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경희

런던, 낡음을 견디는 외로움의 제국

나는 김혜순으로 태어나진 않았지만 김혜순으로 살다가 다시 김혜순이 아닌 곳으로 가게 되지요!

특집을 기획하며 ①특별한 계기에 쓴 시 ②극지에서 고독에 떨며 피흘리며 쓴 「사람의 가을」과 「응」 ③운명적인 만남 ④저주받은 걸작은 끝내 쓰지 못한 걸작

국립한국문학관?

폭력의 문명사에 맞서는 시적 비전

스스로를 복제하고 스스로를 삭제하기

두 아버지에 대하여

그 긴 겨울의 통로를 비집고, 나의 플래시 속으로 걸어온 시인*

오직 드높고 푸른 자유 그것이면 된다

쇳물의 뜨거움이 담긴 「야학일기」 연작 7편

나뭇잎이 벌레 먹어서 예쁘다 남을 먹여가며 살았다는 흔적은 별처럼 아름답다

사당학파 사람들

종일 본가 (終日 本家)하지 않기 위해서

가을 정원, 색(色)과 향(香)의 향연

우리가 아는 ‘그 가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①어제 죽었다면,토지 탁구 ②배틀그라운드

①슬픈 얼굴의 기사 ②불타는 수용소

황금을 훔치는 거인

소설에서의 양자역학, 평행우주, 자유의지의 문제에 대하여

①이웃 나라 ②걸으면 걸을수록 ③뮌스터 가는 기차

이번 생은 망했지만 뭐 어때

①새로운 개성과 공감의 가능성을 열다 ②제27회 대산문학상 시·소설 부문 본심 대상작 선정

문학은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흔드는가

법정드라마가 아닌 아픈 사랑이야기

수상소감, 아이패드, 소설집, 자두

라틴아메리카 3대 자연주의 소설

독일 사람은 모르는 ‘삼계탕’과 ‘식혜’ 그리고 수많은 ‘무명氏들’

출발어 중심의 번역과 도착어 중심의 번역 사이에서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2019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지원대상작 선정 등

단편소설

①슬픈 얼굴의 기사

손홍규|소설가, 1975년생
소설집 『사람의 신화』 『봉섭이 가라사대』 『톰은 톰과 잤다』 『그 남자의 가출』, 장편소설 『귀신의 시대』 『청년의사 장기려』
『이슬람 정육점』 『서울』 등

오래된 축대 아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축대의 돌 틈마다 자란 풀들이 허리가 꺾여 있었다. 동현은 뒤돌아보는 몇몇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했다. 무슨 일이냐고 나지막하게 물었지만 다들 혀를 차며 인상을 찌푸릴 뿐 대답하지는 않았다. 구급차와 순찰차가 서 있는 걸 보았을 때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은 했던 터라 동현도 별말 없이 다른 사람들처럼 시체를 살피는 구급대원들을 지켜보았다. 축대 아래 배수로에서 끄집어낸 것으로 보이는 시체는 방수포로 덮여 있었다. 방수포에는 최가네 숯불갈비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다. 누군가 갈빗집의 장작을 덮어둔 방수포를 가져온 모양이었다. 방수포의 윤곽도 그러했지만 발바닥이 바깥으로 빠져 나와 있어 누가 보아도 시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축대 아래 시체를 둘러싸고 구급대원들이 분주했고 그보다 두어 걸음 뒤에 경찰 두명이 서 있었다. 경찰 뒤쪽으로 축대를 바라보고 크게 반원을 그리며 서서 마을사람들이 구경을 하고 있는 거였다.
동현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면면을 잘 알았다. 저쪽 끝에 어울려서 사고가 어떻게 났는지를 서로 추측하고 설명하고 부정하느라 바쁜 사람들은 김이박이었다. 김이박은 김씨 이씨 박씨 세 노인이 날마다 아삼륙으로 붙어 다녀서 생긴 별명이었는데 마침 나이도 김씨 이씨 박씨 순으로 내림차순이라서 당사자들도 별불만 없이 받아들였다. 김이박의 우애는 겉보기보다 끈끈해서 김씨가 아프면 이씨와 박씨도 아팠고 이씨가 배고프면 김씨와 박씨도 배가 고플 정도였다.

“저 난간 부서진 거 보라고. 저기 기대 있다가 추락한 거야.”
“난간은 진즉부터 달랑거렸는데 아무리 술이 취해도 그렇지 그걸 몰랐을까.”
“기대 있다가 추락한 게 아니고 헛발을 디딘 거지. 허공인 줄 모르고 그냥 막 걸어간 거지.”
서로 존대를 해 본 적도 없고 바란 적도 없는 김이박이었다. 그래서 누가 한 말인지 구분이 안 되었지만 딱히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이박은 옳고 그름을 따지려고 논쟁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의견에 반박하기 위해 논쟁한다는 걸 모두가 알아서였다. 경찰들에게 계속해서 말을 거는 건 대박마트 윤사장이었다. 머리가 벗겨져서 실제보다 나이 들어 보이지만 김이박보다 연배가 아래였다. 윤사장은 경찰의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그럴 때마다 정경사와 황순경은 마지못해 그런다는 듯 이따금 고개를 돌려 대꾸해주었다.
“야, 정경사! 어떤 놈이 죽인 거야?”
“윤사장님, 이게 살인사건인지 어떻게 알아요?”
“그럼 자살이야?”
“자살인지 또 어떻게 아냐구요.”
“경찰이 그걸 모르면 누가 알아?”
“경찰이라고 눈으로 한 번 보고 어떻게 알아요?”
“어쭈, 평소에는 에프비아이 저리 가라 똥 폼 잡아대더니 그것도 몰라?”
그 말에 정경사가 버럭 화를 냈지만 윤사장이 네 입에 처넣어준 캔 맥주가 몇 박스고 마른 오징어가 몇 마리인지 아냐 하며 길길이 날뛰는 바람에 황순경이 중간에 끼어들어 윤사장을 달래야 했다. 갈빗집의 최사장이 나타나 동현이 그랬듯이 경찰 쪽으로 다가가지는 않고 말굽 모양 구경꾼 대열에 섰다. 최사장은 시체쪽을 보다가 김이박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어떤 놈이 방수포를 가져갔나 했더니 여기 와있네 그려. 죽은 놈이 가져갔을리는 없고. 형님들은 아시우? 어떤 개새끼가 그랬는지?”
“야야, 너 말조심해라! 황순경이 개새끼면 황순경 부모는 뭐가 되겠냐?”
윤사장을 간신히 달랜 황순경이 이번에는 최사장을 보고 말했다.
“제가 가져왔어요. 몇 번 불렀는데 대답이 없어서 그랬어요.”
“몇 번 불렀는데? 몇 번 불러서 대답 없으면 남의 마누라도 데려가겠네?”
“제가 왜 사모님을……”
“아무튼 저거 이제 영 못 쓰게 됐으니 어떡할 거야?”

