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경희

런던, 낡음을 견디는 외로움의 제국

나는 김혜순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김혜순으로 살다가 다시 김혜순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지요!

특집을 기획하며 ①특별한 계기에 쓴 시 ②극지에서 고독에 떨며 피흘리며 쓴 「사람의 가을」과 「응」 ③운명적인 만남 ④저주받은 걸작은 끝내 쓰지 못한 걸작

국립한국문학관?

폭력의 문명사에 맞서는 시적 비전

스스로를 복제하고 스스로를 삭제하기

두 아버지에 대하여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걸어온 시인*

오직 드높고 푸른 자유 그것이면 된다

쇳물의 뜨거움이 담긴 「야학일기」 연작 7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사당학파 사람들

종일 본가 (終日 本家)하지 않기 위해서

가을 정원, 색(色)과 향(香)의 향연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①어제 죽었다면,토지 탁구 ②배틀그라운드

①슬픈 얼굴의 기사 ②불타는 수용소

황금을 훔치는 거인

소설에서의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①이웃 나라 ②걸으면 걸을수록 ③뮌스터 가는 기차

이번 생은 망했지만 뭐 어때

①새로운 개성과 공감의 가능성을 열다 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문학은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가

법정드라마가 아닌 아픈 사랑이야기

수상소감, 아이패드, 소설집, 자두

라틴아메리카 3대 자연주의 소설

독일 사람은 모르는 ‘삼계탕’과 ‘식혜’ 그리고 수많은 ‘무명氏들’

출발어 중심의 번역과 도착어 중심의 번역 사이에서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19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등

기획특집

③운명적인 만남

「곡두운동회」 그리고 「물 그림자」

글 임철우 ㅣ 소설가, 1954년생
소설집 『아버지의 땅』 『그리운 남쪽』 『달빛 밟기』 『물 그림자』 『연대기 괴물』,
장편소설 『붉은 산, 흰 새』 『그 섬에 가고 싶다』 『백년여관』 『이별하는 골짜기』 『황천기담』 등

원체험(原體驗)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기억에 오래 남아 있어 어떤 식으로든 구애 를 받게 되는 어린 시절의 체험”을 뜻한다.
유년기의 영혼은 순수하고 텅 빈 백지와도 같다. 어린아이가 겪는 중요한 일들은 대부분 최초의 체 험들이고, 때문에 백지 위에 그만큼 깊고 또렷하게 흔적을 남긴다. 그중에서도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체험은 아이의 영혼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큰 상처를 남긴다. 그리하여 상처는 때로 일생을 지배하는 트라우마로, 혹은 무의식 심층에 엎드린 채 언제든 수면 위로 떠오를 기회를 엿보는 무서운 괴물로 변 하기도 한다.

예술가에게 원체험이란 일종의 화두랄까 수수께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저 혼자 답을 풀어내고 자 평생 붙들고 안간힘을 써야하는 그런 운명적인 수수께끼 말이다. 때문에 어떤 원체험은 한 예술가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적인 테마이자 창작력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그 짐승의 시간이 내게 뒤늦게 깨우쳐준 것이 있었다. 온 세상엔 억울한 죽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땅 밑에도, 바다 밑에도 그리고 과거의 역사 속 어디에나 헤아릴 수없이 많은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들이 묻혀있다는 것. 그날부터 80년 5월과 오래전 고향 읍내의 그 사건을 소설로 쓰는 일이 내 생애의 숙제가 되었다.

예를 들면, 이청준 소설을 얘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전짓불 앞의 방백’이라는 에피소드가 있 다. 칠흑 같은 밤에 불시에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는 무장괴한들. 잠자리에서 혼비백산 일어난 식구들 얼굴 위로 폭포처럼 쏟아지는 전짓불. 그들은 총구를 들이댄 채 어둠 저편에서 다짜고짜 묻는다. 너 는 어느 편이냐. 산사람 쪽이냐 토벌대 쪽이냐……. 생과 사를 가르는 시험을 건 저쪽의 정체를 이쪽 은 전혀 알 길이 없다. 생사의 판결권은 온전히 저쪽이 쥐고 있고, 이쪽은 어떻게든 대답을 해야만 한 다. 폭력의 야만적 속성을 이보다 더 완벽하게 드러내는 상징적 상황이 또 있을까. 한국전쟁기에 실제 로 있었던 일이라는데, 그것이 작가의 직접체험인지 혹은 전해들은 이야기인지는 나로선 알지 못한다.
이 에피소드는 이청준의 중단편과 장편들, 초기작부터 후기작에 이르기까지 수차례 등장한다. 작품 안에서 중심 주제로 사용될 때도 있고 비교적 짧게 삽입될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반복이 나 재생이 아니라 매번 다양한 테마로 새롭게 변주되어진다. 왜 작가는 이 에피소드에 유독 집착하게 된 것일까.
어쩌면 이 에피소드야말로 작가 내면에 자리한 핵심적인 원체험이 아닐까. 그의 소설을 읽을 때마 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유년의 순수한 영혼에 각인된 그 원체험에서 그는 훗날 인간과 세계에 대한 어떤 운명적인 수수께끼와 마주쳤는지도 모른다. 그 수수께끼의 답을 탐색하느라 평생 수많은 작품들을 치열하게 써내려간 것은 아닐까.

