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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구점 여인'에게 길을 묻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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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이 마지막 자기의 빛을 거둬들이는 시각이었다" 라는 번역문투의 문장으로 시작하여 "하늘에는 별이 없었다. 가슴은 금방 버석버석 소리를 내며 부서져내릴 듯 건조해져 있었다" 라고 끝나는 60장짜리 짧은 단편소설 「완구점 여인」은 1968년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부문에 당선된, 나의 데뷔작이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한 여고생이 방과 후 빈 교실에 남아 있다. 어두워지는 빈 교실에서 그 소녀는 급우들의 서랍들을 뒤지고 누군가 잊고 간 먹다 남긴 도시락을 열어 보고, 구역질을 하는가 하면 지갑을 훔치고 혼잣말을 하고, 청결하게 반들거리는 복도에서 치마를 걷어올리고 선 채로 오줌을 누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소녀는 비오는 밤거리를 걸어 장난감 가게를 찾아간다. 외로움 때문에 "춥고 황량한 내부에 하나씩 등불을 밝히듯" 빨간 플라스틱 오뚜기를 사모으는 것이다. 완구점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그 가게를 지키고 있는, 불구의 여인 때문이다. 주인공에게는 소아마비를 앓아 휠체어에 의지하여 생활하던, 여러 해 전 추락사한 남동생이 있었다. 동생과 마찬가지로 두 다리를 못써 휠체어를 타는 그 완구점 여인에 대한 감정은 동생에 대한 그리움, 죄책감과 겹쳐지면서 사춘기 소녀의 복잡하고 위태로운 정서속에서 동성애적 색채로 은밀하게 자라난다. 소녀는 깊은 상실감과 외로움을 안고 여인을 찾아가지만 그러나 완구점은 찻집으로 바뀌고 완구점여인은 떠나고 없었다……>
발표된 후 읽어보고 그 사춘기적 감상벽과 작품 속에서 확연히 드러나 보이는 나 자신의 내면 풍경이 부끄럽고 민망스러웠다.
청춘의 어느 날인들 버겁고 혼란스럽지 않을까마는 대학 2학년이던 1967년도는 내게 특히 힘든 해였다.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당시에는 국내 유일하게 문예창작과가 있는 서라벌예대에 진학했으나 입학하여 일년여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고작 단편소설 한편을 썼을 뿐 자학과 열패감으로 점철된 날들이었다.
신춘문예를 염두에 둔 문청들에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기는 마의 시간들이었다. 신춘문예 투고는 연례행사이자 도전이고 한해의 정산이었다. 일종의 계절병이기도 하여 저마다 마음속에 대단한 것들을 지닌 양 눈빛이 깊어지고 말을 최대한 아끼며 한시적 칩거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그 가을, 스스로 '재능없음'의 결론을 내리고 뭔가 인생의 진로를 재조정해야 할 것 같은 초조감과 혼란에 빠져 있던 내가 묵은 원고를 끄집어내어 손질하게 된 연유는 김동리 선생님이 지나가는 말씀처럼 던지신 "신춘문예 안하나?"였다. 그 말씀에 '내가 어찌 감히……' 하면서도 무섭게 가슴이 뛰었고 눈밝으신 선생님이 내게서 어떤 가능성을 보신 탓이라 받아들이고 싶었다. 한달 이상을 방안에 틀어박혀 나름대로는 무던히 공을 들여 끝을 맺었지만 여고생을 주인공으로 한 것이라던가, 상황설정이나 구성에 허점이 많아 당선을 바랄 수는 없다고 거듭 자신을 타일렀다.
집에서 중앙일보를 구독하고 있었기도 했고 마감일이 가장 늦다는 것이 중앙일보를 택한 이유였다. 마지막 날 마감시간에 아슬아슬하게 대어 순화동의 중앙일보 계단을 떨리는 마음으로 올라갔다. 원고묶음을 들고 잔뜩 긴장하여 더듬대는 내게 수위아저씨는 출입구 곁의 철망바구니에 던져넣으라고 턱짓을 했다. 그 안에는 이미 많은 원고뭉치들이 쌓여 있었다. 아무리 당선이 무망한 일이라고 생각했다손쳐도 거의 분신, 아니 나 자신이랄 수 있는 원고를 던져놓고 나오는 마음이 심상할 리 없다. 순화동에서 법원을 지나 스산하게 저무는 덕수궁 길을 끼고 마치 운명의 주사위를 던진 듯 천천히, 하염없이 걷던 기억이 어제처럼 생생하다.
크리스마스 전날엔가, 당선전보를 받았다. 믿어지지 않는 소식에 기쁘다기보다 준비없이 나서게 된 불안, 두려움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날 밤 나는 수준에 못미치는 작품을 당선시킨 것은 신문사측의 착오이니 취소한다는 꿈을 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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