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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스로 매혹적 텍스트가 되는 교육 - '전달과 매개'에서 '발견'으로

1.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학교 교육’에 한정하여 교육 현상을 이해하려 한다. 물론 ‘가정교육’이나 ‘사회 교육’의 중요성이 전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된 교육 현장은 단연 ‘학교’라는 제도적 표상으로 집중되어 있다. 우리나라 교육부가 담당하고 있는 영역 역시 대개 ‘학교 교육’ 과정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감안하면, 공적․사적 영역에서 학교 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서구의 계몽주의자 가운데 어떤 이는 학교 하나를 짓는 것이 감옥 하나를 부수는 것과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는 한 사회의 야만 상태를 문명 상태로 이끌어 올리는 학교의 계도적 기능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근거로 한 발언일 것이다. 하지만 근대의 전개 과정은 학교 하나를 늘리면 고스란히 감옥 하나가 늘어나는 아이러니를 보이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 학교가 곧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우리 기억 속의 학교 역시 대개는 자발적으로 가고 싶었던 곳이 아니라, 제도적 강제로 주어진 타율적 집합소 같은 곳이었지 않은가. 그래서인지 교육학자 이반 일리치(Ivan Illich) 같은 이는 『탈(脫)학교화 사회(Deschooling Society)』라는 책에서 아예 급진적인 학교 비판에 나서기도 하였다. 근대 학교에 대한 이러한 전폭적 신뢰와 비판의 공존 현상은, 그곳이 사회 체제에 의해 견고하게 결속된 억압적 기구이면서 동시에 그 견고함을 깨뜨릴 수 있는 창조적 균열들이 다양하게 존재하는 장소임을 알려준다. *1

우리나라의 교육 경험에서도 ‘학교’는, 전(前)근대적 야만 상태에서 근대적 문명 상태로 수직 상승할 수 있는 유일한 제도적 통로로 기능하였다. 근대 초기의 학교에서는 근대 교육의 도구로서 일어, 수학, 역사, 지리 등을 가르쳤다. 이러한 과목 편성은 학습자의 이른바 ‘자기 형성적 주체(self formative subject)’로서의 성장 가능성보다는 ‘민족’과 ‘국가’에 유용한 인재를 길러내려는 기능 중심의 사고를 저변에 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식민지 시대의 작가 이태준(李泰俊)은 한 산문에서 “다른 공부를 제대로 하면서 읽는 소설은 물론 좋다. 나아가서는 그렇게 하기를 권려(勸勵)해야 할 것이다. 세상이라거나, 인정이라거나를 모르는 것만이 천진(天眞)은 아니다. 그것은 백치(白痴)요 천진은 아니다. 백치와 천진을 구별하지 못하는 교육자들이 많아, ‘소설’이라면 공연히 백안시한다.”*2라고 토로하면서, 당시 문학 교육의 영성함을 질타한 바 있다. ‘민족’과 ‘국가’를 짊어지고 나아갈 인재에게 소설과 같은 가항(街巷)의 이야기들은 그다지 유용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해방 이후의 교육 과정에서 ‘문학’은 매우 중요한 대상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물론 문학을 통해 ‘민족’과 ‘국가’를 절대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고 그에 반하는 내용들은 철저히 배제해왔던 역사를 돌이켜볼 때, 문학은 그 자체로 숭앙되었다기보다는 ‘국민국가(nation state)’의 일원을 재생산하는 도구로 이용된 측면이 강하기는 했다. 하지만 최근 급속하게 진행된 사회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다양하기 그지없는 문학적 내용과 형식이 가르쳐지고 있고, 작품의 주제를 국민국가 중심의 알레고리로 환원하려는 지향은 많이 약화되거나 사라졌다. 그래서 이제 정말 학교 교육에서 문학 교육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 증폭된 상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2.

서양 영화의 고전들에서 ‘학교’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교사들은 학생들의 고민을 이해하려 하지 않고 그에 대해 무심한 경우가 많다. 최근 우리 영화에서도 교사들이 자주 폭력 교사로 등장하거나 학생들의 불온한 시선에 의해 희화화되어 나타나기 일쑤이다. 학교에서 진지한 교육 행위가 이루어지는 것을 담는 경우는, 그나마 ‘교육’ 자체를 메타적으로 다루는 경우에 한정된다. 그 점에서 우리의 기억에 깊이 남아 있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 society)｣는 좋은 교사나 교육이 어떠한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시사를 남긴 사례이다.

