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탁받은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순천 사는 김기홍 시인의 부음을 받았다. 지난 7월 28일이 발인이었다. 노동자 시인으로 알려진 김기홍은 하는 일과 쓰는 시와는 달리 성품이 선한 친구였다. 같이 앉아 있으면 김기홍 시인에게서 대숲에 이는 맑고 푸른 바람소리가 났다.
대나무가 전쟁의 시대에는 무기가 되고, 평화의 시대에는 노래가 된다고 했던가. 그의 시는 질곡의 80년대를 견디며 지나온 무기였지만, 그의 몸은 노래였다. 모두에 김기홍 시인을 추억하는 것은, 김기홍과 나는 등단 동기였다. 1984년 10월에 발간된 무크 『실천문학』(통권5호)의 ‘새로운 시인’으로 같이 데뷔했다. 5명의 신인 동기 중 나는 김기홍과 자주 만났다. 그래봤자 몇 번이나 만났겠는가만, 오호 통재라! 문상도 하지 못한 채 등단 동기한 사람을 떠나보냈다.
우리가 시인의 이름표를 달았던 그때, 나는 당시 전국 6대 도시였던 마산의 경남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당시 창간된 붉은 표지의 『실천문학』은 젊은 세대에는 선망의 문학잡지였다.
시대를 대변하는 문학과 담론이 담겼다.

실천을 주장하는 창간호를 읽던 때, 등줄기를 훑고 가는 끓는 쇳물의 뜨거움이 있었다. 바야흐로 게릴라 같은 비정기 간행물인 무크(Mook)의 시대였고 『실천문학』은 단숨에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실천문학』은 이문구 선생이 발행인을, 송기원 선생이 주간을 맡고 계셨다. 당선 전보를 받고 당시 사무실이 있던 마포구 공덕동 굴다리 부근으로 찾아갔다. 사무실은 컴컴하고 남루했다. 공덕동 굴다리 어디에서 송기원 선생과 돼지국밥을 먹었다. 시인이 되어 내가 처음 얻어먹었던 것이‘돼지국밥’이었다. 송기원 선생은 당시 내가 참여했던 야학에 ‘관심’을 많이 보였다. 내 당선시가 연작시 「야학일기」 등 7편이었다.
그 당시 내가 견지하던 ‘시론’이라는 것은 어떤 주제를 담던 시의 그릇은 서정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시의 포즈를 잡던 서정의 옷을 벗지 않았다. 그것이 지금껏 고질이 된 셈이지만, 나는 그런 서정이 시를 숨 쉬게 한다고 믿는다.
그 무렵 국어교사가 되기 위해 사범대학을 다니던 나에게, 시대는 ‘질풍노도’의 시기였다. 11월 3일 학생의 날 시위에 학내 모든 조직의 힘이 집중되고 있었다. 나는 그해 6월에 학내 시위로 교권침해란 이유로 무기정학을 받았다 풀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단 하루라도 경찰에 잡혀가면 수업일수 부족으로 졸업을 할 수 없다는 대학 측의 경고에 나는 이미 마음을 비웠다.
무너진 집안을 홀로 지탱하던 홀어머니의 노심초사가 컸다. 그건 또 극심한 나의 불효였다. 어머니에게 외아들인 나는 시를 잘 쓰는 아들이었다. 그것이 어머니의 자랑이었다. 집에는 백일장,
공모전 등에서 수상한 상장이 수북했다. 한번은 앞날을 두고 어머니와 다투다 그 상장들을 다 찢어서 불태워 버렸다.
나는 시인으로 데뷔하며 ‘아브락사스(Abraxas)’를 꿈꾸었던가? 시대의 알을 깨고 새처럼 어디로 날아가고 싶었던가? 과연 내 무기였던 내 시가 그런 가치가 있었던가? 하지만 1980년대를 지나온 청춘으로 시대와 역사에 복무하는 데 시는 내가 들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뜨겁고, 빠르게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수배 중이었고 거제 학동에 숨어 지내며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란 시를 써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두어 달 만에 재등단이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는 어디선가 쓴 적이 있다. 더 이상 재론하는 것은 사족일 것이다. 햇수로 36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