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

웹진 대산문화

고향과 타향

▲ © 운영자

나는 고향이라는 어휘가 물고 늘어지는 정한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진화할 수 없는 비논리성이 그 정한의 바탕을 이루는 듯싶다. 나는 고향도 없고 타향도 없는 세상이 좋다. 고향이라든지 타향이라든지 하는 그런 어휘가 아예 없는 세상에서 나는 살고 싶다.
나의 이른바 고향은 서울 사대문 안이다. 사대문 안에서도 청계천을 기준으로 남촌과 북촌을 갈랐는데, 내 본적지는 대궐(경복궁) 근처인 북촌이었다. 북촌에도 나처럼 가난한 사람들은 넘쳐났지만 북촌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세계와 문명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에 넘쳐있었고 변두리에 사는 사람들을 동서남북 다 싸잡아서 ‘문 밖 것들’이라고 통칭했다.
내 어머니는 서울 토박이 여자였다. 어머니는 가난했다. 사실 나는 어머니가 그 결핍과 적막을 어찌 다 감당해내면서 자식들을 기른 것인지를 알 수가 없다. 어머니는 가난했지만 경우 바르고 깔끔한 여자였다. 어머니는 자, 됫박, 저울 같은 도량형기를 존중하고 신성시했다. 쌀 됫박 밑바닥에 양초를 발라서 됫박을 속이는 쌀장사와 저울 눈금을 속이는 푸줏간을 어머니는 증오했고, 동네여자들과 합세해서 불매 운동을 벌였다. 두부 한 모의 규격이 일정치 않아서, 콩 값이 오르면 두부모가 작아졌는데, 어머니는 가게에서 두부모의 가로 세로 높이를 따졌다. 내가 심부름으로 석유를 사러갈 때도 어머니는 주전자나 양철통을 들고 가지 못하게 했고 반드시 한 되들이 정종 됫병을 들려 보냈다. 정종 병은 투명해서 속이 들여다보였고 또 들이가 정해진 병이어서 석유가게에서 양을 속이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몇 살 때였던가, 아마도 국민학교 상급반 무렵이었을 것이다. 제헌절 날 어머니는 새 옷을 주셨다. 어머니가 주신 새 옷은 새로 사온 옷이 아니라 입던 옷을 빨고 깁고 다려서 주신 옷이었다. 운동화는 새로 사온 것이었다. 법을 만든 날이다, 새 옷을 입어라… 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으로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나는 그때 어려서 잘 몰랐겠지만, 그 설화적인 가난의 멍에를 지고 자유당의 무법천지를 살아가던 어머니에게 법을 만든 날은 자식에게 새 옷을 입혀주고 싶을 만큼 서러운 날이었던 모양이다. 어머니에게 헌법은 과연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눈물겹다. 제헌절은 학교에 가지 않았으니까 나는 새 옷을 자랑할 수도 없었고, 동네에서 하루 종일 아이들하고 온갖 개구쟁이 망나니짓을 하면서 놀았다. 나는 엿이 너무도 먹고 싶어서 신고 있던 운동화를 엿과 바꾸어 먹었고 어두워져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어머니가 주신 새 옷은 흙투성이 헌 옷이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거칠고 사납고 과장된 말을 무척 싫어하셨다. 남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 아름답고 순한 서울말을 어머니는 좋아하셨다. 내가 문밖 아이들과 놀다 돌아오면 어머니는 너, 걔네들 말버릇 따라하지마, 왜가리 짖어대는 것처럼 말하지마, 반듯하고 조용히 말해라, 조용히 말해야 남이 듣는다… 라고 타이르셨다. 어머니는 종결어미가 불분명한 말을 싫어하셨고 늘 대하는 이웃집 아낙네들에게도 말꼬리가 분명한 존댓말을 쓰셨다. 어머니는 이제 너무 늙고 또 아파서, 당신의 고운 말씨를 모두 잃어버리셨고 한 되와 두 되를 구분하지 못하시지만, 내 가난한 어머니의 고향은 향토가 아니라 척도와 언어였던 모양이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려고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 고향 서울 사대문 안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누구의 고향도 아니었고 며칠 전 설 연휴기간 중에 남대문은 불타서 없어졌다.
내 소년시절에는 한강에 다리가 2개밖에 없었다. 하나는 기차가 다니는 한강철교였고 또 하나는 자동차, 보행자, 우마차, 자전거가 다니는 한강인도교였다. 한강인도교를 4차선으로 넓힐 때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을 데리고 나와서 테이프를 끊고 전국이 축제분위기로 들떠서 꽹과리를 때리고 상모를 돌리면서 난리치던 기억이 난다.
