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단의 가장 유니크한 존재를 꼽으라면, 나는 두 말 없이 하동(河童) 천승세(千勝世) 선생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그는 한국 최초의 현대 여성작가로 일컬어지는 소영(素影) 박화성(朴花城) 여사의 핏줄을 이어받은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단 8시간 만에 탈고를 한 최초의 소설 「점례와 소」가 1958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한국문단에 돌풍을 일으키며 등단했다.

이후 그는 핍박받는 빈자(貧者)들의 삶을 다룬 일련의 소설들―즉, 「황구의 비명」 「혜자의 눈꽃」 「포대령」 「신궁」 「낙월도」 등으로 민족문학 진영을 대표하는 작가로 자리매김 되었다. 또한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희곡 「물꼬」가 입선되고, 이어 희곡 「만선」이 국립극장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김우진 ― 차범석 ― 천승세로 이어지는 목포 극작가의 계보를 이어받아 당대를 대표하는 희곡작가가 되기도 했다. 어디 그뿐인가. 1989년에는 쉰다섯의 나이에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신인작품으로 시를 투고, 주변을 다시 한 번 놀라게 하였고, 『몸굿』 등의 시집을 펴내기도 했다.

말하자면 그는 우리 문단에서 매우 드물게 3개의 문학 장르를 장악한 전천후적 멀티 작가다. 오직 그만이 쓸 수 있는 독특하고도 개성적인 문체로 한국문단에 확고부동한 위치를 점한 작가로 평가된다. 아울러 그는 제2회 <만해문학상> 수상자이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상임고문, <한국작가회의>의 전신인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최초의 상임고문을 역임할 정도로 그의 문학적 영향력은 막강했다.
 

▲  천승세  © 운영자

내가 작가 천승세 선생을 처음 만난 때는 아마 1985년 무렵이었던 것 같다. 그즈음 나는 웅진출판사 편집장으로 있다가 소설을 쓰기 위해 직장을 때려치웠고, 1984년 『창비 신작소설집』으로 등단하여 작가의 길에 이제 막 들어설 시기였다. 이즈음 어느 날 나는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총무간사로 일하고 있는 채광석 평론가 등과 만나 5공의 폭압적 정치상황을 타파하고자 시국관을 나누면서 술잔을 나누고 있었는데, 채광석 형이 몇몇 젊은 작가들을 더 호출하더니, 이내 택시를 잡아타고 다짜고짜 천승세 선생의 집으로 놀러가자고 했다.

그 무렵 천승세 작가는 서울 화곡동 가로공원 인근의 어느 연립주택 2층에서 살고 있었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 채광석 형은 천승세 선생에 대한 일화 한 토막을 들려주었다. 작가 이문구 선생이 경기도 발안으로 이사 간 후 어느 날 집들이를 했는데, 작가들이 모처럼 한 자리에 모여 거나하게 술추렴을 했던가 보다. 그런데 이날 이문구 선생이 키우던 개 한 마리가 천승세 작가만 보면 무작정 짖어댄 탓에 그가 울컥 기분이 상하여 그 개의 코를 한입 물컹하게 깨문 탓에 그 개의 코가 짓이겨졌고, 거의 실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에피소드였다. 사람이 개를 물어뜯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바로 천승세라는 작가였다.

그날 천승세 작가를 대면해 보니 그 생김새부터가 동물적 본능과 체취가 물씬 풍길 정도로 왈패다웠다. 우리 시대 문학의 갈 길과 문인이란 대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자신의 지론을 펼 때는 문자 틀 속에 갇힌 책상물림의 그것이 아니었고, 광활한 벌판을 한없이 뛰어 다니는 야생마처럼 풋풋함을 느끼게 했다. 방 천정이 들썩거릴 정도로 사자후 같은 목청으로 유리창이 흔들거렸고, 사모님과 그 아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마치 조선 5백년 가부장의 진면목을 한 눈에 보여주는 듯했다.

특히 코밑 수염은 근접 못할 특유의 위엄으로 가득 찼고, 술김에 재미삼아 여기 보란 듯이 자랑하는 솥뚜껑처럼 튀어나온 삼각권과 그 오른 팔뚝 위에서 불룩 솟아오르던 알통은 나약한 문인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에게선 마치 야전을 진두지휘하는 사령관 같은 풍모가 있었는데, 젊은 날 그가 군인이 되고자 육사를 지망했었다는 사실이 짐짓 이해가 되었다.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시절 어느 해부터 구정(舊正) 초닷새 날이 되면 우리 또래의 젊은 문인들은 열일 젖혀두고 연례행사의 하나로 천승세 선생의 집으로 모두들 집결해야 했다. 지금은 환갑과 오십 줄에 들어섰지만 당시로서는 젊은 축에 속했던 수십 명의 문인들이 떼거리로 몰려가 한 해 동안 쌓인 빚을 갚으러 화곡동의 천승세 선생 자택으로 그리고 그가 거처를 김포로 옮긴 1987년 이후부터는 경기도 김포군 월곶면 갈산리로 모여들었다. 만약 이 생일날 얼굴을 들이밀지 못하면 한 해 동안 우리는 천선생의 고강도 지청구를 온몸으로 감수해야 했기에 만사를 제쳐두고 그날의 총동원령을 피할 수 없었다. 양성우, 이시영, 김남주, 송기원, 채광석, 윤정모, 이경자, 김양호 등 선배문인들과 강형철, 김사인, 김정환, 이은봉, 박몽구, 하종오 등 동년배 문인들 그리고 강태형, 현준만, 김남일, 이승철, 박정모, 김명인, 박선욱 등 후배문인들이 그때의 단골 멤버였다.
 