“새 걸로 사다 드릴게요.”
“새 거면 다 되는 줄 알아? 개업할 때부터 동고동락한 방수포란 말이다!”
복권방의 나여사를 비롯해 노부인 몇은 벌써 자리를 떠났고 몇몇이 지나다 새로이 구경꾼으로 합류했다가 떠나길 되풀이했다. 축대 위쪽에서도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난간 너머로 몇몇이 내려다보았지만 그들 중에 직접 축대에 옆으로 붙은 아슬아슬한 계단을 따라 내려와 가까이에서 보려는 사람은 없는 듯했다. 동현은 축대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그 너머의 아파트들을 비집고 햇살이 쏟아지는 중이라 난간에 선 사람들의 얼굴은 어두컴컴했다. 역광이 그려낸 실루엣 가운데 난간 아래 쪼그리고 앉은 아이가 보였다. 아이의 얼굴도 어두컴컴했지만 동현은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알았다. 핸드폰이 울렸다. 유진이었다.
“뭐하는데 이렇게 늦어?”
“송주사가 죽었어.”
“누구, 송주사? 아, 송주폭, 그 새끼! 우리한테 막말했던 그 새끼!”
“그래, 죽었어. 축대에서 떨어졌나 봐. 경찰이랑 구급대원들이 수습 중이야.”
“잘 죽었다, 개새끼.”
아무리 그래도 죽은 사람한테 잘 죽었다고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느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그냥 삼키고 말았다. 동현에게는 그 말을 할 기회도 없었다. 전화는 이미 끊어져 있었다. 동현은 송주사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잘 그려지지가 않았다. 거의 날마다 마주친 얼굴이었는데도 그랬다.
송주사의 본명은 송교원이었지만 본명으로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술에 취하면 주사가 심해서 주사라는 별명이 붙었다. 처음에야 장난처럼 붙인 별명이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어른스러워지기는커녕 주사가 점점 더 난폭해지고 과격해져서 아예 이름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근동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얼굴도 한 번 보면 잊기 어려울 만큼 인상적이었다. 턱선을 따라 기른 턱수염 탓에 얼굴 전체가 회백색 테두리 속에 갇힌 것처럼 보였고 그렇지 않아도 눈코입이 오밀조밀 붙었던 터라 언뜻 보면 정말 사람인지 원숭이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는 아직도 011로 시작하는 번호를 썼고 액정에 금이 가고 버튼도 잘 눌러지지 않는 낡은 그의 핸드폰을 요령껏 다룰 수 있는 사람도 오직 주인인 그뿐이었다. 계절에 따라 그의 차림새도 변하기는 해서 여름이면 인견 셔츠 주머니에 작은 선풍기를 넣고 다녔는데 그게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 보는 사람이 다 불안할 지경이었고 겨울이면 이십 년은 된 듯한 깔깔이 위에 야상을 걸치고 다녔다. 봄가을에는 낡고 해진 트렌치코트를 입고 볕 좋은 곳에 늘어져 있기 일쑤였고 신발은 주로 발목까지 올라오는 농구화를 신었다.

