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1.
주지하다시피 우리는 순혈주의적 민족 관념에 바탕해 단일민족신화를 끊임없이 재생산해왔다. 다문화란 말이 익숙해진 것은 이주 노동자들이나 결혼 이민자들이 대량으로 몰려오기 시작한 2000년대부터이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말미암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량으로 유입되었으며 농어촌 남성의 40% 이상이 국제결혼을 했을 정도로 결혼 이민자의 수도 빠르게 증가하였다. 이주노동자들이나 결혼이민자들을 보며 우리는 단일민족사회라는 굳건한 신화에서 벗어나 다문화 사회로서의 대한민국을 새롭게 사유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 현상은 그 이전에도 나타났다. 해방 이후 나타난 다문화 현상은 미국과 관련해서이다. 6·25는 수십 개국이 참여한 국제전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후 수만 명의 미군이 상시적으로 대한민국에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혼혈아로 대표되는 다문화적 현상을 오랫동안 겪어 왔던 것이다. 한편으로는 단일민족신화를 강요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 초강대국의 절대적인 영향력 아래에서 살아야 했던 상황은 우리에게 굴절된 의식을 심어다 주었다. 그것은 혼혈아에 대한 멸시와 미국(백인)에 대한 숭배이다.

이러한 굴절된 의식은 전성태의 「이미테이션」(≪문학과사회≫, 2008년 겨울호)에 잘 나타난다. 이 작품에서 대한민국의 학교는 단일민족신화를 강박적으로 교육한다. 고등학교 국사선생님이 읽으라고 강요하는 교과서에는 “우리 민족은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단일민족국가로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문장이 적혀 있으며, 초등학교 선생님은 “우리는 생김새가 서로 같고 같은 말과 글을 사용하는 단일민족”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날 때부터 유난히 흰 피부와 누르스름한 곱슬머리를 타고난 주인공은, 어디를 가든 ‘양키 아니면 튀기’ 혹은 ‘아이노고’라는 말을 듣는다.

고통스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은 ‘미국계 혼혈’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는 한 혼혈아가 한국 사회에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어느 날부터인가 완전히 미국인 행세를 하여 인생반전을 이룬 기사를 읽는다. 그 기사를 읽은 후 그는 자신의 이름을 기사 속 혼혈아의 이름인 게리 워커 존슨으로 바꾼다. 그리고서는 “미국 로컬 스쿨을 그대로 옮겨놓”았다고 선전하는 영어 학원에서 원어민 강사 노릇을 하며 지낸다. 이러한 굴절된 의식은 백인에게 비참하게 차이고도 미국이나 호주로 유학 가는 게 꿈인 미예에게서도 나타난다. 김재영의 「코끼리」에서는 네팔에서 온 쿤이 “한국 사람들은 단일민족이라 외국인한테 거부감을 갖는다고?”라며 질문하면서, 곧 “웃기는 소리 마. 미국 사람 앞에서는 안 그래. 친절하다 못해 비굴할 정도지”라고 말하는 대목이 등장한다.

2.

2000년대 다문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집단이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이다. 이들은 오랫동안 주류화된 존재들과 다른 취급을 받고 한국 사회의 동일성에 균열을 일으키는 존재들로서 경원시되었다. 이 중에서도 우리 소설을 통해 집중적인 조명이 되어온 것은 이주노동자들이다. 이주 노동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배제되어 ‘벌거벗은 자’가 되어가는 현실을 재현하는데 집중하였으며, 고통 받는 이들의 존재는 우리 안의 제국주의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김재영의 「코끼리」(≪창작과비평≫, 2004년 가을호)는 이러한 경향을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에서 이주노동자는 그야말로 인간이 아닌 짐승이다. 아버지와 ‘나’는 얼마 전까지도 돼지축사로 쓰였다는 건물에 살고 있다. 식사동 가구공단에 있는 이 건물에는 미얀마,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네팔, 러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그야말로 ‘돼지’같은 대우를 받으며 살고 있다.

