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대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대산문화재단 10주년 기념원고 / 축사
연륜을 헤아리는 나이테
차범석 / 극작가
낮은 목소리가 더 선명하게 들린다. 깃발 없는 행진이 오히려 힘차고 당당하다. 울 밑에 핀 채송화가 더 화사하게 보일 때가 있다.
이것이 ‘대산문화재단’에 대한 나의 솔직한 인상이다.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그 뜻을 두고 출범한 대산문화재단이 10년 동안 걸어온 발자취에서 얻은 나의 믿음이자 소감이다.
우리나라에는 그 재원이나 규모나 업적으로 봐서 크고 작은 문화재단이 많다. 그리고 그 재단들이 쌓아온 업적 또한 눈부시고 화려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대산문화재단은 여타의 재단과 비교할 때 몇 가지 차별성이 있다. 그 하나는 대부분이 기업주의 은덕을 기리는 장학재단이거나 학술, 예술, 기술 등 종합적이고도 다변성을 띤 시상제도인데 비하면 대산문화재단은 오직 한국문학의 육성과 국제적인 전파라는 단일 목적에 그 기본정신을 두고 있다. 대산문학상, 젊은이를 위한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지원, 대산청소년문학상, 그리고 유일하게 청소년 연극상 제도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문학이 겉으로 보기에는 화려하고 저변확대가 잘 되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가장 열악하고 소외되어 있다는 실정이 관심을 모았고, 그것을 국제사회까지 널리 알리려는 번역사업지원에 눈길을 돌렸다는 점은 유일무이한 성격이다. 그 누구도 돌아보지 않은 그늘진 곳을 향한 따스한 손길이면서도, 요란스럽게 이벤트화 된 전시효과를 피하고 조용히 이어온 지난 10년의 업적은 그 누구도 부인 못할 것이다. 그것을 낮은 목소리와 깃발 없는 행진과 울 밑에 핀 채송화로 비유한다 해서 그 누가 마다할 것인가.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위한 문학과 연극의 길을 터놓음으로써 그들에게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일련의 사업은 정부차원에서 진작 했어야 할 과업이기도 하다.
내가 대산문화재단을 믿고 존경하고 아끼는 이유는 결코 현시적이거나 관례적인 혜택 위주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오직 먼 미래를 내다보는 투시력과 과단성이다. 문학을 인류의 가장 핵심적인 문화자산이라고 갈파하신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大山 慎鏞虎) 선생의 큰 뜻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세상이 문화를 갈망하지만 문화시대는 아직도 멀다. 정신은 외출하고 빈 껍데기만 활개치는 우리 현실 속에서 대산문화재단이 확실하게 걸어온 발자취는 바로 우리 문화의 양심이자 원점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대산문화재단이 단순히 기업의 이윤을 사회에 돌려주는 상투적인 경지를 넘어서서 우리 문학의 세계화를 위한 구체적이고도 현실적인 공헌을 마다하지 않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할 것이다. 더러는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위상이 높아졌고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치름으로써 그 지명도가 높아진 것을 내세우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당당하게 내세워야 할 일은 문학이며 예술이다. 순간적인 흥미나 긴장감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도 보편적인 신뢰감을 얻기 위해서는 우리의 문학작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일일진대 그 번역사업이 얼마나 중요한가는 재론할 필요가 없다. 근자에 정부에서도 번역사업의 중요성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대산문화재단이 그 밑불을 붙인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10년의 연륜을 헤아리는 나이테가 앞으로 백년, 천년 이어져 나가기를 축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