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구효서_소설가. 1959년생
소설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 『도라지꽃 누님』 『시계가 걸렸던 자리』 『저녁이 아름다운 집』 『나가사키 파파』 『동주』 등
당신은 그 나무를 심자고 했다. 그, 나, 나무를? 찜찜했으나, 당신은 고집했다. 잎이 더 억세지기 전에 옮겨 심어야 나무가 몸살을 앓지 않는다며 서둘렀다.
어째서 꼭 그 나무라는 걸까. 사십 년 전 마을의 한 청년이 목 매 죽은 나무였다. 그때도 작은 나무는 아니었다. 청년의 사연이 잊힐 동안 나무는 저 혼자 비밀을 안고 더 자랐다. 마을 한복판에다 그 나무를 옮기려는 것이다. 나무는 마을을 한참 벗어난 산자락에 서 있었다.
정 화백 생가 복원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사업 시행 초기에 당신은 자문으로 위촉되었다. 마을에는 당신보다 나이가 많은 이가 없었다. 가옥의 방위, 주춧돌의 숫자, 추녀의 기울기가 당신의 한 마디로 결정되거나 수정됐다. 마당 가 나무의 수종을 판정하는 것도 당신 몫이었다.
산딸나무에요. 설계 지원팀장이 펼친 정 화백의 화집을 보며 당신이 중얼거렸다.
그림 속의 것과 같은 나무여야 해요. 근처에서 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나무를 떠올리고 있을 거란 짐작을 누구도 할 수 없었다.
팀장이 내보인 건 ‘고향 집Ⅱ’라는 그림이었다. 돌담 두른 초가집이었다. 닭이 모이를 찾는 마당 가에 한 그루 커다란 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운, 풍경화였다.
닭도……키울 건가요? 당신이 물었고, 팀장이 웃었다. 그러면 더 좋겠지요.
그림 속 나무는 산딸나무가 아니었다. 어떤 나무도 아니었다. 정 화백 고향 집 마당 가에는 나무가 없었다. 그림에만 그려진 나무였다. 없던 나무를 왜 그려 넣었는지는 화가만 알 일이었다. 아무려나 상관없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게 됐다. 사람들이 마을을 찾아들었다. 정 화백은 저명한 화가였다. 영국 여왕의 방한 일정에 그의 회고전 관람이 포함돼 있었다. 여왕은 정 화백의 고향 집 시리즈 앞에서 팔 분간 머물렀다. 존 컨스터블이 한국에도 살았던 것 같군요. 미소와 더불어 여왕이 수행원들에게 던진 말이었다.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은 일화였다. 정 화백의 평전이 출판되고, 공중파 텔레비전 문화강좌에서 어느 미학전공 교수가 일화를 언급한 뒤로 조금씩 알려졌다. 강의를 맡았던 교수는 끔찍한 독설가로, 젊은이들로부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텔레비전 강연이 끝날 때까지 스무 차례 넘는 독설을 뿜었으나 모두 영국 여왕을 향한 것이었다. 정 화백과 그의 그림에 대해서는 호평 일색이었을 뿐 단 한마디의 독설도 날리지 않았다. 그 사실이 화제가 되었다. 처음 마을을 찾았던 사람들은 젊은이들이었으나 차츰 연령층이 다양해졌다.
그들은 마을에 와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그림과 다르네. 정 화백 고향 집이 어디지? 이 마을 맞아?
그림에 표현된 산과 개울과 들판을 찾아다니며 그들은 비교했다. 실제의 산은 더 멀었고 개울가 버드나무는 성글었고 들판은 평평했다. 반세기 동안 마을은 변했다. 농지는 정리되었고 물길은 방향을 틀며 메말랐다. 나무들은 죽거나 새로 자랐다. 곡물 건조 토방들도 대부분 헐리거나 시멘트 구조물로 바뀌었다. 많은 것들이 없어졌다. 그러나 애초부터 없던 것도 그림에는 있었다. 그렇다는 걸, 마을을 찾는 이들이 알 리 없었다. 아는 사람은 당신과 나 정도였다. 두 사람 빼고는 정 화백의 그림을 제대로 살펴본 마을 주민도 없었다.
