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함께 치유해야 할 역사의 상처
 

  친일은 적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지닌 상처의 이름이다. 친일을 향하여 마음껏 돌팔매질을 한다고 우리의 상처가 낫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용감무쌍하게 무찌르고 쳐부숴야 할 야차 같고 오랑캐 같은 대상이 아니라 다 함께 아파하고 치유해야 할 우리의 상처와 같은 대상이다.

  강건너 불보기가 안전하고도 재미있듯이, 지난 세월의 과오를 단순명료한 잣대로 욕하기는 안전하고도 쉬울 뿐만 아니라 소득까지 있다. 친일이라는 반민족적 행위를 단죄하려는데 무슨 변명이 필요하며, 무슨 다른 논리가 더 필요한가라고 큰소리 치면서 친일을 과감하게 단죄하면 그만큼 더 민족적이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태도로는 친일의 진실이 밝혀지지도 않고, 또 그 역사적 진실로부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도 얻지 못하게 되고, 또 우리의 상처도 치유하지 못한다.

  친일 문제는 단죄하기 위해서가 아니고 용서하기 위해서, 그리고 그로부터 우리가 엄숙한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 냉정하고 사려 깊게 연구되어야 한다. 친일문제는 그 자체로 매우 복잡한 양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개개의 사례들이 제각기 다르고 그것이 놓여진 자리에 따라서도 다르다. 오늘날 우리가 친일을 이야기할 때, 최소한 다음과 같은 사항은 고려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첫째, 친일이라고 해서 모두 다 같은 친일은 아니다. 일찍이 민족적 사명감을 지니고 『친일문학론』을 저술한 임종국 선생은 편의상 친일의 양상을 다섯으로 나누셨다. 그로부터 30년 이상이 지난 오늘날 친일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인식은 임종국 선생 때보다 더 빈약하고 편협해진 듯하다. 어떤 문인이 친일문학작품을 남겼다면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 그가 그 작품을 어떤 상황과 의도에서 남긴 것인지, 그의 다른 행적은 어떠했는지 등등에 대해서 소상하게 밝혀낸 다음에 그것을 토대로 그 문인의 친일을 심판해야 할 것이다.

  둘째, 일본제국이 한반도를 강점한 기간이 36년이나 된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36년이라면 어른이 된 후의 한 인간의 평생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처음에는 강력하게 항일하다가도 몇십년 후가 되면 어쩔 수 없이 친일하게 될 여지가 많아지게 된다. 삼일독립선언의 민족대표 33인의 대부분이 20년 후에는 친일을 하게 된 사실의 이면에는 우리가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많은 면들이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비시정권 시절과 우리나라의 총독부 시절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총독부가 비시정권처럼 4년 만에 끝났다면, 우리 역사 속에는 민족지사, 독립투사가 매우 많았을 것이고 그 반대로 친일매국노는 극히 적었을 것이며 따라서 친일문제도 쉽게 청산될 수 있었을 것이다.

  셋째, 한 인간의 행적은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므로 그의 행적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단순한 예로, 젊어서는 항일을 하고 투옥도 되고 한 분이 늙어서는 적극적으로 친일을 한 사례들이 종종 있다. 그런 분은 항일운동가인가 친일매국노인가? 아니면 항일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친일매국노인가? 그의 친일을 단죄해야 한다면 그의 항일은 추앙해야 하는가? 아니면 한번이라도 친일을 했다면 그의 나머지 삶은 다 가짜가 되어버리고 마는가? 그런가 하면 그분이 남긴 다른 업적들은 어떻게 되는가? 가령,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 소파 방정환이 우리 역사에 남긴 공헌은 어떻게 되는가? 또 그 시절 아름다운 노래로 우리 민족의 영혼을 달래주었던 홍난파의 업적은 어떻게 되는가? 아름다운 그림을 남긴 김은호 화백의 업적은 또 어떻게 되며, 최초의 한국비행사로써 명예를 떨친 안창남의 공로는 또 어떻게 되는가?

  넷째, 친일은 문인들만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친일문제가 거론되면 거의 언제나 문인들이 화살받이가 되는 듯하다. 사실 일제 말기의 사회 저명 인사들은 모두 친일을 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 당시 사업을 하거나 관리를 하거나 교사를 하거나 간에 일본에 협력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협력하지 않으려면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야말로 지하로 잠적하여 투사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출세를 위해서 일본제국의 군사학교를 다니고 또 일본군 장교가 된 것도 심각한 친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지배가 30년이나 계속되고 난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도 친일을 안하기 어려운 사회적 체제가 형성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그 당시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 친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의외로 소수일 것이다. 물론 대부분이 친일을 했으니, 문인들의 친일도 문제삼지 말자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삼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다른 사정, 다른 형편도 고려해서 신중하게 심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친일의 범주를 좀 좁게 잡아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일제시대에 밥 먹고 산 것 자체가 친일일 수도 있다. 일제의 강요로 어쩔 수 없이 어정쩡하게 쓴 한편의 글 때문에 한 문인을 친일분자로 매장한다면, 그것은 인간적인 도리도 아니고 또 민족적으로도 큰 손실이다. 더 나아가 진짜 나쁜 친일매국노의 정체를 흐리게 만든다. 친일을 하게 된 개인적 사정을 잘 헤아려서 심판하고 친일의 범주를 좁게 잡을 때, 친일 논의는 생산적인 것일 수도 있고 역사적 교훈을 주는 것일 수 있다.

  친일 논의는, 그 시대에 없었던 사람이 그 어려운 시대를 겨우 견딘 사람들을 쉽게 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또 단순한 민족의식과 도덕심을 충동하기 좋은 재료로 이용되어서도 안된다. 또 나쁜 적을 만들어 두고 그 적과 싸워야만 자신의 존재가 입증되고 자신의 이익이 커지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적 악이 되어서도 안 된다. 정략적이고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친일의 진정한 실체가 오히려 가려지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된다. 친일은 적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다 함께 아파하고 치유해야 할 우리 모두의 상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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