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회 대산문학상 시상식
2021.11.29.(월) 오후 4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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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학상 제정의 뜻

대산문화재단은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창립이념으로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한 대산 신용호선생의 뜻에따라
교보생명보험(주)의 출연으로 창립되었다.

문학은 보편적 문화가치의 척도이자 한 민족의 정신적 뿌리이다.
또한 민족의 삶과 사상과 역사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국민교육진흥” 이념구현의 연장선상에서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여 대산문학상을 제정한다.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부문에서
한국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선정,
시상하는 작품성 중심의 종합문학상이다. 대산문학상 상패

대산문학상의 지향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학상

대산문학상은 우리 문학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는
종합문학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상을 지향한다.

인사말씀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신창재 제29회 대산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 주신 수상자 및 내빈 여러분, 그리고 온라인 동영상으로 함께하고 계신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한국문학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오늘 행사에 참여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지난해 시작된 코로나19는 어느덧 위드코로나, 단계적 일상회복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있습니다. 그간 팬데믹이 불러온 예기치 못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잃기도 하고 일상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상과 교류의 단절, 그리고 정상적 활동이 불가능해 보이던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예술문화는 세계와 연결되고 확장하며 그 우수성을 널리 알렸습니다. K-팝에서 시작된 한류가 드라마, 영화, 문학 등 예술문화로까지 확대되어 세계인이 주목하는 K-콘텐츠로 자리 잡게 된 현실은 한국문학을 오랫동안 지원해 온 저희에게도 매우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결실은 그동안 예술문화계에 몸담아 온 여러분들의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한국문학 역시 코로나 팬데믹 위기 속에서 크고 작은 성과들을 거두었습니다. 그 결과 올해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번역 등 전 부문에서 수상작을 선정할 수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언어의 실험을 통해 우리말의 지평을 넓혀온 김언 시인님, 우리의 과거사를 재조명하며 현재의 의미를 발굴해낸 최은영, 차근호 작가님, 한국의 애도 과정을 다룬 원작을 생생하게 영어권 독자에게 전달한 최돈미 번역가님께 축하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집 백지에게, 장편소설 밝은 밤, 희곡 「타자기 치는 남자」, 영어 번역서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 ) 등 올해 수상작들은 높은 작품성과 해외 독자들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며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습니다. 이 작품들은 한국문학이 우리 내부의 곳곳을 응시하며 여전히 치열하게 사유하고 소통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줍니다. 더불어 죽음의 자서전(Autobiography of Death )이 세계적인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인들도 이러한 한국문학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대산재단은 우리 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라는 재단의 창립목적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우리의 문학이 세계의 독자에게 보다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재단은 코로나19로 인한 위기를 디지털 활용역량 강화의 기회로 삼고 이 기간 동안 디지털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였습니다. 모든 공모 사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하였고 프랑스 소설가 레일라 슬리마니, 중국 대표 문인들과의 온라인 교류회 등을 시행하였습니다. 또한 교보인문학석강, 교보인문기행 등의 영상을 제작하여 다양한 인문학 기반의 온라인 콘텐츠를 제공하였습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인 내년에 창립 30주년을 맞는 대산재단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조화를 이루며 독자 대중과 소통하는 사업을 더욱 내실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수상자분들에게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며, 그동안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깊은 감사를 표합니다. 내년 시상식은 일상의 회복과 함께 많은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즐거운 축제가 되기를 바라며 여러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신  창  재

식  순

  • 일  시 2021년 1129일(월) 오후 4시
  • 장  소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

사 회 : 서효인(시인, 제25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 개       식
  • 사       회
  • 경과보고 및 심사위원 소개
  • 사       회
  • 심사보고 및 수상작 발표
  • 신달자 심사위원 대표
  • 인사말씀
  • 신창재 이사장
  • 시       상
  • 신창재 이사장
  • 수상소감
  • 수  상  자
  • 축       사
  • 김행숙 시인, 강남대 교수
    안치운 평론가, 호서대 교수
  • 폐       식
  • 사       회

심사위원

(가나다순)

부문

본심

고형진 평론가, 고려대 교수
김기택 시인, 경희사이버대 교수
김혜순 시인, 서울예대 명예교수
신달자 시인
유성호 평론가, 한양대 교수

예심

강성은 시인
서효인 시인
조강석 평론가, 연세대 교수

소설부문

본심

김인환 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방현석 소설가, 중앙대 교수
신수정 평론가, 명지대 교수
은희경 소설가
정   찬 소설가

예심

소영현 평론가
이수형 평론가, 명지대 교수
임    현 소설가
조해진 소설가

희곡부문

박상현 극작가, 연출가, 한예종 교수
안치운 평론가, 호서대 교수
유근혜 연출가, 상명대 교수
이상우 평론가, 고려대 교수
장우재 극작가, 연출가, 대진대 교수

번역부문(영어권)

김양순 고려대 교수
민은경 서울대 교수
윤혜준 연세대 교수
정덕애 이화여대 명예교수
피터 웨인 드 프레머리 서강대 교수

수상작 선정 경위

대산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창작문화 창달에 기여하기 위해 1993년 제정하여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부문에 수상작을 선정,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입니다. 대산문학상은 연공 혹은 문단의 서열 등을 고려치 않는 순수 작품상으로 최근 1년 동안(2020년 8월 ~ 2021년 7월 *희곡, 평론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간) 단행본으로 발표된 작품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부문별로 시상합니다.