계절에 따라 바뀌지 않는 게 하나 있다면 그가 쓰고 다니는 밀짚모자였다. 그는 정말로 모자를 아꼈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쓰고 다니는 모자가 똑같은 모자라는 건 분명해 보였다. 그가 모자를 고집하고 아끼는 태도에서는 어떤 의식을 치르는 사람에게서 엿볼 수 있을 법한 경건함마저 느낄 수 있었는데 모자야말로 그가 허용할 수 있고 인내할 수 있는 자존심 혹은 인간성을 뜻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가 어찌나 모자를 아꼈던지 술을 마시는 내내 모자에 가려 그의 얼굴 한번 못 볼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나를 보지 말고 내 잘난 모자를 보시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동현의 전역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이 마련한 자리에서도 그랬다. 동현은 구석자리에 앉은 송주사를 보았지만 그의 얼굴은 볼 수 없었다. 밀짚모자를 푹 눌러쓴 송주사는 얌전히 혼자 소주를 따라 마시고 있었다. 이따금 고개를 들면 얼굴이 반쯤 보였다. 그럴 때마다 그의 고르지 않은 치열이 드러났다. 이빨을 펜치로 뽑고 술을 마시다 치통이 심해져 시립병원에 갔다 왔다는 소문이 떠올랐다. 탁자 위에 빈 소주병이 두 병이나 있음에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어 취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가 모자를 함부로 대하는 걸 보고서야 그가 취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차를 가려고 나선 동현은 횡단보도를 건너는 그를 보았다.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모자가 바닥에 떨어지자 그걸 줍는 대신 발로 차면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자신을 모욕하고 짓밟을 수 있는 건 오직 자신뿐이라고 시위라도 하듯 주의 깊게 모자를 노려보며 헛발질 한번 하지 않고 반대편에 이르러서야 모자를 주워 탁탁 털더니 다시 머리에 썼다.
구겨진 모자의 이쪽저쪽을 손으로 매만져 펴가면서 비틀비틀 걸어갔다.
그는 술에 취했다고 해서 곧바로 주사를 부리지는 않았다. 일정 정도의 예열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그의 주사는 그가 한자리에 주저앉아 혼잣말을 하다가 지나가는 사람 아무한테나 삿대질을 하고 고함을 치면서 시작되었다. 마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모자까지 내동댕이치고 가슴팍을 두드리며 울분을 토하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드디어 송주사가 활개를 치는 시간이 되었구나 하며 혀를 찼다. 그가 지나는 사람에게 시비를 거는 주된 장소 가운데 한 곳이 나여사의 복권방 앞이었다. 그 앞 느티나무 아래에는 나여사가 내놓은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복권방의 영업시간에는 토토복권을 하거나 즉석복권을 긁는 사람들이 애용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장사수완이 좋은 나여사를 누구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지만 송주사만은 예외였다. 복권방에서 복권 한 장 산 적 없으면서도 나여사가 주는 빨대 꽂힌 요구르트를 가장 많이 받아먹은 사람도 송주사였다. 김이박도 아무 때고 복권방에 와서 묵새기다 가곤 했는데 그들이 너무 오래 앉아 있을 눈치다 싶으면 나여사는 두말없이 문을 닫아버렸다. 김이박이 쫓겨나듯 복권방을 떠나 저만큼 가면 조롱이라도 하듯 다시 문을 열었다. 이런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낼만큼 배짱이 두둑한 나여사였지만 송주사에게만은 모질지가 못했다. 나여사는 복권방 구석에 혼자 앉아 졸고 있을 때가 많은데 손님이 들어서면 부르르 떨다가 고개를 들면서 벌떡 일어서곤 했다. 그러면 들어선 손님이 더 깜짝 놀라 황송해했다. 나여사의 얼굴에 떠오른 비참한 표정 탓에 손님은 죄라도 지은 심정이 되

어 로또 복권을 자동으로 몇 장 긁고 얼른 나가버리는 거였다. 김이박은 나여사가 그럴 때마다 모진 꿈에서 깨어난 탓이라며 놀려댔다. 김이박에 따르면 나여사는 깜박 졸아도 꿈을 꾸는데 환갑이 되어서도 군대에 끌려가는 꿈을 꾸는 사내처럼 이혼한 전 남편과 다시 결혼하는 몹쓸 꿈을 꾸는 거라고 했다. 나여사의 전 남편은 다른 사람과 재혼해서 살다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나여사는 여전히 꿈에서 전 남편과 결혼하던 시절로 되돌아가는 거였다.
복권방 앞에서 할 일을 마치면 송주사는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며 느릿느릿 축대가 있는 쪽으로 걸어가서는 축대 아래쪽으로 갈지 아니면 위쪽으로 갈지 잠시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축대 위쪽으로 향했다. 축대 아래쪽에는 마을 공영주차장이 있었다. 외부차량이 거기까지 와서 주차하는 경우란 거의 없었고 마을 사람들도 주차공간이 넉넉해서 별로 이용하지 않는 터라 거기에 늘 주차되어 있는 건 마을버스뿐이었다. 송주사는 축대 위에 난간을 등진 채 자리를 잡고 앉으면 맞은 편 단독주택 지구를 드나드는 사람들과 차량들을 노려보거나 그 너머 우뚝 솟은 아파트들을 올려다보며 한동안 노래를 부르다가 그 자리에 쓰러져 노숙자처럼 잠들곤 했다. 지나는 사람들은 이 풍경에 익숙해져서 으레 그 자리에 송주사가 쓰러져 있어야 오늘 하루도 어김없이 똑같았구나 하며 안도했고 그걸 보고 깜짝 놀라는 외지인이라도 발견하면 괜히 어깨가 으쓱해지며 묘한 자부심까지 느
끼곤 했다. 우리 동네에는 이런 사람도 있어. 우리는 날마다 이런 사람을 견디면서도 아주 인간답게 잘 살고 있어. 우리는 이깟 일에 놀라는 사람이 아니거든. 이런 자부심이랄까. 송주사의 노모가 그를 깨우러 올 때까지 자기 안방이라도 되듯 코를 골며 대자로 뻗어 잠든 꼴을 동현도 자주 보았다. 팔순이 다 된 노모가 환갑이 다 된 아들의 등을 힘겹게 떠밀면서 가로등 불빛마저 시르죽어 음울해 보이는 골목으로 사라지면 송주사의 하루가 끝난 셈이었다.

