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아우의 인상화 印像画

아바나, 영혼은 탈탈 털리고 심장은 도취하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의 만남 '진흙과 풀꽃'

대한민국, 2018년 늦가을

특집을 기획하며 동아시아문학 공동의 집 시간과 우리 작가와 작품, 독자와 현실의 틈새에 서서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➍ 작품교류-전통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➎ 작품교류-차이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➏ 작품교류-미래 ①주요 발제문 다시 읽기➐ 작품교류-독자 ②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 참관기 ③한중일 대표 공동 기자간담회

“어둠 속에서 둘이서,어둠 속에서 나홀로”

차이(差異)의 매혹

강릉 유가(儒家)의 군자

쓰지 않아도 된다

길 위에서

검박한 스승, 굴산사 당간지주

동아시아와 세계, 우주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의약분업의 효시

내 글의 스승, 가스통 바슐라르

속간 《문예중앙》, 2010년 가을 통권 제123호로부터

숲은 아름답고 깊지만 내겐 지켜야 할 약속이 있네 아직 가야 할 길이 남아있네

①기차를 타고 밤 약속,월동준비 ②당분간 달콤,홀로그래피

①사람 사는 집 ②네가 웃어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 잊히지 않는 일들

①최근 역사 영화의 한 경향에 대해 ②그러면, 그러면, 그러면 ③주인도 제목도 없는

①시대의 아픔 위에 놓인 애도의 문학 ②제26회 대산문학상 수상작리뷰

고민과 아픔을 문학으로 승화하기 위한 노력들

소설이 묻고, 영화가 답하다

인생 리셋을 위한 자기 계발의 과학

파라나 강물 위에는 그를 기리는 꽃잎이 흐른다

한국문학 번역, 어렵고 힘들지만 “계속해보겠습니다”

강 저편과 여기

기다림의 미학

대산세계문학총서149,150

대산창작기금, 한국문학 번역지원,외국문학 번역지원

대산문화재단 신창재 이사장 은관문화훈장 수훈 등

단편소설

눈과 사람과 눈사람

임솔아 ㅣ 시인, 소설가, 1987년생
소설 『최선의 삶』, 시집 『괴괴한 날씨와 착한 사람들』 등


먹을 것을 좀 사가자고 영혜가 말했다. 마트에서 이틀 어치의 식량을 골랐다. 규미가 애플망고를 집었다가 가격을 보고 다시 내려놓았다.
“먹고 싶었던 것 다 먹고. 하고 싶었던 말 다 해요.”
애플망고를 카트에 담으며 영혜가 말했다.
“우리가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영혜에게 물었다.
“할 수 있지요.”
규미가 애플망고를 카트에 하나 더 담으며 답했다. 영혜는 대답 대신 계산원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영혜는 이런 식으로 계산을 도맡았다. 수입의 대부분을 여기다가 써왔다. 처음으로 영혜가 카드를 내민 것은 1년 전 겨울이었다. 그때 나는 성폭력 피해자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사람을 살리러 갈 사람이 필요하다 했다. 병원으로 갔다. 그곳에서 먼저 도착한 나래와 영혜를 만났다. 환자는 의식불명이었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 입원치료를 하면 살릴 수 있다 했다. 그 절차를 밟으려면 병원비부터 결제해야 한다 했다. 100만 원이 넘는 금액이었다. 결제는 영혜가 했다. 이 일은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넷을 떠돌아다녔다. 영혜가 으스대며 카드를 내밀었다고. 거액을 쉽게 결제하는 영혜를 보며 돈 없는 자의 소외감을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는 일도 있는 자들이 차지한다고. 나래는 개탄했다.
영혜는 카드 연체를 혼자서 견디고 있을지 몰랐다. 영혜가 결제를 안 했더라면. 그저 발을 동동 구르고 걱정만 하고 있었더라면. 영혜가 그 장소에 달려가지 않았더라면. 다음 날 누군가가 병원으로 달려간 것에 그저 고마움을 표하는 정도였다면. 이런 가정법을 레일처럼 끝없이 나열해놓고 나는 매일매일 마룻바닥의 끄트머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늘 같은 곳에 나는 도착해 있었다. 우리들의 출발지. 우리가 성폭력 피해자와 연대하지 않았다면. 연대하고자 하는 마음만 있었더라면.

새해를 낀 연휴였지만 고속도로 하행선은 차가 많지 않았다. 영혜가 눈이 침침해지면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규미가 선곡했다. 모두에게 졸음이 몰려오면 셋이서 끝말잇기를 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고, 진천교를 건너고, 아파트 단지를 지나고, 드문드문 주유소와 공장과 목재소를 지났다. 숲길을 통과해 저수지에 도착했다. 하얗게 얼어붙은 저수지 위에서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우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을까요.”
창밖을 바라보며 규미가 말했다.
“위험하겠지요. 따뜻하기도 하겠지요.”
영혜는 저수지에 흩어져있던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모닥불로 모여들었다. 장갑을 벗고 두 손바닥을 모닥불을 향해 펼치고 있었다. 지원은 저수지 북쪽 마을에 살았다.