아버지는 네팔 출신인데 한국에는 네팔 대사관이 없어 혼인신고를 못했다. 그 결과 ‘나’에게는 호적이나 국적도 없으며, 조선족인 어머니는 집을 나가버렸다. 아버지는 힘겨운 노동으로 지문이 없다. “사람들은 지문이 없으니 영혼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지문이 없는 아버지는 실제로 한국 사회에서 아무런 고유성(존재가치)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은 모두 “야 임마, 혹은 씨발놈아, 라는 이름의 외국인 노동자 한 꿰미”일 뿐이다. ‘나’가 한국사람 같은 노란 피부를 얻기 위해 탈색제가 든 물로 세수를 하는 것처럼, 검은 피부는 한국에서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주노동자들이 겪는 고통을 남김 없이 전시한 일종의 박물관이다. 알리와 베트남 아저씨 등의 손가락이 묻혀 있는 손가락 무덤, 온몸에 시퍼런 멍과 상처를 지닌 채 휴일도 없이 하루 열여섯 시간씩 일하는 쿤 형, 땀과 화학약품과 욕설에 절어 ‘짐승 냄새’가 나는 아버지, 백화점에 들어가는 것조차 거부당하는 이주노동자들, 관광나이트클럽에서 자신의 육체를 팔아 살아가는 러시아 출신 마리나, 자신의 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 위해 ‘나’를 집으로 초대해 괴롭히는 친구의 엄마 등이 ‘고통의 박물관’을 채우는 항목들이다.

제목이기도 한 코끼리는 이주노동자들을 상징한다. 이 때 코끼리가 지니는 의미는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고통의 ‘외’(외는 미얀마 말로 소용돌이라는 뜻이다)에 빠진 모습이다. 이들은 인간적인 대우를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고유의 전통과 문화도 모두 잃어버렸다. 나딤 몰라라는 인도 출신 노동자는 동료가 사고로 죽었을 때 조의금은커녕 얼굴 한 번 내밀지 않을 만큼 인간성을 상실했다. 다음으로는 힌두교 신화에서 등장하는 “우주를 떠받치는 기둥”으로서의 의미이다. 이들은 뼈 빠지는 저임금 노동을 통해 휘황찬란한 자본주의 문명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들인 것이다.
김재영의 「코끼리」는 네팔 출신 노동자와 조선족 출신 어머니를 둔 열 세 살짜리 소년의 시각으로 이주노동자를 바라보고 있다. 이 순간 그들의 고통은 절실하게 재현된다. 동시에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과는 무관한 이 사회의 완전한 타자로서 게토화되는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타자의 타자화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3.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과 손홍규의 「이무기 사냥꾼」은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인의 시각에서 그려나간다. 무엇보다 이들 작품은 ‘가진 것 없이 고통받는 자들’이라는 관점에서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의 연대가능성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공선옥의 「명랑한 밤길」(≪창작과비평≫, 2005년 가을호)에서 농촌에 사는 ‘나’의 아버지는 죽었고, 엄마는 중증의 치매 환자이다. 스물한 살인 ‘나’는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도시로 나가 살고 싶은 열망에 빠져 있다. ‘나’의 고향 마을에 생긴 농공단지 주변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요즘 들어 많이 보인다. ‘나’는 동료 간호조무사인 수아와 함께 농공단지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모두다 “너무 무식하고 너무 거칠고 너무 교양이 없고 하여간 저질이라고” 질색한다. 대신에 ‘나’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를 줄줄 읊어대며 고급스런 것들에 싸여 있는 남자를 사랑한다. ‘나’는 “남자가 나와는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며 무엇보다 “남자가 이 고장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 앞에서 흥분”한 것이다. 그러나 곧 ‘나’는 남자에게 배신당한다. ‘나’는 남자를 찾아가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토로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남자의 “썅. 촌년이 발랑 까져가지구서는. 에잇 재수없어”라는 막말뿐이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두 남자가 쫓아오는 것을 보고 놀라 발을 헛디디며 정미소 안에 이른다. 두 명의 남자는 네팔에서 온 깐쭈와 방글라데시에서 온 싸부딘이다. 싸부딘의 여동생은 한국남자와 결혼했지만 폭행에 시달리고, 형은 손가락이 잘린 채 혼자 조카를 키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나’와 이주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해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이 상징적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본래 주인공은 잘난 남자에게 주려고 상추와 고추를 검은 봉지에 담아서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 상추와 고추는 깐쭈와 사부딘의 손에 들어간다. ‘나’의 선물은 인간성을 상실한 잘난 남자가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을 향해야 했던 것이다. 마지막의 “명랑한” 분위기는 이들의 연대가 지닌 희망을 암시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손홍규의 「이무기 사냥꾼」(≪문학동네≫, 2005년 여름호)에서도 이주노동자는 이 땅에서 오래전부터 고통 받던 자들과 마찬가지 입장에 놓여 있다. 한국 사회의 민중이나 이주노동자들 모두 ‘죽은 자 노릇하기’를 통해서만 생존할 수 있는 존재들이다. 용태의 아버지는 여동생과 결혼을 했다고 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이유 없는 매질을 당하고는 했다. 이때마다 아버지는 죽은 시늉을 하여 그 순간을 모면한다. 그러나 사실 용태의 아버지는 근친상간을 한 것이 아니라 빨치산 대장이었던 아버지 친구의 딸과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좌익과 관련된 혐의가 근친상간이라는 패륜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시절이었기에 용태의 아버지는 “개새끼맨키로 납작 엎져서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주노동자인 알리 역시 용태의 아버지처럼 죽은 시늉을 한다. 알리는 한국에서 지낸 두 해 동안 다섯 군데나 공장을 옮겼지만 어디에서도 제대로 된 월급을 받지 못한다. 위조 여권마저 빼앗기고 말았다. 한마디로 이곳은 이주노동자를 “짐승” 취급하는 곳이다. 알리 역시 용태의 아버지가 그러했듯이 죽은 시늉을 함으로써 간신히 살아간다. 어찌 보면 용태의 아버지나 알리는 모두, 용태의 생식기 근처에서 살기 위해 죽은 체 하는 사면발니와 같은 존재들이었던 것이다. 용태의 아버지와 알리는 이유는 다르지만 사회로부터 죽음을 강요받은 경계 밖의 존재들이다. 마지막에는 용태 역시 죽은 시늉을 하게 된다.