동현은 토익시험 때문에 자리를 비워야 하는 유진을 대신해 일요일 오전에 편의점을 봐주기로 했다. 유진이 일하는 편의점은 아파트 단지 뒤쪽의 외따로 떨어진 독립건물에 있어서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건물 일층에는 편의점 외에도 커피숍과 임대 관리를 하는 사무실이 있었다. 이층에는 교회와 미용실이 삼층에는 어르신 주야간보호센터가 사층에는 어린이 영어학원이 있었다. 아파트 주민들도 굳이 발품을 팔아 쪽문에서도 먼 단지 뒤쪽의 그곳까지는 잘 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커피숍에 죽치고 있는 수험생처럼 보이는 몇몇 젊은이들과 부동산 관계자들, 미용실 손님, 교회 신도, 영어학원 강사 정도가 편의점을 찾는 단골인 셈이었다. 동현은 유진을 대신해 몇 번 편의점을 보아주었던 터라 편의점 점주를 비롯해 그 건물 사람들과도 안면이 있었다. 동현을 보자마자 유진이 대뜸 물었다.
“어떻게 죽었대?”
“추락했나 봐.”
“축대에서? 그래 봐야 한 사오 미터 되나. 거기서 떨어져도 죽어?”
“운이 나쁘면 그럴 수도 있겠지.”
“운이 좋을 수가 없지. 그나저나 술은 깼어?”
“머리가 조금 아프긴 한데 괜찮아.”
“나 아홉 시 이십 분까지 가야 해. 고마워!”
편의점은 늘 그렇듯이 한가했다. 아주 가끔 손님이 들었는데 그때마다 송주사가 죽은 걸 아느냐고 묻는 말에 그렇다고 대답해주어야 했다. 그 인간 잘 죽었어,내 그럴 줄 알았어요, 하느님이 정의를 보여주셨네, 판타스틱! 이런 말들이 출입문에 달린 종에서 울리는 땡그랑 소리와 뒤섞여 동현에게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오후 두 시쯤 인상을 잔뜩 구긴 채 유진이 돌아왔다.
동현은 원주민 복덕방 앞을 지나다가 파라솔 탁자 주위에 둘러앉은 김이박을 보고 인사를 했다. 김이박이 손짓을 하는 바람에 동현은 어쩔 수 없이 그들 사이에 앉아야 했다. 탁자 위에는 캔맥주가 있었고 김이박은 동현에게도 하나를 권했다. 뚜껑을 따서 건네는 터라 거절하지 못하고 거품이 줄줄 흘러내리는 캔맥주를 받아들었다.

“오늘은 일 안 나갔어?”
“예, 오전에 편의점 좀 대신 봐주느라고요.”
“그래, 그렇게라도 하루 쉬어야지. 그놈의 노가다는 날마다 하면 아무리 젊은 몸이라도 삭는다.”
“그나저나 너 송주사 죽은 거 알아?”
“아침에 지나다가 봤어요.”
“거길 지나갔어? 우린 왜 널 못 봤지. 아무튼 송주사보다 정경사 그놈이 악질이야.”
무슨 이야기인지 들어보니 경찰이 시신의 신원확인 절차를 빨리 끝내려고 구급차까지 붙잡아 놓은 채 송주사의 노모를 데려다가 직접 확인을 시킨 모양이었다.
“그 꼴을 네가 봤다면 열불이 났을 거다. 그 어르신, 송주사의 어머니 말이다,
그 어르신이 뭐라고 했는지 아냐?”
동현은 잠자코 기다렸다. 김이박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보게, 자네 여태도 자고 있나. 얼른 일어나게. 집에 가서 자야지. 사람들이 흉보네……. 이러더란 말이야.”
“그 꼴을 보고 내 참 난생처음으로 송주사 그 자식이 불쌍하게 여겨지더라니깐.”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 자식이 내 멱살 잡고 흔들어대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신물이 올라!”
“언제는 그깟 자식한테 질쏘냐 나도 멱살 잡고 흔들어줬다고 으스대더니.”
“그 자식이 흔드니깐 나도 흔들었지!”
“흔드는 건 고스톱이고. 흔들었다가 나기가 힘들지.”
“맞아. 광 파는 게 최고지.”
이야기는 잠시 고스톱판으로 샜다가 돌아왔다.
“어쨌든 노부인께서야 늘 하던 것처럼 자는 줄 알고 깨워서 집으로 데려가려는 시늉을 하고 정경사랑 황순경 이 자식들은 아드님이 맞나요, 송교원씨가 아드님 성함이죠, 하면서 제 할 일만 하는 거야.”
“그런데 동현아, 너는 이게 뭔지 알겠냐. 송주사 죽음이 미스터리야. 거 뭣이냐,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야 할 일이란 말이다. 사람이 높은 곳에서 추락을 하면 보통 제일 무거운 머리통부터 떨어지잖냐. 근데 송주사 이 자식은 머리통은 멀쩡하더란 말야. 갈비뼈가 장기를 찔러대서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죽었다는 소견이라는데,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있을 수가 있지. 송주사 그 자식이 왜 머리부터 안 떨어졌냐 하면 그놈의 대가리가 텅텅 비어서 그렇다 이거야. 고양이처럼 헤까닥 몸을 비틀기는 했는데 그만 늦어서 등짝으로 팍 떨어진 거지.”
“과학수사는 아직 시작도 안 했을 텐데 아는 척들은. 부검도 하고 조사도 하고 한참 걸리지.”
“우리나라 문제야. 괜히 시체를 해부한다 어쩐다 난도질을 해놓고는 뻔히 아는 얘기만 할 거면서 말야.”
“그게 다 절차라는 거요. 절차. 절차를 지켜야 질서가 유지되고 세상이 무탈하게 돌아가지.”


“오냐, 너 죽으면 우선 네 돌아가신 어머니부터 모셔다가 방금 죽은 이놈이 당신 아드님이 맞지요? 하고 절차를 지켜서 장례 치러줄 테니 그때 가서 비정하네 어쩌네 딴소리 말아라.”