펜션 입구에서 지원이 팔을 들어 우리에게 손짓을 했다. 영혜와 규미와 나는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켰다. 너무 먼 길을 오느라 고생하셨다며 지원은 트렁크에서 우리의 캐리어를 꺼냈다.
“그동안 정말 고생 많으셨지요.”
규미가 지원에게 말했다. 지난 1년 동안 지원은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진천에서 서울을 왕복해 다녔다. 영혜와 규미와 내가 끝말잇기를 해가며 견뎌낸 거리였다.
지원이 음식 봉투를 들고 앞장섰다. 주변은 온통 새하얬다. 도로도 도로가 아닌 곳도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두 손으로 캐리어를 번쩍 들어 앞사람의 발자국에 내 발을 넣어가며 걸었다. 한 사람이 걸어간 것처럼 보이는 네 사람의 발자국이 찍혔다.
만수위를 찾아 붕어가 모여드는 여름 한철과 빙어가 연안으로 올라오는 겨울 한철에 사람들은 이 저수지를 찾아온다고 지원은 말했다. 낚시 장비 대여 가게들, 그 가게가 운영하는 펜션, 그 펜션에서 운영하는 횟집이 이 동네에 있는 건물의 거의 전부였다. 한철이 지나가면 물고기가 되돌아가고 사람들도 되돌아가고 가게들은 문을 닫는다 했다.
“지원 씨는요?”
영혜가 물었다.
“나는 다시 산책을 해야지요.”
지원이 가장 자주 한 말이었다. 지원의 자동차에는 짙은 개 냄새가 늘 배어 있었다. 차문을 열면 하얗고 얇은 개털들이 공중으로 피어올랐다. 시트에도 개털이 뒤엉켜 있었고 색색깔의 개 목줄과 개껌이 놓여 있었다. 바스러지다 만 낙엽과 나뭇가지들을 싣고 다니는 듯 보였다.
“미안해요. 사람이 타는 건 처음이라서.”
그 차를 처음 탔을 때 지원은 조수석 서랍에서 박스테이프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내 옷에 붙은 개털을 떼어냈다. 15년 동안 매일 아침마다 개 네 마리를 이 차에 태웠다고 지원은 말했다.
“아침 먹고 설거지하고 돌아서면 개들이 차 문 앞에 쪼르르 앉아 있어요. 빨리 문 열어 달라고요. 차에 타면 서로 창밖을 보겠다고 난리예요. 창문마다 한 마리씩 자리를 차지하고요. 창밖으로 머리를 쭉 내밀고 바깥을 구경해요. 옆 마을에 사람이 안 오는 산이 있거든요. 거기에다 차를 세워요. 개들하고 산길을 걸어요. 사랑이는 제 옆만 졸졸 따라다니고요. 걸으면서 자꾸 저를 올려다봐요. 소망이는 진흙만 찾아다녀요. 새하얀 털이 다 새까매질 때까지 온몸을 진흙에 비벼요. 그리고 나한테 달려와서 앞발을 들고서 덥석 안겨요. 내 옷에 진흙을 다 묻혀놔요. 진실이는 하울링을 해요. 목을 쭉 빼고 하늘을 보고 울어요. 자기가 늑대라도 되는 것처럼요. 하울링을 하다가 자기가 무슨 절창이라도 한 양 뿌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봐요. 믿음이는 저 혼자 산속으로 마구마구 뛰어가요. 숲속으로 아예 사라져 버려요. 믿음이를 부르면 아주아주 멀리서부터 믿음이 발소리가 들려요. 다다다다, 하고요. 내 목소리를 향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거예요.”
지원에게 산책은 사는 일의 목적이었다. 서울 토박이인 지원이 직장을 그만두고 진천에 이사를 온 유일한 이유였다. 지원이 서울에 올라오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차에 묻어난 개의 흔적도 냄새도 줄어들었다. 지원은 산책을 할 겨를이 없다고 했다. 영혜는 10년 넘게 키워온 화분들을 죽였다고 했다. 규미는 3개월 동안 이삿짐을 풀지 못했다고 했다. 민조는 아이가 불안증세를 보인다고 했다. 다시 산책을 해야 한다고 지원은 몇 번이고 우리에게 말했다. 우리는 다시 화분에 물을 주어야 하고 집에서 정리정돈을 해야 하고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고 했다. 1년 동안 한결같이 우리에게 이 말을 들려주었다.