대산문학상의 전 부문 상금은 5천만 원입니다. 시상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를 시행하여 올해는 희곡 부문을 시상합니다.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를 대상으로 어권 별로 시행하는 번역 부문은 올해 영어권 번역서를 시상합니다.

대산문학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상으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고유의 상패와 문장을 사용하고, 수상작의 홍보와 보급을 위해 수상자 낭독회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상작은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당 어권의 유수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 보급합니다.

대산문학상의 심사는, 시·소설 부문은 예·본심제로, 희곡·번역 부문은 단심제로 운영하되 충분한 독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시ㆍ소설 부문의 예심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여간 진행되어 부문별로 본심대상작을 선정하였습니다. 전 부문에 걸쳐 진행된 본심은 예심 결과를 토대로 부문별로 세 차례의 심사회의를 가졌습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기 위해 격의 없는 토론과 투표를 거친 끝에 지난 10월 말 4개 부문의 수상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수상작은 소정의 확정절차를 거쳐 오늘 시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29회 수상작 소개

부문
백지에게
시부문 수상작
김행숙
  • 김 언
  • 1973년 부산 출생
  • 부산대 산업공학과, 국문과 및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졸업
  • 1998년 <시와사상> 신인상으로 등단
  • 2006년 대산창작기금, 2009년 제9회 미당문학상, 2012년 제13회 박인환문학상, 2021년 제7회 김현문학패 수상
  • 시집 『숨쉬는 무덤』 『거인』 『소설을 쓰자』 『모두가 움직인다』 『한 문장』『너의 알다가도 모를 마음』 『백지에게』, 시론집 『시는 이별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등
비워야 할 것이 많은
백지 앞에서


사실을 고하자면 작년부터 시를 거의 못 쓰고 있습니다. 그나마 이전에 써놓았던 원고가 있어 작품 발표는 꾸준히 하고있습니다만, 새롭게 무언가를 도모하면서 쓰는 시간이 작년 초부터 뚝 떨어져버렸습니다. 그사이 무얼 하면서 지냈을까요?
시인이 시도 안 쓰면서 무얼 하며 2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고만 있었을까요?
우선은 먹고사는 일에 바빴던 것 같습니다. 생업이란 말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남는 시간 모자란 시간 다 끌어모아서 강의하는 일, 잡문 쓰는 일, 이런저런 날품에 가까운 일을 하는 데 갖다 바쳤네요. 반평생 넘게 배운 것이 문학이고 시이다 보니 강의도 잡문도 날품팔이 일도 모두 시 아니면 문학과 관련된 일이었지만, 그 일에서 정작 시는 빠져 있었습니다. 문학도 빠져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시와 문학이 대단해서가 아닐 겁니다. 대단하지 않은 시 한 편을 쓰기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 시간 이라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은 시간, 빈둥대는 일이든 소요하는 일이든 아무튼 생산과는 거리가 먼 시간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시의 말도 문학의 말도 요원하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2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러고 보면 시는 생활에서도 비어 있는 틈이 있어야 깃드는 것 같습니다. 비어 있지 않으면 한마디도 비집고 나오지 못하는 말이 시라는 사실을, 전혀 비어 있지 못한 생활의 틈바구니에서 느꼈던 것 같습니다. 이대로 흘러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 이 적신호처럼 깜박깜박 켜질 때 한편으로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쉴 틈 없고 빈틈없는 생활이 없었더라도 내 시의 말은 한 번쯤 멈출 때가 되었다는 생각. 멈추지 않고서는 관성에 가까운 시의 말만 계속 나올 거라는 짐작을 진작부터 하고 있 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관성이 붙었기에 어떻게 써도 시가 되어 나오겠지만, 어떻게 써도 이전의 말과 다르지 않은 방향으로만 흘러가고 있는 내 시의 말을 한 번쯤 멈출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누구보다 먼저 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지금까지의 시의 말이 결과적으로 나의 말로 들끓었던 시간이라면, 영영 올지 안 올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기다리고 있는 시의 말은 타인의 말로 들끓는 시간을 관통한 말이었으면 합니다. 타인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타인의 말에 젖어보는 시간을 관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리하여 타인 속에서 타인을 견디는 시간, 백지처럼 막막한 그 시간을 어떻게든 지나 보려고 합니다. 여전히 불투명한 그 길 앞에서 조금 더 용기를 내어 나서보라는 격려의 뜻으 로 이 상을 무겁게 받습니다. 아직 채워야 할 것이 많은, 아니 아직도 비워야 할 것이 많은 백지의 시집을 너그럽게 읽어주신심사위원 선생님들과 고맙고 귀한 인연을 만들어주신 대산문화재단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정말 몇 안 되는, 믿고 의지하는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지금까지 쓸 수 있었습니다. 더 힘을 내어 가보겠습니다.