김이박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캔맥주로 목을 축이면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으르렁댔다. 그들을 보고 있자면 송주사의 죽음이라는 게 누구에게 눈곱만큼이라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건은 사건이라 경찰서의 진짜 형사들이 나와서 탐문 조사를 한다는데 우리도 협조 차원으로 벌써 이런저런 진술을 해줬고 그이들 헛걸음하지 말라고 몇몇을 콕 찍어서 조사하라고 일러줬다.”
동현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신 뒤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조사해 봐야 나올 게 없지. 거기에서 떨어져 죽은 게 확실하니깐.”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냥 떨어져 죽은 건지 누가 밀어서 떨어진 건지 어찌 알아?”
“안 그래도 송주사가 원한을 살 만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기에 우리 다 원한을 품은 사람이라고 말해줬지.”
김이박은 한참을 낄낄대다가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시더니 동현에게도 원한이 있지 않냐고 물었다. 동현은 제가 뭐 달리 그럴 일이 있나요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송주사 그놈이 죽기를 바란 사람이 만 명은 될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참, 동현이 너 어디 가는 길이지?”
동현은 주민센터 별관 이 층에 자원봉사를 하러 가는 길이라고 답했다. 김이박은 너도나도 고개를 주억거리며 기특하다고 한마디씩 했다. 동현은 시간이 다되어 일어나야겠다며 인사를 했다.
“참, 그러면 이따 형사들이 너 찾으면 주민센터로 가보라 하면 되겠다.”
동현의 눈에 의아해하는 빛이 떠올랐다.
“별건 아니고. 얼마 전에 너 송주사한테 싸대기 맞은 적 있잖냐. 그거 말해줬어. 걱정할 거 하나도 없다. 우리가 형사들한테 동현이는 뺨 한 번 맞았다고 원한 따위 품을 리 없는 착실한 청년이라고 다 좋게 말해줬어. 그냥 형식적으로 조사한다니깐 아무 걱정 말아라.”
주민센터 별관은 상가 건물의 이 층과 삼 층에 세 들어 있었다. 이 층 회의실에서는 주로 문화행사가 열렸고 삼 층에서는 정례 교육이 진행되었다. 동현은 이층의 교실들 중에 가장 작은 마지막 교실에 들어갔다. 이곳에 올 때마다 이상하게 기가 죽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는 이유는 처음 멘토링 프로그램에 자원봉사를 신청하고 참석했던 설명회가 떠올라서였다. 이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열정적으로 추진한 시의회 의원은 근처의 골프장을 두 개씩이나 소유한 지역 유지였다. 그 사람이 동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과장된 말투로 치켜세운 탓에 동현은 얼굴이 달아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 청년을 보세요. 불우한 가정에서 역경을 견디고 이처럼 훌륭한 젊은이로 자라지 않았습니까. 이 청년이야말로 진정한 멘토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 지역 다문화가정의 자녀들인 멘티에게 귀감이 될 젊은이가 분명합니다. 알고 보니 우리 당의 청년당원이에요. 이런 청년당원이 우리 지역에 있다는 건 당의 입장에서는 크게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어요. 우리 당이 어떤 당입니까. 저 좌익빨갱이들의……. 비서가 그 사람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고 의원도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주민센터 직원을 비롯해 다른 자원봉사자들 모두 동현을 힐끔거렸다. 그 뒤 동현은 멘토링 프로그램 관계자들이 자신을 사무적으로 대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멘티로 참여한 아이들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동현을 올려다보았다. 민호도 그날 그 자리에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인 멘티들은

프로그램이 유용해서가 아니라 주말인데도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혹은 이 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받을 수 있는 학용품, 간식 등에 이끌려서 오는 거였다. 한 달이 지나자 멘티의 절반이 출석하지 않게 되었고 다시 한 달이 지나자 겨우 두어명이 남았다. 자연스레 멘토 역할을 하던 자원봉사자들도 할 일이 없어지거나 줄어들어 그만두게 되었다. 동현이 멘토링을 맡았던 아이들 가운데 이제 민호가 유일하게 남은 멘티였다. 민호는 조부모와 함께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지만 형편이 아주 나쁜 편은 아닌지 옷차림도 단정했고 다른 아이들처럼 간식을 탐하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라고 해서 유별난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주위의 시선에 상처를 입은 아이들이라 눈치가 빨랐고 어른들 앞에서는 대체로 얌전했다. 부모의 출신도 필리핀, 베트남, 캄보디아, 네팔, 몽골 등 다양해서 막연히 다문화가정이라고 할 때 짐작했던 아이들끼리의 동질감보다는 이질감이 생각보다컸다. 뭐라 설명하기 어려운 저마다의 개성이 있었다.
책을 읽던 민호가 고개를 들고 동현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민호는 다시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현은 그럴 때의 민호가 신경에 거슬렸다. 다른 아이들이라면 동현의 눈치를 보는 척이라도 할 텐데 민호는 동현이 무슨 말이든 먼저 건네기 전까지는 한마디도 하지 않을 거였다. 동현은 이 불쾌감이 왜 익숙하게 여겨지는지 생각해 보았다. 비약일 수도 있지만 송주사의 눈빛도 그러했다. 송주사가 여느 주폭들과 구분되는 점이 있다면 그의 신랄한 눈빛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술에 취한 자들의 초점이 없고 흐리멍덩한 눈빛과 비슷하면서도 그와는 딴판으로 이따금 살기에 가까운 적의가 깃들기도 하는 눈빛이었다. 보는 사람을 오싹하게 하는 그런 눈빛. 동현은 그런 눈빛은 살인자의 눈빛일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민호가 살인자로 자랄 거라 여기는 건 아니었다. 송주사에게는 유사한 혐의들이 있었다. 누군가의 고양이가 잔인하게 두들겨 맞아 죽은 채 발견된 일도 있었다. 사람들은 송주사가 그랬을 거라 수군댔지만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송주사가 그랬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이유는 그가 실제로 유기견을 몽둥이로 잡아 천변에 불을 피워 놓고 구워먹으려다 들킨 적이 있어서였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지급되는 급여 문제로 주민센터 직원들과 날마다 다투었다. 아파트 진입로 부근의 이면도로에서 그의 노모가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는데 그 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해달라며 거의 알몸으로 일주일 내내 도로에 드러눕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누구든 맘에 안 들면 눈을 부라리며 고함을 치거나 가래를 뱉어 모욕했고 주차금지표시판이나 공사안내판 등을 발에 걸리는 대로 차고 넘어뜨렸으며 수령이 이백 년 가까이 되어 시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느티나무 아래에 틈만 나면 오줌을 갈겼다. 무슨 짓을 한다 해도 놀랍지 않을 사람이었고 무슨 일을 당한다 해도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다.

