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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무사태평, 무기력, 호기심', 그리고 아직도 남아있는 잔흔-영문학에 나타난 한국인

  외교관 100명이 10년 걸려도 하지 못할 일을 때로는 한권의 문학작품이 해낸다는 말이 있다. 미국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펄 벅(Pearl S. Buck)의 『살아있는 갈대(The Living Reed)』(1963)는 바로 그런 평을 받는 작품이다. 1881년 조선왕조 말기부터 시작해 1910년 한일합방, 그리고 1945년 해방과 1950년 한국전쟁까지를 배경으로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려온 한반도의 슬픈 역사를 4대에 걸친 한국양반 가문이 겪는 수난사를 통해 묘사한 이 소설은 당시 무명의 나라 한국을 전 세계에 호의적으로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더구나 소설의 서두에 작가가 붙인 “한국은 점잖은 사람들이 사는 보석 같은 나라이다”라는 말은 많은 한국인들을 고무시켰을 뿐 아니라, 외국인들에게도 좋은 한국인의 이미지를 각인시켜주었다.

이 소설에서 펄 벅은 한국은 “조공을 요구하는 중국, 항구를 욕심내는 러시아, 그리고 제국으로 군림하려는 일본 사이에 끼여 지난 4천년 역사 중 단 백년도 평화를 누리지 못한 나라”라고 지적한다. 그 와중에서 영의정을 지낸 주인공 일한의 할아버지는 “러/일/중의 탐욕으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길은 오직 조선을 은둔국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왕에게 건의했던 쇄국주의자였고, 그의 아버지 역시 국제 정세는 모른 채 경서만 파고드는 앞뒤가 꽉 막힌 선비였다. 오직 주인공 일한 만이,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중국의 낡은 문물만 받아들였어. 이제는 서양문물도 받아들여야만 해. 수용하면서 저항하는 것, 그리고 접목하면서 혼합하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의 과제야”라고 말한다. 청나라를 좋아하고 거북선을 내세우며 일본을 폄하하는 민비에게 일한은 “이제 그 거북선 이야기는 그만 하시지요. 일본은 더 좋은 철갑선과 서양의 신무기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처럼 은둔으로 허송세월하지도 않고 서양으로부터 배웠습니다. 곧 청나라와도 전쟁을 벌일 것입니다”라고 충고한다.

19세기 말, 조선을 다녀간 러시아 장교들(카르네프 외 4인)이 쓴 『내가 본 조선, 조선인』(가야넷)에 의하면, 일한의 권고를 무시한 민비는 결국 일본인들에 의해 살해당했고, 그 직후 “대원군과 일본 공사 미우라가 거의 동시에 일본병사들과 함께 남문을 통하여 들어와, 즉각 왕에게 가서 왕비의 칭호를 박탈하고 왕비를 평민신분으로 격하시키라는 포고령을 제출”했다고 되어 있다(민비시해 사건에 대원군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복거일의 저서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에도 언급되어 있다). 일본을 비판하느라 한국 편을 들고 있으며 비교적 객관적인 논평을 하고 있는 러시아 장교들조차도 당시 조선의 모습에 대해서는 부정적으로 묘사한 것이 많았다.
나라를 통치하는 데 있어 모든 문제들은 관습적으로 고위관리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많은 수의 하급관리들이나 혹은 빈둥거리는 한량들의 손에서 해결되었기 때문에… 조선에서는 그 어떤 기말도 없었으며… 말 많고 호기심도 많은 조선인들의 기질로 인하여 모든 기밀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 모든 사람들이 다 알게 되는 것이다.
- A 이르계바예브, 김정화 옮김, 가야넷, 2003

갑오개혁이 있기 한 해 전인 1893년에 한반도로 건너와서 당시 조선을 정탐하고 그것을 책으로 펴낸 혼마 규스케의 『조선잡기』(김영사)에도 당시 구한말 조선의 모습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1. 한국인들은 정직하다기보다는 단순해서 희로애락의 감정을 감추지 못한다.
2. 한국인들은 당장 눈앞의 은혜에는 감동하고 위엄에도 복종하지만, 조금만 지나면 다 잊어버리고 은혜를 베풀면 당연하게 생각하며 위엄을 가하면 곧 원망한다.
3. 돈을 빌린 후 기일 내에 상환하는 일이 거의 없다. 재촉하면 돈이 없으니 기한을 연장해달라고 태연하게 말한다.
4. 급하면 우선 그 자리만 피해보려고 하며 멀리보지 않는다.
5. 긴 장죽을 피우며 하루 종일 잡담으로 소일한다.
6. 남의 일에 호기심이 많고 구경을 좋아한다.
7. 유교국가라고 자랑하면서 유교의 도덕과 윤리보다는 형식과 허례허식에만 얽매인다.
8. 의관은 운치가 있지만, 사는 집은 매우 누추하다.
9. 공예품 만드는 솜씨가 뛰어나다.
10. 관리가 부패하고 착취를 일삼아 지방관이 되면 3대가 부자로 산다고 한다.
11. 한국인들은 나태하고 위기를 못 느끼는 무사태평한 민족이다.
12. 한국인들은 자기 나라에 대해서도 잘 모르지만 국제정세에는 더욱 어둡다.