더듬어보면, 내게도 원체험이라 부를 만한 것이 있다. 전쟁 발발 직후, 고향인 완도 읍내에서 벌어 진 보도연맹원 집단학살 사건이다. 내가 태어나기 3년 전 사건임에도 마치 직접 겪은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지는 건 이상한 일이다. 필시 어린 시절 어른들끼리 나누는 얘기들을 수없이 듣고 자랐기 때문일 것이다. 대여섯 살 때 그 얘기를 처음 듣던 순간의 엄청난 충격을 나는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놀라움과 기이함 그리고 알 수 없는 분노가 뒤섞인 그 난생처음 느끼는 이상한 감정이라니! 어린 내게 그것은 이 세상의 일이 아니라 기괴하고도 끔찍한 한 판 도깨비 굿 같게만 느껴졌다.

그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전쟁 직후 국군의 후퇴가 시작되고, 전남지역 경찰 병력 역시 최남단 섬 인 완도읍까지 철수해 내려온다. 1950년 7월 말부터 8월 초, 불과 그 며칠 사이의 일이다. 당시 읍내 중학교엔 관내 수많은 섬으로부터 긴급하게 비상 소집된 보도연맹원 수백 명이 수용되어 있는 중이 다. 그런데 경찰은 그중에서 일차적으로 처형대상자를 골라낸 다음, 나머지 전원을 어느 날 저녁 늦 은 시각에 돌연 풀어준다. 단 읍내에서 전원 대기해야 한다는 명령과 함께. 뜬금없는 조처에 놀라움 과 기쁨에 들뜬 수 백 명은 저마다 읍내 여관이나 친지의 집을 찾아 흩어진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후, 인민군으로 가장한 경찰 부대가 엄청난 총소리와 함께 캄캄한 새벽녘 읍내 로 불시에 진격해 들어온다. 잠결에 일어나 방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대부분 주민들과는 달리, 일부 는 만세를 부르며 밖으로 뛰어나와 인민군을 환영한다. 그들은 주로 간밤에 풀려나온 보도연맹원이지 만 전혀 무관한 사람들도 일부 섞여 있다.
아침이 되자마자 전 주민은 강제로 중학교 운동장에 모인다. 운동장 중앙엔 이미 새끼줄이 칸칸이 쳐있다. 그 새끼줄을 기준으로 저쪽 편과 이쪽 편을 판별하는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었을 때 연극은 그 정점에 도달한다. 마침내 경찰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 눈 깜짝할 순간에 새끼줄 왼쪽과 오른 쪽 사람들의 생사는 완벽하게 뒤바뀐다. 그렇게 한 판 도깨비 굿 같은 연극은 막을 내리고, ‘제 발로 스스로 걸어 나온 빨갱이들’은 전원 배에 실려 나가 총살된 다음 먼 바다로 나가 한꺼번에 수장된다.
아직도 고향 사람들은 그것을 ‘나주부대사건’ 이라고 부른다. 사건 전체를 기획하고 실행한 주체가 나주경찰서 부대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사건은 사망자의 정확한 신원과 숫 자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채 바로 이 순간까지도 대부분 안갯속에 묻혀있다. 전선의 다급한 후퇴와 맞물린 시점에, 군경에 의해 민간인 수십만 명이 희생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전국 도처에서 벌어 졌지만, 완도군 일대에서 벌어진 것과 같은 기상천외한 속임수 작전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 음모를 꾸민 자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그 직후부터 인근 섬 지역 곳곳에선 수많은 시신들이 해류를 타고 표류하기 시작했다. 흉측한 송장 이 떼거리로 떠밀려 들었다는 소문이 들릴 때마다, 혈육을 잃은 가족들은 혹시나 하고 이 섬 저 섬으 로 허둥지둥 쫓아 다녔다. 그나마 흉한 시신조차 남기지 못한 대부분은 바다 밑으로 영영 가라앉았을 터였다. 우리 마을 젊은이 두 사람도 그렇듯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어른들은 우리 집 사랑방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전쟁 시국의 그런저런 일화들을 두런두런 입에 올 렸다. 코흘리개인 나는 조부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을 반짝이며 어른들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마다 내 눈앞에선 온갖 영상들이 펼쳐지곤 했다. 내가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읍내에선 매번 기 괴한 연극이 벌어지고, 내 상상 속의 바다에선 흉측한 시신들이 한 줄로 무리를 지어 출렁출렁 떠다 녔다. 그리고 유년의 그 기억들은 그 이후 오랫동안 내 무의식 속에 가라앉아 있었다.

