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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작 리뷰 - 386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80년대 학번은 지금까지 '민주화와 시위' 또는 '새로운 질서와 운동'으로 요약되었다. 그래서 이들의 30대로의 진입, 즉 이름하여 386은, 마치 돌잔치가 탄생 후 1년 간의 병마를 이겨내고 실제적인 삶으로의 입문을 의미하는 것처럼, 변화에 대한 희망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연 이들은 이러한 기대에 부응하고 있는가? 「돐날」은 386의 작가가 이 물음에 대하여 한편의 연극으로 내린 대답이다. 그런데 그 대답이 그리 긍정적이지 않아 보인다. 마치 오늘날 의학의 발달로 돌의 의미가 희석되고 단지 타인들을 위한 술판으로 전락한 것 처럼.
  「돐날」은 2막과 에필로그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 정숙은 그녀의 두 친구 신자, 미선이와 함께 딸의 돌잔치를 준비한다. 정숙은 지금 대학 시절 민주화의 투사였던 지호와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지호는 박사학위는 받았지만, 언제 교수가 될지 불투명한 시간강사이다. 때문에 모든 생계가 정숙의 몫이다. 신자는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한 상태이고, 남편의 외도가 심한 미선은 누군가의 유혹을 바라고 있는 듯하다. 2막은 돌잔치에 초대된 지호의 친구들 강호, 경우, 달수, 성기가 술판을 벌이는 장면이다. 강호는 인정받지 못한 시인이고, 경우는 겉으로는 시민운동가이지만 사실은 다단계 판매사원이며, 달수는 하청업자이고, 성기는 건설업으로 제법 돈을 번 인물이다. 여기에 미선이가 끼어서 판을 돋우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잔치 분위기가 삐걱대더니 경영대학원을 다니는 성기가 거액을 대가로 자신의 논문 대필을 지호에게 부탁하면서 결국 상이 뒤엎어지는 난장판이 되고 만다. 은근히 성기의 제안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정숙에게 지호는 불만을 표출하고, 이에 대하여 정숙도 누적된 자신의 감정을 터트렸던 것이다. 친구들이 가고 엉망이 된 잔치집에 정숙의 단짝 친구로 미국에 가 있던 경주가 나타난다. 경주는 모든 사람들이 꿈과 가장 근접하게 살고 있다고 여기는 인물이다. 피로에 지친 정숙이가 방안에서 아이와 잠이든 사이, 친구들과 헤어져 홀로 집에 들어온 지호는 경주에게 그녀가 자신을 유혹했던 과거를 상기시키며 강제로 육체적 관계를 갖으려 한다. 엉겁결에 경주는 칼을 들고 반항을 하는데, 이 칼에 오히려 지호가 스스로 몸을 찔린다. 에필로그에서 모든 인물들은 다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 있다. 지호는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사건은 지호가 집으로 돌아오다 강도의 칼에 맞은 것으로 처리되었다.

  이처럼 마지막이 모두 원상태로 돌아간 것으로 그려진 것을 보면, 이 작품이 부정적 시선을 던지는 것은 386의 비투쟁적인 면이 아니다. 즉 이들이 기성세대로 살아가는 것 자체를 문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386이 「돐날」의 등장인물들처럼 민주화 대신에 자본화, 시위 대신에 타협, 새로운 질서 대신에 기존의 질서, 운동 대신에 옹호내지는 순응의 모습을 보이고 있을지라도 말이다. 누구도 기성세대로 만든는 세월을 막을 수 없으며, 또 민주화도 이제는 더 이상 투쟁의 대상이 아니지 않은가?

  이 작품이 진정으로 비판하고 있는 것은 최후의 보루인 정의, 평등, 자유 등에 있어서까지 변질되고 있는 386의 모습이다. 그것이야 말로 존재에 대한 자기 부정의 행위이기 때문이다. 정숙의 동조에 따라 지호는 끝내 정의감을 접고 성기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물론 고급 인력이 홀대받는 현실도 문제이기는 하다. 또한 잔치날 남자들은 아직도 방안에서 대접을 받고 여자들은 부엌에서 일을 한다. 그리고 가장 이상적으로 자유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되는 경주 역시 한낱 초상화나 그리며 사는 자신에 대하여 자괴감에 빠져 있다.

  이렇게 「돐날」은 돌잔치라는 단일한 사건을 통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정숙, 지호, 경주의 무너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386은 스스로 존재이유를 상실하고 있지 않은지 반문하고 있다. 사실적이고 담담하게, 그러면서도 비판성을 견지하고 있는 점에서 작가의 주관성이 깊이 개입된 또 다른 386세대의 이야기 「새들은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다」 보다 더욱 세련된 극작술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지호가 스스로 칼에 찔리고, 경주는 이런 지호를 끌어안고 자신의 젖을 물리는 장면은 사실임직하지 않아 아쉬웠다. 또 에필로그가 너무 급작스럽고 단순하게 처리된 점 또한 아쉽다. 지금까지 잘 구축된 이야기와 비판성을 무효화시키고, 극단적인 허무 또는 패배주의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