본심평

예심을 통해 본심에 부쳐진 아홉 권의 시집은 그 특징이 뚜렷했다. 일단 세대론적으로 원로나 중진이 거의 보이지 않았고 중견과 신예들이 강세를 보였다. 시집을 출간한 출판사도 그 폭이 제한적이었다. 전언의 측면에서 볼 때 서정적 온축에 기대는 언어는 드물었고, 조금 더 길어지고 실험적인 언술을 포괄한 결실들이 우세했다. 다양성이라는 점에서는 그다지 흡족하지 않은 예심 결과였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정해진 절차를 따라 심사위원들은 현재 한국 시단의 정점들을 통해 시 읽기의 즐거움과 깊이를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아홉 권 시집을 놓고 심사위원 각자의 의견을 말한 뒤에 수상 대상을 좁혀갔다. 그 뒤에 서로 3인의 시집을 적어 그 결과를 집계하여 모두 4권 시집으로 수상 대상을 좁혔다. 최종 심사에 부칠 네 권 시집을 더 꼼꼼하게 읽고 오기로 약속하고 심사는 종료되었다. 이후 심사위원들은 다시 동일한 장소에 모여 후속 토론과 투표를 진행하여 최종 수상자를 결정하였다. 토론 과정에서 제시된 각 시집의 특징을 적시함으로써 심사평에 대신하고자 한다. 시인 이름의 가나다순이다.
김승희의 『단무지와 베이컨의 진실한 사람』은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존재전환을 꿈꾸면서 타자들로의 확산과 자기로의 회귀 욕망을 동시에 노래한 결과였다. 사랑의 장면과 순간을 단호하게 옹호하고 수납하는 시편들이 많았는데, 고통과 상처를 추스르고 치유하려는 견인의 미학이 그 안에서 돌올했다. 세계에 편재해 있는 비극적 양상들을 바라보고 견디고 넘어서는 중진 시인의 원숙한 필치가 돋보였다.
김언의 『백지에게』는 작법과 목소리의 일관성이 느껴지는 김언 브랜드의 시집이었다. 말의 꼬리를 물면서 연쇄적으로 펼쳐져가는 언어적 운동이 여전히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지난 시집들이 가진 기괴성이나 서사성이 몸을 숨기고 퍽 담백해진 서정적 묘미까지 느끼게 해준 새로움도 눈에 띄었다. ‘쓰다’라는 자의식 아래 슬픔과 죽음을 넘어서는 아스라한 목소리를 단단하게 들려준 시집이라고 생각되었다.
김현의 『호시절』은 여전히 소수자들의 억압 받는 목소리를 대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밝고 아름다운 음악적 자의식이 흐르게끔 고안된 미학적 성과로 다가왔다. 시가 가장 개인적인 산물이면서도 사회적 층위를 거느릴 수밖에 없음을, 그리고 그것이 거대한 논리로는 파악될 수 없음을 김현시편은 자신만의 디테일로 이토록 선연하게 알려준다. 그가 들려주는 타자에 대한 사랑이 곡진하게 다가온 성과였다.
백은선의 『도움받는 기분』은 현재 독자들이 크게 반기는 시집이다. 태작이 거의 없고, 자신을 소진하여 바닥까지 내려간 이가 들려주는 경험적 고백의 속성과, 세계를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그것에 미학적 형태를 부여해가는 작업이 동시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자신을 옭아매는 여러 굴레로부터 자유롭지만 여전히 그것들과 긴장과 갈등을 마다하지 않는 젊은 시인의 굳고 정한 의지가 느껴진 시집이었다.
4인에서 2인으로 좁혀간 과정과 2인을 놓고 최종 투표를 하는 과정으로 심사는 이어졌다. 결국 김언 시집 『백지에게』가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김언의 그동안의 노력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전언을 정착시키고 확장해갔다는 그 나름의 평가를 담고 있다 할 것이다. 수상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리며, 더 크고 깊은 세계로 나아가기를 소망해본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고형진 김혜순 신달자 김기택 유성호

