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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학교의 탄생과 근대적 '개인', 그리고 문학적 상상력

조선조 과거제도가 폐지되고 새로운 근대적 교육제도가 들어오면서 많은 민중들은 희망에 부풀었을 것이다. 양가집 자제가 아닌 기생이나 머슴도 계급, 신분과 관계없이 ‘공부’의 길로 입신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사농공상의 견고한 신분제도가 붕괴된 이후 거대한 사회적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시공간의 탄생, 그것이 바로 학교였던 것이다. *1

1876년 일본과 맺은 강화도 조약에 따라 1880년 원산항이 개항되고, 덕원과 원산의 인민들은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 근대식 학교를 건립했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학교, 원산학사다. 책걸상이 딸린 교실이 만들어지고, 금발의 파란 눈의 선생님이 등장하셨으며, 본격적으로 서양식 교육, 서양문명을 가르치는 교육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당시 학교 교육의 목적은 서구문물의 수용과 부국강병을 이루는 것이었으며, 자주독립을 위해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그 뿐인가. 학교는 한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를 교육하는 공간이었으며, 온갖 담론과 풍속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학교의 등장은 학생 간의 자유연애뿐만 아니라 여성의 권위와 인권 향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남자들은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면 사회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였으니, “일천만 남자들은 응당 고명한 학교를 졸업하여 정치·법률·군제·농·상·공 등 만 가지 사업이 족하겠지만”*2 여자들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니 반드시 남녀평등의 가치를 내세워 여자도 학문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했던 것이다. 세계 문명국 사람들은 남녀 학문과 기예의 차등이 없으니 이러한 교육제도를 배워 우리도 근대화의 대열에 깃발을 올리자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근대교육제도의 탄생은 여자의 권리를 세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었으며, 근대적 학교는 문명국의 여성과 마찬가지로 여성이 누려야 하는 교육평등의 기회를 제공한 혁신적인 공간이었다. 학교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모범은 단연 일본 교과서였다. 일본교과서는 조선 학생들이 배워야 하는 중요한 덕성함양 지침서였다.

일본 교과서를 보시오. 소학교 교과하는 것은 당초에 대한이라 청국이라는 말도 없이 다만 자국 인물이 어떠하고 자국 지리가 어떠하여 자국 정신이 굳은 후에 비로소 만국 역사와 만국 자리를 가르친, 그런고로 무론 남녀하고 자국의 보통 지식이 없는 자가 없어 오늘날 저러한 큰 세력을 얻어 나라의 영광을 내었소. (「자유종」, p.48)

학교를 만들고 학생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농어촌을 살리고 나라를 부흥시키는 것이라는 믿음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광수의 소설(『무정』의 이형식은 경성학교 영어선생이었다.), 심훈의 소설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는가. 중․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교과서에 실려 있던 『상록수』는 삽화와 함께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금을 그어 놓고 배우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채영신 선생님이 낡은 예배당에서 한글을 배우던 아이들과 『농민독본』을 펴 들고서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서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고 외치던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다.

예배당을 두른 야트막한 담에는 쫓겨난 아이들이 머리만 내밀고 쭉 매달려서 담 안을 넘겨다보고 있지 않은가. 고목이 된 뽕나무 가지에 닥지닥지 열린 것은 틀림없는 사람의 열매다. 그중에도 키가 작은 계집애들은 나무에도 기어오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가 주저앉아서 훌쩍거리고 울기만 한다. 영신은 창문을 말끔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턱에다가 버티어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서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 하고 그 독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3

그때 채영신과 함께 『농민독본』을 읽던 아이들은 그 당시 브나로드 운동의 정신을 계승하는 청년으로 자라났으리라.

점차 학교는 개화기, 식민지 시기, 빠른 근대화 추동의 시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이념에 의해서 만들어진 아이들을 키우는 공적 공간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는다. 학교는 아동을 길러내는 공적 제도의 공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근대 일본 아동의 탄생 과정처럼, 학생들에게 근로성과 성실성을 가르치며, 예의와 행의, 겸손과 질서, 국가에 순응하는 태도, 애국하는 마음 등을 심는 공적 업무를 수행하게 된다.*4 이러한 학교의 탄생과 더불어 공적 제도로부터 자유롭고자 했던, 다시 말해 다른 사람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뜻대로 살고자 했던 ‘개인’은 학교라는 체제의 보편적인 언어와 문자세계에 들어서면서 근대를 표방하는 보편적인 인간으로 자라게 되었던 것이다.

