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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완결성을 위한 비판적 재고

언어간의 문학번역에서는 근본적으로 원문이 정확히 재현될 수 없다고 흔히 말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서 출발어와 목표어가 지닌 의미론적 및 미학적 여러 차이, 번역자 개인이 문학텍스트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방식, 또는 번역수용자로서 독자들이 독서를 할 때 지니는 역사적 및 사회문화적 다양한 조건 등만을 고려하더라도 실로 번역은 다차원의 매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작업이고, 그만큼 번역본 또한 ‘완결성’을 띠기가 어렵다. 특히 한국어와 독일어처럼 아주 상이한 언어적 내지 문화적 제반 조건을 가진 두 언어간의 문학번역은 때로 거의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 되기 쉽다. 따라서 ‘완벽한’ 번역이 있을 수 없다면 ‘성실한’ 번역이 추구될 수 있을 뿐일 것이다. 번역자는 출발텍스트를 재현하기 위하여 목표어에 잠재된 표현의 가능성을 여러 차원에서 숙고하고, 그렇게 하여 얻은 번역텍스트도 언제나 비판적으로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견지에서 오정희의 소설 『새』가 독일어로 번역된 『Vögel』 (김선희․Edeltrud Kim 공역, Pendragon, 2002)도 읽을 수 있다. 이 번역은 흔치 않은 독일어판 한국문학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만으로도 매우 환영받을 만하다. 그리고 독일어텍스트가 전체적으로 자연스럽게 읽혀진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독서체험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독일어에서 등가의 단어를 갖기 어려운 한국어 고유의 개념이나 어휘를 독일어권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번역자들이 무척 애쓴 흔적이 드러난다.

그러나 몇 가지 아쉬운 점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어휘 선별 내지 표현법에서 숙고의 여지를 남기는 곳들이 보인다. 가령 원문 15쪽 “정지된 화면처럼”의 번역 “wie der stillgestellte Bildschirm”(p.11)에서 “stillgestellte”보다 angehaltene가 의미상 더 적합하지 않을까? 44쪽 “인생철학”도 등장인물의 서민적 특성상 “Lebensphilosophie”(p.33)보다 Lebensweisheit나 Philosophie가 더 적당할 듯하다. 더구나 철학사에서 통용되는 Lebensphilosophie라는 개념이 이 소설에서 쓰이는 뜻과 다른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하다. 135쪽 “우리 막내딸”에서 “우리”의 직역 “unsere”(p.103)도 한국어와 독일어에서 통용되는 표현법의 차이를 감안하여 meine(나의)라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137쪽 “우주에서”는 원래의 발화자가 썼던 표현을 그의 대화 상대자가 의아해하며 반복하는 말이다. 따라서 전자의 표현이 “im Weltraum”이라고 번역됐으면 후자의 반복도 “im Weltall”(p.104)보다 im Weltraum이라고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더 적합할 듯 하다.

