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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문과 비문의 차이

문장의 본령이 낱말을 골라 써서 정확한 의미를 전달하는데 있음은 주지하는 바와 같다. 실은 당언이면서 췌언인데, 막상 뜻을 분명하게 옮기는 말들을 연방 택일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단어마다의 뜻풀이에 통달한 후 비슷한 말들 사이의 뉘앙스까지 감별해내는 능력이 만만하게 습득될 리도 만무하고, 그것을 언제라도 분별해서 쓰는 버릇을 길들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문인들도 흔히 아무렇게나 써버릇하는 “오문과 비문이 너무 많아서 술술 읽히지 않는데” 같은 말을 들으면 대뜸 ‘오문’과 ‘비문’의 차이가 과연 무엇인지 헷갈린다. 의심쩍으면 사전에 물어볼 수밖에 없다. 내가 사용하는 『국어대사전』에는 ‘오문’이 아직 등재되어 있지도 않고(표제어로 올리는데도 무슨 원칙이 있는지, 수습력의 일시적 등한시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비문’은 “문법적으로 맞지 않은 문장. 어법이나 내용의 논리가 맞지 않은 문장”으로 풀이 되어 있다. 긴가민가할 때는 사전을 찾아보라는 말이 무색하게 여전히 아리송하기는 마찬가지다(위의 뜻풀이 같은 중언부언에서도 드러나 있듯이 옳은 ‘우리말 사전’도 없는 나라에서 올바른 글을 써보려는 노력은 만용이거나 허영일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나마 ‘비문’의 불충실한 뜻풀이만으로도 그것과 근친관계인 ‘오문’이 어떤 행색인가는 저절로 짐작이 간다.

차후에라도 누가 지금 것보다 한결 나은 국어사전을 편찬할 때, 작은 보탬이 될지도 모르므로 차제에 ‘오문/비문’의 차이에 대한 내 나름의 분별을 내놓아보면 이렇다.

누구나 알다시피 문장은 어법에 맞게 짜고, 의미를 명백하게 드러냄으로써 완성된다. 어법 고수와 의미 양각은 필요충분조건이다. 그렇긴 해도 앞엣것이 맞아도 뒤엣것이 종잡을 수 없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나 뒤엣것이 멀쩡하면 앞엣것도 그냥저냥 굴러가는 게 우리말의 좀 맺힌 데가 없는 성깔이기도 하다(물론 그 대종이랄 수 있는 어순이 무제한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고, 요즘의 언어 습벽중 하나인 명사의 겹나열 같은, 예컨대 ‘임실 치즈 피자’ 따위를 함부로 섞바꿔 쓰면 큰 탈이 난다). 따라서 ‘오문’은 어법이나 의미 중 하나가 소홀해서 엉터리든가, 둘 다 맞지 않는 문장이다. 그러므로 ‘오문’은 말이 통하지 않던가, 말이 말 같지 않으므로 외계의 언어다. 이 땅에서 있을 수 없는 말이므로 있어서는 안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도 미치광이 같은 지적 허영꾼이나 무잡한 글로 매문에 이력이 난 그 좀 이상한 근면가들이 ‘전적으로 틀린 문장’을 부지불식간에(과연 그럴까?) 남용, 오용한다. 따라서 그 해악은 이루 다 말로 할 수도 없다. 그래서 굳이 ‘오문’이라는 조어(造語)까지 만들어서 크게 강조있는 셈이다(머리가 나쁘거나 늑장부림이 심한 양반들이 장광설을 풀어내는 소위 ‘악문’은 ‘오문’과는 여러 점에서 또 그 격조에서도 다르다).

‘비문’은 그렇지 않다. 그것은 선뜻 말뜻이 통한다는 점에서 의미 전달력도 출중하고, 어법도 그럭저럭 온전하다. 필요충분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따지고 보면 ‘비문’은 다른 목적으로서나 (일부러 싱거운 소리를 하기로 작정한 경우를 한 예로 들 수 있다) 겨우 써먹을 수 있는 허튼소리거나 애매모하거나 부실하게 짝이 없는 말이다. 예를 들자면 끝이 없을 테지만, 특정 지방에서 주로 쓰는 ‘거시기하다’와 ‘그쓱하다’ 같은 종결어미도 사실상은 ‘비문’의 반열에 들 수 있다. 요컨대 ‘비문’은 비논리적, 자가당착적이라서 그 의미의 불완전성, 불가해성이 두드러진다. 그러니까 틀린 문장은 아닐지 몰라도 ‘말이 안 됨으로써’ 옳은 문장으로서는 자격 미달인 셈이다.

이제서야 적절히 쓸 수 있는 실례가 없지도 않다. 거두절미하고 그 요지만 따오면 ‘단임제로는 쪽 팔린다’는 말도 실은 ‘비문’이다. ‘쪽 팔린다’는 좀 상스러운 변말의 사용(私用)이야 본인의 평소 소양이라기보다도 소탈한 성격에서, 또 호소력 좋은 직설을 장기로 삼는 정치가의 본색에서 우러나온 말버릇이라 양해한다 하더라도 ‘남세스럽다’ 또는 ‘체면이 깎이다’로 갈음할 수 있는 그 자동사는 전적으로 얼토당토않은 요령부득의 낱말이다. 터무니없기도 하려니와 생뚱같아서 도대체 제 정신으로 하는 소리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나 용약 이해의 지평을 열어가면 대충 무슨 뜻인지 감은 잡혀오는데도 막상 그 의미를 거머쥐려면 맹탕의 허섭쓰레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은 이럭저럭 구색을 갖춘 하나의 문장으로 성립되고, 발설자의 위신에 걸맞게 이 땅에서 얼마든지 버젓이 존재할 수 있다(누구의 말대로 현실적인 것은 합리적인 것이기도 하다). 곧 ‘비문’은 누구라도 만부득이 쓸 수도 있고, 어느 경우에서나 여러 가지 구실과(‘나라고 농담도 못하나, 웃자고 해본 소리야’ ― 그렇다면 생업을 바꿔야 옳다) 소용으로(‘모든 제도의 기득권에는 과감히 도전, 개선의지를 피로하는 것이 정치가의 임무다’ ― 궤변은 헛똑똑이나 천치들이 소일삼아 내놓는 말장난이다) 뻔뻔스럽게 쓰여지고 있음으로써 문단/문맥짜기에서의 혁혁한 역할을 다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나 현대소설쓰기에서는 아이러니의 조작을 위해서도 불가피하게 ‘비문’의 쓰임새를 조장, 확장하기도 하는데, 이런 추세를 언어의 본질적 속성인 그 세속성, 유동성으로 호도, 옹호할 여지도 다분하다. 다만 그것의 남발은 사람이나 글의 품격을 단숨에 떨어뜨리고 만다는 잔말은 덧붙여야 할 테고, 오늘날처럼 사람의 위엄과 글의 가치가 같잖은 시속에서는 어떤 고상한 책잡음도 헛소리로밖에 안들릴 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