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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의 수용 가능성에 대한 모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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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작품을 한국어로 옮기든 한국작품을 외국어로 옮기든, 번역 대상작품을 선정할 때에는 여러 가지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 중에서 나는 작품성과 독자의 수용 가능성에 많은 비중을 둔다. 즉, 작품 선정은 번역자가 개인적으로 아무리 좋아하는 작품이라도 그 작품이 현지 문학계에서 어떤 대접을 받을 것이며, 세계적인 수준에 있음을 보여줄 수 있는지를 고려해서 이루어진다. 그것은 하나의 작품이 외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의미를 넘어, 그 문학이 세계문학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기초적인 요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 세계문학의 선두에 서 있는 스페인어권 문학계에 소개하여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국내작품을 고르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우선적으로 국내문단을 지배하고 있던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배제해야 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어떤 한국작품이 스페인어권에 소개되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던 1998년, 마리오 아랑고 교수가 한국작품을 번역하고 싶다는 생각을 전해왔다. 이 당시 우연히 읽고 있던 텍스트는 바로 이상의 「봉별기」와 「동해(童骸)」였다. 그 작품들은 현재 씌어지고 있는 국내의 작품들과는 달리 문체와 내용이 매우 집약적이고 긴장성을 잃지 않고 있으며, 현재의 관점에서 보아도 매우 실험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공동번역자와 상의한 끝에, 주저 없이 이상의 단편소설들을 번역 대상으로 삼았다. 번역 과정은 우선 번역자가 1차 번역을 한 후, 그것을 공동번역자가 윤문을 하고, 그 다음에 번역자와 공동번역자가 함께 만나 재검토하면서 양측의 의문점들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상의 작품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우리에게 알려진 「날개」는 - 적어도 번역에 있어서는 - 그의 단편소설 중에서 가장 쉬운 작품에 속한다. 그 이외의 작품에서는 생소한 단어나 여러 의미를 가진 말들이 종종 사용된다. 또한 사회적·문화적 콘텍스트가 번역자의 삶과 동떨어진 1930년대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도 번역의 걸림돌로 작용했다. 따라서 1차 번역상의 몇가지 오류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오류는 작품의 흐름과 의미의 통일성을 중시하는 '완벽주의' 지향형의 공동번역자에 의해 몇차례 지적받아 수정되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원문 번역의 의미 전달을 책임지는 '덤벙쟁이' 1차 번역자와 그것을 다시 쓰는 공동 번역자의 개성이 서로 달랐지만, 결국 그런 개성의 차이가 이상의 작품을 성공적으로 번역할 수 있었던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번역 과정 속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집약적인 문체를 어떻게 번역하고 작품의 긴장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것이었다. 그것은 결국 현대 라틴아메리카의 문학작품들처럼 형용사의 효과적인 사용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방법은 문장 차원에서 의사를 소통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형성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전달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또한 신조어도 해결되어야 할 문제였다. 가령 「동해(童骸)」의 경우가 그것이다. 김윤식 교수가 엮은 『李箱문학전집 2』를 보면 "童孩를 섬뜩한 느낌을 주기 위해 일부러 童骸로 파자(破字)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그래서 "섬뜩한"과 "아이", 작품의 전체 의미, 그리고 그의 작품에 종종 장 콕토의 이름이 등장하는 것에 착안하여 "무서운 아이 El niño terrible"로 번역했다.
이것 이외에도 작품에 사용되는 부호체계 - 가령 본문 중에 사용된 괄호나 꺾쇠 - 를 그 기능에 따라 통일하는 작업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런 관점에서 「날개」의 첫 문장인 "「剝製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의 경우도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왜 꺾쇠 기호를 썼는지, 그것이 인용부호라면 첫 문장은 이상의 작품에 종종 등장하는 에피그램은 아닌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에피그램이라면 단락이 구분되어야 하지만, 혹시 30년대 출판 당시 실수로 그 여백이 사라진 것은 아닌지 등등……
한편 이 책의 제목이 이상의 작품에는 등장하지 않는 "불꽃(Flores de fuego)"이 된 이유에 대해 종종 질문을 받는다. 익히 짐작하다시피 이것은 출판사 측에서 보다 암시적인 제목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스페인어로 '불'은 열정을 상징하고 '꽃'은 여인들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상 작품의 전체적인 내용상 큰 무리가 없었고, 그런 이유로 번역자는 흔쾌히 그 제목을 수용했던 것이다.
이상의 단편소설처럼 번역자의 콘텍스트와 달라 이해가 힘든 작품들을 번역하기 위해서는 국문학자들의 기존 해설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이상(李箱)은 많이 언급되는 작가지만, 불행히도 기존의 해설이나 평론으로는 위의 의문점들을 해소할 수 없었다. 한국문학의 세계화가 번역자과 유관 기관에만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 문학계가 하나가 되어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좋은 사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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