송주사는 아무도 존중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에게 가해지는 멸시를 견디는 거였고 모든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수치심을 감추는 거였다. 자원봉사자 교육 시간에 전문 강사가 했던 말이었다. 동현은 강사의 강연 내용에 공감했다. 특히 초등학교 저학년생부터는 사회적 위치에 대한 감각이 생겨나 타인과 스스로를 비교하고 누가 우위에 있는지를 판단할 줄 안다는 거였다. 이를테면 미취학 아동을 대상으로이 중에  누가 제일 힘이 세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다 저요 저요 하며 손을 드는데 초등학생들부터는 쟤요, 쟤요 하며 손가락으로 누군가를 가리킨다는 거였다. 정말 그런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수긍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각자 시기야 다를 수는 있어도 누구나 언젠가는 반드시 그렇게 되고 말 테니까. 그런 점에서 볼 때 송주사는 아직도 미성숙한 상태 그대로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이었다. 송주사한테 누가 가장 힘이 세냐고 묻는다면 어김없이 자신이라고 대답할 테니 말이다.
민호는 여전히 책에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한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동현은 축대 위 난간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민호가 떠올랐지만 그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아이들이 그런 광경을 구경하도록 내버려둔 사람들에 잠깐 분노가 솟기도 했지만 별 쓸모없는 감정이었다. 민호와의 대화는 조심스러워야 했다. 아마도 동현이 송주사에게 뺨을 맞았던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그 주말에는 민호 외에 서너 명이 더 있었고 프로그램에 따라 각자의 장래희망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의 들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 다음에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여러 위인들의 삶을 예로 들어 설명해주면 되는 시간이었다. 몽골인 어머니를 둔 사내아이가 장난스럽게 송주사처럼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지만 않았다면 그럭저럭 평소처럼 무난한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동현은 그 아이에게 사람들이 정말 송주사를 대단하다 여겨서 받드는 것 같은지 물었고 아이는 우물쭈물하며 대답하지 못했다. 동현은 사람들이 송주사를 피하는 이유는 똥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말했다. 그러자 민호가 정색을 하며 동현의 말을 받아냈다. 진짜로 더러워서 피하는 사람은 그런 말 하지 않는대요. 무서워서 피하는 사람들이 비겁함을 숨기려고 더러워서 피하는 거라고 변명한대요. 안 그래요? 동현은 기가 막혔지만 차분하게 타일렀다. 더러운 게 무서운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걸 비겁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민호가 납득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민호뿐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까지 은근히 동현의 의견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화가 나지는 않았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송주사가 단순히 기이한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었고 기이한 사람은 어느 정도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여겨 질 수도 있었다. 더군다나 다문화가정이라는 환경이 아이들을 그런 경향으로 기울도록 작용했을 수도 있었으니까. 동현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시간만 흐르는데 뜻밖에도 민호가 먼저 말을 건넸다.
“형은 장래희망이 뭐예요?”
“장래희망? 글쎄. 나도 어렸을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장래희망이라니깐 좀 우습다. 그런 말을 하기에는 너무 나이를 먹어버린 것 같아서 말야.”
민호는 동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머쓱해진 동현은 휴학하는 동안 등록금을 벌어서 복학하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무슨 공무원이냐고 묻기에 경찰공무원이라고 대답했다. 왜 경찰이 되고 싶냐고 물었을 때는 잠깐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민호와 같은 아이에게 현실적으로 동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정적이고 이상적이며 성공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게 우스울 듯했다. 그렇다고 해서 정의감이나 사명감을 말하는 것도 어색했다. 그래서 불쑥 송주사 같은 사람한테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싶어서 라는 식으로 대답했다. 의외로 민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 따지거나 묻지 않았다.

별관 입구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본서에서 나온 형사들이 아니라 황순경이었다. 나이차도 다섯 살에 동생처럼 대해줘서 동현은 평소에 황순경을 형이라 불렀다. 동현과 황순경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골목으로 들어가 담배를 피웠다.
“송주사 때문에 바쁘죠?”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 송주사 그 사람 때문에 고생한 거 생각하면 이쯤이야 일도 아니지. 앞으로 한가해질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기분이 좋다.”
“송주사의 어머니한테 신원 확인시킨 걸로 말이 좀 있던데요.”
“그게 내가 한 일이겠냐? 나야 시키는 대로 하는 거지. 근데 여기 민호라는 애있지?”
“민호는 왜요?”
“걔 보러 온 거야.”
별관에서 나온 민호가 골목 앞을 지니다 그들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황순경은 담배를 끄고 민호에게 다가갔다. 민호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더니 동현에게 돌아와서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 혹시 축대 위 난간을 발로 찬 적 있어?”
동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네가 발로 차서 난간을 부수는 걸 봤단다, 저 애가.”
“그랬다 해도 무슨 상관인데요?”
“거기가 송주사 보금자리 아니냐. 송주사가 추락한 자리이기도 하고.”
동현이 아무런 말이 없자 황순경이 혀를 찼다.
“아무 일도 아니야. 형사들이 물으면 모른다고 해. 그럼 그냥 끝이니까. 괜히 그런 적 있네 없네 식으로 나가면 조사받고 귀찮아져. 우리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너 경찰시험 준비한다면 깨끗해야 돼. 괜히 뭐라도 걸렸다간 응시도 못하게 될 수 있어.”
황순경은 동현의 어깨를 두드리면서 목소리를 낮추었다.
“사실 그랬다 해도 무슨 상관이야. 진짜 누가 송주사가 죽기를 바라서 그랬다해도 아무 상관없다. 잡아떼면 그만이거든. 형사들도 이런 경우에는 그냥 손을 놓고 말아. 범죄구성요건을 밝혀낼 수가 없으니까. 자, 어깨 펴라. 아무 걱정하지 말고. 별일 아니니까. 아무튼 그 작자 참 잘 죽었어. 누가 떠밀지 않았다는 게 아쉬울 정도야. 매번 그런 작자가 알아서 죽어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가 없잖아.”