1913년 러일전쟁을 취재하러 일본을 거쳐 한국에 온 미국작가 잭 런던(Jack London)의 『조선사람 엿보기』(한울)에는 미국 작가가 본 조선 말기의 모습이 뛰어난 유머감각으로 그려져 있다. 예컨대 런던은 당시의 조선인들을 평가하면서, “한국인은 섬세한 용모를 갖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 있는데, 그것은 힘이다… 예전에는 용맹을 떨쳤지만 수세기에 걸친 집권층의 부패로 인하여 점차적으로 용맹성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정말로 한국인은 지구상의 그 어떤 민족 중에도 의지와 진취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가장 비능률적인 민족이다”라고 묘사하고 있다. 러/일/중 주변 강대국들이 자기네 땅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는데도, 여전히 무사태평하고 무기력한 한국인들의 모습이 런던이 보기에는 너무나 한심했던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근대화된 미국에서 온 잭 런던의 눈에 위생관념이 부족하고 도로건설도 안 되어 있는 전 근대적 국가인 한국의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비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런던의 한국 묘사 중 어떤 것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어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예컨대, 그는 “한국인들은 그 어떠한 사소한 일이라도 잡담을 30분 정도 나누고 나서야 시작하는데, 만약에 자기들끼리만 그냥 놔둔다면 예비 회담을 하느라 하루를 다 소비할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는 회의하러 모여서 정치 가십 같은 잡담을 한참 하고나서야 비로소 본 회의를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또 우리는 우리가 성급해서 ‘빨리빨리’라는 말이 생긴 것으로 알고 있는데, 런던은 반대로 한국인들이 느리기 때문에 재촉하기 위해 생겨난 말들이라고 지적한다… 한국인은 무척이나 겁이 많다.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 게으른 취미를 낳았다고 볼 수가 있다… 속도를 내야 한다는 필요성으로 인해 한국에서는 적어도 스무 개의 단어가 만들어졌는데, 그것들 중 몇 개를 인용한다면 ‘바삐’, ‘얼른’, ‘속히’, ‘얼핏’, ‘급히’, ‘냉큼’, ‘빨리’, ‘잠깐’ 등이다.”(41쪽)

런던은 또한 한국인들이 겁이 많으면서도 동시에 호기심도 많아서, 난리가 나면 일단 산으로 도망은 가지만, 곧 군인들을 구경하기 위해 마을로 내려온다고 적고 있다.
오늘날에 있어서 전쟁은 인간사의 마지막 심판자이며 또한 국민성을 최후로 시험하는 관문이다. 이 시험에서 한국인들은 실패했다. 외국 군대가 자기나라를 통과해 가려고 하자 한국인들은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도망갔다. 그들은 문짝이며 창문이며 할 것 없이 주워갈 수 있는 것 모두를 등에 지고 들키지 않을 은신처인 산으로 발길을 돌린 것이다. 그러나 후에 그들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에 끌려 구경하기 위해 다시 마을로 내려온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단순한 호기심 때문이다. 그들은 약간의 위험만 느끼면 언제든지 서둘러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222쪽, 이하 윤미기 옮김)

한국인의 특성 가운데 비능률적인 점 다음으로 꼽을 수 있는 두드러진 특성은 호기심이다. 그들은 ‘기웃거리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말로는 ‘구경’이라고 한다… 그것의 아주 큰 이점은 값이 싸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아주 사소한 어떤 사건이라 할지라도 구경거리에 해당되므로 몇 시간이 걸려도 ‘기웃거리느라고’ 서 있거나 구부리고 앉아 있는 것이었다.(107쪽)

런던은 또 한국인들을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인들이 가볍고 소지하기 쉬운 종이돈을 쓰지 않고 무거운 동전을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짐 싣는 힘센 말이 미화 50달러에 해당하는 동전을 실을 수 있다. 한 나절을 물건을 사는데 보내려한다면 동전을 들고 다닐 짐꾼을 두 명은 데리고 다녀야 한다. 이삼천 달러의 빚을 갚으려면 여러 줄의 나귀 행렬이 필요한데, 도둑 한 명이 등에 싣고 훔쳐 가봐야 얼마 안 되는 것이었다.(96~97쪽)