지금 한강의 다리는 20개가 넘는다. 명절이 되면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은 20개의 다리로 한강을 건너서, 가고 또 가고 기어이 간다. 기어이 갔다가 기어이 돌아온다.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다들 서울을 빠져나가면, 내 고향 사대문 안은 문득 넓고 적막하다. 명절이 되어도 갈 곳이 없는 나는 텅 빈 내 고향의 거리를 혼자서 어슬렁거린다. 거기는 과연 누구의 고향도 아니었고, 고향으로 갔던 사람들이 다들 돌아와도 그 또한 아무의 고향도 아니었다. 거기는 만인의 타향이었다. 고향으로 내려갔던 사람들이 다시 서울로 돌아오던 날, 내 고향 서울의 남대문은 불타서 없어졌다. 아침에 택시를 타고 가보니 남대문은 타다 만 장작더미였다.
나는 10년이 넘게 일산에 살고 있다. 사대문 안에서 셋방, 시민아파트를 전전하다가 불광동, 연신내를 거쳐서 일산까지 내려왔다.
일산에 와보니, 이 또한 아무의 고향도 아니다. 여기는 신도시다. 수많은 교회와 러브호텔, 섹시바, 나이트클럽, 카페, 지압방, 발바닥전문 마사지방, 노래방, 침대 있는 노래방, 찜질방, 사우나, 성인용품가게, 남성전용 휴게실, 이발소, 헤어살롱, 손톱 다듬어주는 가게(네일살롱), 발톱 다듬어주는 가게(페디살롱), 가슴 코 눈꺼풀 종아리 볼 전문 성형외과, 개털을 염색하고 파마해주는 동물미용실, 개한테 침 뜸 부황 진맥 물리치료 보약을 해주는 동물한방병원, 일본 이탈리아 중국 베트남 스페인 프랑스 터키 음식점, 여대생이 해준다는 안마시술소…들이 한 동네에 들어서 있다. 어느 날 저녁, 길거리 카페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핸드마이크를 어깨에 맨 기독교인이 초저녁 러브호텔 앞에 와서 마이크로 외쳤다.
- 회개하라. 종말이 가까웠다.
나는 혼자서 웃었다. 나에게는 혼자서 웃어야할 일이 많다.
일산으로 이사 와서 나는 경기도 일산사람이 되려고 경기도 도서관에 가서 고양과 일산에 관한 역사책, 지리지, 사료집, 고고학적 발굴보고서, 민속자료연구서, 무속자료들을 읽었다. 책을 읽고 집으로 돌아온 날 저녁에 나는 또 그 러브호텔의 거리에 앉아서 술을 마시곤 했다.
일산은 넓은 들이다. 곡릉천, 창릉천 두 개울이 흘러서 한강 하구에 닿는데, 신석기 유물들은 대부분 이 두 하천 유역에서 출토되었다니, 이 개울이 사람들의 수 만년 터전임을 알 수 있다. 밤이면 교회의 네온사인 십자가들과 러브호텔의 전광판이 뒤섞여 돌아가며 불야성을 이루는 마을의 이름들이 삼국사기 지리지에 그대로 나온다.
일산은 한강 하구의 충적평야다. 신시가지 지역에서는 정발산이 가장 높아서 해발 83미터이고 낮은 언덕들이 흘러내려서 한강 물가에 닿아 소멸한다. 땅이 평평하고 넓었으나 한강 하구가 자주 범람해서 사람들은 땅에 뿌리박을 수 없었다. 1925년에 을축년 대홍수가 있었고 1930년에 한강 하구에 둑이 건설되었고 1970년대에서 1990년대까지 배수 시설과 경지 정리가 이루어졌다. 일산 신시가지의 땅은 한강 둑과 배수 시설에 의해 비로소 농경지로 편입될 수 있었다.
1990년에 시작된 일산 신도시 개발사업은 일산의 역사를 천지개벽하듯 바꾸었다. 일산은 황무지에서 농경지로, 농경지에서 신시가지로 바뀌었는데 신석기 이후의 이 격변의 과정이 불과 60년 안에 이루어졌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도시와 풍경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이다.