예심평

세 차례의 심사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얼굴을 마주 보지 못했다. 아니 얼굴만 마주 보았다. 팬데믹 이후 각종 회의와 강의, 행사의 표준이 된 프로그램 ‘줌(ZOOM)’을 통해 심사가 진행된 것이다.
화면에는 평소 신뢰해 마지않았던 동료의 얼굴이 있었지만, 그 동료와 한 테이블에 있을 때 흔히 감돌았던 모종의 분위기, 우리가 함께 시를 읽고 쓰고 생각하고 있다는 공감, 각자가 꼽은, 꼽지않은 시를 이야기할 때 조금씩 달아오르는 공기의 온도 같은 것들은 쉽게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국에 불필요한 불평이었다. 우리 앞에는 이 시국에도 갖가지 모습으로 만개한 시집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은 카메라의 줌을 당기고 풀듯이 한국 시의 전체를 조망하고 한 권 한 권의 장점을 발견하길 반복했다. 각기 30여 권을 골라 추천 사유와 제외 사유 등을 토론한 끝에 서른여섯 권의 시집을 2차 심사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서른여섯 권의 시집을 두고 다시 줌인과 줌아웃의 과정을 거쳐 열여섯 권의 시집으로 예심의 최종 단계를 밟을 수 있었다. 세 차례 화상회의를 반복하면서 인터넷에서 깃드는 분위기 또한 어렴풋이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은 앞서 말한 모종의 분위기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1년 동안 나온 시집을 일별하는 넓은 시야에서부터 한 권의 시집의 색깔을 가늠하는 시선과 그 안에 한 편의 시집을 건져 올리는 시점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줌은 한국시라는 피사체의 내외부를 비춰보기 바빴다. 바쁨을 완화해줄 기준은 다음과 같았다. 시집 자체의 예술적 성취가 눈에 띄는지, 시집 전반에서 시인만의 개성을 새삼 발견할 수 있는지, 그간의 성취에서 이번 시집만의 변별점을 획득했는지, 한권의 시집의 흐름이 논리적인 동시에 변화무쌍한지 등등. 그리하여 최종적으로 아홉 권의 시집을 본심 대상작으로 선했다. 그 과정에서 대상 시집과 친연성이 있는 심사위원의 경우, 해당 시집의 심사에서 제척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차라리 디스토피아 SF의 한 장면이라 해도 될 법한 시기에도 시는 뚜벅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한 해 동안의 시집을 일별하며 현실에 응전은 보다 정교해졌으며 감각의 옮김은 더욱 대범해졌음을 확인했다. 한국 시의 오랜 성과를 토대로 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탄 자그맣고 빛나는 존재가 여기에 있다. 아주 조금 더 유별나 보였던 빛남을 아홉 권의 시집에서 발견했을 따름이다. 우리의 줌, 그 안에서 한순간이라도 발발했던 빛을 담으려면 이 지면과 심사와 문학상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우리는 만났다. 시는 불가능한 일을 불가능한 방식으로 꿈꿀 때 가능해지는 사각지대다. 사각지대가 날로 넓어지는 요즈음이다.
이 시기에, 이 시국에 시가 할 일이 아주 많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그 예감을 함께 현실로 만들어갈 든든한 시집들이 있어 실로 다행한 마음이다.

예심위원 (왼쪽부터) 강성은, 서효인, 조강석

소설 부문
밝은 밤
소설부문 수상작
최은영
  • 최은영
  • 1984년 경기 출생
  • 고려대 국문과 졸업
  •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으로 등단
  • 2013년 작가세계 신인상, 2014년 제5회 젊은작가상, 2016년 제8회 허균문학작가상, 2017년 제8회 젊은작가상 수상
  • 소설집 『내게 무해한 사람』 『쇼코의 미소』, 장편소설 『밝은 밤』 등
요조의 <나의 쓸모>라는 노래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세상에는 이렇게 부를 노래가 많은데 내가 굳이 또 이렇게 음표들을 엮고 있어요.” 세상에 이미 많은 소설들이 있는데 내가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팔 년의 시간을 지나면서 ‘굳이’내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에 질문하며 나아갔던 것 같다.
지난 몇 년 동안은 사람들에게서 영원히 내 진심을 이해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다.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글을 쓸 거야, 죽기 직전까지 작가로 살 거야, 다짐하며 글을 썼던 때도 있었지만 그런 오기 같은 마음을 나는 그 시간을 지나며 내려놓았다. 당연한 것은 없으며, 누구도 한 치 앞의 미래를 모른다는 것, 그 영원한 진실 앞에서 나는 한 줄 한 줄 글을 써 내려갈 수 있는 이 현재에 감사할 뿐이다.
누구나 살면서 가장 바라는 것이 하나 있을 텐데, 내게는 그것이 작가로 사는 일이었다. 지난 팔 년 동안 얼마나 많은 행운과 축복이 내게 쏟아졌는지 알고 있다. 내 글을 알아봐 주는 독자들을 만났고, 내 글을 깊이 있게 읽어주는 편집자 선생님들 을 만났으며, 정직하게 내 글을 읽어주고 거짓 없이 조언을 주는 친구가 있었다. 글을 쓰며 나를 만나고 이해하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고, 타인들로부터 진심 어린 공감을 받기도 했다. 여러 면에서 내 힘으로 일어설 수 있었으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나를 믿을 수 있었다.
이제는 나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 있다고, 내 소설을 읽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굳이’ 쓴다. 이 많고 많은 소설들이 이미 존재하는 세계에서.
『밝은 밤』이 나올 때까지 도움을 준 분들, 특별히 문학동네 출판사의 김내리 편집자님께 감사드린다. 심사위원 선생님들께도 깊이 감사드린다. 격려해주신 마음을 힘으로 삼아 더 용기 있고 나다운 글을 써나가고 싶다. 감사합니다.

