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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성을 넘어 부딪치는 것들 - 김연수의 『나는 유령작가입니다』 를 번역하면서

독일에서 한국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위태롭다. 어떤 책방에서도 한국문학과 관련된 서적을 발견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문학에 관심이 있는 독일 독자들이 책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인터넷으로 주문을 하거나 직접 출판사에 연락을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 문학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는 별로 시사성이 없는 한국과 관련된 특정한 주제에 묶여 있는 것에서 찾거나 아니면 번역의 질이 시원찮은 것에서 주로 찾는다. 나는 이 두 주장이 별로 설득력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 글에서 그 주장들을 장황하게 반박할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의 단편집인 『나는 유령작가입니다』와 관련해서 간단하게 말하자면, 첫 번째 주장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음이 분명해진다. 한국 현대문학의 잘 알려진 주제들, 예를 들자면 분단 상황, 정치적인 억압과 민주화 운동, 또는 산업화와 대중사회의 전개가 가지고 온 소외와 가난의 문제 등이 김연수의 작품에서는 부차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김연수의 단편집은 아주 흥미롭고 때로는 파격적인 방식으로 탈현대적인 역사의식이 반영되는 주제들을 다룬다. 그의 이야기들은 영국과 미국, 중국과 한국을 배경으로 전개되고 심지어는 독자들을 오지에 해당되는 파키스탄의 산악 지역까지 데리고 간다.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를 통해 한국 역사에서 알만한 가치가 있는 상세한 사실들에 대해 경험을 하지만, 그 경험에는 어차피 자신과는 별 상관도 없는 낯선 나라의 이국적인 정서에 접하게 되었다는 불편한 느낌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 점이 내가 보기에는 ‘유령작가’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장점의 하나이다. 김연수는 우리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핵심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데, 그것은 역사란 무엇인가, 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는 그가 어디에서 살던, 작가의 이야기속에서 자기 삶과 관련된 현실에도 역시 그런 문제들이 공존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김연수는 새로운 젊은 한국의 작가로서 아마도 그 이전 시대의 작가보다는 더 쉽게 독일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것은 주제와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문체와 관련해서도 그러한 것으로 보인다.

김연수의 글은 명확하고 자세한 묘사를 하는 특징이 있고 유럽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은유와 비유를 사용하며 한국문학에서 자주 관찰되는 불필요한 표현의 반복이나 빈번한 사투리의 사용에서도 벗어나 있다. 이런 특징들은 번역가인 나에게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게 하면서도, 독일어로도 상당히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 수 있도록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독일어로 번역하는 작업에는 두 문화와 언어의 적지 않은 차이점 때문에 발생하는 많은 문제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언제나 포함된다. 예를 들자면 한국어에는 여성인지 남성인지가 불분명한 경우가 많고 단수인지 복수인지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또는 시제의 사용이 불확실한 경우도 자주 발견되는데, 때로는 현재형으로 쓰다가 갑자기 과거형으로 표현이 바뀌는 경우, 또는 그 반대의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경우 번역자의 해석지평이 확대되지만, 때로는 번역을 시작할 때와는 아주 다른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딪히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직관에 의존하여 번역을 하기도 하지만, 경험적으로 이런 직관은 자주 잘못된 것으로 드러난다.

예를 들자면 김연수의 두 단편, 「다시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과 「이렇게 한낮 속에 서 있다」를 보면, 이야기의 중반까지 화자가 남자인지 여자인지가 불분명하다. 이런 특징을 독일어로 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산」 이야기에서 번역자는 화자인 ‘나’가 ‘학자’에 대해 말할 때, 어쩔 수 없이 남성인지, 아니면 여성인지를 밝혀야 한다. 반면 원문을 읽는 한국어 독자들은 이 시점까지도 화자인 ‘나’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한국어 독자들에게 화자가 여성이라는 것이 명확해지는 시점은 2장 마지막쯤일 것으로 판단되는데, 여기에서 화자는 대화 중에 여성이 사용하는 전형적인 표현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의 마지막 두 작품은 문체적으로 다른 작품과는 크게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작가는 의식적으로 고풍스러운 문체를 사용하는데, 문장을 번역하면서 나는 길고 복잡한 문장을 ‘편안하게 읽힐 수 있는’ 번역으로 바꾸기 위해 고심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차피 이해하기 쉽지 않은 문장을 더 어렵게 만들어 독일 독자들에게 읽는 괴로움을 주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원문의 특징적인 긴 문장들-가끔은 반 페이지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었는데-과 고풍스러운 표현들을 언어적이고 문화적인 차이가 허락하는 한에서 독일어에서도 재현될 수 있도록 노력하였다.

김연수의 작품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락거리가 아니다. 그의 작품은 독자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번역은 이 점에도 주의를 기울였다. 독일 독자들도 이 작품을 심심풀이로 읽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김연수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그의 작품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발견할 수 있다면, 이 첫 번째 번역이 그의 다른 작품들로의 번역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번역자인 나의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