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나는 가끔 이렇게 나 자신을 소개한다.
“나는 댄서입니다.”
좀 더 잘난 척을 하고 싶을 때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나는 린디합퍼(lindyhopper)입니다.”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묻는다. “댄서라고요?” 혹은 “린디합퍼요?” 내 잘난 척을 알아차린 사람들은 — 이런 사람들은 내가 잘난 척하는 게 못마땅한 사람들이다 — 좀 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춤을 춘 지는 얼마나 됩니까?” 물론 이 질문에는 이런 속내가 숨어 있으리라. “당신, 정말 댄서 맞습니까?”
내가 처음 이 춤을 배우기 시작한 건 2008년의 일이다. 그 당시 내가 정상적인 사고를 했다면 절대 춤을 추는 일 따위,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다. 사실 나는 대단한 몸치였다. 어느 정도였느냐면 춤을 배우기 시작한 지 몇 달이나 지난 후에도 여전히 몸을 ‘전혀’ 쓰지 못하는 나를 보고 모두 감탄(!)했을 정도였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2009년도 여름, 나를 린디합의 세계로 이끌었던 동호회가 ‘망했다.’ 만약 그때라도 내가 정상적인 사고기능을 회복했다면, 그것을 계기로 나는 춤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문 강사들이 개설한 수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 꽤 오랜 시간 그런 강습들에 시간과 돈을 들였는데, 시간과 돈이란 건 확실히 힘이 있어서, 나 스스로도 그 당시 춤 실력이 꽤 늘었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들도 나를 칭찬해주었다. 그전까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당시 나를 가르쳤던 남자 선생님만은 굉장히 엄격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칭찬 같은 걸 해주지 않았다. 뭔가 하나를 이뤄내면 다른 하나가 문제라는 식이었다. 마치 벽에 액자를 걸 때처럼, 한쪽으로 기울었다 싶어서 손을 대보면 이번에는 다른 한쪽으로 기우는 식이었다. 그 수많은 지적 중에서 가장 난감했던 건 선생님의 이 말이었다.

“너무 빨리 다가오지 마세요.”
나 자신은 분명히 리딩 신호(남자 파트너가 여자 파트너에게 주는 신호)를 받고 움직였다고 생각했고, 그러니까 내가 오토 팔뤄잉(파트너의 신호를 예측하여 미리 움직이는 것)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금 기분이 상했다. 나는 분명히 신호를 받고 움직였는데. 왜 빠르다는 걸까? 더 늦게 움직이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내가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건, 훨씬 더 오랜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난 후였다. 나는 ‘빠른 게’ 아니라 ‘가벼웠던’ 것이다. 리딩 신호는 분명히 제대로 잘 받고 있었다. 그런데 몸이 무겁지 않으니, 신호대로 움직인다 해도 상대방에게는 ‘빠르게’ 느껴진 것이다. (린디합은 기본적으로 몸의 무게중심을 아래쪽에, 즉 몸을 무겁게 하고 추는 춤이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더 중요한 걸 깨닫게 되었다. 그건 내가 내 몸의 상태를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어깨는 힘이 빠져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내 목은 이완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팔은 유연한가? 그렇지 않은가? 내 무게중심은 아래쪽에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아,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내가 ‘가벼웠던 것’은 내 몸의 무게중심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어깨에 힘을 빼고, 목을 유연하게 만들지 못한 것은, 그렇게 하고 있는지, 아닌지 나 자신이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몸을 모르고 있다! 이건 굉장히 이상한 경험이었다. 이를테면 이전의 나는 내 몸의 상태,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리나 목의 근육, 배나 등, 그리고 팔의 상태 같은 것에 대해 신경을 써 본 적이 없다. 그것들은 항상 거기에 있을 것이며,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항상 컨트롤 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내 몸을 내 맘대로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심지어는 몸의 상태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사실도 안다. 춤을 출 때마다 나는 순간적으로 혼란스러워진다. “내 어깨에 힘이 빠진 건가? 아닌가? 내 팔의 텐션은 적당한가? 너무 강한가?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사실들을 통해, 이제, 나는 내 몸이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그 무엇으로서 내 몸은 여기에 있다. 내가 전혀 알지 못하는 그 무엇으로. 대단히 절망스럽고, 대단히 당황스럽고, 대단히 맥 빠지는 기분이다.
하지만, 어쩌면 이게 바로 춤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내 몸을 발견해나가는 것. 문자 그대로, 내 것이지만, 내 것이 아닌 ‘어떤 것’을 발견해나가는 것. 몸 이상의 몸을 발견하는 것. 스윙을 시작한 지 무려 3년 5개월 만에, 비로소 나는 내 몸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