동현은 사흘 동안 관심을 끊고 지냈다. 사람들도 더는 송주사의 죽음을 화제에 올리지 않았다. 그런 일이 정말 있었던 건지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잊어갔다. 나흘째 되는 날이었다.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 일어나서 바깥을 살피던 동현은 오늘은 파장이구나 싶어 다시 자리에 드러누웠다. 동현의 가족이 사는 아파트 단지는 1,200세대였는데 모두 임대아파트였다. 예전과 달리 개별 단지 하나의 전 세대를 공공임대로 분양하고 나머지 단지를 민간에 분양하는 추세를 따른 거였다. 사흘 동안 유진에게 연락은 없었다. 유진은 아쉬울 때가 아니면 먼저 연락하지 않는 편이었다. 연락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연락이 된다 해도 토익 시험을 망친 탓에 기분이 좋지 않다며 투덜대기나 할 거였다.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나 보니 오전 열 시였다. 빗줄기는 가늘어졌지만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은 아니었다. 동현은 유진이 일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아파트 입구에서 우산을 쓴채 리어카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송주사의 노모를 보았다. 리어카를 끄는 사람은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이었다. 우비를 입은 노인은 힘겹게 리어카를 끌었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딘가를 다녀오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사건이 모두 종결되어 송주사의 화장까지 치르고 돌아오는 중인지도 몰랐다. 잠시 머뭇거리던 동현은 스쳐 지나가는 리어카를 잠자코 지켜보았다. 송주사의 노모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는 바람에 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동현은 고개를 숙였다. 복권방 앞을 지나던 동현은 복권방 안에서 부르는 목소리에 돌아보았다. 김이박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다. 동현은 꾸벅 인사를 한 뒤 우산을 접어 물기를 탁탁 털어낸 뒤 복권방 안으로 들어갔다.
“비가 와서 오늘은 일 안 나갔구나.”
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이박은 복권방에서도 캔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여사가 빨대 꽂은 요구르트 하나를 동현에게 건넸다. 동현은 두 손으로 받아들었다. 김이박은 동현이 무슨 말이라도 하기를 기다리듯 동현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낯선 분위기였다. 김이박에게는 여전히 송주사의 죽음보다 흥미로운 일은 없는 것 같았다. 송주사 이야기가 나오자 나여사가 한숨을 쉬었다. 금세 눈물이라도 흘릴 것처럼 울가망한 표정이었다.

“그놈이 젊었을 때야 멀쩡하긴 했지. 뺑소니 사고로 마누라와 자식을 한꺼번에 잃고 나서 그렇게 됐지. 뺑소니범 찾아내서 죽여 버리겠다고 전국을 떠돌았는데 어디 가당키나 했겠어. 지금이야 사방 천지에 씨씨티비다 블랙박스다 해서 뺑소니범 하나 잡는 게 일도 아니지만 그 시절에야 없는 놈이 억울하다 하소연해도 들어주는 경찰 나부랭이 하나 없었지.”
“그런 사연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 있나. 그게 변명이 된다면 세상에 나쁜 놈이라곤 하나도 없게. 송주사 그놈은 원래 나쁜 놈이었어. 그 일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될 놈이었다니깐.”
“맞아. 그런 놈은 초장에 확 감방에 처넣어서 몇 년 푹 썩도록 해서 기를 죽여놔야 함부로 나대지를 못하지. 우리나라 문제야. 법이 물러 터졌어. 그런 자식은 아무 때나 잡아다가 사형을 시켜버려야지.”
“아무렴. 그런 놈은 사형을 시켜야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이 안 나오지. 범죄예방 차원에서라도 그런 놈은 격리를 시키거나 죽여 버려야 해. 아무튼 참 잘 죽었다, 그 자식.”
나여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두를 쫓아냈다. 나여사의 투덜거림이 뒤통수로 날아들었다. 저 인간들은 누가 안 잡아가나. 동현은 김이박의 뒤를 따라 걸어갔다. 김이박은 원주민 부동산 앞에 이르자 동현에게 조사는 잘 받았냐고 물었다. 동현은 형사가 찾아오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김이박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동현이 네가 송주사를 떠밀었다고 미친 소리를 하는 놈이 있어서 말야. 아무렴 그럴 리가 없지. 그냥 놔두면 알아서 죽을 놈인데 구태여 그럴 필요도 없지.”
그런 소문은 금시초문이라고 하자 김이박은 신이 나서 동현이가 송주사를 떠민 거라는 소문이 쫘악 퍼졌고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다는 반응이며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 거라는 게 중론이라고 말했다. 동현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김이박은 그럼 그렇지 하며 그게 사실이면 벌써 형사들이 달려들었을 테고 이런 허튼 소문이 떠돈다는 게 이 동네 수준을 보여준다며 서로 맞장구를 치더니 대견하다는 듯 동현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원주민 부동산 안으로 쏙들어가 버렸다. 비는 계속해서 추적추적 내렸다. 편의점 앞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유진은 누군가와 통화하느라 바빴다. 십 분이나 서서 지켜보았지만 유진은 여전히 통화중이었다. 동현은 집으로 돌아갔다. 저녁 무렵 유진에게 전화가 왔다.

