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 종합
유종호 / 평론가, 전 연세대 석좌교수
지난 날 오랜 기간의 권위주의적 정치행태와 중앙집권적 행정양태는 우리 사이에 모든 것을 국가 및 관에 의존하려는 정부 의존심리를 낳았다. 그러한 경향의 동전 안팎 현상으로 관에서 주도하는 공식 정책이나 행사를 의혹과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관변 불신 심리가 생겨난 것도 사실이다. 너무나 많은 것을 기대하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의심한다는 이중 심리구조의 궁극적 책임은 과거에 권력을 행사해 온 집단에 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그러한 면에서 민간 차원의 문화후원자의 출현은 우리 사회가 오랫동안 요망해온 간구 사항이었다.
귀족계층이 독점적 예술고객이 되어있던 시대에는 위세있는 귀족들이 후원자의 역할을 배타적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귀족층의 몰락이나 중산계급의 상승과 함께 예술가들은 집단적 후원자라 할 수 있는 익명의 일반 향수자층에 많은 것을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견고하지 못한 하부구조를 포함하여 여러 형태의 왜곡된 근대 체험의 와중에서 우리 문학인들은 의존할 만한 집단적 후원자를 찾지 못하였다. 어느 분야 못지않게 문학도 견실한 후원자층을 필요로 하고 있다.
1992년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大山) 신용호 선생의 높은 뜻으로 설립된 대산문화재단의 각종 기획은 우리 사회의 요망에 부응하는 획기적 사업으로 결실을 맺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크고 작은 수많은 문화재단이 있는게 사실이지만 거의 장학재단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그런 가운데 특히 문학진흥을 위해 꾸준히 진력해온 대산문화재단의 노력과 성과는 10년이 지난 지금 누구의 눈에도 뚜렷하고 우뚝하게 솟아 있다.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표방하고 있는 대산문화재단이 수행해 온 사업은 크게 보아 대산문학상과 대산창작기금을 통한 창작문화 창달, 한국문학 번역지원과 외국문학 번역지원, 해외 한국문학(한국학) 연구지원을 통한 우리 문학의 세계화 기여, 대산청소년문학상과 전국청소년연극제를 통한 장학사업, 학술행사 지원이나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행사와 같은 문화행사 지원 등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모든 부문에서 견고하고 실질적인 기여가 이루어졌다는 것은 단기간 내에 정착된 성과에서도 넉넉히 엿볼 수 있는 터이다. 각각의 분야에서 대산문화재단은 독자적이고 독보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주 돋보인다.
우선 대산문학상 부문에서는 시와 소설 장르로 한정되어 있는 대부분의 문학상과는 달리 희곡, 평론, 번역 분야를 망라하여 시상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연 독보적이다. 편향되게 이해되고 있는 장르관을 시정하는데 기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대적인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문인들에게 적지 않은 격려와 고무가 되어주고 있다. 어려움에 비해서 그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번역 분야에 대한 시상은 특히 외국인의 관심을 유도한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크다.
신진 문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창작지원 분야에서도 시, 소설은 물론이요 희곡, 평론, 아동문학분야를 망라하여 폭을 넓히고 있다. 단행본으로 발표되지 않은 해당장르 책 1권 분량의 작품을 제출받아 심사하여 지원대상자를 선정하며, 저작권을 포함하여 모든 권리가 작자에게 귀속되는 이 분야에서는 1백 50명에 이르는 신진 문인들에게 지원이 이루어졌다. 그 결과 수준높은 많은 작품이 책으로 간행되어 문단의 새 얼굴을 다채롭게 하였다.
성격상 그 어느 분야에서보다 엄정하고 효율적인 선정이 요구되는 한국문학 번역지원 분야에서는 많은 외국인에게 직접적인 지원이 이루어져 한국문학 번역 뿐 아니라 외국에서의 한국문학 연구에도 기여하는 바가 크다. 또 외국인과 환국인의 지적 협력을 유도하여 작품 번역의 질적 향상에도 크게 공헌하고 있다. 외국문학 번역지원의 경우에도 시장성이 결여되어 있는 외국 고전을 번역하여 한국 독자에게 접근 가능하게 하고 있다. 일반 출판사에서는 할 수 없는 이러한 일은 대학 출판부에서도 기피하고 있어 문화재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비록 대규모는 아니지만 해외 한국문학(한국학) 연구지원도 독보적인 기여임에 틀림없다.
한편 기획사업을 통해 <한국 현대문학 50년>, <2000년을 여는 젊은 작가포럼>, <현대 한국문학 100년> 등의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그 성과를 책으로 발간하여 현대문학 연구와 현대문학 이해에 공헌한 것도 특기할 만한 사안이었다. <한국문학 번역 국제학술회의>나 <한·영문학포럼> 같은 행사도 기억할 만하다. 그나아 뭐니뭐니해도 특기할 만한 것은 2000년 9월에 있었던 <서울국제문학포럼>과 같은 기획 ‘문학축제’였다. 국내외 작가 75명이 참가한 이 포럼에서는 문화적 세계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어떻게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심도있고 다양하게 논의되었다. 문학인으로 햐여금 문학인이 놓여있는 상황을 통절하게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고 그 의미는 막중하다.
그 밖에도 ‘대산청소년문학상’ ‘전국청소년연극제’ 등 너른 의미의 장학사업이 거둔 기대와 성과도 소홀치 않았다. 많은 분야에서 많은 인원이 참가한 것 자체가 뜻깊은 일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이러한 여러 사업이 이룩한 성과에 대해서는 이제 일정한 사회적 공인을 얻은 만큼 군소리를 보낼 여지는 없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조금 더 욕심을 부려 기금을 확장하여 지금까지 벌려온 여러 사업을 한층 더 내실화하는 사안일 것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성과를 높이 평가하는 연장선상에서의 자연스러운 기대요, 희망사항이다. 그러한 한편으로 기존 사업의 철저한 효과검증이라는 문제가 떠오르게 마련이다. 따라서 철저한 사후 검증을 통해서 과감한 변화나 혁신을 모색해야 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을 것이다. 가령 산발적으로 다양하게 이루어지는 국내 작품의 해외 번역의 경우만 하더라도 이제는 사후 검증과 함께 그 효율성이나 실제적 충격효과의 이모저모를 실증적으로 검토해야 할 단계에 이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러한 면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외국의 사례를 면밀히 연구하여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도 필요한 모색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0년 후 대산문화재단의 20년 역사를 돌아보는 일이 더욱 뿌듯하고 뜻깊은 일이 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음지에서 일한 재단의 일꾼들에게도 박수를 아끼자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