본심평

올해 대산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소설은 김경욱의 『나라가 당신 것이니』, 김금희의 『복자에게』,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 이장욱의 『캐롤』, 장은진의 『날씨와 사랑』,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 최은영의 『밝은 밤』 등 총 7편이다. 이들 모두 올 한 해 한국 장편소설의 성과를 대표하는 작품들로서 손색이 없었다. 장르 소설의 외양을 빌려오든 정통 소설의 형식에 충실하든 이들은 모두 우리 현실과 끈끈한 접점을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사상 유례없는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여 지금 우리 소설의 화두는 우리가 직면한 이 시간을 상대화하고 역사화함으로써 우리에게 닥친 시련의 의미를 헤아려보고자 하는 사유의 전환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본심 위원들은 이러한 사실을 공유하며 이 일곱 편의 소설을 놓고 2차에 걸쳐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하였다. 모든 심사가 그러하듯 이 논의들이 언제나 조화로운 합의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때때로 각각의 소설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의견 차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고 그런 만큼 토론 과정도 매 순간 아슬아슬한 긴장의 연속이기도 했다. 그러나 거듭되는 토론과 3차례의 투표를 거치며 심사위원들은 마침내 한 가닥으로 논의를 모을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까지 고려의 대상이 된 작품은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 이장욱의 『캐롤』, 그리고 최은영의 『밝은 밤』이었다.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을 모티프로 현재의 시간 속에 살아 있는 과거의 역사적 기억들의 면면을 추적하고, 그 표층에 그러한 작업 자체가 미래를 현재화하는 순간을 포개놓은 작품이었다. 그 결과 시간의 비선형적 중첩 양상이 인상적으로 포착되며 이제까지의 역사적 상상력과 구분되는 독특한 형태의 역사적 시간이 재구성될 수 있었다. 이장욱의 『캐롤』 역시 17세기 런던과 1999년의 세기말의 서울, 그리고 집필 당시 근미래로 상상되었던 2019년의 서울을 가로지르고 병치하며 시간에 관한 철학적 사유를 확장하고 있었다. 일목요연한 이야기 대신 인상적인 이미지들에 의존하는 이장욱 특유의 사변이 뜻밖의 순간 시적 리듬으로 전환되는 우연성이 돋보이는 작품이기도 했다. 그러나 두 작품의 파편적 구성이 때로 독자의 이해와 소통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는 의견도 없지 않았다.
결국 올해의 수상작은 최은영의 『밝은 밤』에게 돌아갔다. 이 소설은 처음부터 심사위원들의 많은 관심과 지지를 받다가 최종 투표에서 만장일치로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얻었다. 외증조모-외조모-엄마-딸로 이어지는 여성 4대의 일대기가 공적 역사에서 배제되어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통해 장대하게 재현되는 최은영의 『밝은 밤』은 올해 우리 소설이 이룬 최고의 성과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특히 백정의 딸로 태어나 질곡의 역사를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외증조모 ‘삼천’과 그녀의 영혼의 친구 ‘새비’, 그리고 그들의 딸들인 ‘영옥’과 ‘희자’가 만들어가는 우정과 연대의 시간은 여성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넘어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는 교두보를 마련했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우리는 최은영의 『밝은 밤』을 통해 입말의 아름다움과 슬픔을 보듬어 안는 여성들의 마음의 얽힘에 대해 오래 생각하게 될 것이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본심에 오른 작가들에게는 경외와 격려를 드린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신수정, 김인환, 은희경, 정찬, 방현석

