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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콩트_ 천국의 왕

글 / 듀나_SF소설가, 영화평론가. 소설 『나비전쟁』 『면세구역』 『태평양 횡단 특급』, 영화칼럼집 『스크린 앞에서 투덜대기』 등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드워드 퍼스라는 영국인 물리학자이다. 그는 1871년 4월 1일에 레딩에서 태어나 내가 이 글을 쓰는 날로부터 꼭 이틀 전인 2005년 10월 28일 싱가포르에서 죽었다. 이 기가 막힌 장수의 비결은 글 후반부에 설명된다.

  퍼스가 살았던 시기는 현대 물리학이 혁명적인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기도 했지만 진지하고 영향력 있는 과학자들이 심령술과 초과학을 믿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 두 흐름의 타이밍이 조금만 달랐어도 세상은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알기로는 그 타이밍이 정확하게 일치한 지점에 서 있었던 과학자는 에드워드 퍼스밖에 없다.

  퍼스의 이론을 설명하려면 책 한 권을 따로 써야 한다. 그러니 난 그냥 결론만 이야기하겠다. 1902년 퍼스는 심령술의 경험 지식과 물리학을 결합하는 지점을 수학적으로 설명하는 일련의 가설을 만들었고 1908년, 그것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였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는 천국의 문을 열었다.

  퍼스가 발견한 세계는 독실한 침례교 신자였던 그에겐 다소 실망스러운 곳이었다. 그곳엔 신이 없었다. 영원한 천국이나 지옥도 없었다. 사실은 영혼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든 초자연 현상은 그가 에테르라는 이름을 고집한 수상쩍은 물질의 움직임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인간의 정신 활동은 살아있는 동안 에테르에 흔적을 남긴다. 그 사람의 육신이 죽은 뒤에도 에테르에 남아있는 기억과 자아의 흔적은 어느 정도 살아남는다. 학문적으로 거의 고립된 그는 자신이 에테르라고 부르는 물질의 정체가 무엇인지 죽을 때까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그 지식을 활용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을 정도의 실용적인 지식은 충분히 뽑아낼 수 있었다. 

  퍼스는 이 사실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는 주류 학계로부터 멸시 당하는 것에 질려 있었다. 아무리 그의 기계와 방정식으로 그들을 설득하려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 정보를 혼자만 가지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한 그는 ‘천국’을 만들었다.

  정상적인 자연 세계에서 에테르에 각인된 ‘영혼’은 육체에서 분리되는 그 순간부터 서서히 분해된다. 죽은 자의 영혼이 초자연적인 천국이나 지옥을 경험하는 것도 영혼의 부패와 관련 있었다. 한마디로 그들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퍼스는 이 딱한 종자들에게 진짜 영생을 주기로 결정했다. 그가 천국이라고 명명한 건 거대한 영혼의 도서관이었다. 그는 에테르를 안정시킬 수 있는 간단한 기계를 만들었다. 그 기계를 사용하면 우유팩 정도 크기의 용기에 영혼 하나를 담아 안정시킬 수 있었다.

  기계가 완성되자 그는 영혼 채집에 나섰다. 저명한 학자, 정치가, 과학자, 작가들이 대상이었다. 오래 전에 믿음을 잃었지만 여전히 종교에 미련이 남아 있는 그는 성직자들의 영혼은 거두지 않았다. 그는 그들이 믿음을 잃지 않고 죽게 내버려 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를 경멸했고 그도 경멸했던 수많은 유물론자들의 영혼들은 채집되었다. 그들은 천국에 갇혀 그들이 죽기 전까지 놀려댔던 에드워드 필립스 퍼스라는 미치광이가 세상 모든 진리에 가장 가까이 도달한 남자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말이 천국이지, 사실 천국은 지옥에 가까웠다. 퍼스는 천국에 갇힌 영혼들에게 제대로 된 오락이나 쾌락을 제공해줄 수 없었다. 그들은 장님이었고 귀머거리였고 벙어리였으며 우유팩 안에 갇힌 죄수들이었다. 그래도 퍼스는 몇 년간의 노력 끝에 그들에게 귀와 입의 역할을 하는 기계를 만들어줄 수 있었다. 기계가 완성되자 천국에 갇힌 3천 명의 영혼들은 일제히 똑같은 목소리로 비명을 질러댔다.

  영혼과 의사소통이 가능해지자 퍼스의 지식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그건 대부분 천국의 영혼들 덕택이었다. 어떻게든 천국의 불편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필사적으로 생각했고 그 생각들은 퍼스에 의해 실험되고 반영되었다. 조금씩, 조금씩 천국은 개량되어 갔다. 눈 역할을 해주는 텔레비전이 생겼고 전기 자극을 통해 미각과 성감과 같은 감각을 회상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계도 만들어졌다.