펜션 주인은 우리에게 장비는 갖고 오셨느냐고 물었다. 우리는 낚시를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주인이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여분의 베개를 더 가져다줄 수도 있고, 바비큐를 원한다면 숯을 피워줄 수도 있다고 했다.
“테이블은요?”
영혜가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은 우리를 창고로 안내했다. 스테인리스 냄비들과 장독들 뒤에서 캠핑용 접이식 테이블을 찾아냈다. 철제다리에는 거미줄이 감겨 있었다. 우리는 그 테이블을 운반했다. 각자 걸레를 들고 테이블 다리와 상판을 닦았다. 거실 중앙에 테이블을 펼쳐 놓았다. 주인에게 의자 다섯 개도 받아왔다.
“네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한 자리가 더 필요해요.”
우리는 각자의 노트북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잘 도착하셨나요? 미안해요. 함께 있지 못해서.”
민조가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규미가 핸드폰을 꺼내 빈 의자 사진을 찍어 채팅방에 전송했다.
“민조 씨 자리도 여기 있어요.”
민조는 매번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작년 12월에는 시댁에서 김장을 해야 한다고, 온라인 회의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회의 시간이 되었을 때 민조는 단체 채팅방에 함께 있었다. 배추 한 포기에 양념을 바르고 고무장갑을 벗어 핸드폰을 보고, 회의 안건에 대해 말을 하다가 다시 고무장갑을 끼고 배추에 양념을 발랐다. 결국 시어머니와 크게 다퉜고 김장을 하다 말고 시댁을 나왔다. 민조는 남편과 언쟁하는 일이 잦아졌다. 상담사는 민조의 아이가 엄마의 예전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전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 같다고 민조는 고백했다. 이런 말을 몇 번이고 했고, 이 일에 마음 쓰지 말라는 우리의 답을 듣고도 민조는 언제나 함께 있었다.
영혜가 원두커피를 내리고 연필을 깎는 동안, 나와 규미는 영상채팅 프로그램을 켜서 모두를 초대했다. 지원은 돋보기안경을 꺼내 쓰고 다시 처음부터 이야기를 해보자고 말했다. 영상 속 민조가 먼저 말하기 시작했다.
“나래 씨의 블로그가 알려지기 시작한 건 1년 전 가을이었어요. 그때 저도 나래 씨의 블로그를 즐겨찾기했고요. 다른 사람들처럼 나래 씨의 글에 좋아요 버튼을 눌렀지요. 다른 사람들처럼 나래 씨의 글에 ‘연대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고요. 그 무렵 나래 씨의 포스팅 하나가 제 마음을 완전히 바꿔놓았어요. 좋아요 버튼을 누르고 자신의 몫을 다했다고 여기는 사람들, 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댓글 하나로 연대를 표하는 사람들 때문에 이 모든 짐을 혼자 짊어지고 있다고 나래 씨는 호소했어요.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제발 누구라도 함께 일하자고 요청했어요. 실은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걸 그때 처음 알게 되었지요. 남편에게 아이를 부탁하고 네 시간 정도 시간을 내서 집회에 참여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집회에서 당신들을 만났고요. 저처럼 나래 씨의 글을 보고 나온 거였지요. 기왕 이렇게 모였으니 작은 일이라도 해보자는 이야기가 우리의 시작이었어요.”
나는 그 집회에서 민조 옆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울고 있어서 서로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앞사람이 티슈 몇 장을 건네주었다. 나는 그 티슈를 민조에게 건넸다. 집회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때까지 민조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나는 민조가 일어날 때까지 자리에 앉아 있었다.
피해자들의 상황은 제각각이었다. 명예훼손 고소를 당한 사람도 있었고, 고소 위협을 받아서 법률적인 대응이 필요한 사람도 있었고, 이미 가해자를 법정에 세우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는 전담 변호사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기 시작했다.
영상 속에서 민조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아이가 깼나 봐요. 다시 재우고 올게요.”
민조가 방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아이가 칭얼대는 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왔다. 지원은 돋보기를 벗었다. 영혜는 냉장고에서 애플망고를 꺼내 왔다. 영혜는 잠자코 망고를 깎았다. 영혜의 손 아래로 망고가 미끄러질 때 지원이 잽싸게 손을 뻗었다.
“잡았어요!”
망고의 한 귀퉁이가 뭉그러져 있었다. 뭉그러진 부분을 과도로 도려내 영혜는 자신의 입안에 넣었다. 깔끔하게 잘린 조각들을 우리에게 내밀었다. 망고는 씹기도 전에 입안에서 녹아내렸다. 맛이 좋다고 규미가 말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 한 조각이 접시 위에 남아 있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양보하려다 끝까지 남아버렸다. 민조가 돌아왔다. 영혜가 입을 열었다.
“그때쯤 나래 씨의 블로그에 묘한 글이 올라왔어요. 나래 씨는 몹시 화가 나 있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적어두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우리에게 하는 말일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지요.”
내가 영혜의 말을 이었다.
“저도 그 글을 보고 나래 씨가 하고 있는 일 얘긴 줄 알았어요. 하던 일이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었거든요. 나래 씨한테 일러스트를 맡긴 클라이언트가 연락을 끊었다고 했거든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고 나서 워낙 불이익을 받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그 맥락에서 이해를 한 거지요.”

