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오정주 / 시인,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 3학년, 제24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시 「애니메이션 오프닝에 등장하지 않는 캐릭터는 엑스트라다」 등
드레스덴의 숙소는 넓고 쾌적했다. 나는 바깥의 풍경이 내다보이는 창가의 침대를 쓰고 싶다고 말했고 모두가 그 자리를 내게 양보해주었다. 잠들기 전마다 창문 너머의 프라우엔키르헤를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운 건축물이 뿜는 빛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어디에 온 것인지를 가늠하곤 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 걸까? 누구와 함께 있는 걸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나에게 일어난 일을 믿을 수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일을 위해 잠을 청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나는 조금씩 자주 늦었다. 풍경에 정신이 팔려 뒤늦게 일행을 따라잡고 집합 시간을 슬그머니 넘겼다. 매일 밀리지 않고 쓰기로 다짐했던 여행 일기는 이틀 차에 멈춰 있었다. 영어가 짧아 직원의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쇼핑몰 에스컬레이터에 치마 밑단이 끼어 곤혹스러웠다. 나는 내가 부지런히 부끄러웠다. 혼자 계산하는 것이 두려워 머뭇거렸고 아까 그 말은 하지 말걸, 하고 후회했다. 한국에 있을 때처럼. 그러나 그런 나를 두고, 독일의 풍경은 저 홀로 아름다웠다. 매 순간.
아름다움이라니.
지구 반대편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끔찍한 것이었다.
드레스덴으로 넘어오기 전, 프랑크푸르트 뢰머 광장의 종소리를 들으면서, 아름다운 풍경은 사람을 슬프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이 순간을 평생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것을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에서 아프리카인 흉상의 부릅뜬 눈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도. 드레스덴 숙소 앞 광장에서 한 버스커의 기타 케이스에 남은 동전을 털어 넣고 눈인사를 주고받을 때도. 예니 에르펜벡 작가님의 자택 서재에 서서 책들에게 압도당할 때도. 현재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다. 어떤 장면도 잊고 싶지 않았다. 어떤 대화도, 어떤 표정도, 어떤 소리도.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나를 자꾸 슬프게 만들었다. 수시로 카메라를 켜고 메모를 남겼다. 지금 보면 맥락을 떠올리기 어려운 사진과 메모들. 슬프고 아름다운 기록들.
첫날 저녁, 어색함을 풀기 위해 서로의 개인기를 끈질기게 찾았던 것.
잠들기 직전 숙소 복도에서 들려온 개의 짖음. 어둠 속에 혼자 깨어 그 개의 얼굴을 상상했던 일.
“독일은 집이 집처럼 생기고 의자가 의자처럼 생겼네요” 내가 말하자 “독일은 모든 사물이 단호하게 생겼어요” 답한 승혁의 말.
근명 팀장님이 가게의 유료 화장실에 지불하라고 내어주신 1유로 동전.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서 마신 아주 뜨거운 커피.
드레스덴에서의 첫 번째 저녁 식사 중, 무인도에 단 하나의 작품만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챙길지 이야기한 시간.
작은 우산을 나눠 쓴 채 밤 풍경을 따돌리며 웃고 떠들던 준서와 나.
크리스마스 마켓 맞은편 문화 궁전 건물 창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사람들.
늦은 밤, 잠긴 숙소 문을 열 줄 몰라 들어오지 못하던 나를 구하러 온 은지 언니의 맑은 목소리.
알테 마이스터 미술관의 그림들. 조각들. 사람들. 거기 멈춰 있는 얼굴들.
가지를 먹지 않는다던 준서가 중식당의 가지 요리를 맛있게 먹었던 것. 다 함께 웃었던 것.
혼자 방문한 키오스크 직원의 다정한 미소와 매장에서 흘러나오던 음악.
돌아가며 아메리칸 스피릿의 잎 냄새를 맡아본 순간.
젬퍼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규철 님에게 다가왔던 노신사와, 촬영 값을 뜯길까 봐 벌벌 떨던 우리들.
숙소 테이블에 둘러앉아 모두 함께 먹은 감초 젤리의 지독한 맛.
아파트와 가게 창가마다 걸려 있던 헤른후트의 별.
