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풋내기 소설가 시절의 추억- 해남 대흥사의 동백나무 숲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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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가 소설가가 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젊은 시절 한때는 출가하여 머리 파르라니 깎은 스님이 되고 싶었다. 그렇다고 무슨 남다른 불심이 있어서도, 심오하고 엄숙한 철학적 사유 따위에 이끌려서도 아니다. 어째서인지 그냥 혼자인 삶이 절실하게 그리웠을 뿐이다. 가령 깊은 산 속 절 마당에 들어서면 폭포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쏟아져 내리는 그 고요, 그리고 그 고요 속을 그림자인양 홀로 묵묵히 스쳐 지나가는 스님들의 발걸음이 더없이 좋아 보였다.
그 미련이 아직 남아 있어서인가. 나는 여전히 산사를 좋아한다. 하기야 요즘엔 예의 그런 고요함을 간직한 절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도회지 근처야 말할 것도 없고, 이래저래 소문난 사찰들이란 이미 예외 없이 관광코스의 하나로 바뀌어 버린 지 오래기 때문이다. 그나마 겨울철이 되면 속인들의 발길이 뜸해져서, 산사는 그제야 비로소 제 본연의 고적함을 그런 대로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한겨울이야말로 깊은 산골짜기에 숨죽여 엎드린 산사의 제 모습과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셈이다.
그래서 나는 겨울방학이 되면 이따금 산사를 찾아 한두달씩 머무르곤 한다. 강단에 서게 된 이후로는 이삼년에 한번 꼴로 줄었지만, 예전에는 거의 매년 그랬다. 절 집에 방을 얻기가 어려운 경우에는 하다 못해 절 인근 마을의 민가를 찾아 들기도 했다. 사실 요즘엔 절 인심도 예전 같지가 않고 또 속인에게 방을 내주는 일을 대체로 꺼려하는 까닭에, 차라리 산사 근처의 민가에서 지내는 쪽이 훨씬 마음 편한 점도 있다.
그런 저런 연유로 그간 인연을 맺었던 사찰 중에서도 해남의 대흥사(지금은 대둔사로 이름이 바뀌었다)를 나는 가장 좋아한다. 79년이던가, 군 복무 후 대학 삼학년이던 여름방학 때 가까운 은사님을 따라 처음 찾아간 그곳은 마치 낙원의 풍경처럼 보였다. 동백나무를 비롯한 형형색색 풍요롭게 우거진 난대림의 밀림, 계곡을 따라 흐르는 옥빛 투명한 개울물, 숲 속에 고요히 엎드린 사찰의 지붕들, 천개의 불상을 모셔놓은 천불전 법당 안의 적요, 하늘과 땅 사이 온통 어디에도 가득히 넘쳐흐르던 그 청량한 바람…… 아직 이마 해맑고 눈빛 푸르던 청년 시절, 그날에 대면했던 그 풍경들은 내게 아직도 꿈같은 낙원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그 다음다음 해 겨울, 나는 큼지막한 배낭 하나 둘러매고 대흥사를 찾아갔다. 그리고 절 인근의 숲 속에 옹기종기 들어앉은 십여채의 소박한 민가들 가운데서 가장 작고 고색창연한 흙벽 집에 방 하나를 얻었다. 말 그대로 초가삼간인 그 집의 뒷방은 어찌나 작은지 나 혼자 드러누워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이 손에 닿았다. 집 앞 돌담 바로 너머로는 절 위쪽 골짜기로부터 이어지는 맑은 개울이 있어서, 밤낮으로 흘러내리는 물소리에 귀가 다 멍멍해질 정도였다. 그 집의 주인은 혼자 평생을 살아온 할머니였다.
신춘문예로 갓 얼굴을 내민 나는 대학 졸업 후 직장도 없이 소설만 쓰겠다고 그곳을 찾아간 터였다. 그 좁은 방에 틀어박혀 있기가 답답하면, 밤낮 가리지 않고 불쑥 밖으로 나가 산 속을 정처 없이 쏘다니거나 개울가에 몇 시간이고 멍하니 쪼그려 앉아 있곤 했다. 묘하게도 나는 칠흑 같은 밤의 산 속 외출을 즐겨했다. 결코 담이 큰 편이 아닌데도, 그 당시엔 어째서인지 무섭다는 느낌도 없었다. 자정 무렵 대웅전에 들어가 혼자 반가부좌로 앉았기도 하고, 절 입구의 그 유명한 난대림 수풀의 터널을 혼자 걸으며, 잎새 다 져버린 가지들 사이로 오르르 돋아난 별들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기도 했다. 그러나 그 몇달 동안 마을사람들이 줄곧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내내 모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실연을 해서 넋이 나갔거나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고들 했제. 덜컥 자살이라도 할까 봐서 내 속으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몰라.”
반년이 다 지났을 무렵에야, 주인 할머니는 이제는 안심이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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