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함기석_시인, 동화작가. 1966년생
시집 『뽈랑공원』 『착란의 돌』 『국어선생은 달팽이』, 동시집 『숫자벌레』, 동화집 『상상력학교』 『코도둑 비밀탐정대』 『황금비 수학동화』 등
나의 귀염둥이 강아지 럭키가 죽었다.
“럭키! 럭키! 눈 좀 떠봐.”
몇 번을 말해도 럭키는 눈을 뜨지 않는다. 나는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창밖을 바라본다. 호수의 물결이 아침햇살에 반짝거리고 있다. 나무 사이로 참새들이 날아다닌다. 호숫가에 작은 벤치가 보인다. 럭키와 산책을 할 때 내가 핫도그를 먹던 곳이다.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며 내 입에 묻은 토마토케첩을 핥아대던 럭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빠가 다가와 내 젖은 뺨을 닦아준다. 난 코를 훌쩍거리며 럭키를 쓰다듬는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럭키의 입이 살짝 벌어져 있다. 내게 무슨 말을 하려는 것만 같다. 나도 모르게 귀를 럭키의 입 가까이 갖다 댄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대로 럭키의 얼굴에 뺨을 댄 채 털을 쓰다듬는다. 손끝으로 럭키의 콧등을 살살 문지르다가 입을 만진다. 그러자 럭키의 입에서 아주 작은 금붕어 한 마리가 헤엄쳐 나온다.
“와!”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얼굴을 든다. 금붕어는 지느러미를 흔들며 공중으로 헤엄쳐 오른다. 몸 전체가 푸른빛을 띠고 있다. 금붕어의 몸 주변이 푸른 달무리가 생긴 것처럼 환하다. 금붕어가 몸을 돌려 나를 쳐다본다. 내가 놀란 개구리처럼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보자 금붕어가 인사한다.
“안녕 콩나물! 나야 럭키!”
콩나물은 내 별명이다. 키가 작은 내가 콩나물처럼 쑥쑥 크라고 아빠가 지어준 별명이다. 너무너무 놀랍고 신기하다. 죽은 럭키의 영혼이 금붕어의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나다니. 금붕어를 가리키며 아빠를 툭툭 건드린다. 저것 좀 보라고 아빠에게 눈짓을 한다. 그런데도 아빠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빠의 눈에는 금붕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금붕어는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거실을 둥둥 떠다닌다. 나는 금붕어가 움직이는 대로 고개를 움직인다. 금붕어는 꽃병이 놓인 창가 쪽으로 헤엄쳐 간다. 꽃병엔 개나리꽃이 한 아름 꽂혀 있다. 햇살이 비쳐 꽃병이 아름답게 반짝거린다. 금붕어는 꽃병을 맴돌며 창밖을 바라본다. 구름이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다 내가 있는 곳으로 헤엄쳐온다. 지느러미로 내 얼굴을 살살 건드린다. 내가 두 손을 모아 둥글게 오므리자 금붕어가 손 안으로 들어온다. 금붕어가 움직일 때마다 지느러미가 손을 살살 건드린다. 그 간질간질한 촉감이 참 좋다. 난 두 손을 들어 올려 금붕어의 눈을 쳐다본다.
금붕어가 다시 푸르르 헤엄쳐 오른다. 내 목을 살짝 스치고 지나가더니 주방으로 헤엄쳐간다. 시냇가 수초 속으로 숨어드는 물고기처럼 금붕어는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속으로 쏙 들어간다. 살살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엄마의 귀에 살을 비빈다. 엄마에게 뭐라 뭐라 속삭인다. 그래도 엄마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엄마의 눈에도 금붕어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한동안 거실을 맴돌던 금붕어가 신발이 놓인 현관 쪽으로 헤엄쳐 간다.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는 얼른 금붕어를 따라 밖으로 나간다. 금붕어가 천천히 내 머리 위를 맴돌며 말한다.
“난 이제 그만 가야 돼.” “가다니? 어딜?”
금붕어는 대답은 않고 하늘만 쳐다본다. 난 갑자기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난다. 아빠는 늘 할머니가 천국에 가셨다고 했다.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했다. 금붕어가 천천히 하늘로 헤엄쳐 오른다. 금붕어가 내 눈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면서 금붕어를 향해 달려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