자신의 모교에 새로 부임한 키팅(Keating) 선생은, 자신을 ‘선장(captain)’이라고 부르라면서 첫 시간부터 파격적 방식으로 학생들을 대한다. 그의 교육 방법은, 활자로 죽어 있는 지식을 전수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경험 그 자체를 실현하는 데 집중된다. 어느 날 그가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모임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전해주었을 때, 몇몇 학생들이 그 모임을 이어가기로 작정하면서 영화는 진경(進境)으로 나아간다. 이들은 학교 뒷산에 있는 동굴에서 시를 낭송한다든가 연극을 준비하면서 자신들이 그동안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매혹적인 자아상을 구축해간다. 하지만 연극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던 학생이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끝내 권총으로 자살하게 되면서, 학교 측에서는 이 같은 불온사상을 유포한 당사자로 키팅을 지목하고 그를 파면하려고 한다. 학교를 떠나는 키팅 앞에서 몇몇 학생들이 책상 위로 올라가 “Captain, my captain!”을 외치는 마지막 장면은 이 영화의 압권이다. 자신들의 삶에 창조적 균열을 내주었던 선생님께 파격적이고 전폭적인 헌사를 보내는 이 장면은, 키팅의 교육적 퍼포먼스가 감동적 동의(agreement)를 이끌어내는 풍경을 담고 있다. 진정성 있는 한 교사의 파격적 교육 방법이 수용자들의 폭 넓은 동의를 얻어내는 과정을 이 영화는 감동 깊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영화는 우리의 기억 속에 마치 ‘대안 교육’의 전범처럼 그 잔상을 남기고 있는 것일까. 키팅의 교육 방법이 다른 여타의 것들을 압도하는 최량의 것이었기 때문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키팅이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 그리했다면 벌써 인터넷 게시판에 난리가 나고 즉각 퇴출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히려 학생들이 보여준 마지막 동의의 결단은, 키팅에 의해 학생들에게 ‘전달’된 그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학생들에게 삶의 매혹과 공포를 경험하게 하려 했던 키팅의 교육적 의도가 ‘발견’되는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옳을 것이다. 수직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 그것이 키팅의 교육이 우리에게 진한 감동으로 다가오는 가장 근원적 요인일 것이다. 그만큼 좋은 교사는 좋은 수용자들에 의해 ‘발견’되는 법이다. 학교 교육에서 좋은 교사(good leader)만큼 좋은 수용자(good follower)가 중요함을 새삼 알게 하는 순간이다.

3.

그동안 우리나라 학교에서의 문학 교육 방향은 여러 차례 궤도 수정을 거치면서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에는 구성주의와 수용미학의 결속을 통한 반응 중심의 교육관과 매개자로서의 기능을 강조하는 교사상이 문학 교육의 주류 형식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문학을 포함한 모든 인문학이 ‘매혹’과 ‘선망’ 없이는 경험할 수 없는 세계라는 점에서, 이러한 수용자 중심의 교육관과 매개 중심의 교사상은 마치 고객 중심의 마케팅 방식을 교육 현장에 고스란히 이식한 꼴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문학 교육의 첫걸음은 매력 있는 작품을 접하게 함으로써 피교육자가 자연스레 그 매력의 포로가 되도록 하는 데서 시작”*3해야 한다는 충언을 경청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학생들에게 문학에 대한 매혹을 가지게 하는 교사가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이 겪은 텍스트에 대한 매혹과 몰입의 경험을 통해 수용자들로 하여금 그 매혹과 몰입을 간접 경험하게 함으로써 생의 낯선 지대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심급이 되는 것이다. 그 점에서 교사는 텍스트를 ‘전달’하거나 ‘매개’하는 역할에 머물 것이 아니라, 비유컨대 스스로 매혹적 텍스트가 되어 수용자들에게 ‘발견’되어야 할 것이다. 유능한 전달자나 매개자가 아니라 스스로 매혹적 텍스트가 되는 것, 이것이 학교라는 근대적 시스템 안에서 우리가 수용자들로 하여금 경험시켜야 할 가장 중요한 ‘발견’의 과정인 것이다. 키팅이 바로 그 매혹적 텍스트가 아니었던가.

아직까지도 우리는 “문학은 우리를 가르치지 않는다. 다만 감동을 주어 우리를 변화시킬 뿐”이라는 괴테(Goethe)의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다. 문학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경험의 대상이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학교라는 타율적 공간에서 교사의 경험적 매혹을 통해 문학 경험의 세련화와 정예화를 만들어가는 일은, 아무리 입시 교육의 현실적 어려움을 볼멘소리로 이어가더라도, 양도할 수 없는 중요한 교육적 준거가 아닐 수 없다.

말할 것도 없이 ‘교육’은 본질적으로 가치 지향적인 활동이다. 그것은 교육 과정을 통해 수용자에게 가치 있는 어떤 속성을 경험케 하는 가치 실현의 과정이다. 곧 다양한 문화의 장(場) 안에서 수용자가 자신의 교육적 경험을 바탕으로 바람직한 자신의 삶의 지향을 위한 교양을 형성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삶과의 총체적 연관을 가지는 ‘문학’을 교육하는 데, 우리는 교육적 경험이 인간 형성과 변화에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우리는 교사의 ‘전달’이나 ‘매개’ 기능에 안주하지 않고, 교사 스스로 ‘발견’의 직접 목적어가 되어 문학 교육의 위의(威儀)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학생들은 성인이 되어 자신들이 학교에서 배운 정답 찾기에 대한 불편한 기억 때문에 문학만이 가지는 고유한 매혹의 세계에서 멀어질지도 모른다.

*1 이승원, 『학교의 탄생』, 휴머니스트, 2005. 9쪽.

*2 이태준, ｢小說｣, 『무서록(無序錄)』, 박문서관, 1941. 여기서는 이태준 문학 전집 『無序錄』, 서음출판사, 1988. 253쪽.

*3 유종호, ｢왕도는 없다｣, 『서정적 진실을 찾아서』, 민음사, 2001. 2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