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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在美) 한국작가들의 한계와 가능성- 『초당 The Grass Roof』의 작가 강용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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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에 발표한 자서전적 장편소설 『초당 The Grass Roof』으로 미국에서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 활동에 물꼬를 튼 강용흘은 그 뒤 김용익, 김은국에서 이창래, 수잔 최, 차학경, 김난영, 강견실에 이르는 재미(在美) 한국작가들의 한계와 가능성을 시초에서 보여준다는 점에서 징후적이다.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일어난 목사 학살 사건을 소재로 한 김은국의 『순교자 The Matyred』나 한국인 천민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군 장교를 거쳐 성공한 미국인 사업가로 변신하는 구로하타의 위장된 삶을 그린 이창래의 『제스처 라이프 A Gesture Life』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이들의 문학은 그 소재나 주제 면에서 한국인이라는 작가의 출생 조건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들어 미국적 소재의 고갈과 더불어 다문화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수민족 작가들의 작품이 주목의 대상이 됐고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미국 내 한국인의 정체성 찾기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 한국계 작가들의 작품 역시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 『네이티브 스피커 Native Speaker』와 『제스처 라이프』, 두편의 소설로 미국 문단의 촉망받는 신진작가로 급부상한 이창래의 성공은 부분적으로 이런 분위기에 힘입은 바 있을 것이다.
재미 한국작가들의 문학세계를 꾸준히 연구해 온 유선모 경기대 영문과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강용흘이나 김은국 등 초기 재미작가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원형성(原形性)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유년기를 한국에서 보내고 성장해 미국땅을 밟은 이들이 한국에서의 어린 시절을 회고조로 바라보거나 이민 생활의 고충을 토로하는 내용의 소설들을 주로 쓴 반면,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영어 교육을 받고 자란 이창래 등의 이민 1.5세대 내지 2세대 작가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의 충돌을 주로 주제화했다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이들 사이에는 한국인으로서의 뿌리 찾기라는 큰 틀의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한국인’이라는 이름으로 주어진 집단정체성을 벗어나 각자 삶의 자리에서 창조된 혼성의 문화, 시공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새로운 예술로 발전해야 할” 것이라는 일레인 김 UC버클리 교수의 진단이 타당해 보인다.
미국에서 한국인이 영어로 써서 출판된 사실상 최초의 소설(1928년 유한양행 창업주인 유일한 박사의 『내가 한국에서 소년이었을 때』라는 소설이 발표된 적이 있으나 본격적인 소설가의 소설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다)이라 할 수 있는 『초당』은 1931년 발표되었다.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깊이 개입돼 있는 이 소설은 주인공 한청파의 고향인 함경도에서의 자연친화적인 삶과 이를 파괴하는 일제의 침략 및 3․1 운동 과정 등을 거치면서 겪게 되는 주인공의 정신적인 발전 과정 등을 회고조의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주인공이 성공을 꿈꾸며 미국행 여객선을 타는 것으로 끝을 맺는 이 소설은 ‘아메리칸 드림’을 다룬 선구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전 세계에 조선이라는 미지의 나라의 역사와 전통, 또 일제의 강점과 이에 대한 저항 등을 그 어느 전문적 외교가나 정치인보다 훌륭하게 소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초당』은 강용흘에게 당시의 시대 상황에 비춰보았을 때 거의 기적과 같은 성공을 안겨 주었다. 구겐하임상, 북 오브 더 센추리상, 카민스키상, 와이즈 메모리얼상 등을 수상하고 퓰리처상 수상 후보에 올랐는가 하면 전 세계 10개 국어로 번역되어 저자의 명성을 드높여 주었던 것이다. 강용흘은 『초당』 이외에도 『동양인 서양에 가다』, 『행복한 숲』, 『낙천적 방원』 등 주로 자신의 한국에서의 유년 시절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꾸준히 발표하였다.
강용흘은 초창기 재외 한국인 작가들이 대부분 그랬듯이 화려한 학벌과 경력을 자랑한다. 함흥 영생(永生)중학을 졸업하고 도미해 보스턴대학에서 의학을, 하버드대학에서 영미문학을 전공한 뒤 브리태니카 백과사전 편집위원을 거쳐 말년에는 뉴욕대학과 예일대학 등에서 영문학과 비교문학을 강의하였다. 해방 직후에는 잠시 귀국하여 미 군정청 출판부장 등으로 재임하다 6․25 직전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1898년 함북 홍원에서 태어난 그는 1972년 플로리다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초기 재외 한국인 작가를 대표하는 강용흘과 이미륵의 인연도 특기할 만하다. 김재원 전 국립박물관장의 증언에 따르면 한살 차이(강용흘이 1년 위)인 두 사람은 강용흘이 『초당』으로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뒤 떠난 유럽 여행에서 처음 만났고, 이때 강용흘의 소설에 깊은 인상을 받은 이미륵이 역시 한국을 소재로 한 『압록강은 흐른다』를 독일에서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대학 시절 의학을 전공했다는 사실 역시 무심히 보아넘기기 힘든 우연의 일치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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