「명랑한 밤길」에서 깐쭈는 “사장 돈 없어, 몸 아파, 어머니 아파, 사장 슬퍼”라며 밀린 임금 달라는 이야기를 사장에게 차마 못하겠다는 성숙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이무기 사냥꾼」에서 알리는 그나마 자기를 도와주었던 용태를 배신한다. 그럼에도 「명랑한 밤길」과 「이무기 사냥꾼」에서의 이주노동자들은 이곳의 고통받는 자들과 함께 살아가는 친구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4.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자는 우리 소설에서 고통의 극한에 서 있는 존재들로 형상화된다. 그들은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타자들임에 분명하다. 그런데 이들은 주로 정상인과는 너무도 다른 고통받는 자들로만 형상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현재 놓여 있는 위치에 바탕한 정당한 인식일 수도 있지만, 이러한 형상화는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들의 타자성을 자연화하는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김연수의 「모두에게 복된 새해」(≪현대문학≫, 2007년 1월호)는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한국인과 대등한 인간으로 그린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아내의 친구인 인도인 사트바르 싱 역시 가구공장에 딸린 컨테이너에서 동료들과 생활하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겪는 삶의 곤궁함은 거의 드러나 있지 않다. 한국인과 대등한 위치에 놓여 있다. 그는 주인공의 아내로부터 한국말을 배우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집을 방문하여 피아노를 조율해주기도 한다. 인도인 사트바르 싱과 한국인 아내가 대화를 나누는 방식 역시 인상적이다. 한국어에는 능하지만 영어에는 서툰 아내는 영어로 더듬더듬 말하고, 영어에는 능하지만 한국어에는 서툰 사트바르 싱은 한국어로 더듬더듬 말하며 둘은 소통을 하는 것이다. “서로서로 배웁니다. 서로서로 고쳐줍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내와 사트바르 싱의 관계인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일방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관계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타자가 되는 진정 윤리적인 방식이라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우리 사회에 본격적으로 유입된 타자를 소설화하는 방식은 계속해서 진화해 오고 있다. 그 타자들을 완전한 침묵 속에 방치하는 것은 가장 큰 폭력일 것이다. 그들을, 무엇보다 그들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것은 소중한 문학적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와는 다른 이들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것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만약 이들을 타자화하여 게토에 가둔다면, 그것은 사회의 분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상적으로는 차이와 다양성을 인정하면서도 공동의 소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것은 미리 규정된 정체성에 공동체의 구성원들이 맞추어나가는 과정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행위를 통해 새롭게 ‘우리’라는 정체성이 창출되어나가는 과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