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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문학의 흐름과 미래의 전망

  강은교와 '비리데기' 설화

  강은교는 '시인과 사회의 만남'을 줄기차게 추구해온 시인이다. 그래서 그녀의 시에는 서정성과 서사적 산문정신이 늘 공존해 있다. 첫 시집 『허무집』(1971)에서 70년대의 암울했던 사회상을 섬뜩하리만큼 예리하게 반영했던 그녀는 『빈자일기』(1977)에서 어두운 시대상황의 풍경화와 그 속에서 소외된 개인들의 초상화를 강렬한 언어와 상징적인 이미지로 그려내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어 정치적 억압의 시대였던 80년대에 나온 『소리집』(1982)에서 강은교는 군사독재에 의해 억압된 모든 개인의 소리들을 꺼내어 들려주는 시도를 보여주어 다시 한번 찬사를 받았다.

  그녀가 예로 들고 있는 전래동화 속의 인물 '비리데기'는 바로 그러한 시인과 사회의 만남을 가능하게 해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한국 서사무가(敍事巫歌)의 여주인공인 비리데기는 임금에게 버림받은 일곱번째 딸로서, 부모를 저주하지 않고 오히려 병든 부모를 구하기 위해 저승으로 약수(藥水)를 구하러 간다. 한국사회에 의해 버려진 딸 '비리데기'는 독재정권에 의해 버려진 시(詩)의 상징이며, 그래서 시인의 내면세계와 억압적 사회를 연결해 주는 좋은 메타포가 된다. 모든 문화적, 사회적 억압을 부드럽게 끌어안고 용서하며, 병든 억압자들을 구하기 위해 저승까지 가는 사람이 곧 시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강은교의 시는 곧 생명을 구하는 약수가 된다.

  비록 90년대 들어 강은교의 시들이 보다 더 서정적이고 명상적이 되었으며, 시와 언어와 내면세계에 대해 보다 깊은 성찰을 보여주고는 있지만, 그녀의 시 세계에는 여전히 변함 없이 개인과 사회에 대한 관심이 깊이 스며들어 있다. 최근 시집 『시간은 주머니에 은빛 별 하나 넣고 다녔다』(2002)에서도 그녀는 놀랄만큼 아름다운 서정성과 예리한 사회성을 절묘하게 조화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강은교에게 있어서 시는 언제나 영혼을 부드럽게 해주는 사랑이고 종교가 된다. 그래서 그녀의 시 쓰기는 곧 우리의 의식 속에 갇혀 날지 못하고 있는 영혼의 나비들을 끊임없이 문을 열고 날려보내는 작업이 된다.

  김승희의 부화와 변신의 꿈

  김승희가 1973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응모한 두 작품인 「그림 속의 물」과 「우리의 갑각문화(甲殼文化)」는 앞으로 전개될 그녀의 시 세계를 이미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 하다. 「그림 속의 물」은 딱딱한 캔버스의 풍경화 속에서도 예술가는 부드러운 물을 흐르게 하여 그림을 살아나게 해야 한다는 시인의 메시지가 들어있고, 「우리의 갑각문화」 역시 패각으로 굳어진 현대사회와 문명에 대한 시인의 준엄한 비판이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승희는 처음부터 경직된 모든 것들 - 예컨대 지배문화, 독재정권, 가부장적 남성문화 등 - 에 반발해 '그림 속의 물'처럼 부드럽고 유연한 것을 추구한 시인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녀의 시에서 부드러운 '물'은 메마르고 갈라진 우리의 영혼을 부드럽게 적셔주고 심지어는 죽은 것들까지도 생기를 불어넣어 다시 살려낸다. 마치 거투르드 스타인의 유명한 글 「부드러운 단추(Tender Button)」처럼, 김승희의 시도 모든 딱딱한 것들을 부드럽게 만드는 마법의 힘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녀의 붓은 『미국의 송어낚시』의 저자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황금펜촉'처럼, 말라버린 하천을 다시 흐르게 하고, 죽어버린 은빛 송어들을 다시 되살려낸다.