런던이 한국에서 경험한 또 하나의 이상한 현상은, 사람들이 싸울 때 주먹이나 무기를 쓰지 않고 주로 욕을 사용해 싸움을 한다는 점이었다. 런던은, 한국인들은 싸울 때 “늙은 남자건 젊은 남자건 간에 싸우려는 기색은 없이 욕만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점은 혼마도 “한국인들은 욕을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의 상투를 잡고 싸우는데, 결국은 찌그러진 갓을 물어내라고 싸운다. 한국에서는 아무도 에도의 사무라이처럼 싸우지 않는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런던은 이렇게 쓰고 있다.

혼마처럼 런던 역시 조선 관리들의 부패상과 착취를 지적하고 있어서 구한말 조선의 부패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일본군 당국은 식량과 마초를 징집하고 적당한 가격을 매겨준다. 그러나 그 가격은 한국인 관리들에 의해 조정이 된다. 돈을 빼돌리는 수완에 있어서 그들은 서양인을 능가한다. 그것에 대해 특별한 용어가 있는데, ‘착취’한다는 것이다. 백여 년 동안 한국에서 이것은 일종의 수완으로 자리 잡아 왔는데, 한국에서는 착취하는 계급과 착취당하는 두 부류의 계급만이 존재하고 있다.(5쪽)

한국에서 ‘착취’가 ‘수완’으로 자리잡아왔다는 혼마의 말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착취’와 봉이 김선달 식의 ‘사기’가 우리 사회에서 ‘수완’으로 여겨져 왔고, 그래서 정당화되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일본문학이 활발하게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로 퍼져나가면서 일본문학에 나타난 한국인들의 부정적 이미지가 전 세계로 확산되기도 했다. 예컨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세설』(The Makioka Sisters)에는 일본천황이 서거해 일본이 슬픔에 잠겼는데 일단의 한국인들이 우에노 공원에서 가무를 즐기고 있어 일본인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또 아베 고보의 『모래의 여자』(The Woman in the Dunes)에는 “어느 사회주의자가, 자기는 한국인의 영혼은 사랑하지만 한국인의 체취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라는 주인공의 독백이 나온다(국내 번역에서는 이 부분이 생략되었다).

최근에는 북한 때문에 한국인의 이미지가 잔혹한 살인자나 테러리스트로 굳어져가고 있어 우리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예컨대 미국 추리작가 할런 코벤(Harlan Coben)의 인기소설 『단 한 번의 시선』(Just One Look)에서는 한국인 에릭 우가 암살자로 나오는데, 독자들은 그가 등장할 때마다 그의 잔인함과 냉혹함에 치를 떨게 된다. 에릭 우는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서 살인 기술을 배운 북한인으로 제시되기는 하지만, 남북한의 차이를 잘 모르는 대부분의 미국인 독자들은 에릭 우를 통해 한국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형성하게 될 가능성이 많다. 냉혹하고 잔인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인기 텔레비전 드라마 <프리즌 브레이크>의 빌 킴을 통해서도 제시되고 있으며, <CSI 코리아타운 에피소드>에서는 한국인들이 갱단을 조직해 상점 주인들을 갈취하고, 성형수술을 좋아하며, 할머니까지도 경찰에게 총을 휘두르는 거친 사람들로 묘사되고 있다. 리 차일드(Lee Child)의 <탈주자>(Die Trying)에서는 한국인이 공손하고 예의바른 세탁소 주인으로 잠시 등장하는데, 이 역시 한국인은 세탁소 경영자 계층이라는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가능성이 있어 걱정스럽다.

반면 대산문화재단이 주최한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했다가 한국을 좋아하게 된 영국작가 마거릿 드래블(Margaret Drabble)은 영국으로 돌아가서 『붉은 왕세자빈』(The Red Queen)이라는 소설을 집필, 출간했는데, 이 소설은 한국 고전문학인 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을 현대판 영국소설로 다시 쓴 것이다. ‘트랜스문화적 희비극’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에서 드래블은 17세기 한국 여성의 회고록이 어떻게 21세기 영국 여성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문화의 경계와 시공을 초월해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해주는가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에 대한 좋은 이미지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그동안 영어권 문학작품에 한국인이 등장하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그러나 미국 내 한인사회가 커지고 북한의 횡포가 심해지는 요즘 영미 문학작품이나 영화에 갑자기 한국인들이 자주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 중에는 물론 긍정적인 경우도 있지만 아직도 부정적인 것들이 많아서, 앞으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개선이 우리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문학작품, 특히 영어로 쓰이는 영미문학의 파급효과는 엄청나고도 강력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