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

웹진 대산문화

1. 세상과의 연애를 꿈꾸는 시

1960년대

어린 시절 나는 외갓집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 농촌은 가난의 한 상징이며 실체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에게 외갓집은 가난보다 어떤 원형을 일깨워 준 곳이었다. 저녁 무렵이면 건너편 마을의 올망졸망한 지붕들 위로 피어나던 밥 짓는 푸근한 연기며, 비 오는 날 하루 종일 귀를 열고 듣던 낙숫물 소리, 그리고 우기 때마다 뒷산 참나무 숲에 오만 가지 버섯들이 뿜어내던 희한한 냄새며, 여물 냄새, 거름 냄새를 나는 그 시절 내 품 속에 무척 많이 받아들였던 것 같다. 혹시 내 시에 농촌 체험이라는 게 조금이라도 비친다면 그것은 대부분 외갓집에서 먹고 자고 뒹굴고 할 때 얻은 것들이라 할 수 있다.

또 돌배나무, 앵두나무, 감나무, 고욤나무, 호두나무, 밤나무, 대추나무로 둘러싸인 외갓집에는 사시사철 먹을 것이 많았다. 그것은 궁핍한 생활 속에서도 어린 외손자에 대한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각별한 배려 때문이었겠지만, 안방 벽장 속에는 홍시, 곶감, 사탕, 꿀, 조청 등 철없는 것의 입맛을 당기는 것들이 무진장하였다. 그 벽장은 어린 나의 상상력을 키워주던 선생님이었다. 일제 때, 혹은 더 이전에 쓰던 무수한 동전들과 사진첩과 한자투성이의 누런 서류들은 나에게 나 이전의 역사가 오래 전부터 있었음을, 그리하여 나도 그 역사의 줄기 끝에 맺힌 작은 꽃봉오리임을 일찍이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그 어두침침한 벽장은 무서운 전쟁 이야기를 듣거나 이유도 없이 울적한 날에 내가 마지막으로 도망가 있을 피신처로 여겨지기도 했는데 전쟁 생각도 우울함도 한 순간 뿐 그 시절에는 ‘유배지에서의 행복’만이 나를 감싸고 있었던 것 같다. 내 시에 혹시라도 사람살이의 따뜻함 같은 게 배어 있다면 그것도 외갓집의 벽장이나 군불 지피던 아궁이에서 터득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1970년대

1961년생인 나는 흔히 말하는 386세대에 속한다. 대한민국이 이 세대에 가장 공을 들여 가르친 게 있다면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 기르기가 아닐까 싶다. 바꾸어 말하면 나는 지구상에서 제일 심각하게 반공교육을 받은 사람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반공글짓기, 반공표어 만들기, 반공웅변대회, 반공포스터 그리기, 반공도서 읽기……. 나는 반공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 숱한 행사에 동원되면서도 입술 한 번 삐죽거리지 않은 온순한 아이였다. 왜 그랬냐고? 대답은 간단하다. 나에게 어른들이 죽으나 사나 ‘반공만이 살 길‘이라고 가르쳤으니까.

내가 간첩이라는 말을 처음 들은 것은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 어느 겨울밤이었다. 난데없이 밤중에 지서의 사이렌이 울리고 큰길로 군인들을 태운 트럭들이 눈에 불을 켜고 지나갔다. 어른들의 말로는 모의 간첩 훈련을 한다는 것이었다. 간첩들이 언제 마을로 들이닥칠지도 모른다고 했다. 나는 무서워 이불을 덮어쓰고 웅크리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하지만 아침에 깨어나서도 간밤의 공포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무덤을 파고 들어가 그 속에 숨어산다는 간첩들이 내 의식의 밑바닥에 똬리를 틀고 앉은 것도 그 무렵부터였다. 간첩은 공산주의자나 빨갱이와 동의어였고, 빨갱이는 얼굴이 붉고 머리에 뿔이 난 악마의 형상을 하고 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고백한다. 초등학교 3, 4학년 때쯤일 것이다. 나는 교내 반공 글짓기 대회에서 이런 동시를 써서 상을 받은 적이 있다. “북한 어린이들아, 너희는 무슨 밥을 먹니?/나는 날마다 하얀 쌀밥을 먹는다.//북한 어린이들아, 너희는 무슨 옷을 입니?/나는 명절 때마다 예쁜 때때옷을 입는다.//북한 어린이들아, 너희는 무슨 신을 신니?/나는 언제나 흰 운동화를 신는다./(……)”

