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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의 엉겅퀴 숲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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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하고 싶은 이야기의 한 부분들을 ‘티’라는 이름으로 어렵게 출판했다. 몇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는데 대중성이 없다고, 너무 어렵다고 편집진에서 고개를 저어 몇번 거절을 당했다. 출판사는 독자층을 먼저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또 거절당한 내 작품이 꼭 수작이라고 볼 수도 없다. 빚을 안고 넘어지는 출판사의 사정을 외면할 수 없고 영상화면에 길들여진 독자층을 원망하거나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다. 대중성으로 돌아서기보다는 좀더 진실한 언어에 신경을 쓰면서 나와 작품을 다시 보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여러번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대폭 수정하였다. ‘쟁기’에서 ‘아담의 쟁기’로, 다시 ‘땅이 네게 엉겅퀴를 낼지라도’로, 다시 ‘엉겅퀴 숲에는 흰뱀눈나비가 있다’로,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티’로 정하였다.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져 보이는데 그래도 여러 사람의 입에서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몇 사람은 아예 사전을 찾아가면서 읽었다고 했고 그런 중에도 모 대학 교수는 밤잠을 줄이면서 설레는 마음으로 읽었다고 했다. 나에게 한마디씩 하는 사람은 주로 좋은 쪽에서만 말해주었다. 경남문학관 심포지엄에서 이 작품이 주제가 되기도 했는데 그때에도 좋은 쪽에서만 말해주었다. 행사를 마친 뒤에 처음 만난 그 주제 강연자와 세 시간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리하게 지적한 내용도 더러 있다. 너무 서둘러 끝을 맺은 것이 아니냐고 했다. 장황해 보여 제법 긴 내용을 빼버렸는데 그 부분을 곁에서 본 듯 그가 말했다.
요즘 사람들의 눈은 그림보기에 길들여져 있다. 조금만 글이 많거나 어려우면 던져버린다. 고등학교 아이들 국어 교과서에까지 글 자리에 그림이 많이 들어왔다. 눈이 시원해져서, 관련 자료가 있어서 좋다. 꼭 글이어야, 그림보다 글이 많아야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글을 통한 머릿속 그림 그리기가 되어야 제대로 글 읽기가 되고 좋은 그림이 나온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입으로 하는 말들…… 사물, 그림이 먼저고 언어(기호나 의미)가 그 다음으로 거기 맺어지는 것으로 보인다(①). 그것이 동시에 겹쳐지는 것이 아름답다(②). 언어가 먼저고 사물, 그림이 그 다음일 수도 있다(③).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성경 창세기) 여기서 분명히 눈에 보이는 빛이 먼저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빛 이전에 거기 상응하는 언어(말씀)가 먼저 있었다. 소설의 가장 중요한 특성, 본질인 허구라는 것은 ③의 것에 무게를 둔 것이 아닐까. ①의 사물, 그림은 한 부분이나 그림자다. ②의 겹침은 아름다운 결과나 열매다. ①과 ③의 상태에서 ②로 가면서 겹쳐지는 일은 고독하나 아름답다. 언어는 그 씨가 되고 쟁기나 줄이나 옷이 된다. 이런 언어의 앞서고 뒤서고 겹치는 놀이를 생각하면서 『티』 속에 몇 군데 써넣었다.
“한 말의 씨가 자라 꽃피운 매화.
자음과 모음이 혀를 잘리면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교문 쪽의 그 눈부신 햇살이 갑자기 애들의 말에 끌려왔다. 그 눈부신 말.
공간이 없어도 시간이 없어도 말은 홀로 존재할 수 있다. 연처럼 떠올려야할 말 중의 하나인 행순.
엉겅퀴는 가실 달고 제 꽃을 피우지만 엉겅퀴는 그보다 더 귀한 엉겅퀴라는 제 이름말을 가지고 있어. 엉겅퀴는 엉겅퀴로 노래한다.
엉겅퀴는 엉겅퀴라는 말로 흰뱀눈나비는 흰뱀눈나비라는 말로 엉겅퀴와 흰뱀눈나비는 그런 어울림의 말로 남을 것 같았다. 행순이 보고 싶었다.”
소설 속 인간 탐구는 곧 언어의 쟁기, 언어 그 자체의 날을 세우며 언어의 옷을 입히거나 벗기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잡초 엉겅퀴처럼 아무데나 가시를 달고 나있는 것을 ‘엉겅퀴’라는 이름표를 미리 준비했다가 달아주는 일, 그 이름으로 꽃을 피우는 일이 소설 쓰는 사람의 할 일이 아닌가 싶다. 이름표를 준비했을 때 이미 그것은 존재하며 제 몸을 찾는다. 한 엉겅퀴도 중요하지만 그 엉겅퀴 숲에 흰뱀눈나비가 짝이 되어 나는 것, 이것은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답고 같이 날든가 앉아 꿀을 먹고 그 색깔, 향기에 젖어보고 싶은 것이다.
괜히 내가 쓴 작품을 좋은 말, 옷으로 미화시켜보지만 이름표를 잘못 달아주거나 나비가 떠난, 언어 그 자체의 생소함으로 가시를 단 노래하지 못하는 고독하고 어설픈 엉겅퀴로 잡초 무더기 속에 서 있는 듯한 느낌 또한 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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