베를린 숙소에 모여 장 본 것을 푸는 동안, 서희가 귤 세 개로 보여준 저글링 실력.
거리에 뜬금없이 놓여 있던 잘린 오이와 냅킨.
신호등. 신호등. 신호등.
몰 오브 베를린의 무료 미끄럼틀.
두스만 서점 지하에서 만져 본 우쿨렐레 베이스.
에르펜벡 작가님의 집으로 가는 길에 본 것들. ‘Dieses Haus Stand Früher in Einem Anderen Land’*. 작은 영화관. 창문에 걸린 프라이드 플래그. 과거와 미래의 여름에 비로소 생동할 잔디밭.
베를린 장벽의 부서진 틈 너머로 보이는 가정집들.
운터 덴 린덴 역에 앉은 우리를 찍기 위해 반대편 플랫폼으로 달려가던 팀장님의 뒷모습. 우리 사이를 가로막은 열차와 터져 나오던 웃음.
유대인 박물관 홀로코스트 타워 안에서 하얗게 나오던 나의 입김. 옅은 빛. 메모리 오브 보이드와 자갈밭 같은 비명.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의 비석 사이를 걸을 때,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던 이름 모를 여행객의 옆모습.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도 반복 재생한 영상처럼 자꾸만 나타나던 그의 실루엣.
“멋진 시인이 되면 꼭 다시 뵈어요”
“이미 멋진 시인이에요”
메아리조각의 퍼포먼스를 관람하고 숙소에 돌아가는 마지막 밤, 서늘하고 축축한 비를 맞으며 피로와 아쉬움에 떨었던 순간.
은지 언니가 모두에게 선물한 마그넷과 마지막 아침 식사. 아쉬워 우는 나를 모두가 못 본 척해줬던 일. 베를린 삼행시.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 앞, 알록달록한 트라비에 몸을 욱여넣고 깔깔깔 웃던 관광객들. 줄지어 서 있는 그 작고 오래된 승용차들.
경유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에서 먹은 맛없고 비싼 신라면. 너무 많은 곰돌이. 눈에 띄는 무엇이든 우리의 낙천적인 조롱거리가 되었던 곳.
비행기 창문에 비친 나의 얼굴.
너무 울어서 온통 젖은 얼굴.
기록하지 못한 기억은 변형되거나 잊힐 것이다. 쓰이지 않은 채 내 안에만 남은 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바꾸었는지 나는 아직 모른다. 영영 모를 수도 있다. 그 사실이 슬퍼 귀국 비행기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오래 울었다. 쓰이지 못한 기억은 어디로 가는 걸까. 그런데 기억이라는 건 애초에 말이 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니까. 기록과 무관하게 재구성되는 거니까. 우리의 여행을 우리조차 제대로 기억할 수 없다는 끔찍한 사실. 끔찍하게 아름다운 사실.
완성된 기행문을 보았을 때 그 맥락을 다 알 수 있는 건 함께 떠난 우리뿐이겠구나, 하는 말을 우리 중 누군가가 했다. 누가 한 말인지 이제는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그 말 자체가 아무도 한 적 없는 말일지도 모른다. 귀국한 지 2주가 다 되어가는 지금, 여기에 쓰인 어떤 말도 믿을 수가 없다. 이 맥락은 지금 누구에게 닿고 있을까. 닿기는 할까. 그랬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부끄러웠고 모두가 좋았다. 함께 떠날 수 있어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그 말을 다 하지 못해 아쉬웠다. 울어버릴 것 같아서. 이 모든 아름다움은 지구 반대편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홀로 남아 글을 마무리하면서 기어코 깨달았다. 아름다운 장면을 잊는 것이 두려워 지레 끔찍하다고 믿어버리듯이. 그렇게 후회하듯이.
아름답고 기쁜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할 때. 아름답고 기쁜 것을 나에게 줘. 한없이 슬퍼질 수 있도록.
그러나 이런 요구를 하기에 나는 이미 차고 넘치게 받았다.
안녕, 독일. 안녕, 대산 투어.
결코 하고 싶지 않았던 작별 인사를 이렇게나 늦게 쓴다. 미루는 것이야말로 여행 내내 찾던 나의 특별한 개인기다.
* "이 집은 원래 다른 나라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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