소문 죽이던데. 운운하며 괜찮으면 술이나 한잔 하자고 했다. 동현은 외출 준비를 했다. 비는 그쳐서 사방이 말끔했다. 동네 전체가 방금 세수라도 한 것처럼 개운해 보였다. 자주 가는 치킨집에서 유진과 마주 앉아 생맥주를 마셨다. 늘 하던 이야기들이었다. 복학, 등록금, 토익, 취직, 시험, 학자금 대출, 졸업……. 유진이 갑자기 탁자 밑으로 숨어들었다. 잠시 뒤 탁자에서 나온 유진이 투덜댔다.
“아 젠장, 현수가 나 봤나 봐. 현수가 너랑 만나는 거 되게 싫어하거든.”
유진의 핸드폰이 울리고 있었다. 동현은 핸드폰을 받으라고 했지만 유진은 무음으로 바꿔버렸다. 둘 다 술이 센 편은 못 되어서 오래지 않아 취했다. 취했다고는 해도 별일이 있지는 않았다. 단 한 번 그날 밤 단독주택 단지 가운데에 있던 놀이터에서 입을 맞춘 것 말고는 둘 사이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날 송주사가 동현과 유진을 보고 손가락으로 모욕을 주기는 했다. 엉덩이를 앞뒤로 흔들며 외설적인 포즈를 취하고 더러운 말을 몇 마디 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해서 동현의 마음속에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살의 같은 게 생겨날 수는 없었다.
송주사 따위가 아니어도 동현의 일상은 충분히 힘들었고 다른 일에 진정으로 신경을 쓸 만큼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어떤 일에 분개하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고뇌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언제부터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먼 옛날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리를 따지고 분별력을 발휘하고 차별 없이 타인을 대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동현은 실제로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상관없었다. 그런 사람이 실제로 있다 해도 동현이나 그 사람이나 큰 차이가 없을 테니까. 유진이 여느 때보다 좀 일찍 취한 듯했다. 포크를 놓치고 감자튀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날 우리 진탕 마셨잖아. 토익 시험 앞두고 그랬으니 내가 미친년이지. 아무튼 송주사인지 송주폭인지 그 사람 골로 보낸 게 정말 너야?”
벌써 몇 번째 묻는 말인지 유진도 모를 거였다. 동현은 조금 짜증이 났다.
“아니라고 몇 번 말해야 돼? 한 번만 더 물으면 가만 안 둔다.”
“아유 무서워라. 진짜 네가 죽였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거 알잖아.”
“아닌 거 안다면서 왜 자꾸 묻는데?”
“……혹시나.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혹시나…….”
동현은 계산을 치르고 먼저 치킨집을 나와버렸다. 이런저런 일들이 있었다. 서너 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엄마들이 있는 놀이터에 갑자기 우르르 나타나 놀이기구에 마구 올라타던 버릇없는 중학생들을 본 적이 있었다. 동현만큼 키가 큰 녀석들이었다. 아이들이 넘어지고 우는데도 자기들끼리 떠들며 신경도 쓰지 않던 녀석들. 그 녀석들이 딱히 양아치 같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요즘 애들일 뿐이었다. 누가 뭐라든 자기가 가장 힘이 세다 믿고 무얼 하든 그럴 권리가 있다고 믿는 그저 그런 애들일 뿐이었다. 그 녀석들이 송주사에게 돈을 찔러주고 담배를 사오게 한다는 것도 알았고 밤마다 아파트 쉼터에 모여 앉아 가래를 뱉고 담배를 피우고 맥주를 마시고 떠들어 댄다는 것도 알았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녀석들이 아니었다. 살 만큼 산다는 저쪽 아파트에 사는 녀석들이었다. 아무도 그들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송주사만 빼고. 송주사만이 그럴 수 있었다. 송주사가 그럴 수 있는 건 그가 정의로운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힘이 세다고 믿는 똑같은 부류의 사람이어서였다. 동현은 갑자기 취기가 올랐다. 비틀비틀 걷다 보니 축대 아래쪽을 지나고 있었다. 동현은 고개를 들어 송주사가 추락했다고 여겨지는 쪽을 올려다보았다. 동현은 거기에 사람이 매달려 있는 걸 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발치에 떨어져 있던 밀짚모자를 주워 머리에 썼다가 배수로로 던졌던 기억도 났다. 실제로 겪은 일인지 상상한 일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공영주차장을 다 벗어난 동현은 단독주택 단지 놀이터를 지났다.
이면도로를 건너 아파트 담장을 따라 걸었다. 동현이 자주 다니는 샛길이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이었지만 중간에 계단참이 있었다. 아파트 쪽에서도 도로 쪽에서도 시야가 가려지는 데다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어 동현이 담배 피우러 자주 찾는 곳이었다. 이처럼 술에 취해 돌아갈 때 잠시 머물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거기 난간에 기대어 앉아 눈앞에 보이지 않는 많은 사람들을 조롱하고

비난하고 스스로를 달랬다. 그러니까 거기 있으면 마음이 좀 나아졌다. 기운이 좀 생겼다. 동현은 층계참 바로 위 계단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를 물었다.
누군가 우르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그들은 동현에게 신경도 쓰지 않고 각자 담배를 빼물었다. 한 녀석이 난간에 기대었다가 휘청거렸다. 난간이 통째로 떨어져나가 추락하더니 조경석에 부딪히며 쇳소리를 냈다. 녀석들은 십 년 감수했다
며 욕설을 지껄였다. 한 녀석이 말하기를 어떤 튀기 새끼가 여기 난간에 대고 날마다 발길질하는 걸 보았다고 했다. 그러자 다른 한 녀석이 튀기 새끼들 정신 상태는 우리가 알 수 없다고 대꾸했다. 또 다른 녀석이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야 저 새끼 좀 털어볼까. 잠시 침묵이 흘렀고 어떤 녀석이 말했다. 냅두자. 없어 보인다. 동현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서러움 탓에 눈물이 글썽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