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 서울국제문학포럼
‘서울국제문학포럼’에 대한 회상
마거릿 드래블 / 영국 소설가
이 포럼은 ‘경계를 넘는 것’에 관한 것이었는데, 세계와 한국의 역사에서 아주 흥미로운 순간에 개최되었다. 세계화의 위험과 가능성이 전 세계에 걸쳐 힘차고 열정적으로, 심지어 때로는 격렬하게 논의되던 때였다. 이 토론에서 작가들에게 그런 의미심장한 자리를 제공한 것이 좋았는데, 왜냐하면 이 토론의 주제는 테크놀로지뿐만 아니라 컨텐츠이고 돈 뿐만 아니라 사상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참가자들은 많은 국가와 언어를 대표하는 참으로 다문화적인 집단이었지만, 함께 모여서 미래의 모습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간절한 욕구를 모두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모두가 작가의 과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헤어졌고 외국인 참가자들은 한국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훨씬 깊은 인식을 얻게 되었다고 믿는다.
나는 탈(脫)식민 국가 출신인데 거기서는 근래 대부분의 작가들이 안전하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글쓰기의 권리 때문에 고통 받았다는 증언을 듣는 것은 충격적인 일이었다. 나는 박완서의 식민지배 아래서의 어린 시절과 그 때의 교육에 관한 내밀하고 의미심장한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언어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합동회의에서 우리가 경계를 넘어 개인적인 교감을 가졌다고 믿는다. 나는 그녀의 말이나 태도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며, 번역된 그녀의 작품을 읽어나가고 있다. 여성 참가자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포럼장 안팎에서 함께 결속하여, 여성의 문학과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고 또한 전 지구적으로 남성의 세계로 남아 있는 영역에서 여성이 좀더 인정받도록 하기 위해 투쟁했다. 나는 이화여대를 방문해서 미래를 이끌어 갈 몇몇 여대생들과 그들을 격려하는 교수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화려한 공식연회에서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거나 노상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면서, 새로운 경험을 짜릿하게 맛본 순간들이 많았다. 김치는 경계를 넘도록 도와주는 데 한몫 했다. 우리를 초대한 한국인들은 이 탁월하고 도발적인 민족음식을 다문화적 참여의지를 평가하는 하나의 시험으로 여기는 것이 분명했는데, 우리는 이 시험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다. 많은 농담과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우리는 김종길의 섬세한 시와 번역에서부터 예리하게 관찰된 김광규의 도시적인 작품들, 그리고 날카로운 통찰력을 담고 있는 고은의 선시(禪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한국 고전시와 현대시를 소개받았다.
아마도 가장 뜻밖이고도 극적인 교류는 청와대에서 월레 소잉카와 김대중 대통령 사이에 있었다. 두 분 모두 자신의 신념 때문에 투옥된 적이 있었는데, 그 분들이 그런 기억들에 대해 서로 주고받는 이야기를 듣는 일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 때 우리는 누구도 노벨상 수상 작가가 노벨평화상을 받게 될 대통령과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라고 알지 못했지만, 우리 모두는 이 만남이 한국의 역사에서 하나의 중요한 순간이며 그 현장을 우리가 운 좋게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국가간 그리고 국가 안에서의 경계들을 넘어서는 일이 우리의 눈앞에서 진행되고 있었다. 포럼의 외국인 참가자들은 이번의 개인적 접촉의 기회 이후에 한국의 발전을 더욱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될 것이다.
나는 너무나 많은 강렬한 시각적 기억들 - 도시의 거대한 텔레비전 스크린과 교통체증과 백화점들, 지하철에서 손잡고 있는 여학생들, 시골길가의 꽃들, 경주 엑스포에서 놀이를 하는 아이들, 불교 사찰들, 신라왕국의 신비롭게 봉긋 솟아있는 녹색의 무덤들과 그 안의 금빛 보물들 - 을 지니고 있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나의 한국에 관한 상(像)의 일부이다. 전 지구적인 테크놀로지 덕분에 나는 이제 내가 새로 알게 된 사람들과 정치적 사상이나 인삼차, 그리고 대영박물관의 새 한국관에 관해서 이메일을 주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이 나에게 살아있는 사람들이 거처하는, 실제의 역사를 지닌 현실의 생생한 공간이 된 것은 대산문화재단의 관대한 배려 덕분이다. 가상세계는 흥미롭지만 실제세상이 더 나은 것이다. 그리고 내가 다음에는 한국 역사로부터 끌어낸 주제를 사용해서 소설을 쓰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 마거릿 드래블(Margeret Drabble): 영국의 소설가. 1939년생. 소설 『여름 새장(A Summer Birdcage)』 『폭포(The Waterfall)』 『상아의 문(The Gate of Ivory)』 등을 펴냈다.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발제자로 참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