엄지손가락으로 눈썹 뼈를 꾹꾹 누르면서 지원이 말했다.
“그때 우리는 예상한 것보다 일이 너무 많았어요. 정신이 거의 없었지요. 나래 씨를 통해서만 연락을 취하던 피해자들도 우리에게 직접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고요. 그 사람들과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통화를 하고 나면 하루가 금방 가버렸어요. 가해자들로부터 협박성 전화가 걸려오고. 그때만 해도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거의 무지한 상태였잖아요.”
내가 다시 말했다.
“그즈음 제가 나래 씨한테 전화를 했어요. 집회에서 나눠줄 전단지를 제작하던 중이었거든요. 예전에 나래 씨의 블로그에서 봤던 글이 기억났어요. 새로운 인쇄소를 찾았는데 작업 속도도 빠르고 제작비도 저렴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인쇄소 연락처를 알려줄 수 있느냐고 나래 씨한테 물었어요. 나래 씨는 지금 바쁘다고 했어요. 일주일 뒤에 연락을 할 테니까 기다리라고 했어요. 목소리가 싸늘했어요. 열흘이 지났지만 나래 씨한테 연락이 오질 않았어요. 다시 전화를 해보았지만 나래 씨는 받지 않았어요. 나래 씨는 그날 블로그에 새 글을 올린 거예요. 사람들이 나래 씨의 시간과 노동력을 착취한다고 적혀 있었어요.”
나는 그때 나래가 휴식을 원한다고 여겼다. 나래에게 다른 일로 연락을 한다거나 무언가를 부탁하는 것을 중지하는 게 나래를 위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우리에게 맞는 인쇄소를 찾아내기로 했다. 다음 회의 일정을 잡기 위해서 나래에게 문자만 넣어두었다. 나래가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해도 우리가 조금씩 더 일을 맡아서 나누면 될 거라고 예상했다. 나래는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답을 보내왔지만 오지 않았다.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을 따돌리고 있다는 글이 나래의 블로그에 게시되었다.
호빵을 찌면 먹을 사람이 있느냐고 규미가 물었다. 나는 손을 들었다. 규미가 찜기에 냉동 호빵을 넣었다. 손으로 귀를 만져가며 규미는 호빵을 꺼내왔다. 우리는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몽글몽글한 호빵을 내려다보았다. 자기 앞에 호빵이 없는 민조가 영상 속에서 먼저 입을 뗐다.
“그때 그만뒀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나래 씨를 불쾌하게 만들면서까지 이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연대에도 자격이 있겠지요. 우리에겐 그 자격이 없는지도 몰랐어요. 나래 씨는 성폭력 피해자였고 앞장서서 싸워왔어요. 나래 씨는 피해자들의 싸움에 우리가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고 받아들인 것 같아요. 고통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남의 고통마저 약탈해서 정의로운 척하는 족속을 보듯이 우리를 본 것 같아요. 우리가 정말 그런 사람들일까요?”
영혜의 접시 위에는 망고 껍질과 망고 씨앗이 놓여 있었다. 영혜는 접시를 들고 일어났다. 음식물 쓰레기봉투 앞에 서서 말했다.
“망고 씨앗도 음식물 쓰레기인가.”
지원이 영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물이 못 먹는 건 일반 쓰레기예요.”
씨앗은 일반 쓰레기구나, 영혜가 중얼거렸다. 규미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 모두는 사실상 성폭력 피해자 아닌가요. 그래서 더더욱 나래 씨의 호소에 이렇게 응하게 된 거 아닌가요. 나래 씨도 이 사실은 알고 있지 않았나요.”
모두의 한숨이 지나간 뒤 지원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지 않은 것이 못마땅했던 건 아닐까요? 저는 나래 씨를 이해하기 위해 이 차이를 항상 생각해왔어요. 나래 씨는 여러 사람에게 협박을 받았고 악플에 시달렸고 클라이언트로부터 일거리를 잃어갔어요. 우리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큰 불이익을 받지 않았지요.”
지원은 두 눈을 감고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두통이 오는 듯했다. 끙, 소리를 내더니 지원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 해도 저는 그만둘 순 없었어요.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그만두지 않을 것 같아요. 나래 씨 때문에 다른 피해자들과 잡은 손까지 놓는다는 건 더 못할 짓이었어요.”
창문 아래에 네모나게 방바닥에 맺혀 있던 햇빛은 어느새 싱크대를 지나 테이블까지 다가와 있었다. 주황빛이 테이블 다리를 타고 올라오는 걸 나는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밥 먹을까요?”
영혜가 일어나 싱크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송어회를 시켜요.”
지원이 핸드폰을 들고 영혜에게 다가갔다. 공깃밥과 함께 매운탕도 끓여줄 거라며 지원은 펜션 주인의 전화번호를 입력하고 있었다. 송어는 꼭 연어같이 생겼다. 커다란 접시에 노을 같은 주황빛 살점이 차곡차곡 펼쳐져 있었다. 커다란 볼에는 상추와 깻잎, 오이와 양파와 당근이 담겨 있었다. 볼에 송어회 살점과 밥을 넣은 다음, 콩가루와 초장을 넣고 비볐다. 하나의 볼 속에 모두의 숟가락이 모여들었다.
“아는 것 같은데 모르는 맛이 나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규미가 말했다.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아요.”
민조가 웃었다. 우리는 송어회를 다 먹고 매운탕을 다 먹고 비빔밥을 다 먹었다. 영상 속에는 민조의 아이가 민조의 무릎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영상 속에 있는 이모들의 응원을 한몸에 받으며 민조의 아이는 밥을 다 먹었다. 모니터를 향해 텅 빈 입안을 보여주며 방긋 웃었다.
“진짜 다 먹었네.”
“대단하다.”
우리는 손뼉을 치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창틀이 흔들렸다. 창밖은 캄캄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영혜의 말에 지원이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나뭇가지에서 눈덩이가 떨어지는 소리일 걸요.”
소리가 날 때마다 눈덩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꾸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규미와 함께 양치를 했다.
이렇게 새해를 함께 보낼 줄은 몰랐다고, 하얀 거품이 묻은 얼굴로 규미는 내게 말했다. 요새 규미는 연예인들이 자신을 더 바보처럼 보이는 일에 열중하는 예능 프로그램만 본다고 했다. 영혜는 길고 긴 드라마를 1회부터 최종회까지 몇 날 며칠이고 틀어박혀 보았다고 했다. 지원은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아마도 민조에게는 그런 시간도 허락되지 않았을 것이다. 민조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리고, 입이 짧은 아이를 구슬려 밥을 먹이고, 등원을 시키고 집에 돌아와서 겨우 커피 한 잔을 마실 시간 정도를 누렸을 것이다.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장을 보고, 반찬을 하고,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 금세 와 있었을 것이다.
