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 21세기 문학의 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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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선생님, 그거 시험에 나오는 건가요?" - 교과과정 속에서의 문학교육

1.

문학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문학에 대해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문학의 정의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문학은 인간의 사상과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학에 대한 정의와 문학에 대해서 잘 말할 수 있다고 해서 문학을 잘 이해하고 잘 아는 것인가, 꼭 그렇지는 않다. 이를 다시 말해보자면, 수박이 무엇인가? 할 때 수박에 대한 정의보다, 수박에 대한 많은 얘기들보다 수박을 한 번 갈라 먹어 보는 것이 수박을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수박 맛을 알기에 사람들은 더운 여름이면 수박을 사서 먹으며 갈증을 달랠 것이고, 이웃이나 친척집을 방문하며 수박을 사가기도 할 것이다. 수박이 얼마나 맛있고 좋은지 장구한 설명이 필요 없어도 거실이나 대청마루에 함께 앉아 수박을 먹으면서 개인적인 경험이나 추억들을 떠올리기며 얘기를 나누며 여름 오후를, 삶을 즐기고 할 것이다.

문학에 있어서 문학을 문학답게 하는 핵심은 단연코 상상력과 형상화이리라. 무한한 상상력을 통해서 닫혀 진 현실에 매이지 않으면서 현실을 반영하며, 현실을 견인하며, 세계를 열어가지 않던가. 인류의 문화유산인 문학 작품을 학교에서 다 다루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하기에 문학에 대한 보편적 원리와 작품을 가져와서 학교(제도권)에서 교육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 작품은 하나의 실체로서, 속성으로서, 텍스트로서 상황 속에 살아 움직이는 것과 같은 것이라서 학교 교육에서 문학작품의 생명성, 그 자체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문학 작품은 구체적 형상화로 옷을 입게 되는데, 형상화는 철학과 구별되는 변별적 자질이다. 형상화는 비유, 묘사, 이미지를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며 작품을 생생하게 살아 있게 하는 것이다. 1994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일본의 작가, 오에 겐자부로는 『회복하는 인간』에서 “…이미지는 <감정에 희망을 주고, 인간이고자 하는 우리들의 결의에 특수한 늠름함을 부여하며, 우리들 육체적인 생명에 긴장을 불러온다. 그러한 이미지를 포함하고 있는 서적들은 문득 우리들에게 친밀한 편지가 되는 것이다. - 바슐라르> 그렇구나, 그 동안 나는 온갖 종류의, 하지만 한결같이 ‘친밀한 편지’를 받고 있었던 거야, …낯선 이가 쓴 문장이지만 자신을 향해 있다고 깊이 느꼈던 건 그런 이유였어, …책이 그런 무엇이 되는 것은 상상력이 움직이기 때문이다”하듯 문학에 있어 상상력은, 이미지(형상화)는 본질인 것이다.

＃1.

국어(문학) 교사를 하는 아버지로서 아들이 겨울 방학 동안 사온 문학 참고서를 살펴보았다. 모두 네 권이었다. 값도 대단한 값이지만 한 손으로 들기가 버거운 무게였다.

앞표지에는 “18종의 문학 교과서에 수록된 문학작품을 총망라하여 쉽고 자세한 해설로 내신, 수능에 쉽게 대비할 수 있다”, 그리고 표지2에는 “전국의 국어(문학) 선생님(200명이 넘음)께서 검토해 주셨습니다”라고, 선생님의 존함과 학교명이 인쇄되어 있었다. 속지에는 참고서를 집필하며 고민하신 여러 선생님들의 변(辯)도 보였다. 그 변은 학생들의 질문으로 시작되는데 학생들의 질문은 이렇다.

“선생님, 그거 시험에 나오는 건가요?”

이것이 현실이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러면서 현실을 강화하는, 전국적으로 이름을 등재한 선생님의 이름을 보며 만감이 교차했다. 이름을 올린 여러 선생님들께서는 순수하게 참고서를 검토하셨겠지만 알게 모르게 부여한 교사의 이름으로 부여한 권위, 어떤 암시로만 읽혔다. 어떤 암시일까? 내가 답할 필요도 없지만 이런 게 우리의 문학 교육 현장의 모습이고 현실인 것이다.

＃2.

내년 대학 신입생부터 출신학교 별 인원공개, 인수위 “사생활을 뺀 모든 교육정보 발표” 고교․대학들 살아남기 경쟁 불붙을 듯. 어떤 정보 공개하나?

