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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외 2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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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메모 :
어릴 적의 안성(安城), 그 꽝꽝 얼어붙은 새벽, 인천에 가기 위해 일찍 일어나 찬물로 세수를 하던 그때를 잊지 못 한다. 가마솥엔 밤새워 물이 펄펄 끓고 있었지만 찬물로 세수를 하고는 나는 아마도 물고기 잡던 개울 쪽 하늘을 바라보았던 것 같다. 마실 가서 술 한 잔 걸친 할머니 등에 업혀 집에 가는 길, 눈 녹은 길이 얼어붙어 다시 울퉁불퉁해진 그 길을 천천히 걸으며 할머니 등에서 올려다 본 밤하늘, 그 펑펑 쏟아지는 별빛을 역시 잊지 못 한다.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났다는 우주관은 그러한 새벽이나 저녁 같은 시간에나 언뜻 느껴볼 수 있는 육감(肉感)일 것이다.
새벽, 아침, 낮, 저녁, 밤의 구분도 없고 경계도 없고 순서도 없다. 나는 요즘 저녁이나 새벽의 시간에 내 자신을 세계 또는 우주와 면벽좌선시키는 게 참 좋아졌다. 그 벽과 나 사이가 그저 우주다.
저녁
아이들이 아악, 아악, 아아아악
웃는다 아, 하하하하하하
죽는 줄 알았다 아 하하하하하
악
축구하는 아이들은
축구하다 말고
축구하면서
계속 아악, 아악, 아 하하하하하
아이들은
이빨은 홀랑 다 빠져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고
창자는 다 끊어져
채송화가 되었다
폭우 끝난 뒤
아이들이
별을
주물러 터치고 있다
쇠비름 달개비꽃
흰 뿌리에
― 밥은
엄마가 짓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짓는 것이다
반바지 입고 청바지
샌들 신은 여자아이들이
팔방놀이 하면서
팔짝팔짝 뛰면서
유모차
여름은 여체의 계절
여자들은 팔부터
어깨부터 드러내는 게 아니라
얼굴부터 드러낸다
알몸보다 더 알몸인
저 몸들
이 연일 폭염에
놋거울 같은 대지를 구르는
유모차는
지팡이 든 어머니를 부축하고 공원을 도는
반바지 중년 아들은
모시 광주리 같은 백발
가마솥 속의 여자들은
황금의 가마솥
느티나무 숲 속엔 언뜻언뜻
황금의 에밀레종들이
금가루를 쏟으며
그 터질 듯한 여체들을
도금하고 있었다
저녁을 짓고 있었다
떨어진 살구
비 온 뒤
떨어진 살구
살구를 떨어뜨린 건
바람이지만
살구는 시원하겠다
머리 감고 목욕하고
그 강풍에
자기가 떨어뜨릴 수 없는 건
하늘이 떨어뜨려 주어야 하는데
내 긴 머리가
미풍에 흩날린다
비 온 뒤 이 새벽은
고인 물 속에서
밤새워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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