방문객들은 그림에 재현된 풍경을 기대했다. 실망을 안고 발걸음을 돌리자 정 화백의 동창이 나섰다. 이웃 마을에 흩어져 사는 동창은 넷이었다. 마을에 유일했던 동창은 지난겨울 출혈성 패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정 화백 생가터를 군 예산으로 확보해 달라는 민원을 넣었다.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으로 활용할 방안을 짰다. 이장 둘과 문화원장을 앞세웠다. 작가와 시인, 화가의 생가를 복원한 전국 지자체들의 사업내용을 수집하고 답사했다. 마을 공동회관에 모여 막걸리만 마시던 동창들은 모처럼 일다운 일을 한다고 여겼다. 아들과 사위까지 동원해 군 의원을 움직였다. 그들의 입에 콘텐츠라는 말이 붙어 다녔다. 전시업체를 수배하고 견적을 뽑았다. 군에 변변한 문화콘텐츠 하나 없잖소. 동창들은 군수집무실로 달려갔다. 제 발로 찾아오는 방문자들을 그냥 돌려보낼 거요? 토지와 건물과 운영권 모두 군에 귀속되는 건데 못할 거 없잖소.
그렇지요. 군수가 말했다. 정 화백의 마을은 그러니까, 명작의 고향이 되는 겁니다. 동창 대표께서 군 의회도 방문해 취지를 설명해주시기 바랍니다.
군 건설과와 문화예술과가 공동으로 시행 책임을 졌다. 당신을 마을 자문역으로 추천한 동창들은 마을 공동회관으로 돌아가 예전처럼 막걸리를 마셨다. 가끔 복원사업 현장을 둘러보며 전시업체 대표에게 말을 거는 게 전부였다. 내가 말이요, 정 화백의 불알 친구요.
당신이 정 화백 생가 복원사업의 마을 자문역이 된 내력은 그러했다. 그때부터 당신의 말 한마디로 돌절구가 나무절구로 바뀌고 부뚜막의 높이가 육십오 센티미터로 조정되었다. 당신은 이제 그 나무를 옮겨 심으려는 것이다.
산딸나무냐 아니냐를 판별하기 전에, 마당 가에 나무가 있었느냐 없었느냐부터 따지는 게 순서였다. 그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이 있었다. 정 화백 생가터였다. 생가는 정씨 문중의 사당이 있는 복숭아 밭 아래쪽 이십 미터 지점이었다. 당신이 모를 리 없었다. 채소밭으로 변한 그곳에 삼십 년 전까지만 해도 폐가인 채로 정 화백의 생가가 남아 있었다. 당신의 지적을 따라 기초공사가 진행된 지점은, 팔 한쪽 없는 안씨네 종손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가기 전까지 살던 집터였다. 마을 한가운데여서 방문객을 맞기에는 더할 바 없이 좋은 위치였다. 미술기념관을 겸할 생가의 외관과도 어울릴 장소였다. 건축과 조경이 완성되면 마을 전체가 훤해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정 화백의 생가터가 아닌 것도 분명했다.
당신은 우겼다. 정 화백이 사당 아랫집에서 산 것은 열 살 이후며, 그전에는 지금 복원공사가 진행되는 지점에서 유년을 보냈다고. 태어난 곳도 거기라고.
최고령이긴 하지만 당신은 본래부터 이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열아홉 나이로 떠돌다 이 마을에 흘러든 당신이었다. 누구에게 들어서 안 거라면 모를까 당신은 정 화백의 유년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 집터는, 곰배팔이라 놀림 받던 종손이 고향을 떠날 때까지 안씨네가 누대를 거쳐 살던 곳이었다.
생가가 그곳이었든 사당 아랫집이었든, 마당 가에는 어떤 나무도 서 있지 않았다. 산딸나무라니. 게다가 원혼 붙은 흉목이라니. 말도 안 되는 처사였으나, 아닌 집터에 없던 나무까지 심게 되었다. 당신은 복원사업의 마을 자문이었다. 당신의 고증을 고증할 사람은 없었다. 그림은 그림일 뿐이었으나 이제 그게 아니게 됐다.
민석아, 산딸나무가 맞아. 순호라는 이름 대신, 당신은 나를 민석이라고 불렀다. 나, 나무가 어, 어, 없었잖아요. 라고 응대하기도 전에, 봐, 그림에도 있잖아. 당신이 말했다. 그, 그렇다 쳐도 어, 어, 어째서 꼭 그, 그 나무를……. 그림 속 나무와 똑같은 건 그 나무뿐이라니까. 똑같지도 닮지도 않았다. 마을 공판장 곁 회화나무가 훨씬 비슷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자 당신의 부름이 간곡해졌다. 민석아…….(중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