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 국제문학교류
국제 문학 교류의 상식적 방안
김광규 / 시인, 한양대 명예교수
1991년 여름학기에 객원교수로 독일에 갔을 때였다.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후 17년 만에 한국의 대학교수로서 독일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게 된 것이 감개무량했다. 그런데 독일문학의 한국 수용에 관한 세미나 첫 시간에 어떤 신입생이 한국에서 쓰는 말이 중국어인가, 일본어인가 하는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17년 전에 독일학생에게서 들은 것과 똑같은 물음이었다. 독일에서 쓰는 말은 영어인가, 불어인가라는 반대 질문으로 나는 대답을 대신했다. 하지만 그동안 독일문학의 소개와 번역에 진력해 온 자신이 갑자기 부끄러웠다. 외국문학을 전공하는 경우, 이처럼 외국 문화의 일방통행에 기여하는 자괴감을 언젠가 느끼게 마련이다. 이때 나는 우리 문학의 독일어권 소개도 독문학도의 임무라고 깨달았다. 외국문학의 국내 수용뿐만 아니라, 우리 문학의 해외 소개도 외국문학도가 해야 할 일 아닌가. 그리하여 1992년에 한국 작가단이 베를린에서 작품낭독 및 청중과의 토론 행사를 개최함으로써 한독문학교류의 첫발을 내디뎠다. 그 후 10년간 대산문화재단, 파라다이스문화재단, 한국문화예술진흥원, 한국문학번역원 등의 지원으로 한독작가 교류가 연례화됐고, 우리 문학작품의 독역 출판이 꾸준히 신장되어왔다. 문화예술의 선양이나 문학의 세계 진출은 장기간에 걸친 노력과 투자를 통해서만 그 성과가 서서히 드러난다.
특히 문학작품의 해외소개는 언어를 매체로 하는 특성상 그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우리말로 씌어진 시와 소설과 희극과 평론을 외국어로 옮기는 작업이 어렵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못지않게 글을 다른 말로 옮기기도 힘들다. 번역을 해본 사람이라면, 번역이 때로는 창작보다 힘들다는 것을, 그리고 번역을 반역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농담이 아님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에 종사하는 사람을 우리는 너무 홀대해 왔다. 학위를 끝내고도 전임자리를 얻지 못한 많은 외국어문학도에게 걸핏하면 “번역이나 해라”고 무책임한 충고를 하지 않는가. 그 결과 번역은 아무나 여가로 할 수 있는 가외의 일로 여기게 되었다. 요즘 쏟아져 나오는 번역서적에서 적지 않은 오역과 졸역, 오문과 비문이 발견되는 까닭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는 번역의 문제에 관하여 진지한 성찰과 대책이 시급하다.
초국적 자본의 이윤추구와 신자유주의 경제 경영, 허울좋은 구조조정과 휴머니즘을 망각한 교육개혁으로 말미암아 인문학의 쇠퇴는 오늘날 전세계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학력 인문학도의 미취업 숫자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우수한 외국어문학 전공자도 적지 않다. 이들을 전문 번역가로 흡수한다면, 취업난 해결과 번역의 질적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물론 오래전부터 해왔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 작품을 외국어로 옮겨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면, 이들은 대부분이 고사한다. 시나 소설을 번역하는 일은 고달픈 작업이고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보수는 열악하기 때문이다. 문학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있고 훌륭한 우리 문학 작품을 해외에 알리는 보람에 동의하면서도, 다른 학술 공모과제로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학문적 평가도 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의 추론이 아니라, 실제 경험에서 알게 된 사실이다.
우수한 번역인력을 확보하기 위하여 구체적 방법을 모색해 보아야 한다. 번역료를 노력에 걸맞게 인상하고, 번역가를 외교관 못지 않게 우대하는 개선책이 필요하다. 번역된 작품의 출판에 앞서 문학에 조예가 깊은 원어민의 윤문을 받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하다. 어느 작품이든 내용과 형식이 통일된 유기적 구조를 갖고 있는데, 그것을 외국어로 그대로 옮기기는 불가능하다. 번역이 반역이 되지 않으려면, 최소한도 근사한 번안이라도 성공해야 한다. 하나의 텍스트에는 집필자의 체험과 느낌과 생각뿐만 아니라, 해당 언어권의 역사와 문화 전체가 스며있다. 능력있는 원어민만이 이러한 아우라에 접근하는 윤문을 할 수 있다. 아마 해당 언어권의 작가나 시인이 가장 바람직한 윤문작업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작가가 자기 글을 안쓰고 남의 번역문을 고치려 하겠는가. 사실은 말도 붙일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작가교류 등을 통하여 일대일로 인간적 친교를 맺어놓는 것이 우수한 윤문자 확보와 영향력 있는 출판사 주선의 지름길이다.
지난 10년간의 체험으로 보건대, 우리 문학 세계화의 방안은 작가교류와 작품번역, 문학교류 행사와 양적인 팽창을 지양한 수준높은 번역, 출판 및 국제 홍보를 복합적으로 동시에 추진하는 데 있다. 이것은 상식에 속하는 방안이겠지만, 바로 상식을 지속적으로 실현하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