학교가 선택의 공간이 아니라 의무적으로 거쳐야 하는 공간으로 범주화되면서 학교교육이란 틀을 거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이제 교육은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강제적인 사회화의 틀로 자리 잡게 된다. 일찍이 톨스토이는 학교교육이 아이들의 “영혼의 학자적 조건”, 그러니까 상상력과 창의력, 창작력을 모두 상실하게고 단순한 숫자세기와 단어인식 같은 것을 배우게 하여, 그들의 고급한 능력을 무능화 시킨다고 맹렬하게 비난한 바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공적 질서를 배우는 억압적 체제 아래에서 아이들은 위선과 괜한 거짓말, 둔함 등의 상추적인 틀에 길들여지는데, 그 때쯤 되면 교사들은 만족감을 느끼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면 가장 우둔한 학생이 가장 훌륭한 학생들로, 가장 뛰어난 학생이 가장 끔직한 학생으로 취급받게 된다는 것이다.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빼앗는 학교는 결국 우둔한 학생과 뛰어난 학생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공간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학교의 권위는 곧 교사의 권력으로 전이되면서 학생들에게 언제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아버지의 법으로서 학교 권력으로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학교교육이 ‘아버지의 법’으로 자리를 굳히게 되면서(항상 거세공포에 시달리는), 근대 교육의 갖가지 병폐들이 양산된다. 상상력과 창의력, 창작력을 상실한 채 제도 안에서 ‘제도’를 누리면서 권력을 유지하는 비법들을 전수받는 인간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참된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이 아니다. 성실성과 근면성을 표방하면서 교묘하게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고 전파시키는 책략과 개략을 배우게 된다. 학교 안에서 추악한 사회 권력의 메커니즘을 그대로 답습한 인간들. 사실 문학적 상상력이 학교와 교육을 통해 표상하고 있는 인간 군상들은 ‘만들어진’ 학교에서 키워진 ‘일그러진’ 얼굴들이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5에 등장하는 엄석대는 이 땅에 근대적 교육체제가 생겨난 이후 학교 규율권력을 이용하여 1980년대 한국 사회구조의 어두운 면을 그대로 폭로하고 있는 인물이다. 이 소설은 학교가 어떻게 권력 공간으로 유지되는지, 학교이기 때문에 가능한 비열한 권력의 탄생 ‘조건’에 대한 탁월한 성찰을 보여주고 있다. 엄석대는 건전한 학교가 사실은 온갖 비리의 온상지로 전락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상이면서, ‘아버지의 법’에 저항하는 아이들의 표적이기도 한 인물이다. 학교는 항상 “철저한 복종”과 “저항에 갈음”(181)을 하게 하는 공간이다.

오히려 석대를 관찰하면서 더 자주 확인하게 되는 것은 담임선생님이 그를 신임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들이었다. 그에게 맡겨진 우리 반의 교내 생활은 다른 어느 반 보다 모범적이었다. 그의 주먹은 주변 선생님들이나 육 학년 선도들의 형식적인 단속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우리 반 아이들의 군것질이나 그 밖의 자질구레한 교칙 위반을 막았다. 그에게 맡겨진 청소 검사는 우리 교실을 그 어떤 교실보다 깨끗하게 하였으며, 우리의 화단을 드러나게 환하게 했다. 또 그에게 맡겨진 실습감독은 우리의 실습지에 가장 많은 수확을 안겨주었으며, 그에게 강제 할당으로 우리 반의 비품은 그 어느 반 보다 넉넉했고, 특히 교실 벽은 값진 액자들로 넘쳐날 판이었다. 그가 이끌고 나가는 운동 팀은 모든 반 대항 경기에서 우리 반에 우승을 안겨주었고, ‘돈내기’란 어른들의 작업방식을 흉내 낸 그의 작업 지휘는 담임선생님들이 직접 나서서 아이들을 부리는 반보다 훨씬 더 빨리, 그리고 번듯하게 우리 반에 맡겨진 일을 끝내게 해주었다.(192)

그렇게 해서 내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너무도 허망하게 끝난 싸움이고 또한 그만큼 어이없이 시작된 굴종이었지만, 그 굴종의 열매는 달았다. 오래고 끈질긴 반항 끝에 이루어진 굴종의 열매라 특히 더 달았는지도 모를 일”(221)이라는 것이다. 학교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은 결국 끈질긴 반항 끝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던 굴종의 행복감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 소설의 선생님은 끝까지 비리의 근원에 엄석대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주시는 교육자로 등장하신다. 하지만 학교 규율권력을 자신의 권력으로 착각하는 학생주임 선생님이 등장하는 소설은 더욱 참담하다.