예심평

이번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 역시 예년처럼 작년 2020년 8월부터 올해 2021년 7월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진행하였다. 판매 부수라는 가시적인 지표뿐 아니라 다른 여러 면에서도 독서 대중들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장편소설은 문학 내의 많은 양식 중에서 특히 주목을 받아왔던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대중들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고 간단하게 언급했지만, 조금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그 속내가 말처럼 단순하지만은 않다. 예를 들어 지금 어떤 소설을 쓸지 고민한다면, 2년째 뉴스 속보 자리에서 내려올 생각이 없는 코로나 19와 관련된 사건을 떠올리는 것이 무난한 대답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올해 출간된 장편소설들을 읽어봐도 코로나19에 관한 작품들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물론 소설 집필에 시간이 필요하므로 시차(時差) 때문이라고 진단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 19를 연상시키는 재난 서사는 이미 수년 전 우리 문학, 독서계를 휩쓸고 지나갔다는 점에서 그 시차 역시 단순하게 이해하고 말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조금성급히 결론을 내리자면, 장편소설을 매개로 묶인 작가와 독자, 그리고 문학과 현실의 관계는 어느 한 변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장편소설은 모종의 시차(時差/視差)를 견지하면서 독자 혹은 현실과의 관계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는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또 때로는 영향을 받으며 생산과 재생산, 갱신을 거듭할 것이다.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김경욱의 『나라가 당신 것이니』, 김금희의 『복자에게』, 박솔뫼의 『미래 산책 연습』, 이장욱의 『캐롤』, 장은진의 『날씨와 사랑』, 정유정의 『완전한 행복』, 최은영의『밝은 밤』 등 모두 7편이다. 딱히 어떤 경향을 드러내고 있다고 총평을 내리기는 쉽지 않지만, 7편의 작품들은 때로는 좀 더 가깝게, 때로는 좀 더 멀게 진동하면서 현실과의 관계를 겨누고 있다.
본심 대상작 목록을 일별하니, 우리들의 삶에는 현재의 몫만이 아니라 과거의 몫, 게다가 미래의 몫까지 간단치 않게 섞여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분량이나 소재나 이념이나 장르 면에서 작품들마다 상이하지만, 여러 시간대를 아우르는 총체적인 시야(視野)라는 점만으로도 우리는 장편소설의 핵심을 능히 식별할 수 있다. 2021년 대산문학상 수상의 영예가 어느 작품에 돌아가느냐는 예심의 영역을 떠난 문제지만, 이번 본심 대상작의 면면만으로도 한국 장편소설계의 성과가 여실히 드러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예심위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소영현, 임현, 조해진, 이수형

희곡 부문
타자기 치는 남자
타자기 치는 남자
차근호
  • 차근호
  • 1972년 경기 출생
  • 서울예대 극작과, 공연창작학부 졸업, 고려대 대학원 문창과 박사 과정
  • 극단 명작옥수수밭 예술감독, 대전대 국어국문창작학전공 겸임교수
  •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 2000년 동아연극상 작품상, 2000년 삼성문학상 장막희곡 부문, 2000년 창작마을 희곡문학상, 2000년 한국희곡신인문학상, 2004년 창작마을 단막극제 관객이 뽑은 작가상, 2004년 대산창작기금, 2021년 대한민국 극작가상 수상
  • 희곡 「조선제왕신위」 「암흑전설 영웅전」 「사랑의 기원」 「루시드 드림」「어느 마술사 이야기」 「세기의 사나이」 「깐느로 가는 길」 「타자기 치는 남자」, 희곡집 『차근호 희곡집1 - 조선제왕신위』 『차근호 희곡집2 - 루시드 드림』 차근호 희곡집3 - 로맨티스트 죽이기』 등
불교에는 시절인연(時節因緣)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다 때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언제 그때가 올지 알 수 없기에 답답해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묵묵히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것만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과에 집착하지 않고 과정에 집중하는 삶. 과정이 곧 결과라는 것이 작가로 24년을 살면서 배운 교훈입니다.
한때 글쓰기를 멈추고 희곡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고민은 적지 않은 5년이란 공백을 만들었지만, 저에게는 글을 쓰는 것만큼 값진 시간이었습니다. 희곡은 문학의 장르이자 연극의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극작가들은 희곡을 문학과 연극에 양다리를 걸친 박쥐 같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대산문학상은 희곡의 본령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일깨워 줍니다. 문학과 연극 사이에 끼어 그 어느 한쪽에서도 온전한 자리를 얻지 못하는 대본이 아니라 공연을 전제로 하는 문학으로서의 희곡을 쓰라고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문학인 극작가로서 자신 있게 나아가라고 격려해주기 때문입니다. 제가 글쓰기를 멈추고 고민했던 그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대산문학상은 증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나라 극작가들에게 가장 받고 싶은 상을 꼽으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대산문학상일 것입니다. 저 역시 오랜 시간 대산문학상을 흠모해 왔습니다. 이제 시절인연을 만나 대산문학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잘 나서 이 영광을 안은 것이 아님을 잘 압니다. 이 상은 지금까지 극작가로 걸어왔던 길을 더 가열차게 나아가라는 주문이자 채찍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수상 소감을 감사 인사로 끝내는 것은 모든 수상 소감의 클리셰이기는 하지만 저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상을 제정해주신 대산문화재단과 관계자 여러분, 작품의 단점보다 장점을 보아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 제게 시절인연을 가르쳐 주신 삶의 스승님, 저의 부모님과 여동생, 제게 희곡을 가르쳐주신 은사님, 제 희곡을 언제나 최고의 연극으로 만들어주는 최원종 연출가, 그리고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시원 작가, 저의 문우들과 제 작품에 함께 해주셨던 모든 배우님과 스태프 여러분,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극단 명작옥수수밭의 단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클리셰인들 어떻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제 마음을 담을 수 있는 단어는 감사뿐인데 말입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1. 오늘날 연극과 희곡의 생존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제 연극은 오래된 연극이다. 연극과 더불어 희곡은 생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만 갖추어야 한다. 간결한 글쓰기, 분명한 말들, 과잉 없는 수사가 오늘날 희곡의 본령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과 희곡은 다시 우리 일상의 삶으로 귀환하고 있다. 그것은 거칠고 통제할 수 없는 날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연스러움, 고유한 성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지켜나가는 것을 뜻한다. 애초부터 연극과 희곡은 낙원에 있어본 적이 없다.

