 메운 휘황찬란한 조명보다 더 빛나던 수많은 책들, 다리 아픈 줄 모르고 서서 그 책들을 읽으며 꾸었던 꿈들이 여태 아련하면서도 생생하다(이 추억이 어찌 나만의 것이랴). 만약 ‘나의 현대 modern’에 관한 목록을 작성한다면 교보문고에서 처음 본 질서정연한 책들의 번쩍이는 회랑을 빼놓을 수는 없으리라. 그 후 문학평론가로 데뷔한 내게 광화문 1번지는 대산창작기금의 응모자(두어 번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정말이지 유감은 없다.), 《대산문화》 편집위원 등의 공식적인 일로 종종 드나드는 한국문단의 별장 같은 곳이 되었다. 꿈의 공간이었던 곳이 현실의 장소가 된 것이다.
별장은 집은 아니지만 집처럼 편안하고, 때로 집보다 여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다. 집에서는 볼 수 없는 다른 삶의 풍경과 길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 별장이 나의 것이 아니라 사람 좋은 절친한 친구의 것이라면 말 그대로 가장 행복한 경우가 된다. 그러니까 광화문 1번지, 한국의 수도 서울의 가장 중심부에는 한국문학이 소유하지 않은, 그러나 예술과 문화의 가치와 비전을 즐겁게 공유할 수 있는 전망 좋은 별장이 있는 것이다. 한국문학의 입장에서는 최적의 아이러니한 위치에 있는, 소중하고 기꺼운 제2의 자산이 아닐 수 없다. 별장의 안에는 한국문학의 활력을 돕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가동 중에 있고, 그 장치들을 잘 운용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심하는 사람들이 있다. 거리를 향한 외벽에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좋은 글이 걸려 지나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고 환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한 대산문화재단이 창립 20주년을 맞았다고 한다. 광화문 1번지에서 내가 누린,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누린 꿈에서 현실까지의 은성한 시간이 어느새 20년이 되었다는 뜻이겠다. 그 세월의 두터움과 유정함을 헤아리며, 마음 깊이 축하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