그 당시, 우리 집의 밥상 위에는 끼니때마다 보리쌀이 아주 많이 섞인 밥이 올라왔으며, 명절 때 입는다는 때때옷은 교과서에서만 배웠을 뿐 한 번도 입어 본 적이 없었고, 나는 기차표라던가 말표라던가 하는 검정고무신을 사시사철 신고 다니던 아이였다. 하지만 반공정신으로 단단히 무장된 나는 스스럼없이 거짓말로 시를 쓰고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에서 상을 받으며 어깨를 으쓱거릴 수 있었다. 닳은 검정 고무신을 신고 부동자세로 서 있는 나를 향해 여러 선생님과 아이들이 박수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1970년대 초였다.

1980년대

1980년, 그해 봄에 나는 대학생이 되었으나, 처음 맞은 봄은 나른하기만 했다. 가끔 ‘시국 토론회’ 같은 집회가 열리고, 시위대는 교문을 벗어나 도시의 중심부까지 행렬을 이었지만, 나는 그 꽁무니쯤을 따라다니며 세상을 다만 관찰하고 있었을 뿐이다. 내가 이 세상의 일에 아직 적극적으로 개입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갓 스무 살이 된 나에게 세상은 그저 신기한 곳이었고, 두터운 교복을 벗고 술집을 드나들 수 있어 자유로운 곳이었으며, 개나리가 피었다가 지고 목련이 꽃망울을 터뜨리는 것을 무심히 바라볼 수 있는 한가한 곳이었다. 그 당시 나는 말 그대로 문학청년이었지만 문학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나에게 있어 문학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따위는 짚어 보지 않은 상태였다.

총칼보다는 펜의 힘을 강력하게 믿고 있던 나는, 1980년 5월 그 어느 저녁, 시인이 되기도 전에 죽사발이 되도록 얻어터졌다. 전국적으로 계엄령이 확대되자 장갑차를 앞세운 계엄군에 학교를 내주지 않을 수 없게 된 우리는 좁고 어두운 하숙방에 갇혀 버렸다. 그렇건만 철부지 문학청년들에게는 강의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즐겁고 신나는 일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친구와 함께 학교 앞 언덕에 앉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새우깡’ 이외의 안주로는 예외 없이 보들레르, 하이데거, 김수영, 황동규와 같은 이름들이 섞여 있었다. 이따금 시국이 돌아가는 모양새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우리가 손을 쓸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지는 일일뿐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우리들의 이야기 속으로 철모를 쓴 군인 하나가 등장한 것이다. 학교 외곽을 경계하던 계엄군이었다. 그는 다짜고짜로 때가 어느 때인데 술이나 처마시고 있느냐고 우리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소총 끝에 꽂힌 예리한 대검이 어둠 속에서도 번쩍거렸다. 교문 앞으로 끌려가 꿇어앉혀진 우리의 가슴팍과 무릎, 정강이로 사정없이 군홧발이 날아왔다. 변명의 몸짓이나 항의의 말 한 마디 못하고 우리는 얻어맞기만 했다. 태어나서 남으로부터 그렇게 많이 맞아 보기는 처음이었다.

나는 비로소 꿈에서 깨어났다. 그날 밤 하숙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질척거렸다. 퉁퉁 부어오른 정강이뼈에 요드팅크를 바르며 나는 분노보다는 서글픔을 생각했다. 이제껏 한 번도 맛보지 못했던 치욕이 내 이십대 초반을 적시며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세상에는 나 혼자 걸을 수 없는 길이 많다는 것을, 내가 꿈꾸는 문학도 골방에 앉아 혼자 끙끙댄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걸 알았다. 나에게 주어진 현실을 피해 가지 않고 ‘지금, 이 곳’에서의 시를 쓰겠노라고 일찌감치 나는 나에게 약속했다.