그 유년의 수수께끼는 내 눈앞에서 20년 만에 되살아났다. 1980년 5월 25일, 광주시 도청 앞 광장 에 위치한 작은 체육관 안에는 수십 구의 시신이 태극기에 덮인 채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마룻바 닥에 줄지어 누워있는 관들의 행렬. 촛불과 자욱한 향불 연기. 유가족의 목쉰 통곡소리. 코를 쥐어짜 는 소독약 냄새, 그리고 결코 지워지지 않는 그 매캐하고 묵직한 주검들의 냄새……. 체육관 바깥엔 운집한 시민들이 참배할 차례를 기다리며 서있었고, 입장은 한 번에 2백 명씩만 가능했다. 묵념과 애 국가 제창, 대한민국만세 삼창이 전부인 단 10분간의 추모의식은 끝없이 이어지고, 체육관 안은 내내 흐느낌으로 가득했다.
바로 그 순간에도 도시는 2만 명의 계엄군에 의해 완벽하게 포위된 상태였다. 모두에게 버림받은 도 시. 시외전화도 교통도 차단된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 도시 바깥에선 아무도 몰랐 다. 그러나 진실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학살은 정의로운 진압작전으로, 시민들의 희생은 간첩, 불순분자, 양아치들의 폭동으로 명명되었다. 그것은 국가가 자행한 민간인 집단학살이자 거대한 속임수 연극이었다. 그 후로도 십 수 년 동안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벌여온 총체적 사기극이었다.
그 짐승의 시간이 내게 뒤늦게 깨우쳐준 것이 있었다. 온 세상엔 억울한 죽음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 땅 밑에도, 바다 밑에도 그리고 과거의 역사 속 어디에나 헤아릴 수없이 많은 억울하고 원통한 죽 음들이 묻혀있다는 것. 그날부터 80년 5월과 오래전 고향 읍내의 그 사건을 소설로 쓰는 일이 내 생 애의 숙제가 되었다.

「곡두운동회」는 내가 고향 읍내의 학살사건을 소재로 쓴 첫 번째 작품이다. 원고지 200장이 조금 넘는 분량으로, 첫 창작집인 『아버지의 땅』(1984) 맨 앞자리에 수록되어 있다. 사실 이 작품은 이전까 지 발표된 적이 없는 순전히 습작기의 산물인데, 세상에 나오기까진 우여곡절이 있었다. 첫 창작집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더니, 얼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한 권으로 묶기엔 분량이 약간 부족한 감이 있 으니, 혹 단편 하나를 더 보내줄 수 있느냐고 했다. 마침 초고 상태로 남겨둔 원고가 있기에 서둘러 손질해서 보냈는데, 뜻밖에 책 맨 앞에 실려 세상에 나온 게 바로 「곡두운동회」였다.
이 소설은 일종의 알레고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 당시 전두환 정권 하의 살벌한 시국에서 그 사건을 소재로 쓴다는 것 자체가 사실 무모한 일이었다. 그때까지 내가 초고 상태로 보관하고 있었던 이유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결국 ‘인민군’, ‘경찰’ 같은 말을 ‘해방군’, ‘적군’, ‘아군’ 따위로 바꾸고, 실제 지명 역 시 감춘 채 어떤 가상의 공간인 양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책이 나온 뒤로도 혹 문제가 되지 않을까 한동안 내심 가슴을 졸이기도 했다.
이때의 아쉬움은 훗날 동일한 소재로 「물 그림자」(현대소설, 1991년)를 쓰도록 만들었다. 그즈음 참 으로 우연히 고향 섬에서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는 바로 사건 당시 읍내에서 근무했던 경찰이자 학살 현장을 직접 목격한 인물이었다. 말 그대로 가장 완벽한 증인이자 증언을 확보한 거였다. 시종 떨리 는 목소리로 죄책감과 함께 그 평생의 비밀을 털어놓는 노인의 고백을 통해, 나는 최초 희생된 숫자가 250여 명이라는 사실 그리고 어떻게 집단 총살되었고 바다에 버려졌는지 등을 마침내 명확하게 알아 낼 수 있었다.
「물 그림자」엔 그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노인과 나는 모두 세 차례의 만남을 가졌다. 세 번째 만남을 마치고 불과 몇 달 후, 노인은 폐암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한마을에 살던 나를 애초 에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쪽도 노인이었다. 그것도 매번 밤늦은 시각이었다. 그가 소설가인 나를 앞에 앉혀두고 마치 고해하듯 마지막으로 증언을 남기고 떠난 이유를 나는 뒤늦게야 알 것도 같았다.
정말이지 기적처럼 이루어진 그 우연한 만남을 나는 지금도 운명이라고 믿고 있다. 그 운명의 손길 이 왜 하필 나를 찾아왔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