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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나그네였다

아버지는 나그네였다.

어머니는 가끔 아버지는 피가 아주 더러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내가 다섯 살 때였는데, 마당에 세워놓은 지게에 받쳐 그만 혼절하고 말았다. 내가 숨을 쉬지 않자 아버지는 자식이 죽었다며 장작에 불을 붙여 지붕에 던져버렸다. 사랑하는 자식이 죽었는데, 이까짓 것들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며 소리만 지르고 있는 사이에 어머니와 일꾼이 나를 업고 면소재지의 보건소를 향해 냅다 뛰었다. 지리산 백무동 입구의 꽃밭머리라는 마을에서 면소재지까지는 오릿길이 약간 넘었다. 그 때의 기억 중에서 선명한 것이 마천초등학교 못 미처 작은 폭포가 하나 있었는데, 그 아래 봉황 한 마리가 앉아 있었던 것을 본 것이었다. 아마 현실이 아니었을 게 틀림없는데, 일꾼의 뜀박질에 의해 저절로 숨통이 트이면서 그런 환상을 본 것이 아닌가 싶다.

보건소에 도착해 주사를 맞는 등 응급조치를 취했다. 보건소의 젊은 의사가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하자 뒤에서 지켜보던 아버지가 슬그머니 사라졌다. 치료가 끝나고 다시 집으로 가야하는데 아버지가 보이지 않자 어머니가 일꾼에게 물었다.

“정주사는 어디로 갔소?”

그러자 일꾼이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어머니는 나를 들쳐 업고 면사무소 앞에 있는 진주옥으로 달려갔다. 진주옥에 도착한 어머니는 다짜고짜 뒷방으로 달려가 방문을 활짝 열었다. 아버지와 전주에서 온 기생이 대낮부터 엉켜 있다가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어머니는 부리나케 그 방에다 구정물을 퍼부었다.

“자식이 죽었다고 집에 불을 질렀던 사람이 그 사이에 바람을 피워?”

이것이 어머니의 항변이었다. 그 후, 내가 어른이 되었을 때 외할머니가 들려준 말이 또 있다. 아버지는 겨울이면 곰 사냥을 즐겨 했다. 겨울잠을 자는 곰의 굴을 찾아 사냥을 했었다. 일꾼들이 지게에 곰을 싣고 우리집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곰 고기에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웅담과 가죽만 들고 서울로 가버렸다. 한 번은 외할머니와 함께 남원역에서 특급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게 되었는데, 열차 안에서 다른 여자를 보고 홀딱 반해서 장모는 내팽개쳐두고 그 여자와 함께 앉아 삶은 계란이며 사이다를 나눠먹었다고 한다. 마침내 서울역에 내렸을 때, 외할머니는 혼자가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그 여자와 함께 사라졌고, 외할머니는 흑석동 연못시장에서 이발소를 하고 있다는 조카를 찾아 헤맸다며 쓰게 웃었다.

아버지는 웅담과 곰 가죽을 팔아 돈이 생기면 도박과 여자에 빠져 지냈다. 그 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주머니에 먼지만 쌓일 때였다. 지리산 그 산골에서 아버지는 농사꾼이 아니었다. 언제나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고 다니는 한량이었다고 어머니는 기억했다.

적어도 내 기억으로도 그랬다. 언제나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사라졌다. 초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하얀 신작로에서 하얀 양복에 하얀 구두를 신은 아버지를 만났다. 꾸벅 인사를 했지만, 아버지는 머리 한 번 쓰다듬어 주지 않고 신작로의 소실점으로 사라졌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어느 술집에서 고혈압으로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초등학교 1학년 이후, 나는 아버지의 결핍 속에서 살았다. 결핍이 너무나도 당연했기에 결핍이 상처가 되진 않았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리움도 없었다. ‘신이나 아버지는 존재한 적이 없었고’, ‘무의식은 언제나 고아’였다는 들뢰즈의 말은 적어도 내게는 ‘허구’가 아니었다. 그랬기 때문에 아버지와 찍은 그 흔한 사진 한 장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지독한 가난을 견뎌내지 못하고 서울로 이사를 한 이후에 나는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다. 내 손에는 언제나 껌과 신문이 들려있었고, 거리에서나 다방에서 그것을 팔아 목구멍에 풀칠을 해야만 했었다. 그 때에도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에 대해 원망은 없었다.

아버지가 없다는 것은 곧 억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나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거의 자유방임의 상태로 성장했다. 어머니가 가끔 공부하라고 성화를 부렸지만, 그것은 억압이 아니었다. 나는 거의 무시했고, 내 맘대로 학교를 다녔고 공부보다는 독서에 열중했었다. 돌이켜보면, 내 소설에는 아버지란 존재가 거의 나오지 않는다. 그만큼 내 정신에 아버지의 결핍과 부재가 선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 없는 서러움에 목메어 운 적이 있었다. 결혼을 할 때였다. 아내도 아버지를 초등학교 입학 전에 잃은 사람이었다. 무슨 운명이 그리도 장난스러운지 나는 장인도 갖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내 삶에는 ‘어른’이 존재하지 않게 되고 만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 어른이 되어야만 했다. 결혼식장에서 아내와 나는 이심전심으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내가 아버지가 되었다. 아버지가 되었지만, 첫 아들을 끝내 지키지 못했다. 작가인 나는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나그네가 되어 집 밖으로 떠돌았고, 11월의 어느 날 첫 아들을 가슴에 묻어야 했다. 그 아픔 속에 나는 자식을 가슴에 묻은 아버지가 되었고, 지금도 나그네가 되어 세계를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