고교-교과목별 학생 성적, 국가․교육청 시행 학업 성취도 평과 결과, 졸업생 대학 진학 현황, 학교 폭력 발생 등, …예상되는 파장! 고교 - 선호․기피 학교 양분(서울은 2010학년도부터 고교 선택제 시행), 입학 성적에 따른 고교 서열화 -중앙일보(2008.1. 24. 1면)

우리의 고등학교 교육은 온통 입시뿐인 것만 같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입시에 올인하는 것만 같다. 대학 입시라는 이름 하에 블랙홀처럼 무차별적으로 빨려 들어가는 고등학교 교육. 겨울 방학 중에도 방과 후 학교(보충 수업) 교육 계획을 세우느라 난리법석이다. 국가․교육청 시행 학업 성취도 평가 공개는 학교간의 서열 경쟁이 본격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경쟁이 필수이고, 어느 사회에나 어느 시대에나 서열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며, 적자생존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무엇을 위한 경쟁이며, 지식 쌓기를 위한, 대학 입시를 위한 지금의 시험제도에서 서열화가 타당한지를, 우리 살아가는 사회가 적자생존의 원리만 존재하는 것인가에 답을 해주길 바란다. 방과 후 학교라는 이름 하에 국어, 영어, 수학, 사회, 과학의 보충 수업이 강화 될 것이다. 단위 학교마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학교 발전이라는 이름 하에, 강제적으로, 집단적으로 시행될 방과 후 학교. 소위 우리들은 기계라도 된 듯이, 기계가 되지 않으면 불안해 지는 강박증에 걸린 것만 같다.

2.

현재 일선학교에서는 제 7차 교육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2007년 개정 교육과정’이 2007년 2월 28일 고시되었지만 제 7차 교육과정의 기본철학과 체제를 유지하는 선에서 개정이 이루어졌기에 개정된 제 7차 교육과정에서 문학 교육은 그리 변동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제7차 교육과정은 기초·기본 교육에 충실을 기하고, 창의성을 계발·신장하며, 정보 능력의 고양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학습자 중심 교육을 중시하고, 지역 및 학교의 자율성 확대를 추구하였다. 그리하여 사회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기본 능력을 육성하고, 수준별 능력을 최대한으로 고려하는 교육을 표방하였으며, 교육 내용·방법의 다양화, 교육과정 평가 체제의 확립 등 21세기 지식·정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함양을 개정의 기본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이러한 총론적 지향점을 배경으로 하여 제7차 국어 교과과정에서 ‘문학’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 ‘국어’ 과목의 심화 선택과목(화법, 독서, 작문, 문법, 문학) 중의 하나로서 위치하는데 문학 교육의 목표를 이렇게 설정하고 있다.

문학의 수용과 창작 활동을 통하여 문학 능력을 길러, 자아를 실현하고 문학문화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바람직한 인간을 기른다.

가) 문학 활동의 기본 원리와 문학에 대한 체계적인 지식을 이해한다.

나) 작품의 수용과 창작 활동을 함으로써 문학적 감수성과 상상력을 기른다.

다) 문학을 통하여 자아를 실현하고 세계를 이해하며, 문학의 가치를 자신의 삶으로 통합하려는 태도를 지닌다.

라) 문학의 가치와 전통을 이해하고 문학 활동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여 문학 문화 발전에 기여하려는 태도를 기른다.

한 마디로 현장의 고등학교 문학 교육의 현실은 총론과 목표에도 너무 멀리에 있다. 문학교육이 입시에 너무 매달려 있다는 것이다. 학생도, 교사도, 학부모도 입시의 멍에를 벗어버릴 수 없다는 현실에서 10년 뒤 학생들이 살아갈 사회를 그려보는 것은 어떨까.

학생들은 21세기를 살아가고 살아갈 이들이다. 농업 사회, 산업사회를 거쳐서 정보 지식 기반 사회, 문화 사회가 도래하고, 도래한 오늘에 있어서 문학 교육은 상상력과 창조성은 대단히 중요한 미덕이다. 그 미덕을 지켜내기 위해서 교육적 현실을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이제는 주어진 답이 아니라 질문이 중요하며,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상상력에 의지해서 묻고 또 물어 보아야 한다.

상상력은 강제가 아닌 자율과 자유에 바탕을 둔다. 교육과정(제도권) 속에서의 문학 교육이 학생들의 자율과 자유를 얼마나 확보하고 있으며 보장하고 있는가, 그리고 교사와 학생에게 문학 교육이 행해지는 현장이 진정으로 즐거운가, 물어보아야 한다.

주어진 지면을 마무리 해야겠는데, 옆에서는 학생들이 청소를 하고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은 학생이 선생님은 좋다고 말을 거니 녀석이 의아해 한다. 옷도 문화현상의 하나이고, 찢어지고 구멍이 난 옷을 입는 행위는 자유로운 소통의 표현이야, 라고 하니 녀석들이 웃는다. 문학은 삶의 이야기이며 문화의 한 양식이며 소통이다. 눌러 담아도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이야기, 교육과정을 담아낸 문학 교과서도, 완강한 현실도 격물이며 치지인 것을 잊지 않을 때 교육 과정 속의 문학교육도 제 자리를 잡아 갈 것이 아닌가, 물어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