  퍼스는 이런 개량에 적극적이었다. 그 역시 언젠간 기계를 통해 영생을 할 생각이었다. 그는 그의 내세가 될 수 있는 한 안락한 것이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결코 평범하게 자기가 만든 천국의 시민으로 은퇴할 수 없었다. 그는 신이었다. 유일신은 아니어도 잡신 정도는 되었다. 그는 점점 인구가 늘어만 가는 천국의 왕이었다. 1939년에 4만 명을 넘긴 천국의 시민들은 그를 두려워하고 숭배하고 증오했다. 그가 천국에 같은 조건으로 들어간다면 난리가 날 게 뻔했다. 그는 죽은 뒤에도 여전히 신으로, 왕으로 남고 싶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그는 전쟁으로 죽은 수많은 엔지니어 영혼들의 도움을 받아 흥미로운 기계를 만들었다. 그 기계를 이용하면 에테르에 담긴 자아를 안정된 상태로 보존할 수 있는 엑토플라즘 육체를 만들 수 있었다. 그 육체는 무정형의 안개에 불과했지만 에테르의 자아가 그 육체를 일단 통제하기 시작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양의 육체와 옷을 만들 수 있었다. 1943년 4월 2일, 그는 죽었고 죽기 직전에 가동시킨 기계의 도움을 빌어 엑토플라즘 육체로 자리를 옮겼다.

  퍼스는 더 이상 천국이 필요 없었다. 그는 안정된 유령으로 이 세상에 남을 수 있었다. 치명적인 햇빛을 피해 밤에만 다닐 수밖에 없었고 종이보다 무거운 물체는 들 수도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그는 하늘을 날 수 있었고 벽을 뚫고 지나갈 수도 있었으며 자신의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는 진정으로 신이 된 기분이었다.

  드라큘라에게 랜필드가 필요하듯 그에도 인간의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그의 랜필드는 1939년에 고용한 렉스 모튼이라는 절름발이 비서였다. 전쟁이 끝나자, 모튼은 퍼스의 지시를 받아 천국 전체를 보다 편하게 연구를 계속할 수 있는 싱가포르의 낡은 저택으로 옮겼다.

  천국의 시민들은 잠시 동안 희망에 들떠 있었지만 그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었다. 퍼스는 결코 그들을 엑토플라즘 육체로 옮길 생각이 없었다. 신은 하나로 족하다. 왜 그와 동등한 자들을 만들어 그의 위치를 위태롭게 해야 하는가?

  이제 천국의 시민들이 퍼스에 대해 품은 감정은 증오밖에 없었다. 우유팩 밖으로 삐져나온 전선들을 통해 서로의 증오를 공유하던 그들은 결국 며칠 전에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이 그렇게 늦었던 건, 그들에게 어느 정도 자유를 제공해줄 수 있었던 인터넷이라는 발명품이 비교적 늦게 보편화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퍼스의 재산을 빼돌려 모튼의 후계자인 나를 매수했다.

  2005년 10월 28일, 퍼스의 엑토플라즘 육체가 잠들어 있던 다락방에 갑자기 폭발이 일어났고 그의 침대 바로 위로 엄청난 양의 햇빛이 쏟아졌다. 퍼스의 육체는 비명과 함께 분해되었고 그의 에테르 자아는 그 육체로부터 분리되었다. 그의 영혼이 며칠 동안 더 버틸 수 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하리라.

  나는 지금 천국의 영혼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엑토플라즘 육체들을 만들고 있다. 어제만 해도 500명의 영혼들이 이 육체를 빌려 천국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그 수는 곧 늘어날 것이고 세상은 곧 불멸하는 12만 명의 유령들로 가득 찰 것이다.

  앞으로 내 계획이 어떻게 되느냐고? 그들이 모두 천국에서 탈출하면 나는 이 엑토플라즘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벌일 생각이다. 천국의 왕이 되는 건 실속 없는 일이다. 하지만 천국과 영생을 파는 건 경우가 다르다. 시장은 무한하고 구매자들도 많다.

  지구가 유령들로 가득 찬다면? 우주로 보내면 된다. 화성, 금성, 알파 센타우리…… 벌써 수많은 유령들이 지구를 떠나 다른 행성을 탐사하기 위해 떠났다. 엑토플라즘 유령들은 빛의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 이제 우주는 유령들이 지배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