  그러한 힘을 가진 시인의 '물'은 바로 모든 경직된 것을 부드럽게 감싸안는 유연한 '여성적 원리'이고, 문학과 예술의 창조적 힘이며, 또 죽음을 초월하는 상상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녀의 시에 죽음의 사자(使者)인 타나토스와, 비상하는 데달러스의 날개와 하늘로 솟아오르는 불사조의 이미지가 자주 등장하게 된 것도 바로 그런 맥락이었다. 신이나 운명에 대한 저항과 우주로의 비상(飛翔)의식이 두드러졌던 첫 시집 『태양미사』(1979)에도 그러한 분위기는 짙게 깔려 있었다.

  두 번째 시집 『왼손을 위한 협주곡』(1983)을 내면서 김승희는 오른손으로 표상되는 지배문화의 억압에 대항하는 왼손의 세계를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에게는 죽음과 여성의 운명, 또는 억압적 관습과 지배문화에 저항하는 것은 모두 왼손의 세계에 속했다. '왼손'은 또한 또 다른 가능성과 또 다른 세계로의 눈뜸을 의미했으며, 갑각문화를 부드럽게 적시면서 '그림 속의 물'이 포용하고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리얼리티를 상징했다.

  경직된 편견과 굳어진 패각 속에 갇혀 있는 인간 조건에 대한 김승희의 성찰은 『달걀 속의 생』(1987)에 잘 나타나 있다. 서늘한 전천후 냉장고에서 부화의 꿈을 상실한 채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달걀들에서 그녀는 외부 리얼리티와 단절한 채 마취되고 마비되어 있는 현대인들의 가엾은 모습을 본다. 그러나 시인은 절망하지 않고, 달걀껍질을 깨고 부화하는 난생설화의 꿈을 꾼다.

  김승희는 마녀가 용납되지 않는 사회에서 "빗자루를 타고 달리며 검은 웃음"을 웃는 용기 있는 시인이다. "늑대와 함께 달리는" 그녀는 사회적, 문화적 속박인 존재의 껍질을 깨고 밖으로 나오며,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껍질의 의미를 천착하는 시인이며, 끊임없이 부화와 변신(metamorphosis)의 꿈을 꾸는 시인으로 현대 한국시단을 대표하고 있다.

  황석영과 한국현대사

  황석영의 삶은 매 시대 파란만장한 한국 현대사와 긴밀히 맞물려 있다. 예컨대 그는 한국과 중국이 아직 일본 식민지였던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났고, 1945년 해방이 되자 평양으로 이사와 북한에서 살다가 1949년에는 서울로 내려왔다. 이어 1950년,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전쟁이 터졌으며, 종전 후 어린 시절을 전후의 폐허 속에서 보냈다.

  고등학생 때인 1960년에는 4·19 학생혁명이 발발해, 황석영 역시 이승만 정권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는 데모대에 합류해 투쟁했다. 드디어 이승만이 하야해 하와이로 망명하고 윤보선과 장면 정권이 들어서 한국은 민주주의가 회복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불행히도 1961년 박정희가 이끄는 군사 쿠테타가 발발함으로써 향후 30년 가까이 계속되는 군사독재정권이 시작되었다. 무력으로 정권을 찬탈했던 박정희는 당시 미국의 인정을 받기 위해 미 행정부의 월남파병 제의를 받아들였고, 공병대인 비둘기 부대를 필두로 해병 청룡부대와 육군 맹호부대를 월남으로 보냈다. 황석영은 1966년 해병대에 들어갔고 이듬해인 1967년 월남에 파병되었다.

  황석영의 197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탑」은 바로 그 자신의 월남참전 경험에서 나온 탁월한 문학작품이다. 황석영의 실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 소설은 월남의 한 격전지에서 월남인들에게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는 탑을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한국의 해병대원들의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한국군은 처절한 전투 끝에 수많은 사상자를 내고 드디어 탑을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전투가 끝나고서야 현지에 도착한 미군 부대장은 미군들에게 아무 소용도 없는 탑을 부수라고 명령한다. 아시아인들이 그렇게 어렵사리 목숨걸고 지켜내었던 탑은 미군들의 기계에 의해 일순간에 무너진다.

  황석영은 이 단편소설에서 월남전의 아이러니와 패러독스 뿐 아니라, 서구의 근대화와 테크놀로지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져 가는 동양의 가치관과 전통 문제까지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는데 성공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군은 근대화의 상징이고, '탑'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 사라져 가는 우리 고유 전통의 강력한 은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와 동시에, 「탑」은 "우리는 과연 월남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뛰어난 전쟁소설이자 반전소설이기도 하다. 황석영은 후에 『무기의 그늘』(1987)이라는 장편을 통해 교묘하게 월남전에 개입한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고발하고 있는데, 그것의 단초 역시 1970년의 「탑」이라고 할 수 있다.

