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재단 웹진

대학생 시절 고시원에서 생활한 적이 있다. 방값이 저렴해서였다. 대학교는 고향에서 족히 300km는 떨어진 타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홀로 생활을 해야 했는데, 등록금만큼이나 생활비가 부담되는 내 눈에 기숙사보다 저렴한 고시원이 들어온 것이다.
그 해 나는 대학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후배를 받게 되었는데 선배가 된다는 생각에 몹시 들떠 있었다. 없는 형편에 술을 사주기도 했고, 피차 아는 것도 없으면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그러다 한번은 후배 한 명과 밤새 술을 마시게 되었는데,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좁은 내 방은 후배 하나 데려가 재울 형편조차 못 되는 곳이었다. 결국 그날 나는 넓은 원룸에서 자취하던 동기에게 그 후배를 부탁했다. 조금 부끄러웠다.
그러나 막상 살아보니 고시원 생활이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방세를 줄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친구 하나 데려올 처지가 못 된다거나, 겨울엔 춥고 여름엔 덥다거나, 방음이 안 되는 바람에 때로는 옆방 거주자가 보는 음란물을 졸지에 소리로나마 함께 감상하게 된다거나, 그런 것들 말이다. 대체로 고시원에서 산다는 일이란 그런 일들의 연속이었는데,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입주한 지 한 삼 개월이 지나고 나는 처음으로 대청소를 했다. 간소하게 청소한 것은 여러 번 있었지만 작심하고 청소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묵은 때를 닦고, 바닥을 쓸고, 창문을 닦고, 침대 아래를 정리하고. 방이 워낙 좁았기 때문에 청소는 곧 끝났다. 대충 청소를 끝낸 후 장롱 아래도 청소를 할까 말까 고민한 끝에 결국은 하기로 했다. 실은 혹시 저 장롱 아래 틈새로 굴러간 동전을 몇 개라도 주울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다행히 동전은 있었다.
그리고 한 장의 편지도 있었다. 누구의 편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편지에는 두서없는 표현들이 쓰여 있었고 너저분하게 찍힌 온점들을 따라 곰팡이들이 늘어서 있었다. 편지봉투도 없이 편지만 달랑 있었기 때문에 누군가가 편지를 써놓고 그대로 둔 것인지. 아니면 받은 사람이 읽고 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덩그러니 편지지만 홀로 누군가의 안부를 품은 채 그 아래 머물고 있었다. 편지지 여기저기에 묻은 때와 곰팡이 자국이 그 세월을 짐작하게 할 뿐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편지라니, 나는 조금 생경했다. 이 편지는 누가 쓴 것이며 왜 거기에 있었던 것인지. 이 편지를 쓴 사람은, 혹은 받은 사람은 이 낡고 좁은 방안에 앉아 무슨 생각으로 이 편지를 들여다봤었던 것인지. 그런 식의 부질없는 생각이 밀려왔다가 곧 사그라졌다.
응접실에는 빛이 바랜 갈색 탁자가 있었는데, 거주자들은 거기에서 밥을 먹었다. 여러 명이 함께 앉아도 될 만큼 큰 탁자지만 나는 그때까지도, 그리고 그 이후로도 누군가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없었다. 청소를 끝낸 후 나는 편지지를 그 옆에 두고 라면을 먹었다. 그런데 라면을 먹는 도중에 몇몇 사람이 방문을 조심히 열고 응접실을 기웃거리다 들어가는 것이었다. 나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도 누군가가 밖에서 밥을 먹고 있으면 마주치는 게 어색해서 그렇게 기웃거렸던 사람이었으니까.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그 편지의 주인에 대해 묻고 싶었다. 여기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면 혹시 편지의 주인에 대해 알지도 모를 테고, 연이 닿으면 주인에게 편지를 돌려줄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내가 한 일은 기웃거리는 누군가를 붙잡고 편지에 관해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응접실의 티브이를 켜는 것이었다. 늘 그렇듯 티브이 볼륨은 고정되어 있었다. 그러자 방의 칸칸마다 문지기처럼 그 소음이 섰다. 밥을 먹는 순간에 소음은 파수꾼이 되는 셈이었다. 티브이에는 연애 드라마가 나오고 있었다. 마치 연인의 목소리가 이 편지의 사연을 파수하는 듯했다.
라면을 다 먹은 후에 나는 그릇을 씻고 티브이를 껐다. 그렇게 파수꾼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자 다른 한 명이 밖으로 나왔다. 나는 그를 지나쳐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멀지 않아 새로운 파수꾼이 내 방문을 지켰다. 나는 방안에 가만히 앉아 그 소음을 들었다. 편지는 여전히 누군가의 안부를 품은 채 책상 위에 놓여 있었고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그 소음을 들으며 깊은 허무를 느꼈다.
그 밀려오는 허무가 마치 그 편지지의 유산처럼 다가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