다시 시작해보자고 영혜가 말했다. 아무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영혜도 마찬가지였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우리가 이 이야기를 정리해낼 수 있을지, 일단락을 맺을 수 있을지, 몇 개월을 고민해도 우리는 답을 내지 못했다. 진천에 가보자는 말을 꺼낸 것은 영혜였다. 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모으다 보면, 이 일을 글로 정리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일정을 조정해 겨우 날짜를 맞춰보니 1월 1일이었다. 오늘이 오기까지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해야 할 말을 생각하고 또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게 말을 할 준비를 해왔다. 그러나 우리는 말하는 것조차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이 일은 영원히 글로 정리될 수 없을지도 몰랐다. 지원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100번도 넘게 그 입장문을 읽었을 거예요.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마침내 나래의 블로그에 정식으로 작성된 입장문이 올라왔다. 그 글은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랭크되었고 최다 좋아요 버튼과 최다 댓글을 받았다. 성폭력 피해를 고발했을 때보다 더 큰 관심이 집중되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연대하는 사람들로부터 피해자가 착취당하고 이용당했다니. 나래와 연대하여 진실을 밝히겠다는 사람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그 입장문에서 나래의 가해자는 바로 우리들이었다. 내가 말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나래 씨와 오해를 풀면 해결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다른 피해자들이 나래 씨를 지지하며 우리를 줄지어 비난하기 시작했어요. 한밤중에 우리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다른 사람의 블로그 글에는 좋아요 버튼을 누르면서 자신의 글에는 일부러 누르지 않았다고, 자신이 병원에 입원을 하였을 때 병문안을 오지 않았다고, 자신이 작성한 탄원서를 공유 받아 문장을 검열했다고. 권력을 가진 자들의 위계폭력이라고, 순종적인 피해자들만 선별하여 관리했다고, 대의를 앞세워 피해자들을 희생시켰다고. 우리가 해온 일들이 그렇게 명명되어갔어요.”
채팅 영상 속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온 것 같다고 민조는 말했다. 민조가 영상 속에서 사라지자 우리는 모두 창밖을 바라보았다. 방안에 있는 우리의 모습이 유리창에 고스란히 비쳤다.
“민조 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민조 씨. 잘 자요.”
“민조 씨. 고마워요.”
영상채팅방에 한 마디씩을 남기고 우리는 창을 닫았다. 지원을 쳐다보며 영혜가 말했다.
“모두가 그때 그만두고 싶다고 할 때, 이 일을 꼭 끝내야 한다고 버텨주셔서 고마워요.”
지원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몇 번씩 서로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야 말았지만 지원이 우는 것은 처음 보았다.
우리는 방에 들어가 각자의 요를 펼쳤다. 누군가의 머리가 누군가의 발에 닿지 않도록 요를 깔고 베개를 놓았다. 잠을 자다가 자꾸 비명을 지른다던 영혜도, 몸부림이 심하다던 규미도. 아무 기척 없이 금세 잠을 잤다. 맛있는 냄새에 눈을 떴을 때 우리는 마치 가족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규미와 나는 남은 이불을 갰고 영혜와 지원은 아침을 준비했다. 우리는 모두 싱크대에 나란히 서서 고기를 볶고 지단을 부치고 조미김을 봉투에 넣어 부셨다. 테이블에 네 그릇의 떡국과 김치를 올려놓았다. 지원은 오늘을 위해 그저께부터 사골을 고았다고 했다. 간하지 않은 미지근한 국물 두 그릇을 문밖에 내놓았다. 고양이 두 마리가 금세 다가와 할짝할짝 국물을 먹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영상 속에서 민조가 떡국을 먹는 우리에게 말을 건넸다. 다시는 이런 따뜻함을 나누지 않아도 되기를. 이것이 우리의 새해 덕담이었다.
지원은 우리가 장을 봐온 음식 중에서 고양이가 먹을 수 있는 것들을 골라냈다. 문을 열고 지원이 쪼그리고 앉자 고양이들이 다시 다가왔다. 우리도 문가에 쪼르르 앉아 고양이들을 바라보았다.
“한두 시간이면 그릇 속의 물이 꽁꽁 얼어요.”
겨울이 지나고 나면 동네 길고양이 수가 줄어들어 있다고 지원은 말했다.
“34쪽부터 40쪽까지는 안될 것 같아요.”
영상 속 민조가 말했다. 고드름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져 눈밭에 동그란 구멍을 만들고 있는 것을 지켜보다가 우리는 다시 테이블에 앉았다.
“이 부분이 없으면 말이 안 돼요. 그날 왜 나래 씨가 회의에 나오지 않았는지. 그 얘기가 빠지면 우리가 받은 비난을 온전히 해명할 수 없지 않을까요?”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영혜가 말했다.
“그건 나래 씨의 프라이버시잖아요.”
지원이 덧붙였다.
“어차피 이 일은 아무도 이해를 못 해요. 사람들이 이해한 진실과 우리가 이해받고자 하는 진실은 끝까지 거리를 좁히지 못할 거예요.”
우리는 34쪽부터 40쪽까지를 지웠다.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을 우리는 계속해서 지우고 있었다. 중요한 이유들은 각자의 프라이버시와 긴밀한 탓에 말하지 않는 게 옳은 말이었으므로.
우리가 가장 적나라하게 이 이야기를 써서 세상에 내놓았을 때 가장 기뻐할 사람은 아마도 가해자들일 것이다. 가해자들은 우리의 글을 자신들을 고발한 피해자들의 용기를 짓밟는 일에 사용할 것이다. 피해자도 때론 감정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할 수 있다는 점을 용인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우리가 우리를 해명하려 들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할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우리는 아무 해명도 하지 않기로 했다. 침묵하고 있다는 비난을 덤으로 받았다.
“51쪽부터는 어떤가요.”
이번에는 영혜가 체크했다. 우리는 그 페이지도 지웠다. 우리가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을 지웠고 우리가 들은 말들을 지웠다. 지우고 또 지웠다. 100쪽이 넘어갔던 글은 50쪽 이내로 줄어들었다. 우리는 다시 첫 페이지를 펼쳤다. 규미가 먼저 소리 내어 낭독했다. 규미가 목이 잠기면 지원이 이어 읽었다. 영혜와 내가 차례대로 이어받았다. 영상 속에서 민조가 마지막 부분을 읽었다.

