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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스런 역사의 수레 바퀴를 벗어나 삶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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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장편소설을 손에 들고 끝까지 읽는다는 것은 이런저런 방해들로 어렵다. 또 그렇게 할만큼 매력 있는 소설도 쉽지 않다. 매력 있는 소설들은 어차피 읽고 또 읽고 그러는 것들이고. 그러니 아직 번역이 되지 않았던 좋은 소설이 정말 읽음직하게 번역되어 출판되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작품의 중요성이 이미 알려질 만큼 알려졌는데도 막상 작품을 대할 수 없었던 경우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반 곤차로프의 장편소설 『오블로모프』의 우리말 최초의 번역이 나왔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이 소설은 정말 흔하지 않게 깊이있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긴 소설이지만 책을 읽는 동안 지루하거나 어색하게 여겨지는 부분이 거의 없다. 이 소설이 이미 거의 150년 전에 나온 소설인데도 말이다. 『오블로모프』의 문학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잘 알려져 있다. 이 소설은 봉건지주인 목가적 인간 오블로모프가 자본주의 태동의 분위기 속에서 침몰해 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특히 주인공 오블로모프가 19세기 후반의 러시아 인텔리겐차 담론 속에서 부정적 인간의 전형으로서 제시되면서 문학사 뿐만 아니라 문화사, 사회사의 측면에서도 가치가 높은 작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소설이 출판 당시부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곤차로프가 인간을 보는 균형잡힌 시선 때문이다. 곤차로프는 과격한 사회혁명가 도브롤류보프처럼 오블로모프를 매도하지 않는다. 곤차로프는 독자로 하여금 순수한 오블로모프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게 만든다. 이제 합리주의 및 자본주의의 폐해가 드러나 지구의 지성인들이 자기반성의 목소리를 내는 시점에서 이 작품은 가히 현대적이요, 현장적이라 할 만하다. 인간의 심리와 내면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풀어나가는 작가의 역량과 긴 호흡의 자연묘사의 탁월함에 즐거움을 맛보는 동안 독자는 주인공 오블로모프를 비롯한 여러 인물들을 만나며 인간사의 부질없음, 그럼에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에 대해 차근차근 돌아보게 된다. 다 돌아보고 난 후 독자는 심연 앞에 선 듯 아찔하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이니 어쩌겠는가! 어쩌란 말인가! 어쩌면 좋단 말인가! 가슴은 미어진다. 삶의 진상이 이렇다니!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서 또는 자기 주변에서 오블로모프를 발견하고 슬픔과 무기력을 느끼게 된다. 계산 속의 세상에서 주변과 자신 사이의 관계 설정에서 실패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특히 주변이 모두 복잡하고 번잡하고 불투명하고 귀찮고 하찮을 때 오블로모프처럼 자기 세계 속에서 조용히 살고자 하면 무기력하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우리는 바로 가까이에서 보고 있으니! 오믈로모프에게 죄가 있나? 아니면 그를 둘러싼 말도 안되는 복작대는 사회가 죄인가? 그가 기댈 수 있는 여인이 말없는 넉넉한 여인 아가피야이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올가가 아니었던 것으로 보아 오블로모프의 문제는 합리성으로써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보인다. 이러한 문제는 이제 바로 이 땅에서도 심각하게 묻게 되는 문제가 되었다.
역자 최윤락씨는 우리말을 통하여 우리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해보도록 자연스럽게 이끄는 탁월한 우리말 구사 능력을 가졌다. 이미 10여년 전에 그가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를 번역하여 그의 노련한 문장솜씨를 알린 것은 노문학도가 아니라도 알만한 사람은 아는 사실이다. 그의 번역을 읽노라면 우리말 소설을 읽는 듯이 소설 속의 인물들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히 『오블로모프』의 번역에 있어서 매우 어려운 부분일 지주 오블로모프와 옛날식의 충실하면서도 버릇없는 하인 자하르와의 관계를 눈앞에 보듯 하게 번역한 솜씨는 감탄할 만하다. 아쉬운 점이라면 우리나라의 많은 독자들이 아직 잘 모르는 그곳의 기후 및 지리, 네바강의 다리놓기라든가, 아리아 카스타 디바의 음조, 책들이 언급될 때 그것들의 맥락, 러시아에 서양문화의 유입 정도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좀더 친절한 주석이 있으면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또 간혹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도 없지 않은데 그것이 역자의 책임인지 독자의 책임인지 더 두고 볼 일이다.
※ 『오블로모프』는 재단의 2000년도 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상작으로 선정되어 문학과지성사에서 '대산 세계문학총서' 제 10권과 11권으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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