『반성문을 쓰는 시간』*6에 형상화되고 있는 학교, 그리고 선생님이란 존재는 수치심과 죄의식을 길러주는 대상일 뿐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학교의 체벌이나 규율의 적용은 죄인 아닌 죄인을 양산하는 알리바이로 작용한다. “내가 죄인이 된 것은, 교무실을 나와 교문으로 향하던 길 거기서”(278) 무기정학이라는 학생주임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이었다. “학생주임 선생님은 말했다. 벌은 죄의 대가이다. 그러니까 잘못은 곧 죄이다. 나는 죄 때문에 그런 것이다. 죄 때문에 수업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교실을 나서야 했고, 그 텅 빈 길에서 실신하여 주저앉아 버릴 뻔한 것이다. 온통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 화단 가득 숨이 막히게 붉은 꽃들이 아니라, 그때 그곳에서 바로 나 하나만이 죄 때문에”(279) 고통을 당하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학교는 교칙으로 학생을 처벌할 수 있는 막강한 권력 기관이며, 학생의 죄를 단죄할 수 있는 재판의 공간이다.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반성할 것이 없는 학생들에게 무조건적인 복종을 가르치는 억압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최소한에 의사소통의 합리성은 어디에 있는가.

그 분이 바라는 반성이란 입을 꽉 봉하고 오로지 누우 치기만 하는 것이다. 여러 선생님께. 그분들 모두가 참석한 회의의 결정에. 그 결정을 떠받치는 학칙 몇 조에. 경찰서에서 온 공문에, 학생의 도리와 분수라는 것에, 집회 신고 규정에―오직 따르기고 복종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죄는, 그것들에 따르지 않을 때 짓는 것이다. 그런 게 죄라고? 이렇게 나를 옥죄고 있는 죄가 바로 불복종의 결과란 말인가?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저 누나한테 도서관에 간다고 거짓말하면서 축제를 준비했을 뿐인데―도대체 무엇이 죄 될 일이고 그 경계선은 어디며, 누가 그것을 결정했나? 그건 반성 안하나? 내 발목에 죄의 차꼬를 채우는 행동자체는, 누가 언제 반성하지? 그건 반성의 대성이 아니고,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태풍이나 지진 같은 건가?(중략) 내가 해야 한다는 반성이 단지 복종일 뿐이라면, 그것처럼 쉬운 게 없다. 아니 그것처럼 어려운 게 없다. 날마다 같은 말을 공책 한 바닥씩 되풀이해야 하니까.(280-1)

학교 교육이 인간의 정신적 영혼을 감금하고, 도덕과 규율을 내면화시키는 수단으로 전락하기 쉬운 까닭은 무엇일까. 반성과 복종을 강요하는 근대규율권력으로서의 학교는 문학적 상상력 안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퇴물이 되었다. 자유로운 문화적 경험을 가르치는 교육, 복종과 저항, 좌절이 아닌 개인의 윤리를 가르치는 교육, 문학이 꿈꾸는 학교와 교육은 바로 이러한 세상을 향해서 열려 있는 무한한 상상의 대상이다. 문학이 꿈꾸는 학교의 창문은 학교라는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 할 수없는 모호한 순간과 학생들 개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깨닫게 되는 시간을 향해 있다. 아침시간의 무질서와 본성에 따르는 아이들이 떠드는 교실, 무수히 많은 학교-기계들이 재조립을 거부한 채 돌아가는 공간, 아마도 문학적 상상력은 그런 학교를 그리는 파열의 언어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1 이승원, 『학교의 탄생』, 휴머니스트, 2005, 참조.

*2 이해조 외, 「자유종」, 『추월색』, 문학과 지성사, 2007, p.44

*3 심훈, 『상록수』, <한국문학전집>, 문학과 지성사, pp.163-4

*4 이병남, 『근대 일본 아동의 탄생』, 2007, 제이엔씨, 참조.

*5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20세기 한국소설>, 창작과 비평사, 2007.

*6 최시한, 『반성문을 쓰는 시간』, <20세기 한국소설>, 창작과 비평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