규미의 점퍼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규미는 점퍼를 입고 바깥으로 나갔다. 우리는 규미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자주 규미를 목격했다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카페에서. 술집에서. 여행지에서. 규미가 성폭력 가해자와 웃고 있었다고 했다. 우리는 우리가 들어온 이야기를 규미에게 털어놓았다. 규미는 조심하라는 충고를 자신도 수없이 들었다고 했다. 고통스럽다고 했다. 규미가 조심해야 할 사람은 가해자가 아니라 바로 우리들이었다고. 규미의 친구들은 규미에게 세상 물정 모르는 규미를 우리가 이용한다고 주의를 주었다고 했다. 자신이 작년부터 준비해온 시나리오의 연출을 성폭력 가해자가 담당하게 되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영화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왜 규미 씨가 그 일을 포기하냐고, 일을 그만둬야 할 사람은 당신이 아니라고. 우리는 규미를 다독였다. 가해자의 SNS 계정에 규미와 함께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이 몇 차례 올라왔다.
“아빠예요.”
규미가 찬바람과 함께 다시 테이블 앞에 앉았다. 아빠로부터 전화가 온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우리 모두 눈치를 채고 있었다. 지금 규미가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규미가 무언가를 은폐하고 있다고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규미의 인간관계는 복잡했다. 그 복잡한 진실들을 우리에게 털어놓을 의무가 규미에게는 없었다. 우리에게 보여주는 규미의 모습 그대로를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지금부터 진짜 해야 할 말을 써야겠지요?”
영혜가 우리를 차례차례 둘러보았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텅 빈 껍데기밖에 없는 이야기를 작성하고 있었다. 두루뭉술하게 옳은 말들. 이 뜻도 저 뜻도 아닌 중립적인 말들. 아무도 정확하게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만이 겨우 살아남아 있었다. 오직 착하고 선한 말들. 선의만 남겨놓느라 공허해진 글이 되어가고 있었다.
“배고파요.”
활짝 웃으며 규미가 말했다.