2. 지난 2년 동안 발표되고, 공연된 희곡들을 이번 심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희곡들은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새로운 글쓰기를 통한 연극적 형식의 창출, 그것을 통해서 삶을 통찰하는 희곡이다. 한국 현대 연극은 희곡의 언어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는데, 늘 새로운 언어를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언어의 아름다움과 호화로움이 여기에 깃들어 있다. 다른 하나는 일상적 언어의 재건을 통해서 연극이 지닌 대중성, 그 전통을 지켜가면서 삶의 실재를 드러내는 희곡이다. 그 미덕은 무엇보다도 관객과의 밀접한 소통을 실천하는 것이다. 원천의 언어를 지닌 이와같은 희곡은 구석기적 언어, 미완성의 언어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연극의 생명줄과도 같다. 저자들을 작가라고 부르고, 작품을 희곡 언어의 상류라고 여겨도 될 것이다.

3. 최종 심의에 오른 작품들은 「서교동에서 죽다」(고영범), 「도덕의 계보학」(박해성), 「문밖에서」(이양구), 「이게 마지막이야」(이연주), 「새들의 무덤」(하수민) 등이다. 위 희곡들은 삶의 회고에서부 터 미래 사회에 대한 성찰 그리고 오늘의 부박한 삶을 향한 따스한 시선을 고루 지녔다. 심사위원들은 긴 토론을 거쳐 수상작으로 「타자기 치는 남자」(차근호)를 선정했다. 이 희곡은 일상적 언어를 통해서 억압과 권력의 폐해를 보여주고, 그 피해자의 영혼을 독자이며 관객들에게 환기시킨다.
멈춤 없이 희곡을 쓴 작가는 책을 읽는 것,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삶을 실험하고, 확인하는 것이라고 등장인물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다. 권력이 폭력으로 삶을 강박한다면, 책읽기와 글쓰기는 삶의 근원으로 이끄는 원천과도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이 우리의 삶을 위로하고 재발견할 수 있도록 하는, 이른바 희곡문학의 절실함을 지녔다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희곡이 더 열정적으로 우리 사회와 삶과 마주하는 격렬한 문학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유근혜, 이상우, 안치운, 박상현, 장우재

번역 부문 (영어권)
Autobiography of Death(죽음의 자서전)
Autobiography of Death(죽음의 자서전)
최돈미
  • 최돈미
  • 1962년 서울 출생
  • 미국 칼아츠대(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 예술사, 전문사 졸업, 유니언인스티튜트&유니버시티 박사
  • 2009, 2013년 대산문화재단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선정, 2012, 2019년 루시엔 스트릭 번역상, 2019년 그리핀시문학상 인터내셔널 부문, 2019년 독일 학술교류처 펠로십(DAAD Artists-in-Berlin Fellowship), 2020년 전미도서상 시부문, 2021년 구겐하임 펠로십(Guggenheim Fellowship), 2021년 맥아더 펠로십(MacArthur Fellowship) 등 수상
  • 역서 Anxiety of Words (『최승자, 김혜순, 이연주 시선집』), Mommy Must Be a Fountain of Feathers (김혜순 『엄마는 깃털 샘인가 봐』), All the Garbage of the World, Unite! (김혜순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Sorrowtoothpaste Mirrorcream (김혜순 『슬픔치약 거울크림』), I'm Ok, I'm Pig! (김혜순 『피어라 돼지』), Poor Love Machine (김혜순 『불쌍한 사랑 기계』), Autobiography of Death (김혜순 『죽음의 자서전』), Yi Sang : Selected Works (『이상 작품 선집』), 시집 The Morning News Is Exciting, Hardly War, DMZ Colony 등
2021년 대산문학상 번역상을 수상하게 되어 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대산문화재단에서 번역지원을 받아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액션북스, 2011) 와 『슬픔치약거울크림』 (액션북스,2014) 같은 김혜순 선생님의 시집들을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국 현대 여성시를 번역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군사 독재 치하에서 한국 여성 시인들의 시가 어떠한지를 알고싶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김혜순 선생님의 작품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것은 평론가이자 시인인 김정란 선생님께서 UCLA에 서 강연하기 위해 작성한 에세이를 읽고 난 뒤부터입니다.
저는 1998년, 서울을 방문해 선생님의 시집을 모두 구입했고, 2000년에 마침내 용기를 내어 선생님께 전화로 연락을 했습니다. 제가 번역한 선생님 시 몇 편을 《아트&레터스》라는 문예지에 게재할 것이라고요. 이강백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 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장난스럽게 “김혜순은 내 아내이지만 행방은 전혀 모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김혜순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면 전화 왔다고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전화했을 때 김혜순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셨습니다. 왜 1998년 서울에 와 있는 동안 선생님에게 연락하지 않았느냐고 힐난하셨습니다. ‘무서워서요’라고 저는 쥐같이 떨면서 대답했었습니다. 그때는 제가 정말 선생님 시를 번역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아직도 김혜순 선생님 시를 번역할 때마다 두렵습니다.
『죽음의 자서전』은 김혜순 선생님의 가장 강렬하고 실험적인 시집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안의 죽음의 구조”를 보여주는 시집입니다. 『죽음의 자서전』을 번역하면서 악몽을 서너 번 꾸었습니 다. 하지만 말할 수없이 아름다운 꿈도 꾸었습니다. 김혜순 선생님의 “희미한 건축” 이란 것을 꿈에서 보았습니다. 그것은 죽음의 구조인 ‘죽음의 내용’에 저항하는, 바로 시의 구조였습니다. 저는 번역하면서 두려울 때마다 이 꿈을 생각합니다. 20년 동안 김혜순 선생님께서 저의 모든 질문에 대답해 주시고 설명해 주신 덕분에 번역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시를 출판한 Zephyr, Action Books, Bloodaxe Books , New Directions 출판사들에도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지난 4년간 영어로 출판된 한국 문학작품은 70편이 넘을 정도로 영미권에서 한국문학 번역은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또한 번역의 수준도 전체적으로 향상되었다. 먼저 대산문학상 심사기준에 맞는 60편이 1차 심사 대상으로 선정되어 심사위원들은 두 달에 걸쳐 독회를 진행하였고 2권의 시집과 4권의 소설을 2차 회의에서 최종 심사 대상으로 선정하였다. 3차 심사에서는 이 6권의 장단점에 대한 논의뿐만 아니라 번역상 심사기준과 과정에 관한 열띤 논의 끝에 최돈미가 번역한 김혜순 시집 『Autobiography of Death(죽음의 자서전)』를 수상작으로 결정하였다.

