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 서울국제문학포럼
문학의 조장(助長)에 대하여
김우창 / 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 조직위원장
최근의 월드컵 축구와 그에 대한 열광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든지 간에 축구 4강에 진출한 것이 많은 국민의 자긍심을 북돋아준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타는 일이 그만한 열기를 불러일으킬 것 같지는 않지만, 노벨상에 사람들이 그렇게 관심을 갖는 것은 그것이 한국사람의 자긍심에 크게 관계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학의 진정한 의미는 그러한 것에 관계없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오늘의 세계에서 자신이 속한 사회와 국가 그리고 문명의 국제적 서열이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에게 자아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는 것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노벨상이야 어찌 되었든 정부에서도 그러하지만, 대산문화재단과 같은 데에서도 문화와 문학을 진흥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일들이 행해진다. 그러나 대체로 어떻게 하는 것이 문화나 문학을 진흥하는 것인지 분명한 방책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상을 제정하고 창작 지원금을 지급하고 출판과 공연을 뒷받침하는 일들이 모두 도움이 되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꼭 맞는 방법이라는 보장은 없는 것일 것이다. 외국에서 코치를 초빙 고용하고 집중 훈련을 하고 하는 일들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금방 괄목할 만한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은 사실인 것이다.
오래 궁리하고 조심스럽게 일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선 저지르고 나가다보면 일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는 세상이다. 그러나 나의 소극적인 마음에는 이러한 일과 관련하여 생각되는 것은 맹자의 물조장(勿助長)이라는 말이다. 벼 모를 심어 놓고 그 더디 자람을 답답하게 생각하여 이를 뽑아 키를 높이고자 한 사람의 예를 두고 그렇게 길게 뽑는다고 하여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한 것이다. 어떤 일은 오랜 성숙을 기다려서 저절로 이루어지듯이 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려두라는 말은 아니다. 맹자는 조장하는 일이 옳지 않다는 말 다음 곧 이어 쓸모가 없다고 김도 매지 않고 버리는 일도 옳지 않은 일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세상에 쉽게 훈련되거나 제조되는 것이 아닌, 성장하는 것들이 있는 것은 틀림이 없다. 그러한 것 가운데 하나가 문학이요 문학이 다듬어 내는 언어 속에 깃드는 정신이다.
어떻게 하여 노벨상을 받는 작가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커다란 문화적 의미를 갖거나 민족적 자존심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지난번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 초청한 작가들 가운데 나이지리아의 월레 소잉카는 노벨상 수상 작가로서 가장 뚜렷한 저명 인사였다. 그의 작품이 매우 뛰어난 것임은 물론이고 그의 도덕적 품격도 뛰어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그의 노벨상 수상에도 불구하고 현 시점에 있어서 나이지리아 문명의 국제적 지위가 크게 높다고 할 수는 없다. 오늘의 세속화된 질서 속에서 한 사회의 국제적 지위는 경제나 정치로 측정되는 감이 있지만, 그 외에도 문제가 되는 것은 삶의 질 전체이고 문화 전체의 수준이지, 어떤 특정한 한 두 가지 징표가 아니다.
국제문학포럼에 온 외국의 인사들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을 공부하느라고 노력을 한 것으로 보였다. 거죽만의 행사를 쫓기보다는 안과 밖을 상부하게 하려는 것이 문학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우리 문화와 문학의 느낌을 전해줄 수 있는 깊이 있는 문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이러한 종류의 목적에 관광이나 선전을 위한 책자들이 큰 도움을 줄 수는 없다. 그런 가운데에도 영국의 마거릿 드래블이 『한중록』을 높이 생각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다. 그것은 드래블 여사에게 셰익스피어 연극의 세계를 생각하게 했다. 그는 자서전에 관한 글을 쓰고 있는 지인에게 한중록을 거기에 포함할 것을 권했다고도 한다.
한중록이 강한 인상을 준 것은 여러 요인이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최근에 출간된 번역본으로서 김자현 교수의 번역이 뛰어난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원저의 깊이에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깊이란 사상적 깊이라든가 생각의 깊이보다 사회와 역사의 깊이이다. 한중록은 그 나름의 도덕적 윤리적 규범 그리고 그것의 자체 모순 속에 얽혀 있는 한 오래된 사회의 삶을 느끼게 한다. 우리가 어떤 사회에 대한 안내서로서 문학 작품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삶에 대한 느낌이다.
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대산문화재단으로부터 자문을 요청받고 내가 권한 것의 하나는 한국학 일반을 널리 지원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한 것이었다. 외국인에게 한국을 이해시키는 데 중요한 것은 한국사회가 역사적 사회라는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오랜 역사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이라는 점에서만은 아니다. 문화와 역사가 있는 사회란 윤리와 도덕의 이념으로 사람의 삶을 드높이려고 노력해 온 사회이면서 동시에 그 모순과 비극도 체험했던 것을 기억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이 어려운 노력의 체험을 삶을 살아가는 느낌으로써 남아 있게 만드는 사회이다. 이러한 느낌이 한 사회의 삶을 명료하게, 너그럽게, 그리고 깊이 있게 한다. 한 사회를 알고자 하는 외국인에게 진정한 의미에서 그 사회를 알고 그 사회의 사람을 존경하게 하는 것은 이러한 느낌을 전달하는 문학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외국인에게 보여주는 데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더욱 필요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오늘날 문예진흥 사업은 너무 현재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특히 번역의 부분에서 그러하다. 10년, 20년, 30년의 당대적인 현실에서 문학의 걸작들이 나오고 이것을 번역하고 거기에 매년 상을 주고 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은 아니지만, 거기에서 어떤 속효를 바라는 것은 인간 정신의 생산성을 너무 안이하게 보고 또 깊이를 잘못 짚는 일이기 쉽다. 나는 근년에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더러 가르쳐보지만, 한편으로는 자료의 부족에 괴로움을 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별로 읽을 만한 것이 아닌 작품의 번역, 급조 번역, 급조 출판물에 부딪혀 낭패하기도 한다.
이러한 것은 좁은 대상 그리고 급하고 좁은 목표에 의하여 주어지는 지원금에 관계되는 일일 것이다. 대체적으로 지원사업은 보다 느슨하고 너그럽게 생각될 필요가 있지 않나 한다. 위에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사업의 하나가 스스로에게나 대외적으로나 우리가 깊이 있는 역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일이라고 말하였지만, 사실 역사적 기억으로부터 인간의 윤리적 삶의 복합성이 드러나게 하는 것은 우리의 문학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번역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그렇다고 다른 일들이 중요치 않다는 것은 아니다. 비옥한 토양을 만들며 가꾸며 자라게 하는 사이에 노벨상도 오고 민족적 자부심도 선양될 것이다. 토양을 준비하는 일은 보이지 않게 여러 가지 일을 속성 효과를 기대하지 않으면서 꾸준하게 해나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