나는 커다란 냄비를 두 손으로 들고 수돗물을 받았다.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잠시 사람들에게 등을 보이고 서 있기로 했다. 커다란 냄비를 내려다보면서 서서히 기포가 생기고 보글보글 물이 끓어오를 때까지 서 있었다. 등 뒤에서, 규미는 영혜에게 호빵에 대한 이야기를 건넸다. 충분히 웃긴 이야기였는데 영혜도 지원도 간신히 웃는 듯했다. 봉지에서 면을 꺼내어 냄비에 넣고, 분말수프와 건더기 수프를 차례차례 냄비에 넣었다. 거부할 수 없는 식욕이 혀끝에 고였다. 젓가락으로 면발을 건져 올렸다. 찬 기운을 쐬어주었다. 더 맛있는 라면을 내 등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먹이고 싶었다.
“수면제를 받으려고 정신과에 간 적이 있어요.”
영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사는 뭐라고 하던가요?”
지원이 물었다.
“법적으로 고소하는 것을 권했어요. 판결을 받아 승리를 해야만 마음이 치유될 수 있는 경우라고요.”
나도 정신과 의사로부터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덜 시달리는 방법이라는 권고를 받았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권고였다. 선택하면 안 되는 권고였다. 그래서 나는 몇몇 병원을 더 찾아다녔다.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의사를 만나고 싶어서였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간 동네 병원에서 원하던 의사를 만났다. 그는 2011년 OO 마을 참사를 기억하시냐고 내게 물었다. 전국에서 정신과 의사들이 자원을 했고 그 의사도 피해자들의 정신 상담을 위해 그 마을을 찾아갔다고 했다. 그때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고 의사는 말했다. 의사 몇 사람이 몇 명의 피해자에게 폭행을 당했고 그중 한 명의 코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코뼈가 부러진 사람은 의사직을 관두고 사라졌다고 했다. 나머지 사람들은 침묵하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그때에도 피해자들이 돈을 노리고 있다는 거짓 뉴스가 나돌았다. 자신들이 입을 열게 되면 이 이야기가 어떤 식으로 악용될지, 어떤 여론이 형성될지 뻔히 보였다는 것이다. 이후로 의사는 혼자 조사를 해왔다고 했다. 20년 동안 가정폭력 피해자들과 연대한 사람은 배에 칼을 맞았고, 화재사건 피해자와 연대해온 사람은 방화 때문에 집이 불탔고, 피해자의 협박에 시달리다가 이민을 간 사람도 있다고 했다. 노예제도를 반대하던 시대부터 줄곧 있어온 일이었다고 했다. 오래전부터 비슷한 일이 반복되었다고 의사는 말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반복될 수 있느냐고 나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느냐고 의사는 내게 되물었다. 다른 연대자가 순결하지 않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없느냐고. 또 다른 연대자에게 분노를 느낀 적이 없느냐고. 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일일수록 항상 그곳에는 자기 밥그릇을 채우려는 은밀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도 함께 현장에 있었다. 재래시장에서 기념사진만 찍고 떠나가는 정치인처럼 행동하는 사람들도 보았다. 순결하지 않은 마음. 조금씩 마음을 보태는 사람들에서부터 현장에 상주하며 함께 싸우는 연대자들, 그리고 피해 당사자들. 이들이 100퍼센트 순결하지 않은 경우를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았다. 피해자들로부터 받은 피해를 침묵함으로써 피해자들을 그나마 지켰다고 의사는 덧붙였다. 가슴에 묻으라고. 평생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조용히 이 일에서 손을 떼고 사라지라고 의사는 내게 말했다. 그 의사가 건넨 권고는 충분히 진심이었다. 내가 정말로 듣고 싶었던 말이면서도 끝까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이 말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냄비를 테이블 한가운데에 놓았다. 각자의 젓가락을 냄비에 넣어 라면을 덜었다. 유난히 맛있게 라면을 후룩후룩 먹고 있던 영혜가 말했다.
“정말 맛있네요. 어릴 때는 엄마가 라면을 못 먹게 했어요. 친구네에 놀러 가서나 먹을 수 있었어요. 레스토랑에서나 먹을 수 있는 치즈오븐스파게티처럼요.”
영상 속에서 민조는 아이가 아침으로 먹다 남긴 밥을 먹고 있었다.
“라면을 못 먹게 하는 엄마가 바로 저예요. 아이에게 아토피가 있는지라. 저도 라면을 좋아했던 사람인데. 언젠가부턴 아이가 먹을 수 있는지 없는지만 고민하면서 살았어요.”
나도 라면에 대한 견해를 보탰다.
“저는 혼자 먹는 건 안 좋아해요. 이렇게 사람들하고 같이 먹을 때가 맛있어요.”
모두가 입을 모아 내 말에 동의했다.
꽁꽁 얼어버린 그릇을 뜨거운 물로 녹였다. 새로운 물을 담아 문밖에 내놨다. 자동차 아래에 고양이들이 웅크리고 있었다. 그중 한 마리가 천천히 다가왔다. 한 발씩 다가갈수록 고양이의 눈동자에 경계심이 짙어졌다. 나는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빠르게 도망갈 수 있도록 고양이는 발을 최대한 뒤쪽에 두고 목을 쭉 빼서 물을 마셨다. 다른 고양이들도 차례대로 차 밑에서 나왔다. 마지막으로 새끼 고양이가 나왔다. 걷는 것이 익숙지 않은 것처럼 뒤뚱거렸다. 한참 뒤에야 새끼 고양이가 물그릇으로 다가왔다. 새끼 고양이는 물그릇으로부터 한 발치 떨어진 곳에 웅크려 앉아 다른 고양이들이 물을 마시는 것을 바라보았다. 새끼 고양이가 물그릇으로 다가오자 다른 고양이가 이를 드러내고 하악 거리는 소리를 냈다. 차 밑에서 체온을 나누어 왔으면서도 마실 물을 나누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고양이들이 물을 다 마시고 차 밑으로 돌아간 이후에야 새끼 고양이는 물을 마셨다. 그리고 천천히 차 밑으로 돌아갔다.
민조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라고 했다. 외투를 입고 가방을 챙겼다. 아이와 함께 시댁 어른 병문안을 가야 하기 때문에 밤에나 채팅방에 접속할 수 있을 거라고 민조는 말했다. 우리도 함께 바깥바람을 쐬면 어떻겠냐고 지원이 말했다. 펜션에 온 후로 첫 외출이었다.