한국선사문화연구소와 단국대학교 민족학연구소는 일산 새도시 개발지역을 학술조사하고 보고서 두 권을 발간(1992년)했는데 거기에 일산의 개벽을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자연의 구체적인 부면들에 대한 개별적인 적응과 이용으로 이루어지던 생활 및 주거 형태에서, 일정한 지역의 전 범위에 걸쳐 단지 평면적인 아파트 건물군의 입지군으로서만 자연이 그 유용성을 인정받는 새로운 생활 및 주거 형태로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든 것은 화폐로 계산이 가능한 상품으로 변화될 것이 강요되었다. 농민들이 일구어온 생산수단과 생활수단 및 정신적인 것까지를 포함한 존재의 모든 측면, 예컨대 일생 동안 살아오면서 겪은 추억까지도. 이것들이 곳곳에 묻혀있고 스며있던 마을의 뒷동산, 논둑길 등과 함께 ‘보상가격’이라는 이름의 교환가치가 매겨졌다…….
- 「근세의 일산」, 류기선 글
신시가지 공사가 착공되자 ‘보상가격’으로 내쫓기는 원주민들은 격렬히 저항했다. 그들의 삶 전체가 가격으로 보상받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거니와 그 가격은 미래를 포함하지 않는 것이었다. 원주민들에게 새로 지을 아파트 입주권을 주기도 했으나 입주에 따른 현금을 부담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불도저와 포크레인을 향해서 원주민들은 돌멩이를 던지고 분뇨를 퍼부었다. 그때 나는 서울 불광동에 살고 있었는데 싸움의 현장을 가서 보았다. 달려드는 불도저를 향해 분뇨가 담긴 소주병을 던지면서 사람들은 울면서 노래했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 꽃 살구 꽃
아기 진달래
나는 일산으로 이사 와서 일산에 관한 책을 많이 읽었다. 나의 독서는 고향 없는 자의 자기 위안이거나 부재하는 것들을 더듬으려는 몽매였을 뿐, 책 속에 고향이 있을 리는 없었다. 그때, 울면서 ‘고향의 봄’을 노래하던 사람들은 지금은 어디론지 흩어져갔고 일산은 여전히 아무의 고향도 아닌 채, 밤마다 교회의 불빛, 카바레의 불빛, 러브호텔의 불빛이 뒤엉킨다. 밤에 정발산 꼭대기나 내 작업실이 들어있는 오피스텔 옥상에 올라가면 그 뒤엉켜서 들끓는 불빛을 볼 수 있다.
남대문에 불을 지른 범인은 70살의 노인인데, 일산 원주민이었다고 한다. 신문에 난 기사를 읽었다. 일산에 땅을 가지고 있었는데 신도시 개발할 때 보상금 1억 정도를 받고 토지를 강제수용 당했다고 한다. 아무도 그 노인의 원한을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고, 노인은 원한을 풀 길이 없어서 남대문에 불을 질렀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나는 서울 사대문 안 사람인데, 거기에서 뿌리 뽑혀 일산으로 왔고, 노인은 일산 사람인데 일산에서 뿌리 뽑혀 남대문에 불을 질렀다. 노인은 이제 교도소로 가서 아마도 거기에서 여생을 마칠 것이고 나는 무슨 뾰족한 수가 있기 전에야 도리 없이 일산에서 살아야할 것이다.
남대문은 내 고향 사대문 안의 오랜 상징이었다. 남대문은 고향의 상징일 뿐 아니라, 그 마을이 만인의 고향이 될 수 있는 보편적은 공간이라는 상징이기도 했다. 뿌리 뽑힌 일산의 노인이 불을 질러서 남대문은 이제 타다만 장작이 되었다. 관리들이 장작을 모아서 쓰레기장에 내다 버렸다고 한다. 설 연휴가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서울로 돌아와서 도심은 교통체증에 막혀 헐떡거리고 있다. 사람들이 명절이면 기어이 돌아가는 그 고향이 아직도 그들의 고향일 것인가. 당신들의 고향은 아늑하고 포근한 어머니의 품인가. 정말로 그러한가. 불타버린 남대문의 잿더미를 바라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고향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고향의 영원한 허상을 향해 기를 쓰고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아, 설에 고향에 다녀온 사람들아. 불타버린 내 고향의 남대문을 보아라. 그리고 내 고향 서울을 다시는 타향이라고 말하지 마라. 타향 위에 고향을 건설하지 못하는 한 당신들은 영원히 고아이며 실향민인 것이다. 내 고향 서울에 이제 남대문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