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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남겨 두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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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를 쓰면서 살아온지도 벌써 30여년이 되었다. 대학 3학년이던 65년에 등단했으니 등단 햇수로는 40여년이 다 되어간다. 글을 놓고 산 십여년을 빼면 시의 나이가 중년이 된 셈이다.
이 세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로 양식을 얻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그런 점에서 나는 시인이 된 것을 감사할 따름이다. 누가 나더러 왜 시를 쓰냐고 물으면 '잘 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누가 또 시가 밥 먹여 주냐고 하면 '시는 내 정신의 밥'이라고 서슴지 않고 대답한다. 시가 돈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돈보다 더 가치있는 정신의 양식이 된다는 사실에 나는 자부심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시가 곧 생활'이라고 했던 예이츠나 '글을 쓰는 것은 숨을 쉬는 것'이라고 말한 네루다 시인을 좋아한다.
시가 곧 생활이니 평생을 시와 함께 살 것이며 숨을 쉬지 않으면 죽을 것이니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시를 쓰겠다는 시인의 치열한 정신을 높이 받들고 싶기 때문이다. 시인의 삶이 시에 반영되어야 하고 그것이 예술의 법칙, 인생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네루다는 말했다. 그러나 요즘 젊은 시인들은 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다. 가슴보다 머리로 시를 만드는 시인들이 많아서일까. 삶이 시에 반영되는 것을 오히려 사적이라 부정하고 그것이 예술과 생의 법칙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선지 시와 삶이 일치되는 시인이 극히 드문 것 같다.
고생도 고뇌도 고통도 고독도 각오하지 않은 사람들이 시인이 된 탓일까. 시인은 많지만 좋은 시집은 드물고, 시집은 많지만 좋은 시는 드물다고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스스로에게 절박한 질문을 한다. '너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느냐?'고. 그 질문이란 이 시대에 시를 쓴다는 사실이 왜 이토록 어렵고 고통스러운 것인가, 라고 묻는 것과 같다. '시인은 어렵게 살아야……'라던 어느 시인의 말에서, 고통과 고뇌와 고독의 통과 없이 직진하려는 시인들은 해답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탁월한 인식력과 예지력으로 당대의 현실을 쳇바퀴처럼 맴도는 지옥의 모습으로 꿰뚫어 본 시인 랭보. 그의 시는 현대 사회에 대한 처형이지만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인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은 동시에 시에 대한 단죄이기도 하다던 어느 평자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엇을 쓸 것인가 보다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하지 않고, 독자들의 구미에 맞게 언어들을 적당히 조립한 시들이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와 있는 것을 보면 책방에도 가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물론 색깔이 다양한 세상에 어떤 책인들 있을 수 있겠지만 그래도 시만은 시인의 자존심이 되었으면 좋겠다.
시는 사적인 말을 무분별하게 쏟아 놓는 고백의 공간도 아니며 감정과 욕망의 배설장은 더더구나 아니다.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아무나 좋은 시를 쓸 수 없는 이유가 이런 곳에도 숨어 있다.
쉽게 쓰는 작가의 표본이던 여성작가 가브리엘 콜레트는 '내가 쉽게 쓴다고는 하지만 나 자신은 하루종일 걸려 반 페이지도 못쓰는 날이 너무 많다'고 고백하고 있다. 쉽게 쓴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결코 나쁜 작품을 쓴 것은 아니었다.
이렇듯 글쓰기는 벼랑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 박목월 시인을 『문장』지에 시인으로 등단시켰을 때 정지용 시인은 '서정시에는 말 한개 밉게 놓이는 것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라는 추천사를 썼다. 지금이 그 시대인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인이 지녀야 할 시 정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위대한 시는 시대가 바뀌고 세기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동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시를 쓰기 위해 몇날몇밤을 세우고도 좋은 시 한편 거둘 수 없어 절망할 때, 랭보가 남긴 마지막 말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나 '나는 자신에게 기념비를 남겼다'는 푸슈킨의 마지막 말을 곱씹어 본다. 시인은 시로써 말하며 시인은 떠나도 시는 남는다. 오늘따라 '시를 남겨 두어라'던 죽은 시인의 말이 죽비처럼 나를 내리친다. 시에 매달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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