▲  선생의 작업실에서 강형철 시인과 함께   ©운영자

 

구정 초닷새 날인 천승세 선생의 생신은 그야말로 하나의 질펀한 잔치였고, 온종일 방안이 들썩거릴 정도로 왁자지껄한 축제였다. 사모님이 그토록 맛깔스럽게 내어오던 각종 일품요리에 우리들은 혀를 내둘렀고, 며칠 전부터 정성스레 준비한 그 생일상을 마주하면 우리 모두가 잔치의 주인공이 된듯 더없이 즐거웠고, 흥겨웠다. 우리들은 밤새도록 퍼질러 앉아 문학의 혼불로 밤을 밝히다가 이날 천승세 선생이 종종 특정 문인들을 지칭하며 퍼붓는 질펀한 욕지거리는 아름다운 수사처럼 찬란했다.

말하자면 천승세 선생의 생신날은 한해를 새로 시작하는 젊은 문인들에게 단합대회 날이기도 했다. 5공과 6공의 군사정권을 때려눕히고, 올곧은 문학으로 국민들에게 봉사해야 한다는 문학적 사명감과 스스로의 자기다짐이 김포 갈산리 서재를 쩌렁쩌렁 흔들어 놓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사모님이 줄창 아침이 될 때까지 끝없이 내어오는 갖가지 요리로 포식을 하고 나면 우리는 이제 선생으로부터 용돈을 타낼 시간이었다. 당시 젊은 문인들은 선생에게서 대부분 포커 게임을 처음 배웠다. 천 선생은 고스톱, 포커, 내기바둑 등의 잡기 분야에서도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었지만 그날은 가난한 후배문인들을 위해 일부러 몇 십만 원씩 돈을 퍼주는 호구로 작정하신 때문에 우리는 그날 노름을 빙자하여 용돈을 타냈다.

이 생일날 천승세 선생의 풍모는 강형철 시인이 언젠가 표현했듯 ‘웅혼한 수컷의 기상’을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다. 또한 강태형 시인이 일갈했듯 인간 천승세에게는 ‘우리시대 마지막 포유동물’이라는 수사가 아깝지 않았다. 또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문학적 위풍과 칼날 같은 정신이 빛을 잃지 않고 살아있되, 압제와도 같은 그 부성적(父性的) 언덕의 완강함이 때론 후배들을 기죽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들은 위악과 거짓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순정성의 극치를 인간 천승세, 작가 천승세를 통해 발견하곤 했다. 천승세 선생의 아호인 ‘하동(河童)’이 뜻하는 바처럼 여름날 깨 할딱 벗고 천진스레 물장구치는 어린아이의 몸짓 같은 예술적 동심(童心)은 이제 우리 문단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원시적 육림 속에 서성이는 조선 호랑이의 포효, 비극적 침몰의 운명을 안고 폭풍우 속으로 상 돛을 펴고 떠나는 어느 가멸찬 어부의 초상,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 오리온의 운명을 타고 난 사람, 동물적 본능으로 무장된 육체언어의 혼불로 황톳벽 속에 기어이 박히는 단단한 대못 같은 사나이, 그리하여 종가집 장손의 신실한 자지처럼 벽 속 깊숙이 불을 얹고 박히는 그 존재의 표상…… 아, 그를 생각하면 우리는 오금이 저리곤 했다.

하지만 허나 환갑 진갑 다 지나고, 어언 일흔 중반에 들어선 늙마의 혼돈이 작가 천승세에게만 저리도 깊은 까닭은 무엇인가. 벌써 5년째 김포를 떠나 제주를 거쳐, 이제 그의 고향인 목포 용해동의 어느 허름한 아파트 한 자락에서 홀로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시절 우리가 작가 천승세 선생에게 빚졌던 것을 한번은 갚아야 할 텐데 라고 되새겨본다. 그가 가슴 속 밑바닥에 고인 천불을 훨훨 털고서 이 세상 한 가운데로 다시금 박혀 올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