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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침묵의 겨울을 깨는 봄의 기운

추운 날씨 탓만은 아닐 것이다. 이 글의 대상 시기인 2007년 12월에서 2008년 2월로 넘어오는 사이, 문학 동네는 싸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다. 별다른 모임도 없고, 일을 도모하는 쪽도 없다. 그 많던 기자간담회도 딱 끊겼다. 소설가 김훈씨는 “여야 사이에 이어지던, 유례 없는 말의 폭력에 휘둘려 거의 녹초가 됐을 무렵에야 선거가 끝났다”고 했는데 그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우리의 머릿속을 실타래처럼 꼬이게 만들었다.
우선 경부대운하 건설이 그렇다. 이제 우려에서 현실로 변한 운하 건설은 많은 작가들의 신경을 긁어놓고 있다.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인 도종환 시인은 “모두 모이면 운하 이야기뿐이다. 작가란 사람들이 워낙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눈여겨보고 감동받는 사람들이라서 그럴 것이다”라고 말한다. 또 최승호 시인은 “운하를 만들기 위해 강의 모습을 죄다 바꾼다고 생각하면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그걸 막기 위해 무슨 글이라도 쓰고 싶다”고 토로한다. ‘리얼리스트 100’이란 작가모임은 운하예정 지역을 답사한 뒤 강과 그 주변, 삶의 모습에 대한 르포를 연재하는 계획을 지난 1월 발표했다.
다음으로 영어몰입교육을 들 수 있겠다. 오렌지를 ‘아린지’라고 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즉흥적으로 국민들 앞에 발표되고, 잘 살려면 모든 국민이 영어를 잘 해야 한다고 ‘아린지 철학’을 감싸주는 분위기에서 무슨 말로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국경이 사라졌다는 것은 대개 인정하는 사실이다. 민족문학작가회의도 지난 일년간 논란을 벌인 끝에 ‘민족’이란 말을 단체명에서 떼버렸다. 그러나 국경과 민족에 대한 태도의 유연성을 유지하는 것과 영어를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평생 수많은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살았던 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는 “작가의 유일한 고향은 모국어”라고 말한다. 그런 고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했으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아무리 말해도 그 미세한 차이를 알아듣지 못할 상황이니 작가들이 우울한 침묵에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문단의 분위기와 정치를 직결한 건 필자의 너무 주관적인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문학시장의 비수기였다. 작가 자신이 고유한 세계를 지닌 하나의 혹성이니 세간의 관심사와 다른, 각자 구상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골치 아픈 국내 문제와 거리를 두고 해외에 체류 중인 작가도 많다고 한다. 그래도 만유인력이란 게 있지 않은가. 문화가 그 자체의 존재가치를 잃고 새로운 경제발전의 원동력으로 거론되는 맥락에서 시류와 상관없는, 유쾌하고 상상력 넘치는 작업을 기대하기란 좀 더 어려워진 게 아닌가 싶다.
‘이 계절의 문학’ 가운데 우선 눈에 띄는 부분은 작고한 작가들, 원로작가들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가회의와 대산문화재단, 그 외의 관련학계와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는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행사가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할 전망이다. 소설가 김유정 김정한 이무영, 시인 유치환 임화 김기림, 평론가 최재서 백철 등이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 김유정문학촌(촌장 전상국)에서는 일년 내내 이어지는 기념행사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난 2월 중순 막을 올렸고, 문학평론가 김윤식씨는 10년간 공들여온 책 『백철 연구』(소명출판)를 펴냈다.
올해는 유독 기념할 것이 많은 해이다. 김수영 시인, 조지훈 시인의 40주기이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 씨의 10주기이다. 고은 시인, 황동규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았으며 소설가 한승원 씨, 김지하 시인, 신대철 시인, 강은교 시인은 등단 40주년이다. 아라비아숫자 ‘8’에 무슨 마법이 있는지 올해는 근대시 100주년, 근대연극 100주년, 정부수립 60주년, 68혁명 40주년이기도 하다. 그만큼 돌아보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
연초에 나온 눈에 띄는 책들도 대개 작고작가, 원로작가들의 것이다. 오규원 1주기 유고시집 『두두』(문학과지성사)가 ‘날이미지시’라는 어려운 개념에도 불구, 시 부문 베스트셀러 순위에 올라있다. 박찬의 1주기에 나온 유고시집 『외로운 식량』(문학동네)도 단정한 서정성이 돋보인다. 지난해 등단 50주년을 맞았던 소설가 한말숙씨는 조금 늦게 자신이 51년간 창작해온 작품 가운데 스스로 뽑은 대표작 11편을 묶은 소설선집 『덜레스공항을 떠나며』(창비)를 발표했다. 황석영씨는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자신의 10대 후반, 20대 초반을 돌아본 성장소설 『개밥바라기별』 연재를 시작했다. 국내문학 부문의 베스트셀러 역시 공지영의 『즐거운 우리집』(푸른숲)을 필두로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문학과지성사), 황석영의 『바리데기』(창비), 김훈의 『남한산성』(학고재)이 여전히 끌어가고 있다.
젊은 작가들 가운데는 천운영이 단편집 『그녀의 눈물 사용법』(창비)을 발표했고, 구경미의 『미안해, 벤자민』(문학동네), 김사과의 장편 『미나』(창비), 이명랑의 장편 『날라리 On the pink』(세계사), 김종광의 장편 『처음연애』(사계절) 등이 나왔다. 이들을 필두로 올해는 젊은 작가들의 장편이 많아질 전망이다. 아직 연재지면을 얻지 못한 젊은 작가들이 전작으로 열심히 장편소설을 쓴다는 소문이 들린다.
신인작가로는 2월말 나란히 수상작을 책으로 낸 소설가 서유미 씨, 백영옥 씨가 눈에 띈다. 서유미 씨는 백화점의 일상을 소재로 한 장편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2007년 문학수첩문학상을 받은데 이어 『누가 나를 남쪽나라로 데려갈까』로 제1회 창비 장편소설상을 받았다. 또 2006년 문학동네 신인상으로 등단한 소설가 백영옥씨는 올초 『스타일』(문이당)이란 장편소설로 제4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이들처럼 화려한 등단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작가들마저 포함해 신인 작가들의 연착륙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올 초 최일남 이사장-도종환 사무총장 체제로 바뀐 작가회의에서는 회원들 간의 화합과 함께 젊은 작가들의 안착을 위한 교육지원을 주요 실천과제로 삼았다. 연간 2천만원 정도의 장학금을 주면서 2년간 대학원 수준의 각종 전문지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최근 나온 신작시집 『사람이 그리워서』(시학사)에서 할머니 시인 김초혜씨는 손자인 재면을 생각하면서 이런 시를 지었다. ‘봄 다음에도 / 봄만 오게 하는 아이야 / 잎이 피고 자라고 / 꽃이 피어 만개해 // 앞으로 오는 / 100년 내내 봄이거라’(시 「손자를 위하여」 일부). 봄이다. 그 봄 다음에도 사람이 만들어내는 봄을 기다려본다.
올해는 유독 기념할 것이 많은 해이다. 김수영 시인, 조지훈 시인의 40주기이고 『혼불』의 작가 최명희 씨의 10주기이다. 고은 시인, 황동규 시인은 등단 50주년을 맞았으며 소설가 한승원 씨, 김지하 시인, 신대철 시인, 강은교 시인은 등단 40주년이다. 아라비아숫자 ‘8’에 무슨 마법이 있는지 올해는 근대시 100주년, 근대연극 100주년, 정부수립 60주년, 68혁명 40주년이기도 하다. 그만큼 돌아보는 일들이 주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