심사에서 어려웠던 점은 원작의 문학성과 번역의 우수성 사이에서 균형 있는 기준을 유지하는 문제였다. 좋은 번역이었지만 원작의 문학적 완성도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있었다. 또한 번역이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는 시각과 가독성을 고려한 창조적 번역이 더 우수하다는 시각 차이도 있었다. 그리고 대상 작품이 고전과 현대 작품, 시와 소설, 희곡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있어서 단일한 기준을 적용하기 쉽지 않았다.
마종기 시집 『Forty Two Greens(마흔 두 개의 초록)』는 인생의 황혼에서 느끼는 상실의 아픔과 다시 한 번 느끼는 초록의 희망을 투명한 시어로 그리고 있다. 조영실의 충실한 번역은 무난하지만 원작의 섬세함을 전달하기에는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김소라가 번역한 편혜영 소설 『The Law of Lines(선의 법칙)』는 불법 대부업이나 피라미드 판매와 같은 소재를 통해 요즘 젊은이들의 좌절감을 보여주고 있다. 김소라의 번역은 원문에 충실한 번역이지만 완성된 영어소설로서의 작품성이 약간 미진하였다. 김소라가 번역한 김언수 소설 『The Plotters(설계자들)』는 원작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청부살인자의 심리를 다룬 추리소설을 매우 유려하게 번역하여 대중적 흥미를 유발하였지만 역시 원작의 구성이 후반부에 갈수록 약해지면서 수상작 후보로는 미진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최종적으로 3편이 심도 있게 논의되었는데 정예원이 번역한 정영문의 『Seven Samurai Swept Away in a River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는 작가 특유의 위트와 독특한 서술기법을 잘 살린 번역이었다. 특히 원작 특유의 긴 호흡을 그대로 따라가려는 노력에서 번역자의 언어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데보라 스미스가 번역한 배수아의 『Untold Night and Day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는 번역이라는 선입견 없이 그 자체로만 읽어도 훌륭한 영어 문학작품이 라는 극찬을 받았다. 원작의 시적, 몽환적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는 뛰어난 번역이었다. 다만 난해한 원작에 대해 호불호가 갈리듯이 번역자의 의도가 좀 더 반영된 번역이라는 의견이 있었고 원작에 대한 충실도가 다소 미흡한 부분이 지적되었다. 최돈미가 번역한 김혜순 시집 『Autobiography of Death(죽음의 자서전)』는 죽음 이후 49재까지 매일 한편씩 49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시집은 강력한 시어와 이미지를 통해 개인적 죽음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폭력에 희생된 수많은 타자 의 죽음을 기억한다. 죽고 나서 비로소 발화되는 죽음의 목소리와 한국적 애도 과정이 외국 독자에게도 전달될 수 있는 번역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가독성이 장점이었다. 시어의 독특한 배열이 간과된 부분이 있지만 원작의 난이도와 번역의 창조성을 고려하여 최종 대상작으로 선정하였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피터 웨인 드 프레머리, 민은경, 정덕애, 윤혜준, 김양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