스무 살의 철없이 팔팔한 문학청년에게 역사는 치열하게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을 그날 저녁에 가르쳐 주었다. 우리들의 등을 짓누르던 역사의 무게는 그 이후 내가 살아가야 할 중요한 이유의 하나가 되었고, 나는 그때 역사로부터 한 수 배운 덕분에 오늘 이만큼이라도 걸어왔다.

1985년에 나온 내 첫 시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을 쓸 무렵, 시를 쓰려고 볼펜을 잡으면 꽃 피는 봄 대신에 눈 내리는 겨울이 먼저 떠올랐고,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들판 대신에 들판을 태우며 가는 들불이 선하게 떠오르곤 하였다. 하지만 뭔가 해 보려고 일찍 일어나 새벽밥을 먹고 나서기는 했지만, 그 ‘뭔가’가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보이지는 않는, 뜨거운 결의에 차 있으되 결의의 대상이 불확실한 내 젊은 날의 일기장 같다는 생각을 한다.

1990년대, 그리고 21세기

내가 문학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니었다. 문학이 몽매한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글쓰기란, 나라는 인간을 하나씩 뜯어고쳐 가는 일이었던 것 같다. 문학에 의해 변화된 내가 흔들릴 때마다 문학은 다시 나한테 회초리를 갖다댔다. 문학은 나에게 늘 초발심의 불꽃을 일으키는 매서운 매였다. 문학은 엄하고 무섭지만,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문학을 가르쳐 준 세상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수록 시대의 무거움이 버거워 나는 끙끙댔다. 그 끙끙대던, 그 전전긍긍하던 시간들을 나는 참으로 소중하게 여긴다. 문학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긴장하고 현실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가. 어떻게 보면 단순한, 그렇지만 한 번은 반드시 통과해야 할 그런 고민을 어깨에 얹어준 것만으로도 80년대에게 빚진 게 많다. 지금은 아무도 그런 빚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 세상이지만, 그 빚을 갚으려고 나는 쓴다.

삶과 문학, 두 가지를 앞에 놓고 나는 뭔가 전환의 기회로 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 자신한테 주문했다. 그 주문의 목록은 대충 이런 것들이다. 시에서 지나친 과장과 엄살을 걷어낼 것, 너무 길게 큰소리로 떠들지 않을 것, 팔목에 힘을 빼고 발자국 소리를 죽일 것, 세상을 망원경으로만 보지 말고 때로 현미경도 사용할 것, 시를 목적과 의도에 의해 끌고 가지 말고 시가 가자는 대로 그냥 따라갈 것, 시에다 언제나 힘주어 마침표를 찍으려고 욕심을 부리지 말 것, 시가 연과 행이 있는 양식이라는 점을 분명히 제고할 것…….

한 편의 시를 위해서 무엇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래서인지 시를 쓰는 동안에는 시간이 잘 간다. 마치 애인하고 함께 보내는 시간처럼. 남의 시를 읽을 때도 시인이 장인적 시간을 얼마나 투여했는지 유심히 살펴본다. 시간을 녹여서 쓴 흔적이 없는 시, 시간의 숙성을 견디지 못한 시, 말 하나에 목숨을 걸지 않은 시를 나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시를 읽고 쓰는 것, 그것은 이 세상하고 연애하는 일이라고 종종 생각한다. 연애 시절에는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연애의 상대와 자신의 관계를 통해 수없이 많은 관계의 그물들이 복잡하게 뒤얽힌다는 것을 생각하고, 그리고 훌륭한 연애의 방식을 찾기 위해 모든 관찰력과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연애는 시간과 공을 아주 집중적으로 들여야 하는 삶의 형식 중의 하나인 것이다. 가슴으로만 하는 연애, 손끝으로만 하는 연애도 나는 경계한다. 가슴은 뜨겁지만 쉽게 식을 위험이 있고, 손끝은 가벼운 기술로 사랑을 좌우할 수도 있다. 가슴과 손끝으로 함께 하는 연애, 비록 욕심이라 할지라도 내 시는 그런 과정 속에서 태어나기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