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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기다리며

2002년 10월 일본 열도는 2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에서 일시귀국한 피납자들의 동정 등 희비쌍곡의 엇갈린 뉴스로 들떠 있었다.
  수상자 가운데 화학상을 받은 40대 초반의 기계제작소 하급직원에 불과한 다나카 고이치씨가 단연 화제의 중심이었다.

  다나카는 작업복 차림으로 기자회견에 나선 그의 천진무구한 답변 태도가 이색적이었고 주임직에서 일약 과장, 부장 자리를 건너뛰어 임원으로 대우하겠다는 회사측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부한 것도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장기간의 경기침체기로 기초과학에 대한 정부 지원이 열악했던 시기에 기초 중의 기초인 물리, 화학 부문의 노벨상이 나왔다는 것과 화학 분야에서 3년 연속 수상이 주어졌다는 사실이 더욱 놀라운 일이었다. 일본은 지금까지 12개의 노벨상을 수상했는데 고이즈미 수상은 기초과학 지원에 더욱 주력해서 앞으로 50년 동안에 30개의 노벨상을 타겠다는 의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런 수치를 보면서 지난번 부산에서 열린 아시안 게임에서의 각국의 메달 획득 수가 떠올랐다. 중국 150개, 우리나라 96개, 일본 44개 등등. 일본을 더블스코어로 물리쳤다는 환호의 소리가 귓가에 쟁쟁했다. 지금까지 아시안 게임 때마다 2∼3위를 경쟁하던 한-일 간이고 보면 이번의 경우는 엄청난 차이라 할 수 있을 만하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 수를 비교해 보면 12 : 1이다. 그런 1을 가지고도 노벨상 심사위원들을 상대로 사전에 로비를 했느니 안했느니 정치쟁점으로 떠오르기까지 했는가 하면 급기야 노벨위원회가 "노벨상은 로비가 불가능하고 로비를 한다면 더욱 엄하게 심사하며 불이익을 받게 된다"는 해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노벨상 역사에서도 우여곡절은 있었고 마땅히 타야할 사람이 실기(失機)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벨위원회는 가장 유력한 평화상 수상자로 지목하고 있던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가 갑자기 서거하는 바람에 시상을 못하고 말았던 사실을 가장 후회한 바 있다. 1978년 이스라엘-이집트 간의 분쟁 해결의 주역을 맡았던 지미 카터 미국 대통령도 그때 실기하고 23년이 지난 이번에야 상을 받게 된 경우들이 그러하다.

  카터에 대한 수상을 놓고 미국의 대 이라크 정책에 대한 비판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는 어느 노벨상 심사위원의 발언으로 심사위원들끼리 언쟁이 오가기도 했다. 그런걸 보면 노벨평화상이 주어지는 과정이나 수상자들의 입장이 결코 평화스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의 권위는 아직도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기초과학 분야에서 유망주가 있다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만 문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먼저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금년에도 시인 고은(高銀)씨가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올라 발표 순간까지 숨죽이며 지켜본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지만 국토분단 현실에서 동족상잔의 전쟁을 소재로 한 문학 분야에서 수상자가 먼저 배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 그러나 노벨상을 그저 묵묵히 기다리기만 한다고 해서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경우는 벌써 2명의 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했지만 그들 모두 작품낭송회 등을 통해 국제적으로 광범위한 노력을 경주했고 특히 국내에서 인정받은 그들의 작품들을 영·불·독·스페인어를 비롯하여 스웨덴, 노르웨이어 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언어로 번역하여 세계의 독자들이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우리는 아직도 문학작품 번역이 중국과 일본에 비한다면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한국문학번역원과 민간기구로서는 유일하게 대산문화재단이 번역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는데 우리가 노벨문학상을 겨냥한다면 좀더 많은 분량의 작품과 좀더 많은 언어권으로의 유려한 번역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한국문학 작품들이 외국인의 서가에 꽂히게 되고 변방에 머물러 있던 우리 문학이 세계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현재까지 번역된 700여종의 우리 작품들이 대부분 현지의 3∼4류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는데 이제부터는 1∼2류 출판사에서 나오게 함으로써 권위를 한차원 높여야 한다. 그리고 필수적으로 시행되는 추천 과정에서도 우리나라 측에서보다는 세계적으로 명성있는 작가들이 나서도록 하는 것도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이러한 여건이 어느 정도 갖추어져야만 비로소 한국 문인들이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을 것이고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길도 열리리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