  황석영이 월남에서 전쟁을 겪고 있는 동안, 한국에서는 박정희가 조국 근대화를 부르짖으며 한국사회를 산업화시키고 있었다. 소위 개발독재라고 불리는 당시의 산업화는 수많은 공장 건설과 도시 집중, 그리고 심각한 이농현상과 도시 빈민가의 확대를 초래했다. 그 결과, 산업사회에서 소외된 계층과 빈민들과 부랑자들이 생겨났고 목가적인 고향을 잃어버린 떠돌이들이 생겨났다. 황석영의 대표작 『객지』(1971)와 『삼포가는 길』(1973)은 바로 그런 암울한 시대적 풍경과 뿌리 들린 사람들의 삶을 문학적으로 형상화한 기념비적 작품들이다.

  『삼포가는 길』에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흔히 발견되었던 세 부류의 사람들 - 떠돌이 노동자, 전과자, 술집 작부 - 이 등장한다. 산업화로 인해 급속도로 진행되던 비인간화 과정에서도 아직은 따뜻한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고 있는 그들에게 '삼포'는 돌아가고 싶은 산업화 이전의 이상향이다. 그러나 작품의 마지막에 그들은 삼포 역시 산업화되고 개발되어 예전의 정취를 상실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실망한다. 결국 '삼포'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유토피아였던 것이다.

  『객지』에서 황석영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소외당하고 착취당하는 노동자들의 삶을 생생하고 설득력 있게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황석영은 단순한 사회저항소설가나 노동문학가가 아니다. 그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언제나 주인공의 깨달음과 인간성 회복과 정신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써, 사회적 이슈를 다루면서도 예술적 형상화에 성공하고 있는 역량 있는 작가이다.

  산업화와 더불어 한국사회는 군부독재정권의 억압에 시달리고 있었다. 작가 황석영은 모든 종류의 억압에 반대하는 사람이었고, 따라서 필연적으로 1980년 광주민중항쟁에 참여하게 된다. 한 때 해남으로 내려가 은둔하던 그가 광주에 체류하며 국민교육헌장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해직된 전남대 교수들과 반독재투쟁을 시작하고 있을 때 역사적인 광주사태가 발발한다. 그는 결국 반체제 민주화 교수들과 함께 군 보안부대에 체포되어 수감되었고,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나중에 광주민중항쟁을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권력 장악과 유지를 위해 동족을 억압하고 통일에는 무관심한 군부독재정권에 실망한 황석영은 1989년 '통일운동 연합체'를 결성하는 과정에서 북한을 방문하게 되고 한국에 돌아올 수 없어 이후 독일에서 2년 반, 그리고 미국에서 1년 반 동안 망명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3년 귀국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7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된다. 독일과 미국의 지속적인 청원과 국제사회의 끈질긴 압력으로 인해 황석영은 5년 형기를 마친 1998년 대통령 특사로 풀려나게 된다. 이렇게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매 순간마다 황석영은 그 현장에 있었고, 그런 의미에서 그는 몸으로 역사를 살아온 작가였다.

  오늘날 황석영은 독일과 미국에서 주목받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가 되었고, 주요작품들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일본어, 중국어 등으로 번역된 세계적인 작가가 되었다. 이는 그가 독재정권에 저항했고, 소외되고 억압받는 계층을 옹호했을 뿐만 아니라, 투옥작가로서 또 망명작가로서 보여준 삶과 문학의 일치, 그리고 치열한 문학정신과 뛰어난 예술혼 때문일 것이다.

  황석영은 한국문학이 보다 더 큰 범위의 아시아 문학과 연대해 궁극적으로는 세계문학으로 발돋움하기를 바라는 폭넓은 작가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문학세계는 한국을 초월해 아시아로 뻗어나가고 결국은 세계로 확대될 것이다. 그동안 황석영은 국내에서 '리얼리즘의 대가'라는 평을 받았다. 그러나 황석영은 세계문단에서 '포스트식민주의의 대가'로 알려져야만 하는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이다. 왜냐하면 그가 추구하는 문학세계는 모든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탈식민주의적' 세계이고, 그가 탐색하는 시각 역시 보이지 않는 문화적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는 탈식민주의적 시각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