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 대산문화
 
죽은 시인들 - 박찬 시인을 추모하며
 

 
며칠째 날이 흐리다. 올해 겨울도 햇볕이 밝은 날이 별로 없다. 자연스럽게 낮보다는 밤 쪽으로 마음이 간다. 삶보다는 죽음 쪽으로 마음이 간다.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은 죽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시인도 사람이니만큼 결국은 죽을 수밖에 없다. 죽음의 정서들, 곧 고독이 자연스럽게 가슴을 메우기 시작한다.

내가 맨 처음 만났던 시인은 누구인가. 아마도 대학 때의 은사인 다형 김현승 선생인 듯싶다. 다형 선생이 세상을 떠난 것은 1975년 4월의 일, 생각해보니 다형 선생의 장례 때 처음으로 많은 시인들을 한꺼번에 만난 듯싶다.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설레던 시인들! 그들 중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도 많다. 이동주, 박봉우, 윤삼하, 조태일……

이렇게 세상을 떠난 시인 중에는 박찬도 있다. 지난 1월 18일의 일이다. 서울 이화동의 한 카페에서 그의 1주기를 기념하는 모임이 열렸다. 유고시집 『외로운 식량』(문학동네)의 출간을 겸한 자리이기도 했다.

행사가 시작되는 시간은 저녁 7시였다. 시간에 맞춰 시내버스를 타고 내리는 마음이 착잡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수많은 시인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가 시인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은 1983년……, 그동안 나와 가까이 지낸, 그래서 부의를 표한 시인만 해도 손가락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채광석, 김도연, 정영상, 윤중호, 박영근, 정규화……

이들 가운데 나를 아프게 하지 않은 죽음이 있을까. 박찬 시인의 죽음도 당연히 나를 많이 아프게 한다. 내가 박찬 시인을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후반의 일이다. 그가 〈일간스포츠>에 근무하고 있을 때였다. 1948년생인 그는 나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 워낙 허물이 없는 그를 나는 편하게 찬이 형이라고 불렀다.

이 무렵 박찬 시인은 예의 신문에서 매주 시 한 편씩을 연재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진작부터 잘 알고 있었던 만큼 내게도 그는 시 한 편을 청탁해왔다. 시간에 맞춰 「공중변소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시를 보냈다.

얼마 뒤였다. 시의 내용과 관련해 박찬 형이 조금은 난처한 듯한 전화를 해왔다. 데스크에서 문제를 제기한다며, 시를 바꿔 보내줄 수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굳이 그렇게까지 하며 시를 실을 필요가 있겠느냐며 덤덤히 전화를 끊었다. 자존심이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시절의 일이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우편물 중에 <일간스포츠>가 섞여 있어 펼쳐 보니 예의 시가 섬세하게 편집되어 실려 있었다. 이런 일이 있었지만 본래의 성격대로 나는 박찬 시인과 덤덤하게 잘 지냈다.

세월이 많이 흐른 2000년대 초의 어느 날이었다. 그해도 겨울이었는데,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박찬 시인이었다. 인사동에서 한 번 만나자는 것이었다. 마침 서울에 있던 참이라 시간에 맞춰 인사동으로 나갔다. 나를 만나자마자 그가 대뜸 말했다.

“나 신문사 그만 둔 것 알지?”

“아, 그래요? 지금은 뭐하며 지내요?”

“간행물위원회 같은 데서 알바해! 으음, 대학의 문창과에서 강의를 하고 싶은데, 좀 알아 봐!”

“……글쎄요. 쉽지는 않겠지만 혹시라도 기회가 생기면 연락을 드릴게요.”

말은 이렇게 했지만 우리 대학의 문창과에 강의 자리가 있을 리는 만무했다. 겸임교수 한 분이 이미 여분의 시간을 다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가 나를 만나자고 한 용건의 전부였다. 따로 특별한 얘기는 없었다.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이것저것 문단 뒷얘기를 하다가 각자의 체질대로 밋밋하게 우리는 헤어졌다.

무슨 인연 같은 것이 있었을까. 그로부터 한 반 년쯤 지난 뒤였다. 급하게 시창작 강의를 맡을 강사가 필요하게 되었다. 박찬 시인에게 전화를 했더니 기꺼이 광주에까지 내려와 강의를 맡아주겠다는 것이었다.

두 과목을 강의하게 된 박찬 시인은 어쩔 수 없이 광주에서 하루를 자야 했다. 이렇게 해서 일주일에 하루 그는 광주의 내 작은 아파트에서 나와 함께 뒹굴며 지내게 되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는 온갖 얘기를 다 나누었다. 때로는 다음과 같은 유치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형은 외롭지 않소?”

“나는 잘 모르겠는데……. 젊은 날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도 외롭지 않느냐고 묻데?”

“외롭지 않으니 형은 참 좋겠소, 외로움이 뭔지 모르니. 나는 외로워서 늘 미칠 것 같은데…….”

추모행사 중에 시집의 제목을 살펴보니 『외로운 식량』이었다. 서둘러 제목으로 삼은 작품을 찾아보았다. 우선은 “때로는 술로 살아가지요 / 외로움을 먹고 살기도 하지요 // 외로움은 그의 식량, / 사실은 외로움만 먹고 살아가지요”와 같은 구절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는 그도 지독히 외로웠다는 증표이다. 이 시에 드러나 있는 ‘그'의 경우 말할 것도 없이 저 자신을 객관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고독의 다른 이름이다. 고독은 분리의 정서이다. 인간은 본래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신으로부터 분리된 존재이다. 이처럼 분리된 존재라는 점에서 인간은 저 자신의 동일성을 갖는다. 인간은 분리감, 나아가 고독감을 지닐 때 동물이 아닌 인간이 된다.

분리되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도 되지만 대상을 객관화할 수 있다는 것도 된다. 객관화할 수 있을 때 인간은 비로소 지각할 수 있게 된다. 대상을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 이성이고, 이성의 도구가 언어이다. 따라서 언어를 다루는 전문가인 지식인은 기본적으로 고독할 수밖에 없다.

이성의 언어가 아니라 감성의 언어를 다루는 시인도 고독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시인이 다루는 감성의 언어에는 이성의 언어가 미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상과 분리되어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분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시인의 자아가 늘 고통으로 범람해 있는 것도 실제로는 이에서 연유한다. 시인치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를 모르고 원초적인 고통으로 아우성을 치는 시인이 너무 많아 세상이 시끄럽기는 하지만 말이다.

 
 
 
개인정보취급방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