그 외에 원문이 다소 꼼꼼히 읽히지 않은 채 번역된 것으로 보이는 곳도 눈에 띈다. 가령 9쪽의 “얼굴”이 “die Augen”(눈, p.6)으로 번역되었고, 17쪽 “암, 그래야지. 제 자식은 제가 길러야지 언제까지 짐보따리처럼 이집저집에다 맡겨놓겠느냐”는 아버지가 하는 말로 번역되었는데(p.12), 문맥상 그의 말에 대한 큰아버지의 대답으로 이해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79쪽 “내가 누구냐구?”라는 말은 “누구냐”는 상대방의 질문에 대해 되묻는 말이다. 따라서 “Fragst du denn nicht, wer ich bin?”(내가 누구냐구 안 물어보니?, p.60)라는 번역은 원문의 내용을 변경하게 된다. 또 81쪽 “뛰어내린”은 “hintergesprungen”(p.62)이 아니라 hinuntergesprungen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93쪽 “아저씨네 새 같아. / 바보 같은 소리야. / 이마에 가득 주름을 잡으며 죽은 새를 들여다보는 우일이에게 핀잔을 주고 나는 그것을 땅바닥에 버렸다”의 번역 “‘Es scheint der Vogel von Herrn Lee zu sein’, neckte ich ihn. / ‘Unsinn.’ Uuil betrachtete den Vogel mit in Falten gelegter Stirn”(p.71)에서는 발화의 주체가 바뀌었다. 97쪽 “너도 크면 자연히 알게 되겠지만 세상에는 별 인간이 다 있는 법이다”가 “Wenn du groß bist, wirst du es zwar von selbst erfahren, aber auf der Welt gibt es alle möglichen Sorten von Menschen”(p.74)으로 번역되면서 “zwar…aber”구문이 전달하는 내용도 원문의 의미로 이해되기 어렵고, 109쪽 “사흘째”는 “am vierten Tag”(나흘째, p.84)으로 잘못 번역되었다. 111쪽 “원산폭격을 시켰다”는 작중 “나”의 실제 행위인데, 번역에서는 “〔...〕ohrfeigte ich ihn, statt ihn, wie die Lehrer in der Schule es taten, damit zu bestrafen, dass er auf dem Kopf〔...〕stehen musste”(p.84)와 같이 오히려 이루어지지 않은 행위로 묘사되었다. 134쪽 “삼층”은 “im dritten Stock”(사층, p.102)으로 되어 있고 (반면 p.106 “in den zweiten Stock”에서는 삼층으로 되어 있음), 142쪽 “김씨아저씨를”은 “Herrn Lee”(이씨아저씨를, p.108)로 되어 있다. 149쪽 “이씨아저씨의”가 번역된 “von Herr Lee”(p.113)에서 “Herr”는 문법상 Herrn이어야 한다. 또 150쪽 “웃는”의 번역 “anschaute”(응시하는, p.114)는 anlächelte라는 단어를 두고 왜 굳이 선택되었을까? 그 외에도 14쪽에서 방문 여는 소리를 표현하는 “벌컥”이나 70쪽의 바느질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찬찬히” 등이 번역에서 드러나지 않는데, 문학텍스트에서는 이와 같은 의태어 하나도 특정한 의미 내지 문학적 기능을 가질 수 있으므로 면밀히 번역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이 번역에서 무엇보다 유감스러운 점은 원본의 일부가 번역되지 않고 빠져버린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예컨대 원본의 13쪽 “누군 흙 퍼다가 돈 만드나”와 “반들반들 기름기 묻은 돈”, 16쪽 “너는 만화책을 너무 많이 보는구나. 지금은 죄수들에게 쇠사슬을 채우지 않는다”, 46쪽 “꿈인가?”, “숨소리도 죽였다”와 “팔뚝에 흩어진”, 68쪽 “곰순이가 초대받은 손님이 되어 아이들의 집으로 따라가는 것이다”, 71쪽 “웃음이 터질 지경이지만 꾹 참는다”, 76쪽 “햇빛 쨍쨍한”, 101쪽 “다정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그들 역시 우리를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49쪽 “아버지는 천천히 오랫동안 엄마를 때렸다. 그러면 엄마의 얼굴에는 붉고 푸른 무늬가 생겼다” 등.

이 외에도 군데군데 눈에 띄는 오자 내지 편집상의 실수까지 겹쳐서 못내 아쉬움을 더한다. 예를 들면 번역본 p.14에서 “nochobendrein”은 noch obendrein으로 써야 하고, p.53의 “bewirten.2”에서는 “2”가 아니라 닫힘 따옴표를 넣어야 한다. 이러한 부분은 한국문학 번역서를 출간하는 해외 출판사의 성실한 편집 태도 역시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과연 ‘실수’ 혹은 ‘오역’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번역이 어디 있으랴. 위에서 언급된 점들은 번역을 통하여 한국문학을 타 문화권의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일에 많은 관심을 가진 한 사람의 자기성찰적 시각에서 짚어진 것으로 읽혀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