지원이 차 보닛을 노크했다. 차 아래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튀어나왔다. 옆에 세워져 있던 자동차 아래로 들어갔다. 영혜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히터를 틀었다. 조금씩 따뜻해질 거라고 영혜가 말했다. 지원이 매일 산책하던 그 산을 함께 산책해보자고 규미가 말했다. 지원의 안내에 따라 영혜가 핸들을 돌렸다. 똑같이 생긴 나무가 빽빽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두텁게 쌓여 있는 눈더미를 견디고 있었다. 햇빛은 없었지만 눈 때문에 밝았다. 우리는 다시 한 명의 발자국처럼 보이는 네 명의 발자국을 찍어나갔다.
전나무와 잣나무와 소나무와 리기다소나무의 차이점에 대해 우리는 이야기했다. 지원이 장갑을 벗었다. 몸을 숙여 눈밭 위에서 무언가를 주워 우리들에게 보여주었다.
“소나무 씨앗날개예요.”
지원의 손바닥 위에는 새까만 씨앗과 그 씨앗을 둘러싸며 연약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날개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각자 허리를 굽혀 여기저기에서 씨앗날개를 하나씩 찾아냈다. 공중에서 떨어뜨려 보았다. 회오리를 그리며 맥없이 하강했다. 지원이 내민 씨앗날개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걸었다. 똑같은 풍경이 똑같이 지나갔다. 발끝이 차가웠다. 볼이 얼얼해지고 입가가 빳빳해졌다. 하얀 입김만이 우리의 얼굴 앞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다시 이 숲을 믿음이, 소망이, 사랑이, 진실이와 함께 와야 한다고 지원이 혼잣말을 했다.
우리와 끝까지 연대했던 피해자들은 일심에서 승소했다. 우리를 향한 비난들이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한 비난이 아니었냐는 의견이 인터넷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나래의 블로그는 비공개로 전환되었다. 나래와 의견을 같이했던 사람들 몇몇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우리도 누군가의 눈에는 사라진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숲이 깊어지기 시작하자 나무들의 키는 훌쩍 커져 있었다. 눈은 새하얗고 두터웠다.
“우리가 작아지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지원이 말했다. 우리는 고개를 꺾어 끝이 보이지 않는 나무들의 끝을 올려다보았다.
“왜 목소리는 커지는 걸까요.”
영혜가 나무 끝을 향해 말하듯 고개를 젖히고 있었다. 나는 입을 벌려 아, 아, 아. 소리를 내보았다. 내 목소리가 나무들 사이를 비집고 메아리쳐 돌아왔다. 숲 한가운데에서 우리는 멈춰 섰다. 커다랗고 동그란 눈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누군가 눈사람을 만들다가 포기한 듯했다.
“누가 여기까지 왔나 봐요.”
규미의 말에 우리는 모두 장갑을 벗었다. 바닥의 눈을 두 손으로 뭉쳤다. 한 사람이 뭉친 눈에 다른 사람이 뭉친 눈을 더했다. 쪼그려 앉아 눈덩이를 굴렸다. 두 손으로 눈덩이를 토닥이고 다시 눈덩이를 굴렸다. 넷이서 눈덩이를 들어 올렸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눈덩이 위에 우리가 만든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영혜가 눈밭에서 솔방울을 찾아왔다. 지원은 나뭇가지를 주워왔다. 나와 규미는 돌멩이를 찾아왔다. 이목구비를 만들고 두 팔을 만들었다.
“오늘 밤에는 글을 완성할 수 있을까요.”
내가 물었다. 지원과 영혜는 답이 없었다.
“할 수 있지요.”
규미가 답했다. 규미에게 차마 물어볼 수 없었던 것들을 오늘 밤 규미가 먼저 말해 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오늘은 우리가 함께하는 마지막 날일지도 몰랐다. 영혜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카메라 화면에 모두의 얼굴이 담길 수 있도록 우리는 얼굴을 더욱 가까이했다. 눈사람까지 다섯 명. 다섯 명의 얼굴이 사진에 담겼다. 눈사람만 그곳에 두고 우리는 뒤돌았다. 우리의 발자국에 발자국을 넣어가며 나왔다. 우리만큼 커져가던 우리의 목소리도 우리만큼 작아져갔다. 눈사람이 우리 대신 그곳에 서있을 것이다. 점점 작아질 것이고 언젠간 사라질 것이다. 저수지의 얼음이 녹고 깊은 물속으로 빙어가 돌아가면 사람들은 뜸해질 것이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이 사라진 계절에 고양이들은 차 밑에서 나와 햇볕을 쬘 것이다.
“다들 거기 계신가요?”
단체 채팅방에 한 개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밤이 올 때까지 접속할 수 없다던 민조였다.
“아직 여기에 있어요.”
영혜가 민조를 포함한 모두에게 우리들이 눈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을 보냈다.